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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만 남긴 실패한 전쟁

상처만 남긴 실패한 전쟁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나자프로 가는 간선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약 16㎞를 가면 마무디야가 나온다. 마무디야에 있는 시장 입구엔 이라크 경찰 차량이 막아서고 있다. 그곳에서 시내를 관통하는 도로는 수년 째 차량통행이 금지돼 왔다. 우회도로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노면이 울퉁불퉁하지만 운전자들은 군소리 없이 그 길을 이용한다.

차량 폭탄이나 2006년 7월 30분 만에 약 70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끔찍한 사고처럼 테러 공격을 당하느니 차라리 불편을 감수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07년 말부터는 이 지역의 미군과 이라크군에 대한 공격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약 15차례는 발생하고 있다.

2008년 3월만 해도 마무디야에선 이라크군 약 2000명과 미군 300명이 시아파 민병대와 그들에게 합류한 주민 몇 백 명을 상대로 일주일 가까이 시가전을 벌였다. 지금은 상황이 훨씬 좋아졌지만 2004년 이후로 ‘죽음의 삼각지대’로 알려진 이 지역에서 위험을 무릅쓰려는 사람은 아직 없다.

지난 2일에도 마무디야에서 16km 떨어진 유시피야에 있는 한 이슬람 성직자의 집을 목표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그곳에 모여 있던 약 20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건 예외적이다. 지금도 이따금씩 폭탄이 터지지만 대개는 다치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이라크군, 경찰, 부족 경비대원 수천 명이 이 지역의 모든 도로를 지킨다.

낮은 콘크리트 방벽 사이로 차들이 꼬리를 물고 느릿느릿 지나가는 동안 지명수배자나 잠재적인 폭탄테러범을 색출하려는 것이다. 이라크인들은 검문이 위압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회색 콘크리트 벽에 플라스틱 조화를 꽂아 놓기도 한다. 어떤 검문소에는 “정중하게 행동하면 정중한 대우를 받습니다”라는 슬로건이 페인트로 적혀 있다.

지금 마무디야에는 미국인들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약 1년 전에 비해 큰 변화다. 그때만 해도 미군이 지명수배된 테러범들을 수색하려고 시장을 뒤졌고, 헬기들이 일주일에 두 번씩 도시 외곽의 알카에다 은신처를 공격했다. 그러나 몇 달 전부터 이라크군과 함께 사용하던 도심지 전초기지에서 미군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현재 미군은 2008년 초 이 ‘죽음의 삼각지대’에 있던 병력의 3분의 1수준이다. 지금도 미군이 가끔씩 이곳의 이라크군과 협의하고, 주민원로회의에 참석하며, 피폐한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그 외엔 거의 전부 이라크인들 스스로 알아서 한다. 지금까지는 전쟁이 끝나면 이라크가 어떤 모습일지 자신 있게 예측하기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좀 더 분명한 그림이 마무디야에서 드러날지 모른다. 그 모습은 이라크를 점령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원하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새로운 미-이라크 안보협정에 따라 정해진 최종 시한 안에 좀 더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내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미군 전투부대는 올해 중반까지 인구 밀집 지역에서 철수를 완료해야 한다.

치안 임무는 이라크군에 이관된다. 물론 미군 군사 훈련단과 고문단은 남는다. 3년 뒤인 2011년 12월 31일이면 모든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게 돼 있다. 미군의 마무디야 병력 감축은 약 1년 전 시작됐다. 미군은 마무디야의 상황을 진정시키려고 부단히 애썼지만 내세울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경제가 약간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엉망이다. 공공 서비스는 사실상 전무하다. 법원과 관공서는 열려 있지만 학교에는 제대로 작동하는 화장실이 없고 교사들의 수준이 떨어져 학부모들은 공동으로 푼돈을 모아 개인교사를 들인다. 골목길엔 하수가 넘치고 전화선은 걸핏하면 끊어진다.

시립병원은 늘 의료품이 부족하다. “어떤 경우에는 이곳 사람들에게 군대가 유일한 정부”라고 존 베이커 미 육군 소령이 말했다. 그는 2008년 11월까지 마무디야 부근에서 이라크군 고문관을 지냈다. 일반적 기준으로 볼 때 이 도시는 엉망이다. 그러나 분명히 과거보다는 덜 위험하다. 현 시점에선 그것이 최선일지 모른다.

