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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 뜻 따라 기술학교 세울것”

“선친 뜻 따라 기술학교 세울것”

▶부친인 고 최종건 SK 창업자의초상화 옆에 선 최신원 회장.

최신원 회장은… 1952년 경기도 수원 생. 경희대와 미국 브랜다이스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SK그룹 창업자인 고 최종건 회장의 차남으로, 형(윤원)이 2000년 지병으로 사망한 이후 최씨 일가의 맏형 역할을 하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이 사촌동생이다. SK유통을 거쳐 2000년부터 SKC와 SK텔레시스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SK가(家)의 맏형인 최신원(56) SKC 회장이 지난 3월 ‘기업인의 최고 영예’로 불리는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금탑산업훈장은 선친인 고(故) 최종건 SK 창업주가 45년 전에 받은 훈장이다. 그는 “선친에 이어 훈장을 받게 돼 감회가 남달랐다. 어깨 너머로 배운 경영 안목과 덕에 힘입었다”고 말했다. 포브스코리아가 4년여 만에 최 회장을 만났다.
최신원 SKC 회장은 전보다 건강이 훨씬 좋아 보였다. 세월을 거스른 비결을 묻자 “30년 동안 매일 피우던 담배를 3년 전에 완전히 끊었다”고 했다. “제가 금연한다고 하자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이 이를 사내 게시판에 올려버렸습니다. 꼼짝없이 끊어야겠더군요. 지금은 제가 금연 전도사로 나서서 만나는 사람마다 금연을 권하고 있습니다.” 담배 냄새가 가득했던 회장실엔 은은한 향이 피어나고 있었다. 재떨이가 있던 자리엔 최 회장이 평소 취미로 수집하는 모형 차들이 자리 잡았다. “담배를 끊고 나니 독주도 안 마시게 되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와인을 마십니다. 몸이 얼마나 가벼워졌는지 모릅니다.” 지난 4년 동안 최 회장만큼이나 가벼워진 것이 바로 그가 이끌고 있는 SKC다. 2000년 최 회장이 부임한 후 이뤄 놓은 SKC의 변모를 지켜보면 환골탈태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SKC는 지난 1976년 설립된 선경화학을 모태로 한 회사다. 업계에선 국내 최초로 폴리에스테르 필름을 개발한 기록을 갖고 있고, 일반인에겐 비디오 테이프를 만드는 회사로 알려졌다. 비디오 테이프, 콤팩트 디스크(CD) 등을 생산하는 사업부문이 10여 년 전만 해도 회사 매출의 70%가량 차지했다. 최 회장은 SKC 회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비디오 테이프와 CD를 만들던 천안 공장을 방문했다. 당시 천안 공장은 비디오 테이프의 가격이 날로 떨어지면서 적자만 쌓이는 실정이었다. 그는 공장 직원들에게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했다. 그는 비디오 테이프 등 기존 제품 생산라인을 중국 공장으로 옮겼다. 대신 그 자리에 휴대전화, 2차 전지,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용 필름 등의 생산라인을 구축했다. 이 공장은 2002년에 흑자로 돌아섰고, 2003년엔 SKC 전체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올리는 알짜 사업장으로 변신했다. 최 회장은 “한때 개당 30달러였던 비디오 테이프 값이 지금은 25센트까지 떨어졌다”며 “계속 가져갔다면 어떻게 됐겠느냐”고 반문했다. 이후에도 SKC의 변신은 계속됐다. 2003년 CD 사업부를 접은 대신 2004년엔 디스플레이 소재 사업에 진출했다. 2005년 2차 전지 사업부문을 SK에너지(현 SKME)로 넘겼고, 자기테이프 사업부를 SKC미디어로 옮겨 분사했다. 2006년 6월엔 SK텔레텍을 매각해 휴대전화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사업부문을 매각할 때마다 자녀를 결혼시키는 심정입니다. 특히 임직원들과 헤어지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이지요.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각 사업부문이 경쟁력을 갖추고, 회사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큰 희망과 기대를 품게 되더군요.” SKC는 기존 사업을 정리하고 대신 태양광전지 등 잠재력이 높은 미래 사업에 진출했다. 2007년 8월 일본의 다이오니폰산소(大陽日本酸素)와 합작해 SKC에어가스를 설립했다. 12월엔 코스닥 업체인 솔믹스를 인수해 태양광전지 사업에 뛰어들었다. 최 회장은 “과거 사업매각 경험을 토대로 신사업에 진출할 때는 항상 직원들에게 유비무환 정신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연구·개발(R&D)을 통해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쌓은 분야에만 진출한다는 것이 나의 철학”라고 밝혔다. SKC는 지난 4월엔 경쟁사인 코오롱과 50%씩 지분을 나눠 갖는 조건으로 글로엠이란 합작회사를 세웠다. 글로엠은 두 회사의 폴리이미드(PI) 필름 사업부문이 합쳐져 설립됐다. PI 필름은 휴대전화, 평판디스플레이 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소재다. 두 회사 모두 이 분야의 후발 주자로 손을 잡고 덩치를 키우는 게 절실한 시점이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숨가쁘게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SKC는 눈에 띄게 날씬해졌다. 한때 6개였던 사업부는 현재 화학사업부와 필름사업부 두 개로 정리했다. 지난해 매출은 8440억원으로 2005년의 60% 수준으로 줄었다. 물론 SKC하스, 글로엠 등 합작회사 매출을 합치면 1조원 이상으로 늘어난다. 시장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NH투자증권의 최지환 애널리스트는 “SKC는 지난 몇 년 동안 구조조정으로 축소된 외형을 검증된 회사와의 M&A, 합작법인 설립 등을 통해 만회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 회장은 지난 3월 이런 구조조정의 결실을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기업인의 최고 영예’로 불리는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그는 훈장을 받은 직후 선친의 선영이 있는 경기도 화성으로 달려갔다. 금탑산업훈장은 최 회장의 선친이자 SK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이 63년에 국내 민간인 최초로 받은 훈장이다. “이번 수훈은 제 개인의 공로보다는 회사 임직원의 공로가 더 큽니다. 하지만 선친과 2대 최종현 회장(73년)께서 받으신 훈장을 제가 뒤이어 받았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정말 남다르더군요. 특히 올해는 선친의 35주기이자, 2대 회장의 10주기가 되는 시기이잖습니까. 열정과 추진력을 갖춘 창조가형 기업가인 창업주와 조직 관리, 자원 운용에 철저했던 관리자형 기업가인 2대 회장이 있었기에 지금의 SK가 있습니다. 훈장을 받고선 저를 비롯한 형제들이 그분들만큼 각자의 영역에서 잘 하고 있는지, 걱정과 함께 막중한 책임감도 느꼈습니다.” 최 회장이 선친에게 갖는 남다른 존경과 애정은 각별하다. 틈만 나면 선영을 찾아 참배한다. 얼마 전엔 수원시 평동에 있는 선친의 생가를 복원했다. 을지로에 있는 최 회장 집무실에선 사진과 훈장, 육성 녹음 테이프 등 부친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제가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은 안목과 의리, 덕입니다. 사업을 할 때는 길게 보고, 직원들은 의리와 덕으로 다가서라는 거지요. 이런 점에서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역할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전 회사 운영에 세세하게 관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신뢰를 주고, 회사의 큰 결정이 필요할 때 적극 나섭니다. 그랬더니 회사가 분할하고, 구조조정할 때 직원들이 신뢰를 보내주더군요. 최근 이건희 삼성 회장처럼 책임지는 모습도 함께 보여주는 게 오너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최 회장은 ‘재벌 회장님’이지만 노조위원장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직원들의 자녀들이 대학에 가면 만년필을 선물하는 등 임직원들의 대소사를 직접 챙긴다. 그룹 내 한 임원은 “노조위원장을 직접 만나는 바람에 경영진이 처음엔 당황했다”며 “지금은 최 회장이 노사화합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 회장이 베푸는 덕에 화답하듯 SKC 노조는 지난해 항구적인 무분규 선언을 했다. 최 회장은 사회사업에서도 선친의 가르침을 이어가고 있다. “아버지는 평소 ‘내가 기업을 하고 있지만 저 공장은, 저 재산은 개인의 것이 아니고, 국민의 것이다. 종업원의 발전이 회사의 발전이요, 회사의 발전은 국가의 발전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과 기업 발전의 초석을 이룰 인재 육성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파악하신 겁니다.” 최 회장은 선친의 뜻을 받들어 ‘선경 최종건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선경 최종건장학재단은 매년 190여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 “선친의 유지인 기술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최근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것처럼 저 또한 학교를 세우고 싶습니다. 교육의 장을 통해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도 다하고 싶습니다.”

