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사람 마음 얻으면 다 얻는다

사람 마음 얻으면 다 얻는다


"뜻을 이루려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일을 수행할 때 제아무리 많은 인센티브를 주고 온갖 혜택을 부여해도 조직 구성원이 그 일의 취지에 공감하고 관심과 흥미를 갖지 못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

키루스 대왕(키루스 2세)은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제국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다. 오늘날 이란 땅에 있던 메디아 왕국을 무너뜨리고 대제국 건설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그는 원래 메디아 왕국의 만다네 공주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손자에게 왕위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한 메디아 왕국의 아스티아게스 왕은 그를 태어나자마자 산에 버렸다. 그래서 그는 이리의 젖을 먹고 자랐다고 한다.

역사학자 헤로도투스에 따르면 키루스의 아버지 캄비세스는 우유부단하고 나약했지만 어머니 만다네는 현명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장성해서 돌아온 아들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만큼 청년 키루스의 눈빛과 기상은 범상치 않았다. 키루스는 기원전 559년 안샨(이란 일부) 왕이 된 뒤 메디아와 리디아(터키 서부), 박트리아(아프가니스탄 북부), 마르기아나(투르크메니스탄) 등 소아시아와 동방의 여러 지역을 평정해 이집트를 제외한 오리엔트 전체를 정복했다.

하지만 그는 정복욕에만 눈이 먼 전쟁광이 아니라 어질고 현명한 왕이었다. 그는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힘으로 억누르기보다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점령한 나라들을 억압하고 수탈하기보다는 그 나라 고유의 종교와 풍습을 존중하고 자치를 허용하는 유화정책을 펴 정복지와 끈끈한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게다가 덕으로 신하들을 대했다. 그래서 오랜 원정기간 동안 마음 놓고 제국 경영을 맡길 수 있는 충성을 얻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는 키루스 2세의 경영 철학은 그가 메디아 왕국을 멸망시킬 때의 일화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페르시아인들을 설득해 메디아 왕국에 대항하게 만들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우선 그는 메디아의 왕 아스티아게스가 자신을 페르시아 군사령관으로 삼는다는 거짓 임명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총회를 소집해 그 내용을 읽은 뒤 덧붙였다. “여러분에게 내릴 명령이 있소. 모든 사람이 낫을 하나씩 들고 나오시오.”사람들은 뜬금없는 명령에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키루스는 사람들에게 담당구역을 정해주고 날이 저물기 전에 가시덤불이 우거진 땅을 정리하라고 시켰다. 사람들은 불평하면서 일을 했다. 작업이 끝나자 키루스는 사람들에게 다음날 다시 모이라고 명령했다. 사람들이 돌아간 뒤 키루스는 염소와 양, 소를 잡고 향기로운 술까지 갖춰 잔치 준비를 했다.

다음날 페르시아인들은 풀밭 그늘에 앉아 마음껏 먹고 마시며 종일 즐겼다. 잔치가 끝나갈 무렵 키루스는 연단에 올라 페르시아인들에게 “어제의 노동과 오늘의 잔치 중 무엇이 더 좋으냐”고 물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오늘의 즐거움이 훨씬 낫다고 대답했다. 만면에 웃음을 띤 키루스가 말했다.

“페르시아인 형제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나를 따르면 여러분은 힘든 노동을 하지 않고 이보다 몇 십, 몇 백 배 즐거운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늘 어제와 같은 노역에 등이 휘게 될 것이오. 나를 따라 자유를 누리시오. 나는 페르시아인들을 해방시킬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오. 그리고 나는 여러분과 함께 메디아와 싸워 충분히 이길 수 있소. 하루라도 빨리 아스티아게스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싶지 않으시오?”

그의 말은 페르시아인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들은 키루스의 확신에 찬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오랫동안 메디아인들의 노예 노릇에 불만을 품고 있던 그들은 마침내 자신들을 해방시킬 지도자를 찾았던 것이다. 그들은 키루스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졌고 키루스 2세의 페르시아는 아시아의 맹주가 될 수 있었다.



제갈량의 칠종칠금 전략

이처럼 무슨 일을 하든 사람 마음을 얻는 게 우선이라는 진리를 가장 잘 일깨워주는 건 뭐니뭐니해도 제갈량이 남만의 추장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아 일곱 번 놓아준 ‘칠종칠금(七縱七擒)’의 고사가 대표적이다. 포로가 돼서도 “나는 대대로 이곳에 살아온 사람이다. 너희들이 무례하게 내 땅을 침범했으면서 어찌 나더러 굴복하라고 말하느냐”며 반항하던 맹획이 제갈량의 신출귀몰한 재주와 드넓은 아량에 탄복해 결국 마음 깊이 촉나라에 복종하게 됐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일화는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이 있다. 제갈량이 남쪽을 정복한 것은 북쪽에서 강대국 위나라가 전면 공격할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남쪽 후방의 우환을 사전에 없앰으로써 위나라 공격에 철저하게 대비한다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런 위중한 상황 속에서 한가하게 반대편에서 야만족 맹획과 술래잡기 놀이를 할 겨를이 있었겠나 말이다.