이런 상황은 미군 전투부대와 훈련단에서 들을 수 있는 하나의 유행어로 잘 요약된다. “이라크로서는 그 정도면 됐다(Iraqi good enough)”라는 표현이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의 한계를 알고 체념했다는 의미다. 그들은 그것을 현실주의라고 부른다. 이라크의 병참체제가 너무도 부패했고 비효율적이라 이라크군이 험비 지프의 연료를 사설시장에서 살 수밖에 없을 때 미군들은 그런 표현을 사용한다.

이라크 부대가 유능한 지휘자가 없어서 필요한 장교 수의 절반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밖에 없을 때도 그들은 그렇게 말한다. 또 지휘 장교가 없어서 이라크 병사들이 오합지졸이 될 때도 그들은 상의하달 식으로 움직이는 사회라 어쩔 수 없다며 그런 표현을 사용한다. 그 유행어는 미국 대사관 직원들에게까지 퍼졌다.

그들은 거덜 난 구식 복지국가 경제를 개혁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 그 표현을 사용한다. ‘그 정도면 됐다’는 것은 미국이 이라크에 대해 바랐던 바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는 2011년 말 미군이 완전 철수한 뒤(일이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의 이라크를 묘사하는 적절한 표현일지 모른다.

“4년 전 안바르에서 싸울 때나 2년 전 이라크에서 내전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기대했던 수준보다는 훨씬 낫다”고 저항세력 진압 전문가 존 네이글이 말했다. “성과가 썩 좋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완전 실패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것보다는 낫다.” 나는 2003년 4월 9일 바그다드에 미 해병대가 진입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때는 성공이 눈앞에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 순간은 거의 즉시 끝났다. 침공 당시 내내 문을 열었던 가게와 식당들이 갑자기 창문을 벽돌로 막았고 도시가 완전히 무법천지가 됐다. 그 와중에 공화궁(과거 사담 후세인의 대통령궁)에 모인 기자들은 당시 중장이던 데이비드 매키어넌 미군 사령관이 발표한 포스터 크기의 선언문을 전달받았다.

“이라크를 국제 사회에 보여주는 하나의 성공 모델로 만들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선언문을 본 이라크인들은 거의 없었다. 나는 이라크인 친구들에게 전기가 다시 들어오고 재건 작업이 시작되면 혼란이 진정될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실제로 더는 훔칠 게 없어지자 약탈은 사라졌지만 다른 상황은 악화됐다.

그런데도 미군 지휘부와 대변인들은 저항세력의 공격을 대규모 폭력 봉기가 아니라 필사적인 소수 잔당의 마지막 발버둥이라고 표현했다. 그런 안이한 생각은 민간 부문에도 만연했다. 경제정책 입안자들은 이라크를 낙후한 복지국가 체제의 마비 상태에서 구해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국영 공장의 민영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곧 자유시장에선 비대해진 공룡 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들은 법을 제정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던 수준 근처에도 가지 못했고, 대다수 이라크인은 그에 반대했다. 몇몇 경제 전문가는 옛 소련권의 동유럽 국가들을 부흥의 모델로 간주했다.

이라크가 유류 보조금을 삭감해야 한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 사항을 미국 외교관들이 앞장서서 시행하려고 하자 이라크인들이 격분했다. 미국 대사관의 담당자가 2005년 12월 그 계획의 도입을 발표하며 이라크 기자들에게 “고통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말한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한 이라크인에게 그 언급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사담 후세인 아래서 30년 동안 이미 충분히 고통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2006년 말 전환점이 만들어졌다. 이라크인 수백만 명이 종파 분쟁에 따른 납치와 살해 때문에 국외로 도피했다. 바그다드의 유혈사태는 미군과 이라크군이 4개월 동안 애를 써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자 마침내 이라크 주둔 미군 대변인 윌리엄 콜드웰 소장이 작전의 실패에 대한 미군의 공식적인 침묵 규약을 깼다. 콜드웰은 이라크에서 복무하는 것이 엄청난 부와 잠재력을 지닌 나라에 새로운 민주주의가 태동하는 것을 목격할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던 성실한 군인이었다.

