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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태풍에 흔들리는 한국 경제

쇠고기 태풍에 흔들리는 한국 경제

올해도 벌써 절반이 지나고 남은 절반이 시작됐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암담하다. 경기는 추락하고, 사회는 혼란스럽고, 국정은 공백 상태다. 대통령은 ‘3차 오일쇼크’, 여당은 ‘제2의 외환위기’ 상황이란 말을 서슴없이 쓴다. 하지만 위기의식만 불러일으킬 뿐 대책은 시원찮고 그나마 실행되는 게 별로 없다. 쇠고기 파동에 휘말려 국정이 전방위적으로 표류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작은 정부, 공기업 개혁 등도 리더십 공백을 틈탄 저항에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과연 이명박호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이 발표된 7월 2일 코스피지수가 1일보다 42.86포인트(2.56%) 급락했다. 아시아 국가 대부분의 주가도 떨어졌지만 다른 데가 1% 정도 하락한 데 비해 한국은 그 두 배도 넘게 큰 폭으로 주저앉았다. ‘경제종합안정대책’이란 이름으로 발표된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의 약발이 시원찮음을 보여준다. 그날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벌였고, 서울광장에선 어김없이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튿날 주가는 더 떨어져 장중 코스피지수 1600선이 뚫렸고, 환율과 금리는 급등했다. 2일 환율이 1057원까지 급등하자 외환당국은 장 막판 대규모 시장 개입을 통해 1035원에 붙잡아놓았다. 하지만 약발은 하루를 못 가 3일 다시 10원이 올라 1045원으로 마감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하루 사이 0.09%포인트 오른 연 6.06%로 올 들어 처음으로 6%를 넘어섰다. 환율 정책은 MB정부 1기 경제팀의 가장 대표적인 정책실패 사례다. 기획재정부는 2월 25일 정부출범 직후부터 단기적인 성장률 목표에 집착해 환율을 끌어올려 수출을 늘리려는 고(高)환율 정책을 폈다. 그러나 고환율은 고물가를 낳았고, 소비와 투자를 더욱 위축시켰다. 물가가 급등하고 체감경기가 급랭하자 5월 말부터 황급히 달러를 내다 팔면서 환율상승을 막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이미 경제운용은 뒤틀린 뒤였다.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의 실패는 미국산 쇠고기 파동·인사 파행 등과 함께 MB정부의 리더십에 타격을 가하고 정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 주범이다. 급기야 6월 소비자물가는 5.5% 급상승함으로써 하반기 물가 상승률이 성장률을 추월할 것임을 예고했다. 한국은행은 하반기 물가 상승률을 5.2%, 성장률을 3.9%로 내다봤다. 물가 상승률이 성장률보다 1.3%포인트나 높아짐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생활이 더욱 고달프게 생겼다.
결국 정부는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에서 ‘747’(7% 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 경제대국)로 대변되는 MB노믹스의 주요 목표치를 시행 넉 달 만에 전면 수정했다. 성장률은 6% 내외에서 4%대 후반으로, 물가 상승률은 3.3%에서 4.5% 내외로 미끄럼을 탔다. 4월 말 “서비스업과 제조업의 밸런스를 맞춰 ‘S라인 경제’를 만들자”며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는데, 두 달 만에 엉뚱한 ‘S(Stagflation·저성장 속 고물가)의 공포’에 빠져들고 말았다. 결국 MB노믹스는 제대로 날아보지도 못한 채 불시착한 셈이다. 경제장관들은 7월 2일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민께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정책 실패는 인정하지 않았다.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값 급등과 선진국 경기둔화 등 대외 여건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두 달여 지속된 촛불시위도 탓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같은 날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우리가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은 1·2차 오일쇼크에 준하는 3차 오일쇼크라 할 만한 상황”이라고 말한 점과 맥이 통한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경제운용 목표치를 낮췄다고 ‘747’ 공약 자체를 폐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2012년까지 7% 성장 능력을 갖춘 경제로 탈바꿈하겠다는 전략을 바꾼 것은 아니며 규제완화나 감세, 법질서 확립 등은 꾸준히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미 MB노믹스의 핵심 정책들은 대부분 표류하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은 추진이 중단됐고, 공기업 민영화는 잠정 연기된 상태에서 ‘공기업 선진화’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1가구 1주택 장기 보유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감면 등 부동산 정책 관련 선거공약도 당분간 현행 제도를 유지하기로 했다. 국민과의 소통 실패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율이 급락하고, 촛불집회 등 국민 저항에 부닥치자 마땅히 추진해야 할 공기업 개혁마저 중도포기한 상태다.

