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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보면 방법이 나올 테지요”

“가서 보면 방법이 나올 테지요”

공자의 『논어』‘위정’편에 이런 말이 있다.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胎)’. 그런데 신영복 선생은 여기서 ‘思’를 생각이나 사색으로 해석하기보다 ‘실천’ 또는 ‘경험적 사고’로 풀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겪은 감옥에서의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해석인데 감옥에서 책을 읽으면 도대체 머리에 남는 게 없더라는 얘기다. 어떤 때는 책을 30~40쪽쯤 읽고 나서야 이미 읽은 책이란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그것은 감옥에서의 독서가 실천과 완벽하게 단절된 독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에서 배운 대로 행동에 옮기려 해도 세상과 단절된 공간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우되 실천하지 않으면 어둡고 실천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해석이 옳다는 것이다. 공자님 말씀의 해석이야 어떻든 결론은 책상에서 얻은 지식과 현장에서 얻은 지식이 조화를 이뤄야 밝고 위험하지 않은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직의 리더는 늘 연구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하면서도 현장을 살피는 데 게을러서는 안 된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자칫 현실성 없는 탁상공론으로 빠질 위험이 높다. 일반성보다는 특수성이 두드러지는 현장의 특성상 현장의 목소리에 지나치게 휘둘려서는 곤란하지만 현장을 무시하고는 전체를 아우르는 큰 그림이 그려질 수 없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도 현장의 중요성은 여러 곳에서 쉽게 발견된다. 명나라 효종 때 유대하라는 명신이 있었다. 효종은 유대하에게 변경의 양곡과 군비 관장 임무를 맡겼다. 그런데 당시 변방으로 가는 양곡과 건초의 유통은 중앙의 권세 있는 관리들 자제가 독점하고 있었다. 부임을 준비하고 있던 유대하에게 어떤 사람이 와서 걱정하며 말했다. “북방지역의 양초(糧草·군사가 먹을 양식과 말을 먹이는 꼴)는 대신들의 자제들이 경영하고 있는데 대감은 이런 권세가들과 사이가 좋지 못하니 걱정입니다. 대감의 강직한 성미 탓에 화를 자초하기 쉬우니 부디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유대하는 대답했다.“무슨 일이든 억지로 되는 일은 없는 법이오. 가서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나올 테지요.” 유대하는 부임하자마자 변방에서 오래 산 백성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애로사항을 듣고 군량과 군비 문제를 해결할 묘수를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유대하는 교통의 요지 곳곳에 다음과 같은 방문을 써 붙였다.“창고의 양곡이 모자라 관가에서 양곡을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양곡은 열 섬 이상, 말 먹일 짚은 일백 단 이상 가져오는 사람은 본고장이건 타고장이건, 관리건 백성이건 상인이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매입할 것이다. 물론 고관의 자제들이 참여한다 해도 이를 금하지 않는다.”

현장성에 충실한 장전의 말은 고관 자제들의 참여를 허용한다고 했지만 유대하의 방문은 이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이었다. 과거의 관례는 양곡은 백 섬, 짚은 천 단 이상을 가져와야 관가에서 사들였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은 그 많은 양을 모아 운반할 돈이 없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재력 있는 고관 자제들에게 양곡과 짚을 싼값에 넘길 수밖에 없었고 이를 수집한 고관 자제들이 변경에 양초를 나르는 사업을 독점해 돈을 긁어 모았던 것이다. 독점이다 보니 부르는 게 값이어서 이윤이 본전의 5배나 됐다. 하지만 유대하가 만든 새로운 법으로 일반 민가에서도 양초를 가져다 관가에 팔 수 있었다. 고관 자제들이 민가의 양초를 사서 이윤을 남기고 관가에 되파는 관행도 사라졌다. 관가는 적은 예산으로 창고의 양초를 가득 채우고 백성들도 더 많은 소득을 얻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유대하의 아이디어는 간단한 것이었지만 정곡을 찔러 문제를 해결한 것이었다. 그것은 현장을 살피지 않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실제 현실에서는 이런 예가 많지 않다. 당나라 때 사람들은 어사대를 치상(痴床)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른바 바보 침상이라는 뜻인데 총명하던 사람도 그 자리에만 가면 교만해져 바보가 된다고 조롱한 것이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현장을 살펴보는 수고를 하려 들지 않고 편안함만 추구하다 보니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에 장전의란 인물도 현장성에 충실한 경영으로 백성들을 구제하는 데 성공한 경우다. 당나라가 멸망하고 송나라가 서기 전까지 혼란스럽던 70여 년간을 일컫는 오대십국 시대에 동도 낙양에는 도적 떼들이 들끓어 남아있는 주민들이 일백 호가 되지 않았다. 장전의도 역시 도적 출신이었지만 죄를 씻고 하남윤의 자리에 올랐다. 하남에 부임한 장전의는 능력이 뛰어난 부하 열여덟 명을 골라 둔장으로 삼고 깃발과 방문을 하나씩 주었다. 그리고는 열여덟 개 현에 보내 깃발을 세우고 방문을 붙이게 했다. 돌아와 농사를 짓는 백성들에게 조세를 경감해주고 법을 위반해도 살인범을 제외하곤 모두 장형으로 다스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차츰 떠났던 백성들이 돌아오기 시작했으며 몇 년이 안 돼 원래의 모습을 회복했다. 장전의는 뽕이나 밀을 비옥하게 가꾼 땅을 보면 말에서 내려 주인을 부른 뒤 고기와 술을 주며 치하했다. 때로는 그 주인 집을 직접 찾아가 노인과 아이들에게 차나 옷감을 상으로 주기도 했다. 이에 백성들은 “장전의는 색이나 풍악에는 웃지 않으나 풍작을 이룬 밀밭이나 누에고치를 보면 웃는다”고 말하며 존경의 마음을 표했다. 백성들이 다투어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면서 하남은 부유한 고장이 됐다.

