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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력의 기준은 기질보다는 정책

지도력의 기준은 기질보다는 정책

올해는 10월이 빨리 왔다. 미국 대선에서는 대개 본선 직전의 마지막 한 달인 10월에 대란(October Surprise: 뜻밖의 놀랄 일)이 벌어지거나 파급효과가 큰 뉴스가 터진다. 1980년에는 11월 4일 본선을 7일 앞두고 열린 지미 카터 민주당 후보 대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후보 간의 토론을 계기로 레이건이 백악관 입성의 기선을 잡았다.

1992년엔 이란-콘트라 스캔들의 특별검사 로런스 월시가 10월 마지막 주에 레이건 행정부 시절의 국방장관이었던 캐스퍼 와인버거를 기소해 재선에 도전한 조지 H W 부시에게 큰 타격을 줬다. 2000년에는 메인주의 폭스 방송국이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의 옛 음주운전 전력을 들춰내 앨 고어 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한 본선에서 고전했다(우여곡절 끝에 이겼지만 적어도 부시의 참모들은 그렇게 믿는다).

4년 전인 2004년엔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이 펄펄 살아서 미국에 경고하는 비디오테이프가 공개돼 테러 공격을 우려하는 유권자들이 좀 더 강인해 보이는 부시-딕 체니 공화당 티켓으로 몰려감으로써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앞길을 가로막았다(부시와 체니가 빈 라덴을 3년 이상이나 추적했지만 체포에 실패했는데도 말이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와 부시 행정부의 7000억 달러 구제금융안을 둘러싼 치열한 의회 공방전으로 올해는 그 ‘10월’이 이미 9월에 시작됐다.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 후보는 러시아·이란을 비롯해 거의 모든 이슈에 대해 강경노선을 표명한 유세 직후 선거운동을 일시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미시시피주 옥스퍼드에서 열릴 예정이던 대선 후보 간 외교정책 토론도 연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결국 26일 응했다). 그로써 매케인은 ‘미스터 핫(Mr. Hot)’으로 떠올랐다. 불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는 요란하게 무모한 심술을 부려놓고도 전혀 사과할 생각이 없다(세라 페일린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것도 그 사례 중 하나다).

반면 버락 오바마는 현안들에 대한 신중한 반응을 보이며 자신의 이지적인 이미지를 고수하면서 ‘미스터 쿨(Mr. Cool)’이 돼버렸다. 아주 지적인 동시에 차갑다. 최근 이들에게 시험으로 다가온 이슈가 세 가지다. 부통령 후보 지명, 그루지야 전쟁, 그리고 금융위기다. 이 문제들은 대선과 관련해 가장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 각자가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갈까? 그 대답은 일방적인 면이 부각되는 선거운동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다수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직 누구를 찍을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18% 남짓 된다. 그들은 이제 마음을 결정할 수 있는 근거를 충분히 확보했을 것이다. 매케인과 오바마가 세계를 보는 시각이 왜 그렇게 다른지 이제는 알 수 있다.

그들의 행동양식이 서로 다른 이유도 이제 뻔해 보인다. 올가을에 펼쳐진 드라마틱한 위기는 어쩌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고매한 대단원의 장을 보여주면서 그들 각자가 어떻게 나라를 통치할지 잘 보여준다. 매케인은 열정적이지만 때로는 충동적이고 예측할 수 없이 행동한다. 오바마는 정확하지만 이따금씩 자신의 내면으로 움츠러들고 세심하다.

물론 그런 극단적인 기질의 중간을 가진 ‘미스터 저스트 라이트(Mr. Just Right)’ 같은 사람이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우리 뜻대로 쉽게 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정치인들도 자신의 약점을 메우려고 과잉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오바마는 유권자들에게 ‘성난 흑인’으로 비쳐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잘 알기에 그렇게 행동할지 모른다.

