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게 화장하니 자신감 생겨요”
“밝게 화장하니 자신감 생겨요”
한 여성 환우가 행사를 시작할 때보다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배운 화장법을 실습하고 있다. |
지난 12월 12일 오후 3시 건국대학교병원 지하 3층 세미나실. 30여 명의 여성이 자리에 앉아 양 손가락으로 머리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저마다 거울이 놓여 있고 무대 한쪽으로 분장실을 연상케 하는 조명 달린 화장대가 보였다. 언뜻 보면 중년 여성을 대상으로 한 메이크업 강좌와 비슷했다.
그런데 머리를 지압하듯 누르는 여성들 가운데 모자를 쓴 사람이 여럿, 눈에 띄었다. 앞에서 두피 케어 요령을 알려주는 미용 강사는 “일부러 모자를 벗을 필요 없이 손가락 동작만 흉내 내도 된다. 직접 해봐야 집에 가서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곳은 아모레퍼시픽이 주최하는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Make Up Your Life)’ 캠페인이 벌어지는 현장이다.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는 여성 암 환우들에게 치료 과정에서 잃어버린 아름다운 외모와 자신감을 되찾아주려는 목적으로 하는 행사다. 방문판매 사원인 ‘아모레 카운셀러’와 강사,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11월 20일 삼성서울병원을 시작으로 한양대학교의료원, 이대목동병원,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수도권 지역 병원 18곳을 돌며 ‘예쁘게 보이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12월 12일은 캠페인 마지막 날로 이제까지 총 500여 명의 환우가 ‘미(美)의 전도’를 받았다. 행사는 “살아있는 동안 가장 아름다운 메이크업을 하라”는 백남선 건국대병원 외과 교수의 인사말로 시작됐다. 이어 캠페인을 소개하는 동영상이 방영됐다. 아모레퍼시픽은 동영상에서 ‘여성에게 받은 사랑, 여성에게 돌려주겠다’는 문구로 여성 고객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나타냈다.
본격적인 메이크업 강연은 기초화장, 색조화장, 클렌징, 헤어 연출, 두피 마사지, 모자로 멋 내기 등 외모 가꾸기에 관한 내용으로 이뤄졌다. 참여한 여성들은 ‘비누로 화장을 지우면 피부가 건조해진다’ ‘치료로 어두워진 피부색에는 밝은 메이크업 베이스가 효과적이다’ ‘클렌징은 30초 안에 재빠르게 해야 한다’ 등의 강연 내용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고 일부는 열심히 메모하기도 했다.
강연이 끝난 뒤에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참여한 여성 중 한 명을 모델로 메이크업 시연회를 열었다. 시연 후 각자 앞에 놓인 화장품으로 직접 메이크업을 하는 실습 시간이 되자 행사장은 시끌벅적해졌다. 테이블마다 두 명의 아모레 카운셀러가 참여자들의 실습을 도왔다. 이날 시연과 실습에 사용된 화장품은 암 환우에게 해롭지 않은 제품으로 구성됐다.
행사 마지막 순서로 메이크업한 얼굴을 즉석 사진에 담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게 했다. 이날 참여한 이수영(37·가명)씨는 오희란(41·가명)씨의 소개로 행사장을 찾았다. 오씨는 “순천향대학교 병원에서 행사를 할 때 참가했는데 정신적으로나 실제 외모를 가꾸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아 아는 동생에게도 권했다”며 “몸이 불편해 색조화장은 거의 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평소에 시도해 보지 못한 색상으로 멋을 부렸다”고 말했다.
오씨의 말을 받은 이씨는 “그동안 잘 몰랐던 화장법을 많이 알았다”며 “특히 클렌징 순서는 꼭 기억하겠다”며 밝게 웃었다. 행사에 참여한 이들은 대부분 유방암, 자궁암 등 여성 암 치료 중이거나 수술을 한 지 1, 2년이 지나지 않은 여성이다. 눈 화장과 입술 화장까지 완벽하게 마친 김재희(45·가명)씨는 “처음 암 판정을 받았을 때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멍했다.
