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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량 기업만 ‘러브 콜’ 해선 안 돼

우량 기업만 ‘러브 콜’ 해선 안 돼

▶지난 7월 9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지원위원회에서 김동수 기획재정부 차관은 “기업들의 상태가 양호한데도 시장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금융기관들이 기업 금융지원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에 시달린다는 보도를 자주 접한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 설문조사 결과 자금사정 곤란 업체가 연초에는 43.5%였으나 7월에는 65.7%로 22.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이 늘고 있다는 보도도 동시에 접하게 된다. 중소기업 대출이 늘어나면 중소기업의 자금난은 당연히 완화돼야 하는데, 개선되지 않는 것은 정황상 쉽게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다. 중소기업 대출이 증가함에도 자금난이 악화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주요한 원인은 신BIS(바젤II) 시행 및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기업대출 심사의 강화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은행들은 자금 회수가 쉬운 소위 ‘우량 중소기업’은 고객으로 확보하고자 치열한 경쟁을 하지만, 자금 회수가 어려운 중소기업에는 자금 공급을 기피하는 게 현실이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은행 대출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출심사 강화로 중소기업은 소외 중소기업의 자금난 완화 방안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중소기업 자체의 문제다. 중소기업 스스로 신용관리를 하면서 자금조달 마케팅 차원에서 은행 및 투자자와 관계를 강화해 자금 조달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다. 둘째는 은행의 경영 및 신용관리능력 개선이다.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 때 지나치게 정량적 지표인 재무제표에만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고객인 중소기업과의 관계를 고려하면서 미래 성장 가능성 및 경영자의 능력 같은 정성적인 측면도 고려한다면 담보가 없는 중소기업들도 은행자금을 사용하기가 다소 수월해질 것이다. 물론 담보가 없는 기업에 대한 대출이 간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미래지향적 평가시스템 구축이 결국 은행산업을 선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정부다. 대부분 국가에서 중소기업 육성을 통해 국가 경제 저변을 다지기 위해 중소기업 금융지원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중소기업 금융지원 정책을 두고 있다. 이러한 정책수단을 잘 활용하면 현재 중소기업들이 겪는 자금난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 여기에서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부 측면이다. 중소기업과 은행의 정보 공유 부족으로 기업에 자금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즉, 중소기업과 은행의 부족한 부분을 정부가 보충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중소기업 정책금융이 정부의 의지대로 완벽히 수행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금융지원은 6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당시 경제정책은 대기업 및 수출 위주 성장정책이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 금융정책도 대기업에 대한 보완적 역할을 위한 전문계열화와 수출기업에 중점적으로 시행됐다. 또 경제개발 초기단계였기 때문에 이러한 중소기업 정책금융은 상대적으로 효율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당시에는 시중에 유동성이 부족해 정부가 대출만 해 줘도 고마워했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면서 중소기업 금융지원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제기됐다. 특히 정책금융으로 중소기업의 자립심이 약해져 오히려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중소기업 정책금융이 원래의 취지와는 다소 다르게 됐다. 현재의 중소기업 정책금융은 민간금융과 큰 차이가 없다. 대부분 정부부처 기금으로 운용되는 중소기업 정책자금은 중산기금(중소기업진흥 및 산업기반기금)을 제외하고는 은행이 간접적으로 위탁운용하고 있다. 이 경우 은행이 자금 회수 책임을 100% 지기 때문에 대출심사를 비롯한 관행은 일반 은행자금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중소기업 금융시장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한 시장실패를 보정한다는 정부의 원래 취지는 퇴색하고 만 것이다.


정책금융 감독기준 완화해야 정부가 직접 운용하는 일부 중산기금과 보증기금도 예외는 아니다. 직접 대출 정책자금은 민간이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기업에 자금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라도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 자금에 대한 감독은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취지와는 다소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 정책자금이 국민경제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바는 측정하지 못하고 기금의 부실률만 문제 삼고 있다. 정책자금의 운용목적은 은행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이다. 그렇다면 이 기금의 대출 부실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당연한 결과다. 중소기업 정책금융을 민간금융 용어로 표현하면 ‘리스크 금융’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소기업 정책자금의 감독 기준도 리스크 금융이라는 점을 감안해 설정돼야 한다. 단순히 낮은 부실률을 유지하기 위한 감독은 안 된다. 그것은 결국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기업에는 자금을 지원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정책자금 집행기관이 낮은 부실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의 지원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원론적으로는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을 지원하면서도 선별 능력이 탁월하면 낮은 부실률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시장에서 리스크 금융이라는 용어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중소기업 금융지원은 무조건 높은 부실률을 인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 정책금융에 적합한 합리적 부실률을 산정하고, 그에 맞는 감독 기준을 정하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민간금융과의 차별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대표적인 중소기업 금융지원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도 마찬가지다. 감독 과정에서 이 두 기금의 설립목적과는 무관하게 대위변제율이 문제시 됐다. 특히 기술보증기금은 높은 대위변제율이 문제시 됐고, 신용보증기금은 한계기업의 지원기관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결국 기술보증기금은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신기술 기업보다는 자금 회수 위험이 낮은 기업을 선호하게 됐다. 신용보증기금은 주요 지원 대상을 혁신기업으로 전환해 원래 설립취지가 희석돼 버렸다. 결론적으로 이 두 기금의 대위변제율은 낮아지게 됐다. 그러나 그것이 올바른 정책의 결과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신용보증기금은 은행에 접근하기 어려운 기업의 보증지원이 목적이며, 기술보증기금은 기술력을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낮은 대위변제율 유지는 두 기금의 설립 목적과는 다소 다르게 자금 회수 위험이 높은 기업의 보증 지원은 축소하고, 은행을 이용할 수 있는 우량 기업을 지원한 결과라는 부정적인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이 느낌을 증명하는 것이 최근 풍부한 유동성 속에서도 자금사정은 점점 악화되는 중소기업들의 푸념일 것이다. 중소기업 정책금융 시스템이 이렇듯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은 정책입안과 감독기능의 불일치다. 정책목표는 담보가 부족한 기업의 지원과 신기술기업의 육성이나, 감독방법은 일반 금융기관에 준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정책입안자의 명확한 의지, 그리고 정책입안과 감독의 일관성만이 시장금융과의 차별화를 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는 중소기업 금융정책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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