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uroscience - ‘맞춤 뇌’ 시대 온다
neuroscience - ‘맞춤 뇌’ 시대 온다
뉴로넥서스 테크놀로지스(미국 미시간주 앤 아버)의 대릴 킵케가 자기 회사의 최신 시제품을 자랑스레 보여주었다. 이 최첨단 전자 칩은 예컨대 아이팟에 들어가는 그런 흔한 종류가 아니다. 하지만 아이팟이나 마찬가지로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박동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뇌 깊숙이 이식돼 전기 신호를 발생시켜 특정 세포군에 전달하도록 만들어진 칩이기 때문이다. 뉴로넥서스는 파킨슨병과 강박장애, 우울증의 일부 증상 완화에 효과적인 전기 자극을 생성·전달하는 기기를 개발하고 시험한다. 미시간대의 신경과학자이기도 한 킵케는 이렇게 설명했다.
“심부 뇌 자극은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기술로 신경세포(뉴런)의 표적화와 조율의 효율성 개선이 가능하다.”주요 뇌 장애의 새로운 처치법으로 등장한 수단은 킵케가 소개한 칩 외에도 많다. 이 새로운 처치법 중 일부는 지난 10년 동안 급증한 유전자 분야의 정보를 기반으로 개발됐다.
뇌 질병은 미국의 경우 의료비와 소득 손실 측면에서 매년 1조 달러의 비용을 발생시킨다. 또 인구의 고령화는 그 액수를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든다. 따라서 최근 미국에서는 뇌 연구 분야에 거액이 투자됐다. 2008년 미 국립보건원(NIH)이 50억 달러, 대형 제약회사들과 재단 등이 수억 달러를 투자했다.
심지어 미 국방부도 참여했다. 뇌 손상을 입은 참전용사들에게 보다 나은 치료를 제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뇌손상 환자들의 지력과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정서적 균형을 돌이키는 새로운 방법이 많이 나왔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과학자들이 질병의 증상을 완화하고 신체 기능을 올리는 새로운 치료 약을 내놓을 때마다 그 치료 약의 도움을 받는 이들은 그 병을 앓는 환자들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일례로 비아그라 시장은 발기부전으로 확진된 환자보다 훨씬 더 넓은 층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다.
신경 약품 전문 시장전략 업체인 뉴로인사이츠의 전무 케이시 린치는 항우울제 시장도 상황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현재의 항우울제들이 나온 1980년대 말 이전에는 우울증 환자가 2만 명 중 한 명꼴이었지만 오늘날은 10명 중 한 명꼴로 크게 늘었다. 더 잦아지고 빨라진 진단 때문이다.
기억력과 사고력을 손상시키는 질병의 치료법 개발이 진전되면서 한 가지 중요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런 치료책이 여러 기준으로 볼 때 정상적인 사고력을 지닌 사람들의 뇌 기능을 올리는 데도 이용돼야 할까? 현재 우리는 머리가 맑지 못하거나 약간 둔하다고 느껴질 때 약이나 수술로 IQ와 기억력, 자신감을 높이는 ‘맞춤 뇌’ 시대로 접어드는지 모른다.
린치는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뇌의 상태(예를 들면 명석하지 못한 사고력 등)도 언젠가는 질병으로 분류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약으로 IQ를 올린다는 개념은 새삼스럽지 않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대학생 20명 중 한 명, 대학 교수의 상당수가 각성 효과와 집중력·기억력 향상을 위해 리탈린이나 모다피닐을 불법 복용한다.
리탈린은 주의력결핍장애에, 모다피닐은 발작성 수면증에 처방되는 약이다. 하지만 이 약들은 정상적인 사람에게는 효과가 미미한 데다 중독부터 과도한 자극까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 보조제 역시 인지 기능 향상에는 별 효과가 없는 반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이 높다.
