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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공포의 소용돌이

멈추지 않는 공포의 소용돌이

냄새와 향기를 디지털로 전달하는 기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러나 10월 6일 월요일 TV에서 풍긴 공포의 냄새는 안방까지 진동했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으로 경제뉴스 전문방송 CNBC의 ‘매드 머니’ 진행자며, 1990년대 정보기술(IT) 주식 호황의 상징이었고, 최근까지도 주식시장에 대한 낙관론을 펴온 제임스 크레이머가 완전히 두 손을 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어딘가엔 늘 강세장이 있게 마련입니다”는 것이 오랫동안 그의 간판 멘트 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NBC 뉴스쇼 ‘투데이’의 진행자 앤 커리에게 바로 그 “어딘가”가 지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향후 5년 동안 어떤 돈이 필요하든 간에 제발 지금 당장 주식시장에서 돈을 빼십시오”라고 크레이머는 거의 애원조로 말했다. “그 자산을 주식시장에서 잃을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그 직후 며칠간 프로와 아마추어를 불문하고 수많은 투자자가 크레이머의 조언을 따랐다. 뉴욕에서 도쿄까지 세계 곳곳에서 여러 차례의 발작이 시장을 뒤흔들면서 증시가 곤두박질쳤다. 그 주의 S&P 지수는 18.2%포인트 하락했다(올해 초 대비 42.5%포인트 하락). 신용경색이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경제 펀더멘털의 취약성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면서 어느 부문이든, 어느 지역이든 여파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미국과 선진국들의 금융 시스템이 단기적인 금융 붕괴로 치닫고 있다”고 뉴욕대 경제학 교수인 누리얼 루비니가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약세장을 예측했는데 결국 그가 옳은 것으로 판명됐다. 투자자들이 자제력을 잃을 만한 이유는 그동안에도 많았고 지금도 많다. 은행의 부실, 리먼브러더스 같은 투자은행의 파산, 반복적이고 돌발적인(그리고 아직은 무력한) 정부의 개입 필요성 등이 그 예다.

지난 몇 주 동안 자동차 판매에서 고용까지 거의 모든 경제 지표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제너럴모터스(GM)의 주식은 1950년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은행들은 상호 대출을 거부하고 있다. 지방채권이나 머니마켓펀드(MMF: 금리 연동제 투자 신탁) 등 전통적인 투자 피난처가 허물어졌다. 너무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지도자의 말도 허풍처럼 들릴 뿐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933년 대통령 첫 임기 취임사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선언했다. 미국 역사에서 최악의 장기 금융 위기가 한창인 때였다. 그랬다. 당시 은행들은 휘청거렸고, 실업률이 25%나 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분명히 호전됐고 사람들의 태도 변화가 거기에 도움을 줬다.

반면 최근 몇 주 동안 지금의 금융 위기를 1930년대의 대공황과 비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두려움 그 자체가 월스트리트의 최대 두려움이 돼 버렸다. “불안은 더 많은 불안을 낳는다”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말했다. 여러 면에서 그런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곤두박질하는 다우지수, 치솟는 이자율, 제임스 크레이머의 애원, 뉴욕증권거래소 트레이더들이 퇴근하는 오후 5시1분 뉴헤이븐행 통근 열차의 폭탄 충격에 빠진 듯한 침묵 등.

시장은 정보를 끊임없이 처리해 가격 형태로 현실을 정확하게 평가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론일 뿐이다. 현실은 시장이 대개 비효율적이며 수많은 약점을 지닌 인간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금융업 종사자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라고 워튼 경영대학원에서 인지행위학적 재무론을 연구하는 앨릭스 에드먼스가 말했다.

“그들도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감정에 좌우된다.”

지난 몇 주간 그들이 표출한 감정은 불안, 공황, 분노, 체념이었다. 1930년대 대공황 때 놀란 투자자들이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길거리에 장사진을 쳤다. 지난 몇 주 동안에도 우리는 투자자, 은행, 기업, 대출자, 대부자들이 자신들의 자산이 안전하지 않다고 우려하며 자산을 회수하는 장면을 24시간 디지털 영상으로 지켜봤다.

이처럼 이번 공황도 이전과 비슷한 양상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세계 금융 시스템의 구조에서 오는 신속한 변동 때문에 완전히 다른 양상도 보여 주었다. 그 결과 주식 매도와 주가 추락은 경제 펀더멘털의 악화에 따른 정상적인 결과보다 훨씬 심했다. ‘피어 팩터(fear factor: 공포심리의 효과)’라고 부를 만하다.