“분가나 계열 분리나 때가 되면 이뤄지겠죠”
최 회장은 선친과의 추억이 많은 워커힐 호텔에도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워커힐 호텔은 최종건 회장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인수한 사업체다. 최 회장은 “워커힐 호텔은 선친뿐 아니라 가족들과의 추억도 많은 곳”이라고 말했다. 재벌가 2세 가운데 드물게 그는 해병으로 36개월간 복무했다. 이 역시 아버지의 ‘강권’이었다. “원래 제 성격이 내성적이었습니다. 육군으로 입대할 생각이었는데 어느날 아침 아버지가 해병대에 가라고 하시더군요. 지금 경영을 해보니까 당시 해병대 경험이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해병대를 제대한 것에 대해 최 회장은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외아들 성환 씨도 해병대에 입대시켰다. 최 회장은 또 SKC와 SK텔레시스 직원들을 3년에 한 번꼴로 해병대 극기 훈련을 보내 ‘해병대 CEO’란 별명을 얻었다. 최 회장은 최종건 회장의 7남매 중 차남이다. 지난 2000년 장남인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이 작고한 뒤 SK가(家)의 장손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그가 SK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고 SKC 주식을 매입하면서 최태원-재원, 최신원-창원 사촌형제 간의 계열 분리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 회장은 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선대에서도 그랬지만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우리 형제들끼리는 정작 사업 이야기를 잘 안 하는 편입니다. 다만 각자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서로 어려울 때 돕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따로 또 같이 경영’이라고 할까요. 분가나 계열 분리나 때가 되면 언젠가 이뤄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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