邪術도 위기 대처 능력 중 하나다
邪術도 위기 대처 능력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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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할 때 하루에 수십 번 전투를 치를 수 있지만 승부는 어느 한순간에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수년에 걸쳐 준비하고 진행해온 프로젝트도 단 한순간의 판단 미스로 물거품이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위험을 사전에 민첩하게 파악해 적시에 위기 상황에서 탈출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관중과 포숙아는 깊은 우정뿐 아니라 위기 대처 능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가들이었다.
두 사람의 임기응변 능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그들이 활동하던 춘추시대 제나라에 내란이 일어났다. 이에 큰 왕자 규는 노나라로 피신했고 이복 동생인 작은 왕자 소백은 여나라로 몸을 피했다.
이때 관중은 규를 수행했고 포숙아는 소백을 따랐다. 그런데 얼마 후 제나라 왕인 영공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규와 소백은 서로 왕좌를 차지하려고 서둘러 제나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귀국 도중 관중은 소백이 탄 수레가 앞서 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관중은 소백을 없애야 후환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활을 꺼내 소백을 쏘았다. 화살은 소백의 허리춤에 맞았고 그 충격에 소백은 수레 위에 쓰러졌다. 관중은 소백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규에게 말했다. “공자님, 소백이 죽었으니 이제 왕좌에 오르시는 일만 남으셨습니다.” 하지만 화살은 소백이 차고 있던 은대를 맞혔을 뿐이었다.
포숙아는 소백에게 죽은 척하고 일어나지 말라고 조언했다. 관중의 2차 공격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러고는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더해 수레를 급히 몰아 제나라로 향했다. 관중과 대거리를 하는 것보다 왕궁에 먼저 도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소백의 수레는 규가 탄 수레보다 먼저 왕궁에 도착했고, 소백은 임금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가 바로 춘추 오패 중 한 사람인 제환공이다. 하지만 운명의 날, 찰나의 위기 상황에서 포숙아가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지 못했더라면 그 자리는 큰 왕자 규에게 넘어갔을 것이다.
관중과 포숙아의 순간적 기지
얼마 뒤 이번에는 관중이 그러한 위기 대처 능력을 발휘한다. 제환공은 왕위에 오르자 자신을 위해 몸 바친 포숙아에게 재상을 맡기려 했다. 그러나 포숙아는 이를 사양하고 관중을 추천했다. 관중은 거사에 실패한 뒤 노나라로 다시 달아나 있었다. 제환공은 화가 나 소리쳤다.
“그놈은 과인을 죽이려고 활까지 쏜 놈이오. 그 화살을 아직도 가지고 있소. 그의 살을 씹어도 시원찮거늘 어찌 재상으로 중용한단 말이오.”
포숙아는 다시 한번 간곡하게 청했다. “신하 된 자로서 자신이 모시는 사람을 위하는 걸 어찌 탓하겠습니까. 그를 등용하신다면 관중은 이제 주공을 위해 그 활로 천하를 쏠 것입니다.” 포숙아에게 설복 당한 제환공은 사람을 노나라에 보내 관중을 청했다. 그러자 노나라의 대부 시백이 노나라 왕인 장공에게 속삭였다.
“제나라 임금은 관중을 재상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노나라에 커다란 위협이 됩니다. 아예 관중을 죽여 그 시체를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얘기를 전해들은 관중은 노나라 사신을 시켜 노장공에게 말하도록 했다.“관중은 전에 우리 임금을 활로 쏴 상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관중은 우리 임금의 불구대천 원수입니다. 그런 관중을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이는 것이 우리 임금의 가장 큰 소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노나라가 관중을 죽여 그 시체를 제나라에 넘겨주면 원수 갚을 기회를 빼앗는 것이 되지요. 그것은 노나라가 제나라 요청을 거부하고 관중을 넘겨주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제나라가 가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사신의 말을 들은 노장공은 관중을 결박한 채 죄수 수레에 가둬 제나라에 보냈다. 가는 도중 관중은 노장공의 마음이 바뀌어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올까 두려웠다. 관중은 수레를 끄는 마부에게 말했다.“내가 노래를 부를 테니 자네는 박자를 넣게.” 관중은 빠른 곡조의 노래들을 계속 불렀다.