내각 일괄사퇴 한 달 넘도록 개각도 못해
이런 판에 내각이 일괄 사의를 표명한 뒤 한 달이 다 되도록 개각은 이뤄지지 않고, 일부 공공기관장 인선 과정에서 ‘MB식 낙하산 인사’ 잡음이 일고 있다. 국회법이 정한 시한을 한 달 이상 넘긴 채 18대 국회가 문을 열지 않아 민생법안이 처리되지 못하고, 북한 핵의 상징물인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현장에 초대받지도 못하는 등 달라지는 동북아 구도에서 한국이 소외 당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부시 대통령의 7월 방한 일정 취소와 8월 방한 일정을 한국 정부와 상의 없이 먼저 발표하는 등 두 차례나 결례했다. MB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넉 달 지났다. 그런데 국민은 어느 새 정권 말기에나 나타나는 피로감을 느낀다. 그동안의 과속과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과정에서 신뢰를 잃어서다. 정부와 정책에 대한 신뢰 상실은 경제주체들의 무기력과 활력 퇴조로 이어져 경제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모든 일을 직접 다 챙기는 MB의 국정운영 스타일로 볼 때 정부 출범 초기 일찍 매를 맞은 게 나을 수도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쇠고기 파동이 던져주는 교훈 등 정부 출범 이후 120일의 학습효과를 제대로 살리는 게 중요하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도 좋지만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항상 국민을 생각하는 ‘피플 프렌들리’가 먼저다. 슬로건으로 강조해온 실용과 균형으로 2008년 6월의 갈등을 넘어야 한다.
실현 가능성이 작은 ‘747의 굴레’에서 벗어나 정책 실패를 솔직히 사과하고 고통 분담을 호소해야 한다. 그리고 남은 4년 8개월에 대한 비전과 철학을 보여주어야 한다. 경제팀 쇄신 및 부처 간 갈등과 현안을 신속히 조정할 수 있도록 경제부총리제 부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정부와 국민의 괴리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는 좋은데 민생이 나쁘다”고 했다. 이 말을 국민은 “민생이 나쁜데 경제는 좋다고 한다”로 받아들였다. 그 무렵 “나는 세 살 때부터 신용을 잃었어”란 개그가 유행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마음에 와 닿는 책이라고 소개해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 있다.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제임스 맥거리스 번스 지음)으로 책은 이렇게 끝맺는다. “변혁적 변화는 단칼에 역사를 만드는 ‘위인’의 과업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백성’의 집단적 성취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리더십이 가지는 지극히 중요한 역할은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줘 자신들을 위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창조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국민의 힘은 위대하다. 6월 27일 충남 태안 만리포해수욕장이 문을 열었다. 지난해 12월 7일 유조선 기름유출 사고로 최악의 오염 피해를 겪었던 곳이 120만 자원봉사자와 주민들의 각고의 노력 덕분에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곳곳에서 빨간 불이 켜지는 2008년 7월의 대한민국.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에게 힘을 실어주고 하나로 묶는 리더십이다.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는 7월 3일 여성 경제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아직 대통령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했다. 부인의 말대로 ‘경제 대통령’의 면모를 보여주려면 대통령부터 취임사에서 강조한 ‘섬기는 리더십’으로 돌아가 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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