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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와 탐욕의 희생자들

무지와 탐욕의 희생자들



반달가슴곰(Ursus thibetanus)

멸종위기 종 1급 현황: 현재 우리나라 자연 환경에서 야생 반달가슴곰의 수는 20여 마리로 추정되며, 2004년부터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러시아 연해주와 북한에서 새끼 곰을 가져와 지리산에 방사하고 있다.

숲의 관리자: 반달가슴곰은 온화한 성격으로 참나무류가 번성하는데 필수적인 숲의 깃대종이지만 100g의 웅담을 위해 100kg의 곰이 희생된다.

1997년 11월 늦은 가을, 대한민국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 산자락에 300여 명의 사람이 모여들었다. 환경부를 비롯한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 국내 야생동물 전문가, 환경단체 회원뿐만 아니라 호주·일본에서 온 야생동물 전문가도 30명이나 됐다. 야생 반달가슴곰의 생존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당시만 해도 웅담 채집을 위한 밀렵이 전국적으로 성행하던 시기라서 반달가슴곰은 멸종 직전까지 내몰렸다. 정부와 국민의 무관심 속에 국내 웅담 밀거래 시장은 바다 건너 미국·캐나다 등에서 현지인을 고용한 불법수렵으로까지 확대돼 국제적으로 ‘어글리 코리안’이란 조롱거리가 됐다. 때를 같이해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등 국내 환경단체들과 언론에서 호랑이, 반달가슴곰 등 국제적으로 멸종 위기에 놓인 야생동물들의 국내 밀렵과 보신문화의 폐해를 바로잡으려는 운동을 전개했고, 환경부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황소개구리, 블루길 등 외래종에 의한 고유 생태계의 파괴를 줄이기 위한 국민적 운동이 전개됐고, 1998년 4월 야생 동·식물 198종이 최초로 멸종위기 종으로 자연환경보전법에 지정됐다. 그러나 이들 멸종위기 종이 처한 위급 상황을 개선하려는 정부의 실질적인 노력은 1999년께야 시작됐다. 정부 조직 개편으로 야생동물 보호관리 기능이 산림청에서 환경부로 이전되고부터다. 전래동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호랑이, 여우, 늑대, 노루, 곰 등은 우리에게 더없이 친숙한 동물들이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이미 한국에서 자취를 감춘 말 그대로 “신화적” 존재가 돼버렸다.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국내 야생동물을 무차별적으로 포획한 해수구제사업의 타격이 컸다. 한국호랑이가 좋은 예다. 체구는 크지 않지만 영리하기로 유명한 한국호랑이는 특히 한반도의 모양새가 포효하는 호랑이를 닮았다 하여 한민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동물로 사랑 받았다. 대한제국 말기까지만 해도 한성(지금의 서울) 외곽의 산에 사는 호랑이가 밤마다 시내로 내려와 유유히 사대문 안을 배회해 당시 궁성에서 야간출입을 삼갈 정도였다. 하지만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뒤 1911년부터 1943년까지 약 30년에 걸쳐 공식 기록에만 108마리가 포획된 것으로 나타난다. 임진왜란 때에는 일본 장수들이 용맹함을 드러내기 위해 경쟁적으로 한국호랑이 포획에 나서기도 했다. 여우와 늑대는 1960년대부터 쥐를 잡기 위한 독극물이 전국적으로 살포되면서 독극물 2차 피해의 희생양이 됐다(독극물을 먹거나 죽은 동물 사체를 먹고 독에 중독돼 죽은 경우가 많았다). 또 급격하게 변화한 농촌의 생활환경, 가축 피해 방지와 털가죽 획득을 위한 남획의 여파로 개체 수가 급속히 줄어 멸종단계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늑대는 국내 동물원에서 20여 마리 정도를 사육하고 있으나 순수 한국 혈통의 늑대는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다. 여우는 20여 마리가 지리산, 경남 해안지역 등 일부 지역에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필자는 1993년과 1995년 지리산과 경남 지역에서 야생 여우를 목격했다). 특히 여우는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분포하며, 환경변화에 적응력이 뛰어난 동물인데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예외적으로 절멸의 길을 걷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토끼박쥐 역시 유라시아 대륙에 널리 서식하는 동물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유독 희귀하다. 민간의학에서 약재 용도로 사용되면서 남획된 탓도 있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의 인식 부족이 한몫했다. 토끼박쥐들은 주로 바위굴에 서식하는데 일부 지자체가 굴 내부의 환경보호나 간첩 등의 은신처로 이용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철판이나 시멘트로 굴 입구를 막아버린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강원도 영월군 소재 수직굴에 많은 수의 토끼박쥐가 서식했으나 최근 영월군이 굴 입구를 강판으로 완전히 봉쇄해 버렸다. 