또 세계적으로 약 400만 명에 이르는 알츠하이머 환자가 정신 능력 감퇴를 완화하려고 도네페질(상품명은 아리셉트)이라는 약을 복용하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인간 유전체 해독으로 알츠하이머 같은 정신 장애나 지능·성격 등의 특질을 관장하는 특정 유전자들이 밝혀지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개개의 유전자가 두뇌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며, 대다수 질병은 수많은 유전자를 연결하는 복잡한 연결망의 상호작용에서 초래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 연결망의 많은 유전자를 조사해 정신 장애의 유전적 뿌리를 밝혀내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치료책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그 결과 의학은 특정 질병에 걸리기 쉬운 유전적 성향을 극복하고 살아가면서 환경적 이유로 얻는 뇌 질병까지 치료하도록 해줄지도 모른다. 치매(알츠하이머) ·우울증·건망증에 걸린 사람은 물론이고 생각이 흐리멍덩한 사람까지 말이다. 현재 다양한 의학 기술이 실험된다.
예컨대 뇌세포 속의 유전자를 개조하거나 유전자로 하여금 새로운 뇌세포를 생성하도록 유도하는 기술도 있다. 뉴로로직스(뉴저지주 포트 리)는 뇌 관련 유전자 치료법 개발에 나섰다. 무해한 바이러스를 주사해 세포에 맞춤 제작된 유전자를 삽입하는 방법이 그중 하나다.
과거에 실험적인 유전자 치료법들은 심각하거나 치명적인 부작용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뉴로로직스는 치료가 필요한 세포에만 바이러스를 주입함으로써 그런 부작용을 피하고자 한다. 이 회사는 현재 파킨슨병 치료법을 임상시험했으며, 헌팅턴병과 간질·우울증 등의 치료법 임상시험도 할 계획이다.
시애틀에 있는 사운드 파마슈티컬스 등은 새로운 뇌세포의 성장을 유도하는 기술(최근까지도 대다수 과학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을 연구한다. 사운드는 생쥐 연구에서 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단백질을 차단해 새로운 청각 세포의 성장을 유도함으로써 생쥐의 청력을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사운드의 CEO 조너선 킬은 “실험 과정에서 신경세포 생성에도 성공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회사들은 인지력 향상과 치매를 치료하고자 신경세포의 재생성을 촉진하는 실험을 한다. 그런가 하면 알츠하이머 등의 질병으로 손상된 백색질 세포를 회복시키는 연구를 진행 중인 회사도 있다.
줄기세포를 이용해 손상된 신경세포를 대체하는 실험도 고무적인 결과를 얻었다. 스톡홀름에 있는 뉴로노바의 연구총책임자(CSO) 안데르스 해거스트란트는 이 회사가 2013년께 줄기세포를 이용한 파킨슨병 치료법을 시장에 내놓게 되리라고 전망했다. “인간의 파킨슨병 치료는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니지만 많은 원숭이의 파킨슨병을 치료했다”고 그는 말했다.
사고력을 향상한답시고 이런 극단적인 치료법을 동원할 필요는 없다. 두뇌의 유전학적 연구를 비롯해 다른 새로운 과학적 연구 결과들이 두뇌 장애를 치료하는 신약 개발에 도움을 준다. 이런 약들은 심각한 장애가 없는 사람들에게 ‘머리를 좋아지게 하는 약’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임상시험 중인 약 다섯 가지 중 한 가지는 뇌 질병 때문이다. 알츠하이머 관련 약만 해도 300종이나 된다. 그중 적어도 40종이 IQ나 기억력 향상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요즘은 이런 약을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소기업이 많이 생겨났다. 그중 사우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코멘티스는 중독성 등 건강에 해로운 측면을 배제하고 니코틴의 각성 효과를 내는 약을 개발하려고 한다.
또 샌디에이고에 있는 헬리콘 세라퓨틱스는 단기·장기 기억과 관련된 단백질을 연구하며, 같은 지역에 있는 또 다른 회사 세레진은 두뇌 세포에 주사해 ‘신경 성장 인자’를 활성화하는 바이러스 개발에 나섰다. 콜로라도주 브룸필드에 있는 아세라는 뇌세포에 에너지를 보충하는 ‘의학적 식품’을 시판한다.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했고 처방전이 있어야 구입 가능한 이 ‘식품’은 일부 알츠하이머 환자 등에서 인지력 검사 점수를 약간 높이는 효과를 보여주었다. 아세라사의 CEO 스티브 온도프는 “복용 뒤 30분 이내에 점수가 향상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런 약의 종류는 급속도로 늘어날 듯하다.