진수의 『삼국지』 ‘제갈량전’에는 이 사건을 아주 간략하게 적고 있다. “제갈량은 군대를 인솔해 남쪽 정벌에 나서 그해 가을, 전체를 평정했다.” 하지만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이 장면이 아주 길게 묘사된다. 우선 남만의 공격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제갈량이 남만 정벌에 나서겠다고 하자 ‘읍참마속(泣斬馬謖)’ 고사로 유명한 마속이 제갈량에게 말한다. “남만은 중원과 거리가 멀고 산천이 험하므로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은 지 오래입니다. 비록 오늘 승리를 거둬도 내일 또다시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승상의 대군이 나서면 금방 평정되기는 하겠지만 군사를 돌리는 순간 곧바로 반발할 것입니다. 대저 용병하는 법은 심전(心戰)이 상책이요 병전(兵戰)은 하책입니다. 승상께서는 마음으로 복종하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일곱 번이나 놓아줬다는 얘긴데 문제는 그걸 위해 촉군이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는 점이다. 제갈량은 남만을 평정하기 위해 무려 50만 명을 동원했으며 열대 우림과 습지를 지나면서 그야말로 악전고투를 면치 못한다. 노수를 건너다 수많은 군사가 희생됐고 나는 새도 살 수 없다는 독천에서도 상당수의 군사를 잃는다.

남만을 병합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저 맹획을 달래기 위함이라면 너무 지나친 희생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나관중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칠종칠금의 신화를 극적으로 과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뜻을 이루려면 그 일을 함께 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인 까닭이다.

어떤 일을 수행할 때 아무리 인센티브를 주고 온갖 혜택을 부여한다 해도 조직 구성원이 그 일의 취지에 공감하고 관심과 흥미를 갖지 못하면 아무래도 좋은 결과가 나오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특히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는 구조개편이나 개혁 등의 조치를 취할 때는 무엇보다도 구성원들을 그 취지에 공감하고 자발적으로 동참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진실된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당송8대가’의 한 사람으로 추앙되는 구양수의 자세를 음미해볼 만하다. 구양수가 포청천의 후임으로 개봉부를 다스릴 때의 얘기다. 포청천은 추상 같은 위엄으로 백성을 대했지만 구양수는 순리를 따를 뿐 명성을 구하지 않았다.

이에 주위에서 포청천처럼 하는 게 이름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고 권했다. 그러자 구양수가 대답했다. “사람의 재능과 성품은 같지 않아서 자기의 장점을 살리면 일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으며 자신의 단점을 억지로 하면 일이 반드시 되지 않을 것이므로 나 또한 내가 능한 대로 할 뿐이오.”

자신의 공적을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 하지 않는 구양수의 간결한 성품은 금방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래서 그가 벼슬살이 한 고을들은 부임한 지 보름만 지나면 일이 열 중에 대여섯 가지가 줄어들고 한두 달 후에는 관부가 마치 절간과 같이 평화롭고 조용해졌다. 누군가 “정사는 너그럽고 간략히 하는데 일은 해이해지거나 중단되지 않는 까닭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대답했다.

“방종을 너그러움으로 알고 생략하는 것을 간략히 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면 해이해지고 중단돼 백성이 폐해를 입는다. 내가 말하는 관(寬)은 급히 하지 않음이며 간(簡)은 너절하고 지저분하지 않다는 뜻이다.”구양수는 결론처럼 또 이런 얘기를 한다.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단지 백성이 편안하다고 말하면 곧 그가 훌륭한 관리”라고 말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비법이 곧 진심이란 얘기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트럼프 2기 앞두고…美, TSMC에 최대 9.2조원 보조금 확정

2종로학원 “서울대 의예 294점·경영 285점…눈치작전 불가피”

3의대생 단체 "내년에도 대정부 투쟁"…3월 복학 여부 불투명

4‘5만 전자’ 탈출할까…삼성전자, 10조원 자사주 매입

5하나은행도 비대면 대출 ‘셧다운’…“연말 가계대출 관리”

6 삼성전자, 10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 “주주가치 제고”

7미래에셋증권, ‘아직도 시리즈’ 숏츠 출시…“연금 투자 고정관념 타파”

8대출규제 영향에…10월 전국 집값 상승폭 축소

9“하루 한 팩으로 끝”...농심, 여성 맞춤형 멀티비타민 출시

실시간 뉴스

1트럼프 2기 앞두고…美, TSMC에 최대 9.2조원 보조금 확정

2종로학원 “서울대 의예 294점·경영 285점…눈치작전 불가피”

3의대생 단체 "내년에도 대정부 투쟁"…3월 복학 여부 불투명

4‘5만 전자’ 탈출할까…삼성전자, 10조원 자사주 매입

5하나은행도 비대면 대출 ‘셧다운’…“연말 가계대출 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