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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대 정권 인수·인계 혼란사

미국 역대 정권 인수·인계 혼란사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에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좋은 소식은 나라 안팎에서 많은 비난을 받은 조지 W 부시가 전임자라는 점이다. 당분간 오바마가 그만큼 욕을 먹기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나쁜 소식은 국정운영은 선거운동보다 어렵다는 점이다.

오바마는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에 잠시 시간을 내 1932~33년의 후버-루스벨트의 정권교체기에 관해 읽어보거나 1992년 선거 후 빌 클린턴 정권의 어수선했던 출범에 관해 살펴보는 게 좋겠다. 11월 첫 주 화요일(선거일)과 1월 20일(취임일) 사이에 신임 대통령이 뜻밖의 역풍을 만날 수도 있다.

실제로 역사를 돌아보면 인화성 강한 내각 인선 드라마부터 정치보복, 악의적인 훼손, 절도설까지 논란으로 점철돼 있다. 가장 말썽 많았던 대통령 정권교체기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본다.



2000∼01년 조지 W 부시 당선 시기


2001년 1월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조지 W 부시는 클린턴 전 정권이 남긴 흔적을 깨끗이 지워버리려 했다. 상당 부분 2000년 플로리다주 재검표와 부시 대 고어 재판의 대법원 판결에서 비롯된 그런 감정은 클린턴 쪽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부시 팀이 정권을 넘겨받은 직후 사무집기가 훼손되고 분실됐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회계감사원(GAO)은 1년간 이 문제를 조사한 뒤 1만3000~1만4000달러의 피해가 있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문고리, 대통령 인장, 60대 가까운 컴퓨터 키보드의 ‘W’자 키 같은 품목의 분실이 포함됐다. 그 215쪽의 보고서는 피해 규모가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규정하면서도 특정인을 비난하지는 않았다.

클린턴 측 대변인은 장난 삼아 한 행위가 있었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대부분의 피해가 자연 마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변명했다.



1992∼93년 빌 클린턴 당선 시기


1992~93년 정권교체기는 대체로 초점이 없고 나사 풀린 기간으로 기억된다. 클린턴의 대변인 디 디 마이어스는 그 기간을 ‘지옥’이라고 묘사했다.

대표적인 망신은 조 베어드(사진)를 법무장관에 지명한 일이었다. 클린턴의 취임식 직전 문제가 불거졌다. 그녀는 불법체류 외국인을 여럿 고용하고 그들의 고용에 따르는 사회보장세를 내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자 스스로 사퇴했다.

클린턴의 두 번째 지명자 킴바 우드도 비슷한 소문으로 물러났다. 클린턴은 그 자리에 여성을 앉히기로 작정한 듯했다. 3월 12일 플로리다주 법무장관 재닛 리노가 법무장관에 취임했다.



1988∼89년 조지 H W 부시 당선 시기

존 타워는 전 텍사스주 출신 상원의원, 레이건과 부시 대통령 보좌관, 이란-콘트라 스캔들 조사 보고서 작성자였던 인물. 국방장관에 지명됐지만 53 대 47로 인준이 거부됐다. 방위산업체들과의 유착관계와 낙태 지지 입장 때문이었다. 그러나 언론에 가장 크게 보도됐던 문제는 그의 음주와 바람기였다.

지나치게 술을 좋아하는 위험인물이라는 이미지가 치명타였다. 온건 실용주의자로 평가 받던 딕 체니가 열흘 뒤 만장일치로 인준을 받았다. 타워는 각료로서는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인준을 거부당했다. 그는 1991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1980∼81년 로널드 레이건 당선 시기

대통령 당선자 로널드 레이건이 정권 인수팀을 구성하고 트럭기사노조의 거물 재키 프레서를 노동 담당 보좌관에 임명했다. 하지만 마피아 연루설과 노동부 비리 소송의 표적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선거운동 중 트럭기사노조는 레이건 지지를 표명했었다. 프레서의 문제가 알려지자 정부 당국은 그의 마피아 관련설을 몰랐다고 발뺌하고 트럭기사노조의 부패에 대한 연방수사에 그의 입김이 작용할 것이라는 의혹을 부인했다.

그 뒤 더 나쁜 뉴스가 터져 나왔다. 프레서가 트럭기사노조 연금기금의 돈으로 여러 조직범죄 패밀리에 대출을 해줬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프레서는 조직범죄와의 연루설을 부인했지만 그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레이건의 대변인 제임스 브래디가 그의 해임을 발표했다. 프레서는 1983년 트럭기사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1976∼77년 지미 카터 당선 시기

신임 대통령 지미 카터는 1976년 시어도어 소렌슨(사진 오른쪽)을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지명했다. 그러자 곧바로 우파가 거세게 들고일어났다. 소렌슨은 케네디 보좌관 시절 CIA 기밀문서를 불법 반출한 일, 제2차 세계대전 중 양심적인 전쟁 반대자였던 일, 그리고 자신의 법률회사 고객에 외국정부가 포함된 일로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념 문제도 있었다. 소렌슨은 비밀작전 통제 등 아주 명확한 CIA 개혁 구상을 가진 전통적인 자유주의자였다. 민주당이 상원을 지배했지만 소렌슨은 그런 비난을 견디지 못했다.

