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 자리는 수성이 더 힘들다
지존 자리는 수성이 더 힘들다
당찬 오르막길 미래에셋은 ‘미래에셋이 투자하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이 돌 정도로 펀드 운용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인식된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국내 주식형 펀드 시장 점유율은 39%를 넘었고,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지분 5% 이상 보유한 41개 종목의 평가액이 전체 자산운용사 대량 보유 평가액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미래에셋이 사는 종목만 공략해도 절반은 성공”이란 말이 유행했다. 실적이 좋아서 그렇다. 미래에셋 ‘인디펜던스 주식형 펀드’와 ‘디스커버리 주식형 펀드’는 설정 후 누적 수익률 700%를 돌파하면서 ‘국민 펀드’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여의도의 칭기즈칸’이란 별명답게 10년 만에 대한민국 자본시장을 평정했다. 이와 함께 그가 내놓은 펀드마다 ‘히트 상품’이 돼 자본시장의 절대 강자가 된 것이다. 이 회사가 더욱 빛을 발한 것은 한발 앞선 해외 개척에 있다. 2003년 홍콩과 싱가포르에 자산운용사를 설립해 해외 시장에 진출한 이후 인도, 런던 등으로 진출 범위를 넓혔다. 2005년에는 국내 최초로 해외 투자 펀드를 출시했다. 특히 박 회장은 중국 투자에서 큰 수익을 올렸다. ‘미래에셋 차이나솔로몬 주식형 펀드’는 순자산액만 5조원(2007년 10월 기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NHN은 2001년 한게임 ‘맞고’, 2003년 네이버 ‘지식iN’ 서비스로 대박을 터뜨렸다. ‘선도자의 법칙’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인터넷 업계에서 후발주자임에도 단숨에 다음커뮤니케이션을 따돌리고 검색 시장 1위에 올랐다. 2004년 블로그에서도 1위를 차지해 명실상부한 ‘인터넷 지존’으로 자리를 굳혔다. 2005년 검색 점유율은 80%를 웃돌았고 야후, 구글 같은 세계적인 포털 업계의 공세에도 1위를 내주지 않았다. 온라인 광고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이 회사는 영업이익률 40%대라는 전무후무한 실적을 내놨다. 게임과 검색이라는 ‘쌍칼’을 손에 들고 포털 업계를 휘두르던 NHN은 시가총액 13조원, 매출액 9200억원(2007년 기준)으로 코스닥 황제주로 올라섰다.
벌써 내리막인가? ‘펀드 권력’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 미래에셋의 파워는 지난해 10월 31일 인사이트 펀드 출시로 정점에 올랐다. 이 펀드는 10일 만에 4조원이 몰려 화제가 됐다. 시중 자금을 싹쓸이하다시피 한 것이다. 그런데 시장에서 일등 기업임을 ‘공인’시켜준 인사이트 펀드가 요즘 미래에셋의 짐이 되고 있다. 중국주식 편입 비중이 66%에 달하는 인사이트 펀드는 중국 증시 하락으로 설정 후 누적 수익률이 마이너스 20%대를 기록하고 있다(2008년 6월 기준).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은 최근 중국 증시 급락으로 5조원의 손실을 봤다. 펀드 판매가 수익의 37%를 차지하는 미래에셋증권도 연타를 맞았다. 미래에셋증권의 주가는 6월 13일 장중 9만원대를 기록해 지난해 11월(20만원대)에 비해 절반으로 떨어졌다. 여기다 미래에셋은 지난해부터 금융감독원 징계 등 악재에 시달려 왔다. 한 증권 담당 애널리스트는 “미래에셋은 곧 신뢰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큰 자산인 신뢰에 흠집이 나고 있다”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NHN도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는 네이버엔 어쩌면 악몽이다. 5월 2일 집회가 시작된 이후 친정부 논란에 휩싸이면서 네이버의 검색 점유율이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은 네티즌 참여 광장인 ‘아고라’를 앞세워 최근 1년간 최고 점유율을 기록했다. 미국 게임 시장에 진출했지만 성적표가 초라하다. 이러는 사이 검색 점유율이 최근 1년간 최저로 떨어졌다. 시작 페이지를 네이버에서 다음으로 바꾼 방문자도 수십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주가도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연초 대비 하락률이 20%에 이른다(6월 26일 기준 18만4500원). 인터넷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일시적으로만 보지 않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 검색창이 널리 쓰이기는 하지만 검색 결과에 따른 만족도는 높지 않은 편”이라며 “검색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전방위 압박도 고민거리다. 지난해 국세청 세무조사에 이어 공정거래위원회 불공정 거래행위 조사, 정보통신부 포털 규제 종합대책안 등이 골칫거리다. 여기에다 올해는 네티즌들의 ‘반(反) 네이버’ 공격까지 받고 있다. 6월 3일에는 한 시사 프로그램이 한게임 도박 관련 방송을 내보내 속을 뒤집었다. 