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erende] 한국이 도시형 국가라고?
[Seoul Serende] 한국이 도시형 국가라고?
2000년 서울 근무 발령을 받을 때만 해도 내 머릿속에는 별다른 한국의 이미지가 없었다. 그동안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막상 한국에 부임한 뒤 이 나라의 엄청난 에너지와 역동성 등에 새삼 놀란 것도 실은 내 무지에서 비롯됐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면서 나는 대부분의 외국인(‘Alien’이라는 어색한 표현은 이제 그만 쓸 때도 됐다), 심지어 단기 방문비자로 한국을 찾는 사람들조차 한국을 매우 ‘도시 중심적’인 나라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솔직히 외국인 대다수는 한국이라고 하면 으레 거대한 공장들과 공업단지, 시위진압 경찰, 동해 상공을 가로지르는 북한 미사일을 떠올린다.
개고기와 곰 쓸개 소비국이라는 이미지도 있다. 이러한 말들이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국의 진정한 모습을 반영했다고도 볼 수 없다. 사실 나도 한국 생활 초기엔 한국을 산업과 도시가 중심인 나라로 여겼다. 그러나 특히 서울을 포함해 한국이 지닌 한 가지 멋진 비밀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경제든, 예술이든, 종교든, 철학이든, 아니면 자연환경이든 간에 생활의 모든면에서 발견되는 풍성함과 다양성 말이다. 한국의 이런 숨은 매력이야말로 어쩌면 진짜 한국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이런 인식을 하게 된 것은 한국에는 서로 대비되는 모습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엿볼 수 있다. 한국은 기독교 신자가 상당히 많은 나라지만 동시에 불교 신자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 강남의 밤문화는 활기에 넘치지만 그와 동시에 가족 간에는 건전한 유교문화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중요한 가사 일과 투자 결정은 부인이 하지만 정작 여성은 직장생활에서 남성과 동등한 위치를 얻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한국의 대조적인 모습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쏜살같이 돌아가는 서울 생활과 교외의 여유로운 생활, 그리고 그 두 가지가 하나로 융합돼 있는 모습이다. 한국이 기본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도시’라는 세계인들의 인식과 달리실제로 한국은 아름다운 시골이 대부분이며 인상 깊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입에서 찬사가 절로 나오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이 나라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도시에서도 그 환경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차를 타고 도심에서 불과 15분만 벗어나면 산행을 즐길 수 있는 나라가 몇 곳이나 될까? 그런 점에서 나는 서울에 있는 북한산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만일 시드니 중심가를 벗어나 시골 지역이나 조그만 산이라도 찾아가려면 최소한 1시간 반을 차로 달려야 한다. 로스앤젤레스나 뉴욕에서도 몇 시간을 나가야 산 구경을 할 수 있다. 서울의 놀라운 특징은 바로 여기에 있다. 1100만 명이 북적대면서 사는 곳이면서도 도시를 병풍처럼 에워싼 산들 덕분에 말 그대로 ‘도시생활’과 ‘자연생활’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최근 난 아동용 동화책 ‘아기 반달곰 우라의 모험’(영문판 제목 ‘Ura’s World’)을 펴냈다. 한국 최초의 반달가슴곰 우라가 친구인 ‘까치’, 안경 쓴‘독수리’와 함께 모험을 하는 이야기다(반달곰을 선택한 이유는 그것이 중국의 자이언트 판다처럼 한국을 상징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 동화에서도 한국이 지닌, 서로 대비되는 모습이 주요 테마 중 하나다. 현대 한국에서 인간과 자연의 필수적인 공존이 우라의 모험을 통해 그려진다. 우라와 두 친구는 한국의 산에서 온갖 모험에 나서지만 그들의 활동무대는 도시에서 매우 가깝다. 첫 모험에선 한 늙은 곰이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고, 다음 모험에선 그 소년이 어른이 돼 까치·독수리를 도와 깊은 동굴에 갇힌 우라를 구출한다.
자연과 도시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 모험담을 전 세계 어린이들이 함께 읽도록 만들었다. 한글뿐만 아니라 영어로도 출판된 이 책의 판매 수익은 한국의 여러 환경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다.
환경단체 중엔 반달곰 구출과 보존에 힘쓰는 단체도 포함된다. 9년간의 한국생활과 동화책을 쓰게 된 계기를 곰곰이 돌이켜 보니 한국은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슬로건도 괜찮지만 ‘서로 대비되는 모습이 공존하는 나라(A Land of Contrasts)’라는 슬로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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