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전염병은 미생물의 보복?
신종 전염병은 미생물의 보복?
신종 플루[A(H1N1)]의 공포가 확산되는 동안 제기되지 않았던 가장 중요한 의문이 있다. 사실 여섯 살짜리라도 물을 만한 질문이다. ‘바이러스들은 어디서 생겨날까?’ 대답은 간단하면서도 섬뜩하다. 바이러스는 ‘환경’으로 알려진 질병의 거대한 원천에서 생겨난다.
그러니 어른들은 그 환경을 교란하지 않으려고 아주 조심해야 한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병원충 등 다양한 병원체는 자연 속에서 생겨나는 예측 불가능한 테러범들이다. 그 자체로는 유전물질이 거의 없는 단순한 구조지만 다른 생명체의 세포 속에 침투하면 새로운 복합 병원체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녔다.
조류 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는 돼지의 몸속에 잠복했다가 인체에 감염되면 조류·돼지·인간, 세 가지 종(種)의 유전자를 뒤섞어 백신으로 예방이 불가능한 새로운 복합 병원체를 생성한다. 사스(SARS: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는 사향고양이와 관박쥐의 몸속에 잠복했다가 2002년 인간에게 전염돼 많은 사망자를 냈다.
또 야생 원숭이의 혈액 속에서 발견된 레트로바이러스 HIV는 인체에 감염되면 면역체계를 파괴한다. 따라서 강한 독성과 끝없이 변이 가능한 유전자를 지닌 하나의 병원체가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명체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가 뭘까?
자연은 생명체를 죽이는 방법뿐 아니라 생명체가 그런 위협에 대처해 살아남는 방법을 고안하는 데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통틀어 볼 때 병원체에 저항하거나, 방어체제가 갖춰진 특정 생태계 내에서 병원체를 억제하는 장치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
그러나 이런 자연의 방어체제가 현재 심각한 위협에 처했다. 인간이 야생의 숲 깊은 곳까지 들어가 광물을 채취하고 농작물을 재배하자 생태계의 균형에 변화가 일면서 이 방어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파괴된 생태계는 치명적인 신종 전염병의 진원지가 된다. 이런 신종 전염병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대규모로 발생하고 빠르게 확산된다.
하버드 의대 ‘건강과 지구환경 연구소’의 에릭 시비언 소장은 이런 상황을 “서서히 진행되는 아마겟돈(성경에 나오는 말세 선·악의 대결전)”에 비유했다. 핵확산 위험에 따른 세계인의 경각심을 높인 공로로 1985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시비언은 이렇게 말했다. “환경 파괴가 인간 건강에 끼치는 위험은 핵전쟁만큼 무시무시하다. 궁극적인 영향은 똑같이 파멸적이다.”
그런 증거가 이미 드러난다. 현재 세계적으로 주된 사망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말라리아는 거의 전적으로 인간의 마구잡이 산림벌채 탓이다. 산림벌채로 물웅덩이들이 생겨나고 그 표면에 일조량이 늘어나면서 조류(藻類)가 증식한다. 이런 물웅덩이들은 말라리아 병원충의 매개체인 아노펠레스 모기의 온상이다.
아노펠레스 모기는 이전의 생태계에서는 알맞은 서식지를 찾기 어려웠지만 아마존강 유역과 동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생태계 환경이 바뀌자 재빨리 다른 무해한 종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다른 질병의 확산도 이와 유사한 경로로 진행됐다. 일례로 일부 달팽이는 인간의 방광이나 장에 감염되는 주혈흡충이라는 기생충의 중간숙주다.
1985년 세네갈 강 유역에 디아마 댐이 건설돼 강물의 염분이 줄어들자 이 달팽이들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 그 결과 이 지역은 이전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주혈흡충의 온상이 됐다. 현재 세계적으로 주혈흡충에 감염된 인구는 2억 명을 웃돈다. 파리 중에도 인간에게 유해한 종의 숫자가 늘어간다.
남미와 남아시아에서는 산림벌채의 결과로 모래파리가 늘어나면서 해마다 수백만 명이 리슈만 편모충에 감염된다. 이 원충은 피부 궤양을 일으키고 간과 비장, 골수를 손상시킨다. 생태계 파괴는 병원체의 급속한 확산뿐 아니라 인간에게 무해한 종의 멸종을 부추긴다.
질병 생태학자 리처드 오스트펠드와 펠리샤 케싱은 종의 다양성이 왜 전염병 억제에 효과적인지 설명했다. 모든 동물이 병원체의 매개체가 되진 않기 때문에 종이 다양할수록 병원체의 감염을 억제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들은 이런 현상을 ‘희석 효과(dilution effect)’라고 부른다.
건강한 생태계(예를 들면 달팽이나 모기의 종이 다양해 높은 희석 효과로 전염병 억제가 용이한 생태계)에서는 병원체의 매개체가 아닌 달팽이나 모기와의 생존경쟁 덕분에 매개체인 달팽이나 모기의 수가 억제된다. 따라서 생물 다양성의 손실 자체가 공중보건을 위협한다.