그러나 침착함이 지나쳐 때로는 수동적인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지난 2주 동안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암울한 경제 뉴스가 쏟아지는데도 그는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라기보다는 관중석의 구경꾼처럼 비쳤다. 어쩌면 그게 국가를 위해서나 자신의 정치생명을 위해서도 현명한 처사였을지 모른다.

오바마는 대통령 후보가 금융구제안을 마련하기 위한 백악관, 재무부, 의회 사이의 미묘한 협상에 뛰어들면 초당적인 대의명분과 분별력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당리당략을 조장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듯하다. 반면 매케인은 그 논의에 직접 뛰어들어도 잃을 게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자신이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세라 페일린이 CBS의 스타 앵커 케이티 쿠릭과 한 인터뷰에서 미리 준비한 답변을 망쳐버리고,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케냐 출신의 오순절파 목사로부터 마법에서 보호받는 의식적인 기도를 받는 모습이 등장하자 전당대회 직후 급상승한 매케인의 지지도는 급속도로 곤두박칠하기 시작했다. 매케인은 즉흥적이며 때때로 생각 없이 말을 해버리는 사람이다.

해군 조종사 출신이면서도 상황판단이 합리적이지 않을 때도 있다(물론 오바마는 매케인만큼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하지 않은 덕분에 노출이 적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매케인은 가장 최신의 회고록 ‘힘든 선택(Hard Choices)’에서 자신이 격추되는 상황을 묘사했다. 그가 하노이 폭격 임무를 띠고 출격했을 때 기내에 적군의 지대공 미사일이 자동추적하고 있다는 경고음이 들렸다.

그런데도 매케인은 아무런 회피 조치도 취하지 않고 목표에 폭탄을 떨어뜨리려고 계속 똑바로 날아갔다. 용감한 행동일까 무모한 행동일까? 결국 미사일이 오른쪽 날개에 명중하면서 비행기가 격추됐다. 그는 그 다음 5년을 하노이에서 포로생활로 보냈다. 그 이후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뒤에는 적의 공격을 교묘히 따돌리는 비법(미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그것을 ‘jink and juke’라고 말한다)을 터득했다.

그러나 여전히 고집을 부릴 때도 있다. 칭찬할 만도 하지만 무모하기도 하다. 지난 2주 동안 매케인은 폭격기를 탄 것처럼 급강하를 하다가 급선회를 했다. 보는 사람이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그의 팬들조차도 어지러워한다. 그는 처음에는 경제의 “펀더멘털이 건실하다”고 했다가 오바마가 이를 조롱하자 경제가 “큰 위기에 처했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성난 포퓰리스트의 어조로 월스트리트와 규제당국을 비난하면서 9·11 사태 후에 설치된 것 같은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라면 크리스 콕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파면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SEC 책임자를 파면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는 콕스가 “훌륭한 사람”이지만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오바마는 신중했다. 구제금융안에서 반드시 고려돼야 할 원칙을 지적하면서도 왜 구제금융이 필요한지에 대한 근사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그는 매일 헨리 폴슨 재무장관과 비공개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는 부시가 임명한 폴슨 장관을 너무 좋아하게 돼 만약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적어도 전환기에는 그를 경질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언론에 말했다.

매케인은 어려서부터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우상으로 삼아왔기 때문인지 늘 활동이 벌어지는 ‘무대’에 있기를 좋아한다. 그가 백악관에 요청해 공화·민주당 지도부, 행정부 각료, 대선 후보들의 회의를 소집하도록 한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매케인은 또다시 ‘백마 탄 기사’ 역할을 자임한 듯했다.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받아들일 만한 금융구제안 타협책을 만들어내려고 나서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그는 준비도 없이 즉흥적으로 회의를 제안한 듯했다. 매케인은 그 회의에서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반면 오바마는 폴슨 장관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민주당은 매케인이 언론 홍보를 위해 그런 제안을 했으며, 그것이 위태로운 협상을 혼란에 빠뜨리기만 했다고 비난했다.