그는 상원 위원회 앞에서 후보 사퇴를 발표했다. 카터는 곧바로 퇴짜를 맞은 게 당혹스러웠던지 소렌슨을 강력히 지지하지도 노골적으로 사퇴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1932∼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선 시기


1932년 허버트 후버(사진)는 레임덕이었고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여러 달 동안 전임자와의 관계를 모두 단절했다. 당시에는 편리한 방법이었지만 그 때문에 미국의 피해가 커졌을지도 모른다.

후버는 경제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 대책을 가동한 상태였다. 그리고 현 정부와 차기 정부의 단합된 모습이 금융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정치적 기피인물로 간주됐으며 루스벨트는 그를 멀리함으로써 선거에서 승리했다.

후버는 유럽의 경제위기에도 대처해줄 것을 당부했지만 민주당 소속인 루스벨트는 거절했다. 전쟁부채 문제는 공화당이 벌여놓은 일이라는 주장이었다.

1933년 1월과 2월 은행들이 무더기로 도산했고 루스벨트와 후버의 몇 차례 회동은 견해 차만 확인한 채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그렇다면 대공황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역사가들은 그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였지만 후버가 대부분의 책임을 덮어썼다. 1932~33년 논란이 비등했던 긴 겨울 동안 경제를 무기력하게 방치했던 탓이 컸다.



1924∼25년 캘빈 쿨리지 당선 시기

1925년 캘빈 쿨리지는 대사와 사업가 출신의 찰스 B 워런을 법무장관으로 지명했다. 상원은 ‘설탕 트러스트’에 이해관계가 있다며 워런의 인준을 거부했다. 설탕 회사들의 연합체인 설탕 트러스트는 의회의 조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20세기 초 워런은 미시간에 있는 중소 정제소들의 통합을 주도한 뒤 훗날 거기서 탄생한 복합체의 사장에 올랐었다.

의회는 특히 하딩 대통령 시절의 뇌물 스캔들 이후 뒤가 구린 거래관계가 있는 각료에게 민감하게 반응했다. 워런 인준은 41 대 39로 부결됐다. 쿨리지는 그래도 굽히지 않고 워런을 재지명했지만 상원은 워런을 재차 거부했다.



1829년 앤드루 잭슨 당선 시기

1829년 초반 앤드루 잭슨의 지지자들이 그의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에서 국회의사당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민주당 혁명을 달성한 영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부인이 상대 후보의 중상과 비방으로 이미지에 상처를 받은 뒤 12월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정권교체기 내내 잭슨은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며 호텔 숙소에 틀어박혀 하루 3시간씩만 손님을 받았다.

구름 같은 인파가 취임식장에 몰렸다가 백악관으로 향했다. 잭슨은 모든 축하객에게 백악관을 개방했지만 그들은 곧 발 디딜 틈 없는 리셉션룸에서 통제 불가능한 폭도로 돌변했다. 술에 잔뜩 취해 덥고 좁은 방에 갇힌 사람 중 다수가 주먹다툼을 벌이거나 졸도하기 시작했다. 측근들은 수척해진 대통령이 밟히지 않도록 둘러쌌다.

열린 창문이 유일한 도피로였지만 소동은 건물 밖으로 확대됐다. 측근들은 아이스크림과 포도주로 군중을 바깥으로 유도했다. 워싱턴 사교계의 명사 마거릿 베이너드 스미스는 당시의 모습을 이렇게 평했다. “대통령이 주최하는 이 행사에는 신사 숙녀만 참석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민중의 날에 민중의 대통령이었으니 민중이 최고였다.”



1800∼01년 토머스 제퍼슨 당선 시기


1700년대 말 두 가지 철학이 충돌했다. 연방주의자들은 강력한 중앙정부, 은행, 군부와 사법부를 원했지만 공화당원들은 주(州)의 권리와 연방정부의 방임적 자세를 강조했다.

1800년 선거는 두 후보의 선거인단 수가 같아 2월까지 결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존 애덤스 현 대통령은 일찍이 경쟁에서 탈락했다. 12월부터 3월 취임식 때까지 그는 연방주의 성향의 판사 16명을 추가로 임명했다.

또 사법부 관련 법을 제정해 특히 토지와 금융문제와 관련해 연방법원에 더 큰 권력을 부여했다.

하지만 차기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사진)은 취임하자마자 그 법을 폐기하고 판사 지명 다수를 무효화했다. 이는 대법원의 권한을 강화한 기념비적인 마베리 대 매디슨 판결을 낳았다.



1797년 존 애덤스 당선 시기

1797년 3월 4일 존 애덤스(사진)가 2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몇 주도 안 돼 독립기념관에서 한 블록 떨어진 대통령 저택을 나와야 했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아랫사람들에게 인수인계를 맡겼었다.

이들은 워싱턴이 집을 비운 뒤 애덤스가 입주하기 전까지 2주 동안 잇따라 파티를 열었다. 가구가 파손되고 은식기와 도기가 대부분 분실됐다. 애덤스는 3월 22일 아내 애비게일에게 이렇게 썼다.

“앉을 만한 의자 하나 없소. 침대와 침대보는 차마 눈 뜨고 못 볼 지경이오. 이 집 하인들이 내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음주와 무질서의 난장판을 벌였소. 어떤 자도 결코 봐주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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