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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을 찾아 나선다! 그들만의 ‘극기 휴가’

고행을 찾아 나선다! 그들만의 ‘극기 휴가’

‘보디 앤 소울’의 하루 일과는 오전 6시 30분 정각에 노크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알람시계의 잠시 멈춤 기능은 사용할 수 없다. 오전 7시, 마루 매트 위에서 요가 동작을 취하는 참가자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들의 팔다리는 고문을 당하는 사람들처럼 뒤틀려 있다. 다음은 아침식사. 오트밀 죽과 마른 자두, 그리고 카페인을 제거하고 설탕을 넣지 않은 차 한 잔이 전부다. 나노 시대에 걸맞은 극소량의 식사다. 그런 뒤 한나절 동안의 산악 행군이 이어진다. 역시 간소한 점심을 먹은 뒤 카약 타기, 산악 자전거 타기 등 힘든 오후 일과가 해질녘까지 계속된다. 다음날 아침 참가자들은 온몸이 쑤시는 걸 느낀다. 존재조차 몰랐던 근육 부위에도 통증이 느껴진다. 아일랜드 산골에 있는 이 극기 수련원에서 참가자들이 5일 동안 ‘고행’을 하기 위해 치른 돈은 무려 2500달러. 하지만 그들은 기회가 생기면 이런 극기 훈련을 다시 하겠다고 다짐한다. 보디 앤 소울에서의 생활을 느긋한 휴가여행이라고 착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냥 빈둥거리면서 휴가를 보내진 않겠다고 결심하는 영악한 사람이 늘고 있다. 보디 앤 소울의 소유자이자 엄격한 훈련감독인 에이단 보일은 “풀장 가장자리에 앉아 칵테일을 마시며 일광욕이나 즐기는 시절은 지났다”고 말했다. “요즘 사람들은 좀 더 의미 있는 휴가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선 소파를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 보디 앤 소울에는 외국의 부유층 헬스광들이 꾸준히 찾아온다. 정확히 언제부터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의 어느 시점부터 근로 전사들의 휴가 개념이 180도 바뀌었다. 지상낙원 같은 한적한 휴양지에서 얼굴 마사지나 전신 마사지를 받는 건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의욕이 넘치는 일부 여행객은 복잡한 관광명소를 피하고 자신들의 한계를 시험할 수 있는 극기 훈련장을 일상의 탈출구로 찾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드렉셀 대학의 여행·관광학과 교수 줄리오 아람베리는 “이 세상의 온갖 것을 갖춘 사람들이 온갖 것을 시험해 보고 싶어 한다. 심지어 지옥마저 체험해 보려 한다”고 말했다. 방법은 다양하다. 얼음 호텔에서 추운 밤을 보내거나 난민수용소 같은 곳에서 굶다시피 하며 체중을 줄인다. 혹은 카페인과 술을 모두 끊거나 바다에서 카약을 저으며 폭풍우와 싸우는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이렇듯 휴가 기간에 고행을 하려는 여행자가 점차 늘고 있다. 크레디트 스위스 은행 뉴욕지점의 중역이자 보디 앤 소울 애호가인 릴리(자신의 성[姓]은 밝히지 말라고 요구했다)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고행이 즐거울까? 내가 대화해 본 일부 사람은 마치 감옥 생활처럼 들린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겐 의미 있는 체험이다.” 기존 휴가 여행의 표식은 멋지게 그을린 피부, 숙취 후유증, 마음의 평화였다. 그러나 사치스러운 ‘고행 휴가’의 상징은 줄어든 허리, 물집이 생긴 발바닥, 자기단련에 대한 자신감이다. 뉴욕에 있는 건강 여행 정보 센터인 스파파인더는 “심신의 독소를 제거하는 호화판 극기 훈련 여행”이 건강산업 분야의 최신 흐름 중 하나라고 소개한다. 이런 여행에서 참가자들은 단맛 나는 음식, 술, 육류, 낙농제품 등을 멀리하고 극한 운동을 통한 섭생법을 체험한다. 스파파인더의 수지 엘리스 사장에 따르면 연간 600억 달러 규모의 온천산업에서 극한 운동과 독소 제거 프로그램을 도입한 온천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다. 업계 분석가들은 그 수치가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엘리스 사장은 “여행객들은 과식과 과음, 과도한 파티 행각에 싫증을 느낀다”면서 “돈은 벌 만큼 벌었으니 이제 건강을 챙기자는 추세다”고 말했다. 물론 터키의 유명한 록셀라나 바스와 뉴욕주 북부의 사라토가 스프링스 등 치료와 영적 갱생을 위한 온천 휴양지들은 인류 문명만큼이나 오래됐다. 그러나 기존의 ‘치료’ 방식은 단순했다. 예컨대 영국의 유서 깊은 온천 휴양지 바스의 광고 문구는 “마음껏 즐기는 최고급 휴양지”였다. 대다수 업계 관계자는 엄격한 금욕주의적 휴가 프로그램의 효시를 ‘더 아슈럼’으로 본다.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 산악지대에 있는 극기 훈련 휴양소인 아슈럼은 1974년 극단적인 체중 감량 및 운동 프로그램을 최초로 선보였다. 그 뒤부터 고행 휴가 개념은 급속도로 퍼졌다. 세계 도처에서 수천 개의 모방 업소가 생겨났다. 스파파인더에서 소개하는 업소 목록에만 272개의 극기 운동 단체가 올라 있다. 보디 앤 소울의 보일 사장은 자신의 업소도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부단히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엔 경쟁 업소들이 엄청 많아졌다. 특히 지난 5년 사이에 시장 규모가 급속도로 커졌다.” 물론 큰돈을 들이지 않고 야생에서의 생존 기술을 배우는 스파르타식 프로그램은 수십 년 전부터 있었다. 아웃워드 바운드 같은 국제적인 비영리단체가 대표적인 예다. 캐니언 랜치 같은 온천 휴양지들도 그런 유형에 속한다(원하는 사람만 호화판 극기훈련 코스를 선택한다). 요즘의 유행에서 다른 점은 최고급 고행 프로그램에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엘리스 사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과거의 체중 감량 센터들은 그라놀라(귀리에 건포도나 황설탕을 섞은 아침식사용 건강식) 위주로 운영됐다. 