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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Market View] 원자재 폭등 글로벌 질서 위협

[World Market View] 원자재 폭등 글로벌 질서 위협

홍해 연안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Jeddah). ‘아랍의 파리’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지난 6월 22일만큼은 세계인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이곳에서 ‘석유 회담’이 열렸기 때문이다. “고유가 때문에 못 살겠다”는 원성이 자자한 터에 사우디 주선으로 40개 산유국과 소비국이 모여 고유가 원인과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회담에 앞서 소비국들은 “기름값이 배럴당 140달러 가까이 올라 물가가 두 자릿수로 뛰었다”며 생산을 늘리라고 요구해 왔다. 그러나 산유국은 “원유로 몰리는 투기성 자금이 문제의 몸통 아니냐”고 불쾌한 심정을 내비쳤다. 겉으로 봐선 ‘원유 증산’을 놓고 밀고 당기는 싸움이다. 그러나 속사정을 살펴보면 심상찮은 ‘국제 안보의 불씨’를 차단하려는 공감대가 숨어 있다. 기름을 중심으로 곡물 같은 원자재 값이 뜀박질하자 개발도상국에서 단순한 경제불안을 넘어 ‘정치·사회적 균열’로 불똥이 튀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제다 회담’ 기사를 다루면서 워싱턴의 정치가들이 1973년 중동의 석유수출 금지 이후 ‘오일=국내 안보’란 등식을 기억했지만, 최근에 와서는 ‘글로벌 질서’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인식이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원자재 파동→개도국 폭동→국제질서 불안→선진국 경제 타격→개도국 경제 위축→세계 경제 위협’의 악순환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한 징조는 이미 곳곳에서 생겨난다. 최근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선 수백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옥수수 값 폭등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멕시코와 이집트·서벵골 등에서도 비슷한 식량폭동이 일어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 미치는 파장은 심각하다. 세계식량계획(WFP)의 조세트 쉬란 의장은 “조용한 쓰나미가 시작됐다. 어느 한 곳만 강타하지 않고 세계를 뒤흔들 폭풍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식품값 급등으로 1억 명 이상이 굶주림으로 내몰린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시름하는 각국 경제엔 핵폭탄 같은 사회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자원의 반세계화’까지 등장하면서 시장 불안을 부추긴다. 지난해부터 곡물값이 치솟자 베트남·태국 같은 쌀 수출국과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밀 생산국은 ‘우리 국민부터 보호해야 한다’며 금수조치에 나섰다. 2005년 t당 300달러였던 태국 쌀값은 현재 1000달러로 폭등했다. ‘신(新)내셔널리즘이다’ ‘식량 보호주의를 풀라’며 으름장을 놓아도 잘 안 먹힌다. 베네수엘라는 서방 기업이 가진 32개 유전사업에 대해 정부가 60% 이상의 지분을 보유토록 하는 국유화 사업을 단행하기도 했다. 곡물값 상승은 진행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정귀수 연구위원은 “그동안의 물가상승을 고려한 실질가격 추이를 보면 곡물값은 오히려 1970~80년대보다 낮다. 더 오를 여력이 크다는 소리”라고 말했다. ‘구조적’으로 들여다봐도 유가처럼 앞이 깜깜하다. 1973년과 95년에도 ‘곡물 파동’이 있었다. 그땐 이상기후로 생산이 잠깐 줄면서 문제가 터졌다. 하지만 지금은 ‘신흥시장의 수요증가+바이오에너지 확대(농지감소)+기상변화로 재고감소+투기성자금 유입’ 등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한국·일본·네덜란드처럼 식량 자급도가 25% 미만인 나라들은 타격이 심할 수밖에 없다. 유가는 어떨까? 이번 증산 회담으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까? 사우디는 하루에 20만 배럴을 더 생산해(총 970만 배럴) 25년래 최고치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다른 국가들의 즉각적인 증산 여력이 제한적인 상태다. 현재의 유가 상승은 1998년부터 슬금슬금 탄력을 받아왔다. 그런데 지난 1년 6개월 만에 배럴당 50달러 아래에서 거래되던 기름이 140달러 가까이로 뛰었다. ‘투기세력이 가세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트를 통한 기술적 분석에 능한 삼성증권의 유승민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론 150달러가 정점’이라고 말했다. 뉴욕상품거래소는 매수 주문을 상업적·비상업적인 것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투기수요로 볼 수 있는 비상업적 수요가 최근 감소했다. 유 위원은 “투기세력이 달라붙어도 달성가능한 목표치가 있다. 계산해 보니 배럴당 133달러 정도”라고 말했다. 특히 과거에도 투기성 매수가 최근 같은 속도로 줄면 유가가 고점보다 10~30% 떨어지곤 했다. 이달 들어 미국 의회가 ‘원유 투기꾼을 색출하겠다’며 법안을 만들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울러 미국이 인플레 압력을 누르기 위해 더 이상 금리를 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이는 달러 강세를 유발) 그동안 약달러 때문에 원유로 몰렸던 자금이 돌아설 것이라는 예측도 많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인 시나리오일 뿐이다. 중장기적으론 ‘구조적 문제’에 시선을 돌려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생산은 한계가 있고, 신흥국의 수요는 멈추지 않는 만큼 유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 당장은 아니어도 4~5년 뒤엔 배럴당 ‘200달러 시대’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거다 싶은 해법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필자는 중앙일보 경제부를 거쳐 현재 ‘중앙SUNDAY’에서 금융시장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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