국내외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을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선 자연적으로 번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생존가능 개체 수를 유지하고 그들의 생존기반인 서식지의 면적을 충분히 보전하는 것과 동시에 자연 환경의 질을 높여야 한다. 환경부는 1960년대부터 4년마다 국제적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자료집(RED DATA BOOK, 일명 ‘적색목록’)을 발간해 온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자료를 참고해 1998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종을 지정 공표했다. 현재 1급 50종과 2급 171종 등 총 221종이 지정돼 있다. 이 가운데 야생동물 특히 포유류는 1급 12종, 2급 10종 등 총 22종이다. 우선 호랑이, 표범, 늑대, 반달가슴곰처럼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최상위 소비자로서 생태계 내의 자연성을 상징하고, 모든 구성원의 생태적 건강을 조절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중대형 육식 포유류 종이 있다. 또 우리나라 생태계의 고유성과 과거 한반도의 지질사적 역사를 대표하는 산양, 사향노루 등의 역사생물지표종, 소속된 생태계 내에서 중요한 생태적 기능을 하는 붉은박쥐, 토끼박쥐, 작은관코박쥐, 물범 등 생태적지표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멸종위기 종을 보전하고 복원하려면 무엇보다 그 종에 대한 생존 현황을 정밀하게 파악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현재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은 멸종위기 종의 전국 분포 실태와 생활사, 생존 개체 수, 서식지의 질적 환경 분석 등의 조사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멸종위기 종 복원 사업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반달가슴곰은 우리나라 생존 개체 수가 20마리 미만으로 지리산에 다섯 마리의 야생 반달가슴곰이 서식하고 있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복원기술개발사업을 통해 네 마리의 사육 곰 새끼를 지리산에 시험 방사해 복원을 위한 기초 연구를 했고, 2004년부터 우리나라 반달가슴곰과 같은 계통인 러시아 연해주와 북한에서 어린 곰을 들여와 야생 방사를 통한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17마리의 방사 곰들이 지리산에 살고 있으며, 기존 야생 반달가슴곰들과 함께 자연 증식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2012년 무렵엔 50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지리산에 서식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산양은 과거 야생 산양의 서식지인 월악산국립공원지역에 강원도 북부 산악지대의 야생 산양 개체를 재도입해 증식 복원을 시도하고 있으며 자연 번식도 확인된다. 이 밖에도 정부와 지자체, 서식지외 보전기관, 대학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사슴(인제), 수달(화천), 바다사자(독도), 사향노루, 여우 등의 복원을 위한 준비 사업도 많이 진행되고 있다.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경제성장과 산업발전, 국토개발을 우선정책으로 추진해 왔다. 2002년까지 10년간 도시용지가 여의도 면적의 약 420배만큼 늘어난 데 반해 산림면적은 230배 줄었다. 갯벌 면적은 1987년 2815㎢에서 1998년 2393㎢으로 국토 면적의 0.038%나 사라졌다. 동서 9개 축과 남북 7개 축의 전 국토 고속국도 연계망의 실현을 위한 고속국도 건설은 한반도 자연생태 축의 근간인 백두대간의 단절뿐만 아니라 야생동물들의 주요 서식지를 고립화시켜 국가적 생물다양성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 한 해에 도로에서 차량과의 충돌로 죽어가는 동물의 수도 수백, 수천만 마리에 이르지만 그에 대한 대비도 부족하다. 멸종위기 종의 개체 수를 증식 회복시켰더라도 야생으로 돌려보낼 안전한 서식지가 없다면 복원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국토 자연환경의 건강성을 유지하고, 생물다양성을 보전 관리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 사람의 생존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필자는 농학박사로 국립생물자원관 척추동물연구과 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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