마부는 그 노래 소리에 신이 나 덩달아 말을 빨리 몰았다. 나중에 노장공이 속은 걸 깨닫고 관중의 뒤를 추격하려 했으나 이미 수레가 국경을 넘은 뒤였다. 관중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지를 발휘해 목숨을 구했을 뿐 아니라 재상 자리에 올라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관중의 화살과 같은 사례는 한고조 유방한테서도 볼 수 있다.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광무산에서 진을 치고 일전을 겨룰 채비를 하고 있었다. 싸움에는 자신이 있는 항우가 유방의 군사 앞에 나서 외쳤다. “지금 우리들이 승부를 가리지 못한 지 오래라 천하가 안정되지 않고 있다. 그러니 군사로 싸울 게 아니라 우리 단둘이 승부를 겨뤄봄이 어떠하겠는가. 그러면 우리 둘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지 않아도 되지 않겠는가.”
유방도 앞으로 나서 말했다. “나는 지혜를 다투려고 하지 힘으로는 싸울 생각이 없다.” 이에 격노한 항우는 활을 꺼내 유방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화살은 정확히 날아가 유방의 가슴에 꽂혔다. 화살을 맞은 유방은 얼른 허리를 굽혀 발을 만지며 말했다. “이크, 화살이 발에 맞다니….”
사실 유방은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유방의 모사인 장량은 유방에게 아픔을 참고 일어나 군대를 순시하라고 진언했고, 유방은 장량의 말대로 억지로 일어나 군대를 순시한 것이다. 소백이 화살을 맞고 죽은 척한 것이나 유방이 화살을 가슴에 맞고도 발에 맞아 크게 다치지 않은 척 위장한 것은 갑작스런 위기상황에 지혜롭게 대처한 사례들이다. 그런 순발력 있고 현명한 대응이 있었기에 제환공이나 유방 모두 수백 년 대업의 토대를 다질 수 있었던 것이다.
천하의 포청천도 아전에 속아
“적절한 임기응변으로 위기 상황에 올바로 대처해야 한다”는 말은 공허하다. 사실 그때그때 처한 사태에 따라 그 자리에서 처리하는 임기응변의 속성상 경우의 수가 무한한 대처 방법을 일반화시키기는 어렵다. 하지만 큰 원칙은 유추해볼 수 있겠다. 대업을 이룬 영웅들의 행동에서가 아니다.
오히려 간교한 인간들이 세상을 속일 때 사용하는 사술(邪術)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이런 사례를 들며 개탄하고 있다. 드라마로도 나와 유명해진 포청천이 경조윤(京兆尹)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어떤 백성이 잘못을 저질러 곤장을 맞게 됐다.
그 백성은 아전을 찾아가 뇌물을 바치고 빠져나갈 길을 모색했다. 아전이 말했다. “사또께서 반드시 나에게 곤장을 치라고 할 테니 너는 그때 몸이 아프다고 고함을 치면서 네 변명을 늘어놓거라.”이윽고 포청천이 끌려 나온 죄인을 심문하는데 그가 아전이 시킨 대로 엄살을 떨자, 그 아전은 “곤장이나 맞을 일이지, 죄인이 무슨 말이 그리 많은가”라고 꾸짖었다.
그러자 포청천은 아전이 지나치게 권세를 부린다고 생각하고 아전에게 곤장을 쳤다. 죄수는 오히려 관대한 처분을 받았다. 아전의 생각대로 된 것이다. 천하의 포청천도 아전에게 속은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산은 말하고 있다. “이것이 소위 병법의 반간(反間)이다. 빼앗고 싶을 때 주기를 청하고 가두려고 할 때에는 풀어놓기를 청하며 서쪽을 원할 적에는 동쪽을 공격하고 왼쪽을 차지하고 싶으면 오른쪽을 끌어당겨서 치우친 성질을 충동질하므로 포 염라의 명철한 판단도 술수에 빠지는 것을 면치 못했다.”
이처럼 임기응변이란 상대가 예상하지 못할 방향으로 움직일 때 효과가 있는 것이다. 상대가 죽이려고 다가서면 죽은 척하고 빈틈을 보이지 않는 상대라면 일부러 자신의 ‘허’를 노출해 상대의 허점을 유도하기도 하는 것이다. 비록 소인배들의 행동에서 얻은 진리라도 경우 있고 범절 있게 사용한다면 군자로서 부끄러울 게 없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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