지난 한 해 동안 과학자들은 DR6(death receptor 6)로 알려진 단백질을 발견했다. 뇌세포와 다른 세포의 정상적 발달과 선택적 ‘파괴’를 관장하는 DR6는 알츠하이머 등 환자 뇌세포의 자살을 부추겨 뇌 속에서 대량 파괴를 일으킨다고 한다. DR6를 차단하는 화학물질들을 이용하면 대량 자살을 유발하는 화학 신호를 차단해 인지력과 기억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드러났다.
사우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생물공학 회사 제넨테크는 DR6 차단제로 생쥐의 뇌 질병을 완화하는 데 성공했으며, 내년에는 인체 실험을 시작할 듯하다. 이런 차단제들은 노화하는 정상적인 뇌에서 기억 손실과 혼란 완화에 효과적일지 모른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기억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이는 분자를 발견했다.
생쥐의 뇌에 이 화학물질을 주사해 기억력을 향상시킨 연구 결과도 나왔다. 그런가 하면 기억을 차단하는 약을 이용한 연구도 있다. 이론상으론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기억을 선택적으로 삭제함으로써 사고력을 회복시키고 증진하는 기술이다(2004년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소개됐을 때만 해도 억지스럽게 보였다).
정신적 충격을 입은 환자들을 치료하는 매사추세츠주 니덤의 치료사 네이오미 맬 리트로니크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치료법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고통스러운 기억 치료에 이런 약들을 쓸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이다.”뇌 기능 개조의 놀라운 결과는 유전학 연구의 덕뿐만 아니다.
과학자들에게 뇌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보여주는 첨단 영상기법 덕분이기도 하다. 약 5년 전만 해도 과학자들은 전두엽의 회색질이 높은 지능을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측두엽과 후두엽의 회색질도 관련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실 뇌의 어느 부위에든 회색질이 많을수록 IQ가 높을 가능성이 크다.
회색질 안쪽에서 뇌세포 간의 물리적 연결을 관장하는 ‘백색질’의 양과 질 역시 지능과 연관이 있다. 뇌의 구조를 자세히 파악한 과학자들은 뇌에 전선과 기기들을 이식해 뇌의 다양한 부위에 직접 전기 신호를 보내는 실험을 했다.
일례로 뉴로넥서스는 척수 칩 요법으로 칩의 수천 개 노드 중 어떤 노드를 활성화할 때 환자의 어떤 뇌세포가 자극 받는지를 연구해 환자의 반응을 조율하는 실험을 한다. 이런 심부 뇌 자극은 떨림 증상을 완화하고 발작을 예방할 뿐 아니라 인지력과 성격 변화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언젠가는 이 요법으로 환자의 지력과 기분을 조정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목의 미주신경을 자극하는 기기를 개발 중인 댈러스의 신생기업 마이크로트랜스폰더의 CEO 윌 로셀리니는 “이 요법은 수술도 필요 없다”고 말했다. “뇌 밖에서 대뇌피질의 프로그램을 개조하는 방식이다. 연구의 일부 결과가 매우 고무적이다.”
이 실험적인 약과 치료법들 중 다수가 부작용 때문에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또 정부에선 심각한 장애를 지니지 않은 사람이 이런 약이나 치료법을 이용하는 행위를 금지할 가능성이 크다. 일부 과학자는 건강한 사람에게서 약이나 다른 치료법과 똑같은 IQ 향상 효과를 내는 좀 더 자연스러운 방법을 개발하려 한다.
성인의 뇌는 정신작용을 통해 신경연결망을 개조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캘리포니아대 LA 캠퍼스(UCLA) 의대의 정신의학과 임상 부교수 대니얼 시걸은 “대다수 사람의 뇌에 부분적으로 활성화되지 않는 부위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비언어적 신호에 집중하거나,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좀 더 의식적으로 살피거나, 다중과업(멀티 태스킹)을 삼가는 등의 방식을 통해 그런 부위들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때는 기계적이 되기 쉬우므로 강력한 뇌신경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부위가 활성화되지 못한다”고 시걸은 설명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신경강화제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다. 새로운 세포 지식을 여하히 사용하느냐가 도덕적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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