숲이 파괴된 아마존강 유역뿐 아니라 자연이 훼손된 미국 교외 지역도 위험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 전역의 교외 주택가에 산재한 자투리 삼림지는 라임병의 온상이다. 독감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지만 불치의 신경계 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질병이다. 라임 박테리아는 파괴된 환경에서도 놀라운 생존력을 보이는 흰발생쥐의 몸 안에 서식한다.
감염된 생쥐는 병에 걸리지 않지만 이 박테리아를 증식시켜 인간을 포함해 모든 포유동물의 피를 먹이로 삼는 진드기에게 옮긴다. 주머니쥐·지빠귀·날다람쥐 등 숲의 다른 생명체들은 박테리아의 이상적인 숙주가 아니기 때문에 이 병을 진드기에게 옮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생명체들의 수는 점점 줄어든다.
숲의 파괴와 종의 감소는 라임병을 증가시키는(2007년 미국에서 2만7000명이 감염됐다) 직접적인 원인이다. 오스트펠드는 이렇게 말했다. “생태계에 흰발생쥐 이외의 동물들이 늘어나면 라임 박테리아를 옮기지 않는 동물들의 피를 먹고 사는 진드기도 늘어난다. 다른 동물들과 인간에게 무해한 진드기가 더 많아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흰발생쥐가 갈수록 더 많은 경쟁자와 포식자(여우·족제비·올빼미 등)를 제거하는 탓에 라임 박테리아에 감염된 생쥐의 피를 빨아먹는 진드기의 숫자가 더 늘어난다. 현재 파괴된 숲 1~2에이커에서 라임병이 발병할 확률은 종의 다양성이 조금 더 우세한 숲 5~6에이커에 비해 다섯 배가 넘는다(1에이커는 약 4000㎡).
한타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호흡기 질병(환자 세 명 중 한 명이 사망하는 무서운 질병이다)과 웨스트나일(West Nile) 바이러스로 야기되는 신경계 질환의 증가 역시 생물학적 다양성의 감소가 주된 원인이다. 이들 질병에 감염될 위험은 삼림 개간업자나 오지에서 벼농사를 짓는 농부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웨스트나일 바이러스는 1999년 뉴욕시에 상륙해 2004년에는 미국 서해안까지 확산됐다. 이 바이러스는 미국의 보편적인 조류 몇 종과 모기를 매개체로 인체에 감염됐다. “우리가 이 바이러스에 적합한 환경을 준비해 놓고 어서 오기만 기다린 꼴이 됐다”고 오스트펠드는 말했다.
조류의 종이 줄어들면 인체 감염의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 울새·참새·어치·찌르레기 등 일반적 조류 외에 다양한 종류의 새가 서식하는 곳에 살 경우 이 병에 감염될 위험이 10분의 1로 줄어든다. 하지만 인구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일반적 조류밖에 서식하지 못한다.
오스트펠드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 새들은 인간에 의해 파괴된 환경에서도 잘 살기 때문이다.”현재 지구상에서 정체가 밝혀진 병원체는 약 1415종이다. 바이러스 217종, 곰팡이균 307종, 박테리아 538종, 원충 66종, 그리고 기생충 287종이다.
이 병원체 중 약 3분의 2가 인간 이외의 종에 서식한다. 하지만 그 병원체들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세상에 알려진 175종의 전염병 중 75%가 동물원성 감염증(다른 동물을 통해 인간에게 감염되는 병)이다. 야생생물보호협회(WCS)의 윌리엄 카레시 회장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12~18개월에 한 번꼴로 새로운 질병이 나타난다.
시비언의 말대로 ‘아마겟돈’이 진행 중이다. 자연발생적인 병원체는 하나같이 강력하고 치명적이며 종을 넘나들며 끊임없는 변형이 가능하다. 그리고 세계적인 유행병으로 확산되기 쉽다. 무모하게 개발된 열대지방이나 습지대에서 발생한 병원체들은 나머지 지역에는 생소한 존재다.
그리고 ‘순진한’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그 병원체의 희생자가 된다. 시비언은 생물 다양성의 감소를 생태계 파괴의 정도를 측정하는 수단이자 최종적인 대가로 본다. 생물 다양성이 줄어든 지구는 병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생물 다양성은 예방과 치료책의 다양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생물 다양성은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건강 문제에서는 인간 세계와 비인간 세계의 구분은 부질없다. “인간은 다른 모든 종과 함께 전염병의 원천을 공유한다”고 시비언의 동료이자 의사인 아론 번스타인이 말했다. 그 속에 인간만 남는다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무죄판결에도 무거운 책임감”…떨리는 목소리로 전한 이재용 최후진술은
2中 “엔비디아 중국에서 뿌리내리길”…美 반도체 규제 속 협력 강조
3충격의 중국 증시…‘5대 빅테크’ 시총 한 주 만에 57조원 증발
4이재용 ‘부당합병’ 2심도 징역 5년 구형…삼성 공식입장 ‘無’
5격화하는 한미사이언스 경영권 갈등…예화랑 계약 두고 형제·모녀 충돌
6“이번엔 진짜다”…24년 만에 예금자보호 1억원 상향 가닥
7로앤굿, 국내 최초 소송금융 세미나 ‘엘피나’ 성료
8카드사들, 후불 기후동행카드 사전 신청받는다…사용은 30일부터
9카카오페이증권, 간편하고 편리한 연금 관리 솔루션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