다른 프로그램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고급 시설에 숙박하면서 독소 제거와 극기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막연히 불안감을 느끼는 부유층의 등장은 그런 경향을 촉진한다. 삶의 의미를 찾는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들이 바로 그런 부류다. 최고급 온천들은 세련된 섭생법으로 고객 유치 경쟁을 벌인다. 예컨대 식품 영양에 관한 ‘재교육’, 파워 요가, 명승지 산행 같은 것이다. 풍수지리에 맞춰 지은 헬스장에서 고객들을 개인 지도하는 트레이너들도 있다. 보디 앤 소울은 고강도의 요가, 카약 타기, 하이킹 같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고객들이 삶의 운전석에 복귀하도록 돕는 인생 상담” 프로그램도 있다고 보일 사장은 소개했다. 그리고 보디 앤 소울의 요리사들은 고기·유제품·설탕·소금 등을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맛을 기대하기 어려운 식재료를 가지고도 맛있는 음식을 기적처럼 만들어낸다.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고행 휴가 프로그램은 러시아에서 특히 유행하는 듯하다. 일례로 한 여행사는 초보자들을 위한 ‘자신감 형성’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참가자들은 체첸전쟁 참전 경험이 있는 해병대원이나 특수부대 출신 강사들의 지시에 따라 고된 극기훈련을 받는 대가로 큰돈을 지불한다. 대부호만을 대상으로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소도 있다. 예컨대 왕족 같은 생활에 권태를 느끼는 재계 거물들에게 모스크바의 빈민가에서 넝마 조각을 걸친 채 구걸 행각을 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루에 3000달러나 내고 이런 체험을 하는 사람이 정말로 있을까? 이벤트 주관업체로 ‘걸인 행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크니아제프의 세르게이 크니아제프 사장은 “바로 재벌 총수들이 그런 걸 몹시 즐긴다”고 말했다. 4년 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요즘 전성기를 누린다. 주말마다 8~12명의 대기업 총수가 참가 신청을 한다고 한다. 고행 휴가엔 비용이 많이 든다. 비교적 전통적인 극기훈련 체험장의 참가 비용은 하루 300~500달러다. 캘리포니아주 에스콘디도에 있는 골든 도어 온천의 경우는 1주일에 무려 7995달러를 받는다. 부유층이 특급 호텔 숙박비 수준의 비싼 돈을 지불하고 수퍼모델처럼 극소량의 음식을 먹으며 자신을 혹사하는 이유는 학자들에겐 일종의 미스터리다. 업계의 일부 분석가의 견해에 따르면 부유층은 자신들의 여가 시간을 인생의 교정 수단으로 본다. 현대인들을 짓누르는 스트레스와 운동 부족, 그리고 영양 과잉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로 본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독소 제거 온천장은 현대판 수도원이다.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내면의 참된 자아와 접촉함으로써 심신을 보양하는 요양원인 셈이다. 그러나 휴가철에 자신을 혹사하는 것과 일상 생활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고행 프로그램 참가자의 상당수는 정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일종의 압력솥 같은 상황에 처한다. 경쟁은 치열하고, 근무시간은 너무 길며, 사내 정치는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만든다. 본인이 의식하든 않든 그런 사람들은 휴가도 직장생활과 똑같이 보낸다. 세계여행관광협의회(WTTC) 회장이었던 빈스 울핑턴은 “이런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학적인 마조히스트”라고 규정한다. “그들은 고급 승용차와 비싼 요트를 갖고 있는, 부러울 게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뭔가 색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한다. 휴가철에 자신을 혹사하는 것은 부를 과시하는 새로운 방법이다. 자신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는 상징적 행위다.” 보디 앤 소울의 보일 사장은 약간 다른 견해를 보인다. “많은 사람이 우리 업소를 찾는 이유는 직장과 인생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그래서 뭔가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다고 느낀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건강 회복은 룸 서비스처럼 저절로 오는 게 아니라고 보일은 강조한다. “얼굴이나 전신 마사지만으로 건강해지진 않는다. 하지만 당장 집 밖으로 나가 8㎞ 정도를 걷는다면 인생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할 수도 있다.” 크레디트 스위스 은행 간부인 릴리는 그 점을 어렵게 깨달았다. 보디 앤 소울의 해변 캠프가 있는 브라질에서 그녀는 어느 날 악천후 속에서 카약 타기를 했다. 심술궂은 대서양의 폭풍우 속에서 그녀는 역풍과 파도를 상대로 힘겹게 노를 저었다. “고통을 느끼면서도” 육지로 다가가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다. “온몸이 쑤시고 지칠 대로 지쳤지만 왠지 희열을 느꼈다. 나는 그 체험을 통해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가장 중요한 점은 자신을 믿는 일이다.” 당신의 돈을 받는 엄격한 훈련감독을 믿는 것도 중요하다.


With ANNA NEMTSOVA in Mosc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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