흥청망청한 시절의 낙관론을 기억하는가? 주식은 끝없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사고방식 말이다. 90년대 닷컴 거품의 어리석음이 작금의 부동산 시장과 신용의 거품에서 고스란히 반복됐다. 집값이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돈이 없어도 빌려서라도 무조건 사는 게 좋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추세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인다는 확신을 모두가 가지면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거품은 더 커지는 것이다. 기존의 추세로 미래를 추정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이다. 그러나 동력은 반대로도 작용한다. 그러면 우리의 생각은 나쁜 일은 절대로 없다는 생각에서 나쁜 일만 일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2002년 닷컴 거품이 꺼진 직후 IT 업계의 정서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한창 시절 수십억 달러에 이르렀던 애플의 주식이 장부상 현금보다 낮은 수준으로 거래됐다. 브랜드나 제품의 가치는 전혀 없었다. 똑같은 변화가 지난해 주식시장에서 일어났다. 2007년 봄 다우지수는 높았고 금리는 낮았으며, 기업 수익은 높았고 세계경제는 6년 동안 계속 성장을 누렸다.

투자자들에게는 제대로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제대로 됐다. 이 멋진 풍경화에 석유가 유일한 오점이었다. 그러나 이제 화폭은 마치 물감을 마구 흩뿌리는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의 작품과 같다. 10월 초 배럴당 80달러로 떨어진 유가만이 유일하게 밝은 부분이다. 아이슬란드가 은행을 국유화하고,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보증업체들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무너지는 등 어느 쪽을 봐도 희망이 없어 보이는 시기에는 다른 나쁜 결과들도 불가피해진다.

GM이 파산할까? 금융 시스템 전체가 붕괴하고 있나? 당연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 기업은 신뢰가 없으면 무너진다. 이런 시장에서는 실패를 예상하면 저절로 실패하게 된다. 스스로 성취되는 예언이라는 얘기다. 지금까지 돈을 빌려주던 모든 은행과 학자금 융자기관, 신용카드 회사가 지금 당장 고객들에게 상환을 요구하면 과연 사람들이 그 부채를 갚을 수 있을까?

지금 금융 위기라는 드라마는 전 세계 주식시장에서 펼쳐지고 있지만 가장 심한 상처는 거대한 신용시장에서 나타났다. 신용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credit는 믿음이라는 뜻의 라틴어 credo에서 나왔다. 최근 몇 달 동안 채권자들의 집단적인 회의론은 완전한 불가지론으로 발전했다. 투자자들은 은행을 믿지 않는다. 은행은 대출자들을 믿지 않는다.

주택담보대출 기관은 주택 구입자들을 믿지 않는다. 세계 전체에서 대출금이 회수되거나 동결되고 있다. 그 뿌리가 이자다. 이자는 빌려주는 돈을 반드시 상환받게 된다는 믿음을 상징한다. 의심이 커질수록 그에 비례해 이자가 더 높아지게 마련이다. 두려움이 가장 확연한 지표는 중앙은행들이 따르는 난해한 기준들이다.

TED 스프레드(미 재무부 채권 이자율과 미국 은행들이 세계시장에서 대출을 해줄 때 요구하는 이자율의 차이)와 LIBOR 금리(국제 금융시장의 중심지인 영국 런던에서 우량 은행끼리 단기자금을 거래할 때 적용하는 금리, 즉 은행 상호 간의 대출 이자율)를 가리킨다. 1년 전 신용시장이 처음 심각한 장애를 일으켰을 때 이 지표들이 뛰었다.

그러나 최근 몇 달 동안 이 지표들은 기록적인 수준으로 치솟았다. 2007년의 급상승이 애팔래치아 산맥이었다면 지금의 지표들은 히말라야 수준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심리적 요인이 작용했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막강하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와 세계적인 보험회사 AIG 같은 굵직한 기업들의 몰락이 신뢰를 앗아 갔다.

“소비자들이 대형 금융사들을 믿지 못한다고 느끼면 불안감이 생기게 마련”이라고 디시즌 리서치사의 공동설립자이며 심리학자인 폴 슬로비치가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닷컴 거품이 꺼진 후 투자자들은 일반 주식에 투자하면 장기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낙관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 하원이 구제금융안을 1차 부결한 지난 9월 29일 똑같은 질문을 갖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상당히 비관적이었다.

침체 시기의 공황은 호황기의 과도한 신뢰처럼 사회적인 전염성을 갖는다고 뉴욕 소재 웨일 코넬 의대의 심리학 교수 로버트 리 박사가 말했다. “사람들은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나쁜 소식에 빠져든다. 4년 전 집값이 오르는 멋진 소식에 심취했듯이 말이다.” 그 다음에는 확증적 편향(confirmation bias)이 시작된다.