그런 그가 2006년 10월 19일 기자회견장의 연단 뒤에 침울한 표정으로 서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폭력사태가 절망적인 수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3년 동안 무조건 시치미를 떼다가 갑자기 내보내는 청천벽력 같은 경보였다. 그러면서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기대가 무너졌다. 현지에 파견된 관리들은 이제 이라크를 중동의 다른 비민주 국가들과 비슷한 모습이 될 것으로 상상한다.

이라크 정부는 억압적일 게 분명하다. 물론 사담 후세인 시절만큼 나쁘지는 않겠지만 지금도 이라크의 교도소에는 공식 기소도 없이 몇 달 동안 감금된 사람들이 수천 명에 이른다. 부패도 만연한다. 정부가 악명 높은 범법자들을 저항 없이 재판정에 끌어낼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한 것도 한 가지 원인이다.

마무디야 시민들은 시장이 사는 동네를 ‘오우자’라 부른다. 후세인의 고향 동네 이름이다. 다른 곳이 정전이 돼도 그 동네엔 불이 들어오기 때문에 붙인 냉소적인 별칭이다. 게다가 이란이 후세인 치하에서보다 새 이라크에서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라크가 스스로 국경을 지키고 석유를 생산하고 국제 테러리스트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지 않는 수준만 된다면 미국은 얼마든지 용인할 수 있는 듯하다.

이런 미국의 새로운 실용주의는 자칫 무정함으로 비치기 쉽다. 미국 관리들이 “허용할 수 있는” 폭력 수준을 이야기할 때가 특히 그렇다. 그 말은 상황이 통제불능이 아닌 한 폭탄테러와 암살은 묵인할 수 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이라크인들은 ‘그 정도면 됐다’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안다.

이라크에는 “죽음의 문턱까지 밟고 온 사람은 몸에 열이 나는 것쯤은 행복해 한다”는 속담이 있다. 이라크인들은 최선이 아닌 차선을 찾고, 차이를 조정하며, 불가피한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 모든 것은 체험에서 나온다. 그들은 상수도의 수압이 너무 낮아 수돗물을 받기 위해선 가정용 펌프를 사용해야 한다.

고성능 가정용 펌프의 한 모델엔 ‘도둑’이란 별명이 붙었다. 이웃 사람들이 사용하는 소형 펌프들을 쓸모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런 고통의 끝이 안 보인다. 미군의 요청으로 미국의 전기기기 회사인 커민스는 마무디야에서 멀지 않은 이스칸다리야에 서비스 센터를 세울 계획이다.

이 회사는 이라크인들에게 노후한 전력망 대신 의존하는 휴대용 발전기를 스스로 수리하는 방법을 가르칠 생각이다. 한 이라크인은 전쟁 초기에 내게 미국이 발전기를 수천 대 갖고 오는 게 더 현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수많은 탱크를 가져왔으니 발전기도 얼마든지 갖고 올 수 있지 않으냐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연합군의 목표는 대형 산업용 발전소를 가동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 거창한 공사는 예정보다 늦어졌고 지금도 문제가 많다. 마무디야 주둔 미군 감축의 입안자 중 한 명은 미군 101 공수사단의 이 지역 여단장이던 도미니크 J 카라실로 대령이었다. 나는 지난해 11월 그가 귀국하기 전에 이라크에서 만났다.

두 차례의 이라크 파견 근무 중에 그는 ‘이라크에서 승리하기:저항세력 진압 방법(Achieving Victory in Iraq: Countering an Insurgency)’이라는 책을 공동으로 펴냈다. 대다수 미군 장교는 승리라는 단어를 회피한다. 이라크전이 미국인 4100명과 이라크인 수십만 명의 목숨을 희생할 가치가 있는 전쟁인지를 따지기 싫기 때문이다.

카라실로의 책은 승리라는 단어를 직접 정의하지 않고 다만 재정의가 필요 있다고만 말한다. 그러나 그 책에서 한 장의 제목은 ‘그 정도면 되는 해결책(The Good Enough Solution)’이다. 그가 마무디야에서 실행에 옮긴 것도 이와 비슷하다. 그곳의 미군이 이라크의 다른 지역으로 재배치되면서 병력 감축에 적응하기 위해 내놓은 해결책이었다.