그런데도 공화당 지도부는 매케인을 옹호해 주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매케인 참모도 인정했다. 매케인과 오바마는 기질상의 미덕과 악덕을 골고루 갖추었다. 역사는 대담한 인물의 손을 들어주기도 한다. 처칠이나 레이건이 대표적이다. 외면적으로나마 다른 사람들이 그냥 앉아 있거나 굴복할 때 혼자 일어서는 사람들, 트럼펫 소리에 맞춰 험한 곳으로 돌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나 역사는 신중하고 분별력 있게 행동하는 사람의 편에 서기도 한다. 처칠에겐 태동하는 새로운 세계와 전쟁에 대해 달리 이해하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신중함이 필요했다. 레이건은 조지 H W 부시의 외교 수완과 균형감각이 필요했다. 부시 1세는 냉전의 종식을 마무리하고 탈소련 세계에서 미국의 군사행동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역대 공화당 대선 후보 중에는 불같은 성격을 가진 인물이 많았다. 리처스 닉슨은 자신의 성마른 성격으로 내내 비난을 샀고, 밥 도울은 ‘자객’이라는 평판 때문에 1996년 대선에서 빌 클린턴을 누를 일말의 가능성마저 날려버렸다(클린턴도 노기등등한 면이 있었지만 솟구치는 따스함으로 균형이 잡혔다).

“1964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는 그렇게 흥분하는 성격이 아니었다”고 프린스턴대 역사학 교수 줄리언 젤리저가 말했다. “하지만 린든 존슨이 그를 그렇게 보이게 만들었다. 너무 흥분을 잘해 핵폭탄을 맡겨서는 안 될 사람으로 말이다.” 반면 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근년 들어 너무 냉담하다는 인상에 시달렸다.

애들라이 스티븐슨은 머리가 좋지만 너무 냉담해 유권자들이 좋아할 수 없는 인물로 두 차례나 선거에서 졌다. 마이클 듀커키스는 범죄에서 자기 가족조차도 보호하지 않을 정도로 차가운 성격의 기술관료 같은 인상을 주었다. 앨 고어는 공부벌레 같다는 인상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존 케리는 자동차 경주를 좋아하는 체하는 나약한 귀족으로 비쳤다.

오바마는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교수처럼 보이는 경향이 있다. 9월 26일 금요일 밤 토론에서 오바마는 침착했지만 적절한 수준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매케인이 그를 순진하고 미숙한 햇병아리라고 깎아내렸을 때도 흥분하지 않았다. 매케인은 그보다는 감정적이고 개인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농담은 먹히지 않았다.

사회자는 후보들에게 서로 직접 질문을 주고받도록 부추겼다. 그러나 오바마만 그렇게 했다. 그 때문에 오히려 매케인이 냉담하다는 인상을 주었다(참모들은 매케인에게 상대를 똑바로 쳐다보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오바마가 그의 화를 돋울까 우려됐기 때문이었다). 오바마는 농담을 삼갔다.

다만 이란 폭격에 관한 노래(밤 밤 밤 밤 이란!)를 두고 매케인을 조롱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매케인에게 당당하게 맞섰다. 그러나 리더십은 그보다 더욱 원초적인 기준으로 측정된다. 민주당의 부담은 체질적인 문제다. 앞으로 40일 동안 그 짐을 벗어던지지 않으면 또다시 낭패를 당할지 모른다. “유권자들이 ‘엄마’가 아니라 ‘아빠’를 원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곧잘 잊는다.

교육, 의료 등 ‘복지’ 이슈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결국 그들은 나라를 잘 지켜주고 세금을 많이 거두지 않는 대통령을 원한다”고 민주당 지도자위원회(DLC)의 해럴드 포드 주니어 위원장이 말했다. 성미가 뜨겁든 차겁든 불문하고 바로 그런 점에서 공감을 살 수 있는 후보가 11월 대선 본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With HOLLY BAILEY and RICHARD WOLFFE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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