나쁜 소식이 과도하게 부풀려지는 과정이다. 사정이 나빠지기 시작하면 투자자들은 최근 잘나가는 자산 부문으로 눈을 돌린다. 에너지 주식, 원자재, 신흥시장 주식, 금 등이다. 다시 말해 약세장에서 잘 견디는 종목들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보호막마저 폭풍에 날아가버렸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은 우량 단기 부채에 투자하는 머니마켓펀드가 현금을 넣어두기에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그러나 3조6000억 달러 규모의 머니마켓펀드 시장이 지난 9월 무너지기 시작했다. 핵심 기업인 리저브 매니지먼트가 운용하는 펀드가 주당 1달러 이하로 자산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소식에 투자금 상환이 쇄도하면서 결국 연방정부가 개입해야 했다. 그 직후 투자에 가장 안전하고, 가장 단조롭고 지루하다던 우량 지방채 시장을 공포심리가 강타했다.

그러나 두려움이 단순히 우리의 생각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실물경제와 월스트리트의 건강에 관해 우려할 만한 이유가 충분히 생겼다. 9월의 일자리 수는 15만9000개가 줄어들었다. 9개월째 연속 감소였다. 자동차 판매가 26% 감소했다. 백화점의 소매상들은 9월의 매출 실적에 실망해 대목인 연말 휴가 시즌의 예상치를 줄이기 시작했다.

저조한 펀더멘털에다 신용까지 갑자기 경색되면서 신뢰가 무너졌다. 9월 18일에서 25일 사이 미시간대 소비자 신뢰도 조사에 응답한 소비자의 79%가 심각한 경제난을 예상했다. 9월 초엔 그런 응답자가 57%였다. 호황기에는 ‘부의 효과’가 나타난다. 주택 가격과 주식 가치가 높아 사람들이 재정적으로 더욱 안전하게 느낀다.

그러나 집값이 계속 떨어지고(2008년 9월 기준으로 전년도 대비 9.5% 하락) 퇴직연금이 줄어들면서 우리는 ‘빈곤의 효과’를 목격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극단적인 금융 혼란은 낮은 성장률이 지속되는 시기를 연장시키고 경기 하강의 위험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고 벤저민 버냉키 FRB 의장이 10월 7일 워싱턴의 미국 실물경제학협회(NABE)에서 말했다.

바로 그날 다우지수가 508포인트나 빠졌다. FRB 의장의 사기 진작성 언급 몇 마디가 시장의 공황을 멈출 수 있는 시점이었지만 그런 비관적인 말로 주가가 폭락해버린 것이다. 90년대에는 세계시장이 앨런 그린스펀 FRB 전 의장과 클린턴 행정부의 전문가들이 경제 위기를 무난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지금의 버냉키 의장은 그런 신뢰를 받지 못한다. 그와 헨리 폴슨 재무장관, 부시 대통령, 의회 지도부는 자신들이 거듭 강조하듯이 지금까지 대담하고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 다만 지난 1년 동안 그런 조치가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다. 지난 3월 파산한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부터 시작된 구제금융은 계속 규모가 커지면서 빈도 수도 늘어났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국유화, AIG 구제, 머니마켓펀드의 투자 보장,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런 과정이 더 큰 공황만 부른 듯하다. 그 이유가 뭘까? 첫 번째 조치가 먹히지 않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다른 조치도 효과가 없을지 모른다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몸의 열을 내리느라 계속 해열제 주사를 맞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매번 더 많은 양을 주사 맞아도 효과는 점점 더 작아진다. 가장 최근의 부양책으로 미국 정부는 지난 10월 10일 은행의 지분을 직접 사들이겠다고 선언했다. 과연 그 주사가 효과를 나타낼까? 미국 정부의 항변은 금융 위기 아래에 깔려 있는 펀더멘털은 여전히 건실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인들이니까 이 위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10월 10일 부시 대통령은 “친애하는 미국 국민 여러분, 우리는 이 위기를 해결할 능력이 있고 반드시 해결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불행하게도 그의 말은 영화 ‘에어플레인’에서 비행기가 곤두박질치는데 승객들에게 침착하라던 승무원들의 말처럼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지금 미국에는 윈스턴 처칠 같은 지도자가 없고 금융계 거물들도 전부 벙커로 피신한 듯하다.

CNBC의 고참 앵커 타일러 매티슨은 저명한 CEO들이 방송에 나와 미국 국민에게 신뢰를 심어주라고 간청하다시피 했다. 현재로서는 자그마한 긍정적 신호에서 위안을 찾아야 한다. IBM이 그런 대로 괜찮은 수익을 냈다거나, 한 주가 대형 금융기관의 붕괴 없이 지나갔다는 사실 등. 증폭되는 두려움이 멈춰 섰다는 것을 말해주는 핵심적인 지표는 단순하지만 그런 소식이 더 많이 나오는 것이다.

거품 현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투자자 심리가 언제나 시장이 정점을 치려고 하는 순간 가장 낙관적이며 바닥을 치기 직전이 가장 비관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모두가 신뢰를 잃어버리고, 주식시장을 철저히 낙관하던 사람이 타월을 던지며 2013년까지는 주식을 사지 말라고 외칠 때는 분명히 항복 같아 보인다. 그런 냄새가 진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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