카라실로는 소규모 전초기지에서 병력을 철수시켜 그들을 거대한 식당과 농구 코트를 갖춘 대규모 기지로 돌려보냈다. 주민들과 격리된다는 문제는 무시했다. 결국 이 싸움은 이라크군이 이어받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제 미군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이라크인들에게 가르친다.

급조폭발물 수색 차량을 운용하는 법 같은 고도화된 특수 기술도 가르친다. 그런 기술 및 장비 이양도 ‘그 정도면 됐다’는 판단을 바탕으로 한다. 카라실로는 그 표현을 이라크군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총격을 당할 때 도망치지 않고 반격을 가한다면 그게 ‘그 정도면 됐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그에게 여분의 탄약을 갖다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현지의 미국 관리들과 장교들은 병력 감축이 뒷걸음질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전엔 미군의 임무가 이라크인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을 보호하고 동태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베이커 팀의 고문관들은 지난해 11월 전초기지에서 임무를 끝내고 마무디야 부근의 대규모 기지로 돌아갔다.

벌써 그들은 이라크군과 함께 식사하고 일하면서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군지 파악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마무디야에서 지금 미국의 희망은 새로운 이라크군의 제17사단장 알리 자셈 알-프레지 소장이다. 39세인 그는 수니와 시아파 극단주의자들과 싸웠고 자기 휘하에 양대 파벌의 장교들을 신중하게 심었다.

현재의 많은 이라크 장교처럼 그도 후세인 통치 아래서 장교를 지냈고 명목상 바트당 당원이었다. 그의 남동생이 바그다드에서 납치됐을 때 바로 그날 밤 그의 군대가 작전 지역을 무시하고 출동해 그를 구출했다. 역시 군인인 동생은 알-프레지의 자택을 경비하는 임무를 맡았었다.

“이제는 내 동생을 보호할 사람을 구해야 한다”며 알-프레지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는 늘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 일부 미군 장교는 그가 다치면 다른 지휘자가 그를 대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톰 괴트키 미 육군 대위는 “그건 장담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귀국하기 전 중대장으로 이라크군과 많은 작전을 함께한 경험이 있다. 현지 미군 장교들은 이라크인들을 상대로 문제를 지적할 때도 상황에 따라 선별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마무디야에서 한 이라크 장교가 시아파 급진세력들이 체포되기 전에 그들에게 귀띔을 해주다가 체포됐을 때 상관은 그의 옷을 벗기지 않고 그를 수니파 지역으로 전출 보냈다.

바로 그것이 ‘그 정도면 됐다’는 것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신뢰할 수 없는 참모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으로 끝냈기 때문이다. 한 이라크 병사가 이라크 군인들을 죽이는 것이 “영광”이라고 말한 저항세력 포로를 구타했을 때도 문제를 삼을 필요가 없었다. 아크람 알-하미다위 대령은 그 군인에게 경고만 했다. 그러면서 미군 고문관이 있는 자리에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보다 더한 행동을 했을 거요.”

미군들은 그런 일 말고도 걱정할 게 너무 많다. 인력이 부족해 자신들이 훈련시킨 모든 이라크 군인을 감시할 여력이 없다. 11명으로 구성된 이라크 민병 정규군 전환팀을 이끈 베이커는 이렇게 말했다. “고문관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훈련시킨 이라크군이라면 모두 그 정도면 됐다고 우리는 말한다. 실제로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는 문제가 안 된다.”

한 이라크인 분석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미군은 지난 2년간 이전에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사실 마무디야가 바로 그것을 입증한다. 미군은 이라크군을 해체했지만 어쩔 수 없이 후세인의 옛 장교들 다수를 동원해 그 군을 되살릴 수밖에 없었다. 미군은 후세인이 부족들의 충성심을 얻던 네트워크를 무너뜨렸지만 지금은 알카에다와 싸우기 위해 돈을 주고 수니파 민병대를 고용함으로써 그 네트워크를 사실상 복원했다.