수술까지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아직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수술 전까지는 온통 머릿속에 ‘암’ 생각뿐이었지만 오늘 예전의 나를 되찾은 것 같다”고 카운셀러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번 행사는 과거 ‘아모레 아줌마’라 불리던 아모레 카운셀러의 봉사로 이뤄졌다. 이윤아 아모레퍼시픽 홍보팀 과장은 “너무 많은 카운셀러가 봉사를 신청해 120명을 선발하는 데 애를 먹었을 정도”라고 밝혔다.
창사 이후 60년을 이어온 나눔 경영
한양대학교의료원에 이어 두 번째로 행사에 참여한 카운셀러 김미선(45)씨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기쁘다”며 “병으로 고통 받는 여성도 아름다운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영소 방문판매 부문 부사장은 “고객의 외면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까지 생각하는 ‘진정한 미의 전도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은 내년에 캠페인을 전국 병원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은 11월 18일 카운셀러 봉사단 발대식에서 “여성 암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지 11년째다. 2000년에 한국유방건강재단을 만들었고 2001년부터 ‘핑크리본 사랑 마라톤 대회’를 개최했다.
이제 우리의 특기를 살려 환자들이 아름다움과 자신감을 회복하도록 돕고 있다. 자신을 위해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을 위해 사는 것도 대단히 기쁜 일이다.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때지만 자기 것만 찾으면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다”고 행사 취지를 밝혔다. 서 사장의 말처럼 아모레퍼시픽은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 캠페인뿐 아니라 1945년 창립 이래 60년 동안 여러 사회공헌 활동을 해왔다.
최근 활동으로는 지난 10월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핑크리본 사랑 마라톤 대회가 눈에 띈다. 올해 8회를 맞은 이 행사는 유방암 예방과 조기검진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핑크리본 캠페인’의 하나로 대회 참가비 전액을 한국유방건강재단에 기부한다. 서 사장은 이날 직접 대회에 참가해 35분대에 5km 코스를 완주하기도 했다.
1964년 국내에서 처음 방문판매 제도를 시작해 ‘아모레 아줌마’를 탄생시킨 아모레퍼시픽은 특히 여성을 지원하는 활동에 열심이다. 2005년 ‘아모레퍼시픽 여성과학자상’을 제정해 여성 과학자를 격려하고 지원해 왔으며 저소득층 모자 가정의 여성 가장에게 교육·창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희망가게’ 사업을 해 왔다.
모자 가정의 어머니는 아름다운재단에 기부된 아름다운세상 기금을 무담보로 소액 대출받아 희망가게를 열 수 있다. 2004년 7월 첫 희망가게가 문을 열었고 2008년 9월 34호점이 개업했다. 이 외에도 전 임직원은 매년 상·하반기에 ‘아모레퍼시픽 사랑의 나눔 행사’에 참여해 전국 사회복지시설을 방문, 맞춤 봉사 활동을 벌인다.
서 사장은 지난 11월 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이행하는 기업인에게 수여하는 지식경제부 주최 ‘지속가능경영대상’을 받았다. 아모레퍼시픽의 이런 나눔경영 활동은 창업주인 고(故) 서성환 회장의 ‘기업(企業)은 공기(公器)여야 한다’는 뜻을 이은 것이다. 망설임 없이 아버지를 ‘인생의 멘토’로 지목하는 서 사장 역시 4년째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에 개인 기부를 하는 등 “돈보다 신뢰가 중요하다”는 아버지의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모레 카운셀러의 역사 뷰티 혁명 가져온 ‘美의 전령사’
여성의 사회 활동이 전무하다시피 한 당시에 새로운 여성 직업을 개발한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아모레퍼시픽은 71년에 국내 최초 메이크업 캠페인인 ‘오 마이 러브’를 실시했고, 미용 정보가 거의 없던 시절 여성의 아름다움을 위한 잡지 ‘향장’을 발간했다. 97년 외환위기 때는 카운셀러의 맞춤 서비스로 고객 신뢰를 확보해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아모레 카운셀러는 3만2000여 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방문판매 고객은 300만 명에 이른다. 눈에 띄는 점은 과거 아모레 아줌마의 상징이던 커다란 화장품 가방과 장부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PDA가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PDA는 고객 관리, 미용 정보 저장 등 여러 기능을 하며 아모레 카운셀러의 새로운 상징이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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