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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Market View] 신뉴딜·빅3 구제금융 호재이긴 한데…

[World Market View] 신뉴딜·빅3 구제금융 호재이긴 한데…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시의 취업센터.

미국 주가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제지표는 무엇일까? 경제(GDP) 성장률? 소매판매? 주택가격? 상황과 조건에 따라 이들 지표가 주가를 뒤흔들어 놓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의 생각은 다르다. 미국 경제예측기관인 이코노믹아웃룩그룹(EOG)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버나드 버몰은 ‘고용지표’라고 말했다.

그 까닭은 의외로 간명하다. 모든 경제지표가 뒤늦은 정보일 수밖에 없는데 고용지표는 매달 발표되는 지표 가운데 조사 시점과 발표 시점 차가 가장 짧다. 실시간으로 경제 실상을 알아볼 수 있는 온도계라는 얘기다. 고용지표는 매달 첫째 주 금요일에 나온다. 조사와 발표 시점의 시간 차가 10여 일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고용지표는 다양한 경제 속살을 보여준다. 일자리가 얼마나 줄었는지, 그 여파로 실업률이 올랐는지 내렸는지, 시간당 임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등이다. 이는 미국 경제 성장의 70% 가까이를 책임지는 소비와 직결돼 있다.
지난 12월 5일에도 그 고용지표가 발표됐다.

11월 비농업 부문 취업자 수는 53만3000명이나 줄어들었다(그래프 참조).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일자리가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다. 한 달 새 감소폭으로는 1차 오일쇼크 직후인 1974년 이후 34년 만에 가장 크다. 더욱이 월스트리트 이코노미스트들이 예측한 30만 명보다 훨씬 많았다. 그 여파로 실업률은 6.7%로 뛰었다. 실직자가 26년 만에 400만 명을 넘어섰다.

그 파장은 곳곳에서 확인됐다. 11월 소비가 40년 만에 최악이었다. 이번 위기의 진앙인 모기지(장기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7%에 이르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20%에 달했다. ‘집값 급락 → 금융위기 → 소비감소 → 기업 실적 악화 및 파산 → 일자리 감소 → 모기지 연체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이쯤 되면 지난 5일 뉴욕 주가는 폭락했어야 했다. 장 초반엔 그랬다. 개장 전 나온 암울한 고용지표 때문에 장 초반 다우지수는 200포인트 이상 빠졌다. 충격적인 고용지표에 걸맞게 시장이 반응하는 듯했다.

그러나 장 후반 시장이 갑자기 활기를 띠면서 다우지수는 3%, 나스닥은 4% 넘게 급등했다. 보험회사들의 실적이 좋아질 것이라는 예상 덕분이었다. 미적거리고 있는 GM·포드·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빅3’에 대한 금융 지원 등 경기부양 대책이 속도를 낼 수밖에 없으리라는 기대도 강하게 작용했다.

실제 5일 장 마감 뒤 미 정부와 의회가 빅3에 최고 17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내 증권시장 참여자들이 뉴욕 증시가 고용악재를 딛고 상승했다는 점에 고무된 듯하다. 여기에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6일 인프라 투자를 통해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 위기를 극복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점이 묘한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바로 ‘루스벨트 랠리’의 재연이다. 그 랠리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933년 대통령에 취임해 본격적으로 대공황에 대처하기 시작하면서 가파르게 튀어 오른 주가를 말한다. 그해 다우지수는 무려 50% 넘게 급등했다. 전형적인 ‘베어마켓 랠리(침체장의 단기 급등)’이었다. 실물경제 상황은 형편없는데도 새 대통령 취임과 공격적인 구제정책이 긍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어게인(Again) 1933년’을 기대할 수 있을까? 몇 가지 조건을 보면 국내 투자자들의 기대가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다.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주가가 펀더멘털 기준에 비춰 헐값 수준이다. 위기의 진앙인 미국이 공격적이고 과감한 경기부양을 준비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융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풀어놓은 돈이 시장 주변에 널려 있다.

그러나 역사는 단순히 되풀이되지 않는 법이다. 지금 조건이 33년과 비슷하다고 해서 주가가 같은 패턴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간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그때와 다른 조건이 차고 넘친다. 바로 엄청난 손실을 보며 주가 반등을 기다리는 수많은 펀드 투자자다. 금융패닉 기간 동안 펀드런(환매사태)이 발생하지 않은 탓이다. 대공황 때는 투자자들이 주식을 앞다퉈 투매했다.

33년 주가 반등 시점에는 쏟아져 나올 매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가가 올라 원금의 80~90% 수준에 이르면 환매 물량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 요즘 국내 경제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환매가 불가피해 보인다. 건설업체를 선두로 여기저기서 구조조정 계획이 나오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매출 급감으로 울상이다. 펀드 투자자들이 환매해 생활비 등으로 써야 할 조건이 나날이 무르익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지 않고 서둘러 매수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이럴 땐 주변을 좀 더 세심하게 살피는 게 현명한 자세일 수 있다. 지루한 디레버리징(차입 축소) 과정이 끝나 돈이 돌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심리가 낙관적으로 바뀌는 시점을 기다리며 귀중한 자금을 보전해야 하는 단계라는 것이다.

[필자는 ‘중앙SUNDAY’에서 국제경제 기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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