또 알카에다는 2003년 이전에는 마무디야에 없었지만 지금은 활개를 친다. 그래서 연합군이 그곳에서 알카에다를 몰아내려고 싸우고 있다. 또 마무디야에선 과거에는 시아파와 수니파가 비교적 평화롭게 살았지만 지금은 유혈분쟁 때문에 미군은 그들 사이에 방폭벽을 쌓았다.

이라크의 여타 지역이 하시라도 치명적인 혼란으로 빠져들 수 있는 가운데 마무디야에도 위협이 상존한다. 지난해 초 마무디야에서 쫓겨났던 시아파 민병대 지도자들이 새로운 근거지를 찾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현지 출신으로 이란의 지원을 받는 한 세포조직 지도자는 마무디야를 자신의 “다이아몬드”라 부른다.

현지 부족 보안대원들의 순찰이 허용되지 않는 일부 도로에서는 아직도 간헐적으로 별 피해가 없는 노변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몇몇 미군 장교는 부족 보안대원들이 자신들이 없으면 평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급조 폭발물을 설치하는 듯하다고 생각한다. 마무디야의 시장은 해가 져도 열린다.

하지만 현지 정부가 아무리 강요해도 밤늦게까지 문을 열지는 않는다. 가게 주인들이 위험을 무릅쓸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전이 잦고, 미군이 장비를 제공해도 지방 정부가 발전 서비스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다고 불평한다. 며칠 전 미군과 국무부 직원들이 시장을 방문해 허가 없이 장사를 하는 무단 점거자들과 협상했다.

지방 정부가 제 역할만 했더라도 미국의 도움 없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수니파와 시아파가 공존하는 마무디야는 1월 31일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준비 중이다. 운이 따른다면 이번 선거로 더 나은 이라크를 위한 씨앗이 뿌려질 수도 있다. 한때 도심을 지배했고 서로 상대편을 납치하고 살해했던 시아파의 당들은 현재 붉은색, 검은색, 녹색 융단 깃발로 자신들의 영역을 표시할 뿐이다.

주변 외곽 지역의 주민 대다수는 수니파다. 얼마 전까지는 그러지 못했지만 이제 수니파도 용기를 내 시내로 나간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시아파가 주도하는 정치를 의심하며 참여하기를 꺼렸다. 이제 일부는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정당을 결성하고 있다. 시장의 황폐한 상점 앞은 당 홍보 포스터로 장식돼 있지만 개인 발전기에 연결된 전선 사이로 간신히 보일 뿐이다.

미국 관리들은 이라크군이 미군의 도움 없이 투표소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 이라크인들이 개표가 공평무사하게 진행된다고 믿지 못하면 연약한 평화가 산산조각 날 수 있다.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든 그렇지 않든 간에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곳의 정치 패턴이 싸우고 협상하고 싸우고 협상하는 것”이라고 저명한 이라크 역사가 페베 마르가 말했다.

“상대방을 떠보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이라크의 전통은 제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수세기에 걸쳐 형성됐다. 어떤 제국은 그들에게 무관심했고 어떤 제국은 무자비했다고 마르는 추측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중앙 정부를 불신하게 됐다. 대신 그들은 부족 네트워크에 의지한다. 미국은 현재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제 이라크인들을 그냥 놔줘야 할 시점이 됐다”고 카라실로가 말했다. 그는 미군 사령관들이 이라크인들에게 통치를 맡겨 두면 실패할까 봐 너무 소심하게 군다고 불평한다. “연합군은 개입하지 않고 참는 인내심이 한참 부족하다.”

그러나 마무디야에 사는 이라크군 퇴역 장교인 아델 주마일리는 이라크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희생과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그 정도면 됐다’는 데 만족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경고한다. “이라크는 수많은 인명을 잃었고 잠재력의 대부분을 잃었다. 그런데도 결국 ‘폭력사태가 덜한 상태’를 얻을 수밖에 없단 말인가?

그것이 이라크인들의 궁극적인 희망이었단 말인가?” 그는 미군이 완전히 철수하면 좌절과 실망으로 더 많은 혼란이 일어나리라고 걱정한다. 무엇이 ‘그 정도면 된 것’인지를 마지막으로 결정할 이들은 결국 이라크인들이다.

With SALIH MEHDI, AHMED OBEIDI and SAAD AL-IZZI in Mahmudiyah and Bagh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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