승승장구하던 이 회사가 최근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일등은 ‘추억’이 아니겠지 미래에셋, NHN 등과 비슷한 행보를 보인 일등 기업이 또 있다. ‘통화 프리미엄’을 앞세워 점유율 50% 이상을 기록한 SK텔레콤(이하 SKT)이 그렇다. SKT는 2000년부터 미국 ‘힐리오’, 몽골 ‘스카이폰’, 베트남 ‘S폰’ 사업에 이어 중국 차이나유니콤 투자 등 활발하게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업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다. 게다가 최근 들어 내수시장에서도 후발 사업자의 가격 공세에 휘둘려 점유율이 하락하는 추세다. 인터넷 경매 시장에 새롭게 진출한 ‘11번가’는 차별화된 서비스가 없다는 지적을 받는다. 미디어 분야에서는 TU미디어가 실적 악화를 겪고 있다. 최근 계열사로 편입된 하나로텔레콤의 고객정보 유출에 따른 영업정지, 유무선 통합사업 정체, 정부의 통신요금 인하 압박 등도 악재다. 영업이익률은 2005년 26.1%에서 최근 19.2%까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011’이라는 숫자 세 개로 통신업계를 제패했던 SKT는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신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김신배 사장은 한 외부강연을 통해 “SKT에서 일한 지 만 13년이 됐다. 초기 3~4년 동안은 매년 매출·이익이 두 배로 증가했다. 그러다 최근 4년 사이에 성장률이 5~7% 사이를 맴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시장에 안주하다 보니 해외 진출이 늦어진 면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SKT를 비롯해 미래에셋·NHN의 고민은 매한가지다. 일등을 바라보는 시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는 데다 새 시장 개척도 여의치 않다. 또 일등이라는 이유로 각종 규제를 받고 매도 먼저 맞게 된다. 일등 딜레마에 빠진 세 회사는 어디서 해법을 찾고 있을까. 김신배 사장은 “그래도 살길은 해외로 나가는 것”이라며 “언어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미래에셋 자산은 전 세계 운용자산에 비하면 0.2%에 불과하다”며 타깃은 글로벌 시장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NHN은 내년 일본 검색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다. 한번 쓴잔을 마셨지만 그렇다고 포기하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종연 박사는 “기업의 생존은 사람과 비슷하다”며 “한순간이라도 자만하거나 과거의 일등에 얽매이면 곧바로 추락하게 돼 있다”고 충고했다. 그는 “과거의 일등 경험에 안주하지 말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자세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조영탁 휴넷 대표의 ‘1위를 지속하는 조건’ ■거안사위(居安思危)의 자세 리치티어링크 할리데이비슨 CEO는 “뭔가 이루었다고 생각한 바로 그날 우리는 실패에 대한 걱정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인은 안전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한다는 뜻의 거안사위는 일등을 지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혁신하고, 혁신하고, 혁신하라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1년은커녕 분기 앞도 예측하기 몹시 어려울 정도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혁신을 강조한 바 있다. 조직 구성원 모두가 변화를 즐기는 체질과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존경 받을 수 있는 기업이 돼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핫이슈다. 기업의 핵심가치가 ‘돈 버는 것’이 되어서는 1위 자리를 지킬 수 없다. 1위 기업이라면 모든 이로부터 존경 받을 수 있는 경영활동의 핵심가치를 제대로 설정하고 이를 지켜나가야 한다. ■시계를 만드는 경영자가 돼라 짐 콜린스의 ‘성공한 기업들의 8가지 습관’에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진 것은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고, 오랫동안 번창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은 ‘시계를 만드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눈앞의 이익이나 전략에 몰두하기보다 ‘장기적 성장 관점’에서 조직구조, 문화, 인재정책, 경영이념 등 시스템을 공들여 만들어 나가야 한다. 시간을 알려주는 유능한 리더가 퇴장한 후에도 기업의 시계가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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