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오바마 시선끌기
북한의 오바마 시선끌기
지난 1월 23일 평양을 방문한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접견하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
마침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생존한다는 증거가 제시됐다. 지난해 8월 김 위원장이 뇌졸중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북한 관료들은 친애하는 지도자의 모호한 사진들을 외부에 공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가장 최근에 공개된 사진들은 연출의 흔적이 보이지 않으며 지난달 23일 방북한 중국 고위 당국자와 만나는 김 위원장의 사진들은 디지털 기술로 조작하기가 더 어려워 보인다.
김 위원장은 상당히 체중이 빠진 듯했으며 부풀어 오른 헤어스타일도 두드러지게 숱이 적어 보였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만남(5개월 만의 공식 접견)은 그가 외국 사절을 맞이할 만큼 건강을 회복했음을 보여줬다. 김 위원장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새로 출발한 미국의 오바마 정부에 상기시켜줌으로써 한반도 문제가 경제·중동·이라크·아프가니스탄 같은 다른 시급한 현안들에 밀려나지 않도록 하려는 북한 정부의 노림수인 듯하다.
북한의 관심 끌기 노력은 김 위원장의 중국 고위 관료 접견 이전에도 지난 몇 주 새 여러 차례 있었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불과 며칠 전 북한 당국자들은 북한이 플루토늄을 “무기화했다”고 최근 방북한 워싱턴 소재 국제정책연구소의 북한 전문가 셀리그 해리슨에게 전했다.
이어 북한 외교부도 성명서를 내고 미국 정부가 먼저 북한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폐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은 남쪽을 “분쇄하기 위한 전면적인 대결 자세”를 취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한국에 대한 전투적 발언 수위를 높였다.
그러자 한국은 황급히 군대에 비상 경계태세를 발동하면서 이미 세계에서 가장 요새화된 휴전선 지역에 병력을 증강 배치했다. 냉소적인 사람은 이런 움직임이 모두 새로 들어선 오바마 정부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북한의 책략으로 볼지 모른다. 그런 의도도 일부 있을 것이다.
강경 발언을 하기 전 북한 정부는 북한 측 핵 협상대표 김계관의 오바마 취임식 참석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화해 제스처를 취했다(미국은 그 요청을 거절했다). “북한은 무시당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돌출 행동을 하면서 오바마 정부가 자신들의 문제에 대처하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워싱턴 소재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그너 선임 연구원이 말했다.
중앙정보국(CIA)의 한국 정보분석가를 지내기도 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새로운 접근방식을 취해 비핵화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전임자들이 직면했던 똑같은 문제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미 국무부 고위 관료로 북한 정부와 협상했던 에번스 리비어는 북한의 위협 “강도가 8년 전보다 세졌다”고 말한다.
6자회담(중국·러시아·일본·미국 그리고 남북한이 참여해 북한의 비핵화를 논의하는 다자간 협상 구조)은 갈수록 외교적 영향력이 약화되는 듯하다. 그리고 북한이 플루토늄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북한 당국자들 외에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북한 정부는 플루토늄 추가 생산을 중단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미 6~8개 정도의 핵무기를 제조할 만한 분량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플루토늄의 정확한 분량과 소재를 파악하려는 사찰단의 검증을 위한 세부절차엔 아직 합의하지 않았다. 이는 6자회담 합의가 북한 정부의 물타기로 인해 북한이 플루토늄 생산을 억제하는 대가로 추가적인 요구를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모호한 협약으로 희석된 까닭이기도 하다.
북한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뭘까? 피해망상의 측면이 강하지만 북한은 아직도 “미국과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국의 방어를 위해 ‘핵 억지력’을 보유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이들을 돈과 석유로 달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한 정부는 모든 경제제재의 해제, 남한 주둔 미군의 철수, 남한에 미국의 핵무기가 없다는 보증(미국의 전·현직 국무부 관료들이 없다고 말했다), 경수로 2기 건설,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요구한다.
지난 1월 5일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광장에 모여 단결과 충성을 과시했다. |
북한 정부는 이런 요구가 모두 이뤄질 때까지 핵무기를 계속 보유하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는다. “플루토늄이 무기화됐다고 말하면 플루토늄 사찰이 안건에서 제외되리라고 보는 듯하다. 플루토늄이 모두 무기 생산에 사용돼 사찰할 게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논리”라고 클링그너가 말했다.
북한 정부는 부인하지만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의혹 문제도 있다. 부시 행정부 후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분량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수입되거나 생산된 무기 수준의” 우라늄이 북한에 있다는 확정적인 정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정부는 북한 이외에도 당장 해결해야 할 더 큰 문제들을 안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 정부가 핵무기 프로그램을 계속 손질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이미 일본 전역과 잠재적으로 미국의 일부를 공격할 수 있는 탄도 미사일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북한이 그 미사일들에 핵탄두를 장착할 능력을 갖고 있느냐는 점이다.
아직은 그만한 능력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지만 북한이 그런 노력을 계속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그들과 협상하든 않든 북한은 그런 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북한과 수년간 상대한 경험이 있는 전 국무부 협상 대표 케네스 퀴노네스가 말했다. “미국이 협상에 응한다 해도 그들은 탄도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해 [비핵화] 가격을 높이려 할 것이다.”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는 문제를 더 복잡미묘하게 만든다. 그가 아직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탓에 조선인민군(KPA)이 이미 권력의 정상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군 장성들이 영향력을 확대할 여지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김 위원장이] 사망하면 군부의 힘이 훨씬 더 강해질 것”이라고 퀴노네스가 말했다.
군부가 핵무기 프로그램을 통제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런 시나리오는 특히 오바마 정부에 큰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현재 워싱턴의 새 지도부는 아직 대응방안을 검토 중이다. 오바마의 북한 정책이 기존 방향을 그대로 따라갈지 모른다는 추측에도 불구하고 접근방식이 미묘하게 달라질 것이라는 징후가 엿보인다.
부시 정부는 북한 정부의 핵무기를 세계적인 핵확산 금지 체제에 대한 도전이라기보다 대체로 미국과 우방들의 안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했다. 오바마 정부는 그런 우선순위를 바꿀지도 모른다. 먼저 핵무기가 들어가서는 안 될 사람들의 손에 가지 않도록 하고 그 과정에서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잠재적인 위험성은 있지만 성격상 공격성을 띤 화급한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국무부에 지배적”이라고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정책 인수팀에 관여한 어느 전직 외교관이 익명으로 말했다. “[국무부의] 우려는 북한의 위협이 아니라 핵확산을 어떻게 방지 또는 제한하느냐는 문제다.”
북한 정부가 이른 시일 내에 핵무기를 폐기하기로 합의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동시에 핵전쟁을 일으키는 국가적 자살행위를 택할 만큼 정신 나간 건 아니라는 시각이 일부 깔려 있다고 그 전직 외교관은 말했다. 그렇다고 미국 정부가 북한의 위협을 과소평가하는 건 아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국무장관 인준 청문회 중 북핵 프로그램을 “종식”하고 북핵 확산의 중단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는 북핵이 멀지 않은 장래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는지 모른다고도 말했다. “무엇이 가능한지를 알기 위해선 현실에 기초한 강경 외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비둘기파들은 그런 인식을 냉정하고 현실적이라고 평할지 모른다. 매파는 미국의 아시아 우방들의 안정을 해칠 수 있는 패배주의적 태도로 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김 위원장과 그의 부하들은 미국이 대처해야 할 까다로운 문제가 한반도에 있다는 사실을 오마바 정부에 계속 일깨워주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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