현장은 우연이 지배하는 곳 장전의는 도적이었지만 백성들이 도적이 되고 유민이 되는 이유를 너무나 뼈저리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현장성은 관가에 앉아 호의호식하며 백성들의 고혈을 짜는 진짜 도적들과 다른 모습으로 그를 거듭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처럼 현장 경영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될뿐더러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북송 시대의 명재상 부필이 그런 모범을 보인 인물이다. 부필이 청주 지주사로 있을 때 하삭 지방에 수재가 발생해 많은 이재민이 타향에서 유랑생활을 해야 했다. 당시 이재민들을 구제하는 방법은 이재민들을 넓은 뜰에 모아놓고 죽이나 퍼주는 게 전부였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데도 위생과 방역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 전염병이 도는 경우가 많았다. 굶어 죽는 걸 면하려고 모여든 많은 이재민이 멀건 죽도 며칠 먹지 못하고 열병이나 식중독 등으로 죽어 나갔다. 말이 구제였지 오히려 대량학살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부필은 그런 방법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현장을 돌아보고 관에서 관리하던 주택과 주민들의 집 열 몇 채를 구해 이재민들이 거주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헌납한 양곡과 관가의 양곡을 합해 이재민들에게 음식을 제공했다. 부필은 재해지역으로 내려가 이재민들에게 양곡을 나눠주는 사람들의 공로를 적어놓고 나중에 조정에 보고하겠다고 약속했다. 관직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앞다퉈 양곡을 싸 들고 재해지역을 찾았다. 부필은 닷새에 한 번씩 고기와 쌀밥을 보내 유랑민들을 위로했다. 재해지역 주변의 숲 속에는 천연자원이 많았다. 부필은 이재민들이 그 자원을 마음껏 이용하게 했다. 여유가 생긴 이재민들은 농사에 힘을 보탰다. 이듬해 밀 농사가 대풍이 들었다. 이재민들은 양곡을 타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부필은 그 이재민들 속에서 건장한 청년들을 중심으로 일만 명이 넘는 병사를 모집했다. 나라는 큰 재해를 당했을 때 가장 취약한 상태가 된다.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부필은 빈곤을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나라를 더욱 부강하게 했으며 군사력도 크게 강화시킨 것이다. 황제는 그의 공을 가상히 여겨 특별히 사자를 보내 부필을 포상했다. 책상 앞에 앉아 기발한 아이디어나 문제의 해답을 발견하길 기대하는 것은 사과나무 밑에 누워서 입을 벌리고 있는 것과 같다. 책과 인터넷에서 사과가 열리는 시기와 사과나무가 많은 곳에 대한 정보를 알았다면 이제 현장으로 달려나가야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인 것이다. 물론 현장이 만능은 아니다. 앞서 말했지만 현장은 특수하고 우연적인 상황이 지배하는 곳이다. 그런 상황을 일반화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하지만 어떤 문제에 직면해 답이 나오지 않을 경우 현장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최선의 해결책을 얻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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