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論濁論] 국책연구소와 국가 리더십
[淸論濁論] 국책연구소와 국가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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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0년 8월 10일 조선시대 재정경제부인 호조(戶曹)는 세종에게 세제개혁보고서를 올린다. 그 이전 2년간 왕이 궁궐에서 행한 과거시험에서 전제(田制)를 어떻게 바꿀지의 계책을 시험문제로 묻더니, 드디어 공법(貢法)으로의 전환 논의를 공식화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당시 호조가 그동안 조정에서 찬반 의견을 조사한 결과를 찬반론자의 수와 그 구체적 이름, 그리고 그 논거까지 자세히 왕에게 보고한 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 후 개혁에 대한 반대로 7년간 진척을 보지 못하자 예전의 손실답험법을 다시 시행하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조에 기록된 공법시행과 관련한 108건의 자료들을 살펴보면 조세제도개혁을 위해 세종이 보인 정치적 리더십에 놀랄 뿐이다.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한 수많은 의견수렴, 일부 지역에서의 시범사업 실시, 문제점 파악 및 보완의 사후관리 등 매우 치밀하고 인내심이 많은 군주의 모습이 역력하다.
한글창제에 그렇게 반대하던 최만리를 22년간 집현전 학자로 근속시켰으니 인내심은 더 말해 무엇 하랴. 470여 년 후 우리의 모습을 보자. 참여정부에서 만들어진 종합부동산세 ‘대못’ 뽑기 작업이나 경쟁을 강조한 교육정책으로의 선회로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세금이나 교육 등 수많은 공공정책개편에 국책연구소가 과연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정책연구를 위한 전문두뇌집단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까? 더구나 새 정부 들어 국책연구소 개편론이 지난해 정부조직개편 이후 논의된 적도 있다.
일부 시민단체는 국책연구소 깡통론까지 제기하며 과감히 민영화하거나 개방하여 민간컨설팅기업과 경쟁시키자는 경쟁체제 해법을 주장하기도 했다. 민영화의 논리는 민간 부문에 이미 해당 산업과 시장이 완전경쟁을 통해 효율적으로 작동되고 있음을 기본전제로 한다. 과연 순수 공공재에 관련된 분야의 공공정책 이슈를 다룰 민간 지식서비스업체가 우리나라에 존재하기나 했나?
대학연구소, 대기업연구소, 아니면 시민단체부설연구소를 통해 공공정책연구서비스를 조달하더라도 공익성이 담보될 수 있을까? 결국 어떻게 공익에 봉사하면서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져 정책결정에 도움이 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무조건 민영화가 능사는 아닌 것 같다.
필자가 조세정책과 부동산문제에 관해 면담 및 자료수집을 위해 종종 방문했던 국책경제연구소로 네덜란드의 CPB(Central Planning Bureau)가 있다. 우리말로 ‘네덜란드 경제정책연구소’쯤 된다. 재정경제부(Minister of Economic Affairs) 산하이지만 연구의 독립성을 인정받는 중앙정부기관이다.
필자를 면담한 CPB 내 박사는 출장 몇 주 전 받은 질문지를 들고 답변·토론하다 전화를 한다. 궁금하거나 최신 자료를 원하면 그 자리에서 담당부서 공무원들에게 전화하여 관련자료들을 요구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신속하게 자료에 대한 접근권이 있을까? 놀라고 의아해하는 필자에게 돌아온 답은 명쾌하다.
“제가 맡은 분야에서 만들어지는 정책관련 법안검토 보고서는 제 서명 없이 의회에서 법안심의를 시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집현전이나 네덜란드의 CPB의 사례를 보더라도 정책결정권자가 연구를 통해 정책을 개발하여 정책품질을 높이겠다는 의지가 국책연구소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 사회에서 현실적 수요가 있는 정책을 독립적으로 연구한 결과가 정책논의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정책결정부서와 정책연구소가 서로 따로 놀도록 방임하는 것이 아니라 궁궐 안의 정책결정권자 곁에 두어 활용하거나 의회에서의 입법과정 중 국책연구소의 검토를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로 의무화하는 등의 법제화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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