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와 Guru의 대화 7
CEO와 Guru의 대화 7
김성주 회장 기업 또는 기업인의 사회공헌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기부 등 물질적인 기여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이죠. 저는 성주그룹의 대주주로서 거둔 순이익의 10%를 반드시 사회에 환원하고 있습니다.
현물일 때도 있고 현금으로 지출하기도 합니다. 결국 성주의 전 구성원들은 이 기부활동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셈이죠. 직원들 가운데 동호회 활동을 통해 나름대로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일은 전적으로 자율에 맡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반 기업보다 우리 회사 직원들이 이런 활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송자 전 총장 윗물이 맑으니 아랫물도 맑은 거겠죠. 기업이 사회공헌을 하려면 우선 이윤을 창출해야 합니다.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는 우리 속담이 있지만 정승같이 쓰려면 우선 벌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개같이 벌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빵을 나눠 먹으려면 우선 빵부터 만들어야죠. 이 순서만큼은 명료합니다. 그런데 김 회장을 보면 돈을 벌려는 건지 자선사업을 하려는 건지 모를 때가 있어요.
김성주 개같이 버는 게 말하자면 천민자본주의죠. 그런데 총장님, 저 돈 잘 벌어요(웃음). 개인적으로는 십일조가 아니라 10의 3, 때로는 10의 5를 내놓을 때도 있습니다. 그건 저의 선택이죠. 저는 멋진 저택이나 페라리 같은 차를 살 때 얻는 만족보다 이런 활동에서 느끼는 행복이 더 큽니다. 직업적으로 명품 브랜드를 취급하지만 검소한 차림을 좋아하고요.
송자 일반적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히 벌이면 기업 이미지가 좋아지고 결국 해당 기업 제품에 대한 소비로 이어지게 마련이죠. 그러나 항상 바람직한 결실만 거두는 건 아닙니다. 사람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에요. 몇 년 전 종업원지주제가 한창 유행일 때 기업주가 전 주식을 종업원에게 나눠준 어느 중소기업이 망한 일이 있습니다.
종업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사회공헌 활동도 이런 위험이 있을 수 있어요.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인데 그 뜻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채 의외의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김성주 저도 기업이 돈을 벌어야 하는 건 자본주의의 철칙이라고 봅니다. 다만 중·장기적인 전망을 세우고 잉여자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겁니다. 저는 이 원칙이 맞다고 보고, 분명히 우리에게 성공을 가져다줬습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으로부터 없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왜 우리처럼 작은 기업을 선택했느냐고 물었더니 돈을 많이 내는 회사보다 정직하게 사업을 벌여 성공한 기업을 골랐다고 하더군요.
송자 사회공헌보다 고용 유지와 창출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기업들도 있습니다. 일본의 어느 회사는 성장 여력이 있을 때도 평생직장을 유지하기 위해 성장 속도를 조절합니다. 평생직장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사회공헌이라는 입장이죠. 우리 사회엔 이윤을 많이 내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보다 더한 사회공헌은 없다는 인식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시각이 공존하고 서로 경쟁하는 것도 일견 바람직합니다.
김성주 평생직장이라는 관념은 업종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저희 성주는 ‘패션사관학교’란 소리를 듣지만 이직률이 높은 편이죠. 유통 쪽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움직입니다. 이렇게 제가 키운 직원들이 국내외로 뻗어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사람을 잘 키우는 것도 사회에 공헌하는 길이죠.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직원들도 많아요.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겪고 때가 돼 은퇴하는 직원들이 은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저는 기업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송자 경영은 사람을 운용해 무엇인가 만들어내는 예술 활동이라고 봅니다. 어떻게 만들어내느냐는 경영자에게 달렸죠. 경영자가 누구냐에 따라, 경영 철학과 비전이 무엇이냐에 따라 우선순위도 다릅니다. 경영자에 따라 사회공헌보다 고용 창출에 우선순위를 둘 수도 있죠.
어느 쪽이 맞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요즘은 삼성, LG, 현대 등 대기업에서 훈련 받은 중소기업 사장들이 많습니다. 70, 8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중소기업에서 사람을 빼 간다고 대기업이 말을 들었는데 인력 이동의 방향이 역전된 거죠. 대기업에서 넘쳐 중소기업으로 흐르고 있는 셈입니다.
김 회장은 버는 것 못지않게 기여하겠다는 게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주그룹 하면 ‘김성주’를 떠올리고 김성주 하면 기부하는 사람을 연상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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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 우리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유럽의 명품 브랜드를 인수해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이 저희 성주를 케이스 스터디한 책을 펴냅니다.
전 세계에서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중소기업 11개를 골랐는데 그중 하나로 선정됐죠. 말하자면 중소기업의 모델로 뽑힌 셈입니다. 중소기업이 나아갈 길은 두 가지입니다.
기술 중심 기업을 추구하거나 브랜드 중심 기업을 추구하는 거죠. 우리는 브랜드를 선택했습니다. 단 현존하는독일산 브랜드 MCM을 인수해 일본, 중국 등 아시아를 비롯해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죠.
우리보다 규모가 100배 큰 루이뷔통, 구찌, 리치몬트 그룹 같은 다국적 골리앗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 회사 제품과 비슷한 품질의 명품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유통시키고, 주주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주주 자본주의의 원칙에 충실한 이들과 달리 이윤의 일부를 사회를 살찌우는 데 씁니다.
일례로 글로벌 학생 리더십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난해부터 연세대생 40여 명을 해외에 보내고 있는데 앞으로 다른 대학에도 확산시킬 계획입니다. 아주 창의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죠.
김 회장은 이들 골리앗과 경쟁하기 위해 차별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부자 남편이나 부유한 애인을 둔 여성, 부잣집 딸 등 소극적인 고객보다 능동적인 상류층의 전문직 여성을 겨냥한 것이다. 광고도 현란하고 섹스 어필을 강조하는 정통주의 명품 콘셉트를 버리고 당당한 여성상을 부각했다.
더 예뻐져 멋있는 남성들을 유혹하기보다 독립적이고 사회에도 기여하는 여성이 되라고 부추겼다. 그는 “기존 트렌드가 겉으로는 여성을 존중하면서 여성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데 주력했다면 우리는 여성들에게 스스로 번 돈을 의미 있게 쓰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송자 삼성, 현대차, LG 등 자기 브랜드로 세계 시장에 진출해 성공한 경우도 있지만 외국 브랜드를 인수하거나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화한 기업들이 있습니다. 휠라코리아, 홈플러스 그리고 성주그룹 이 세 회사죠.
특히 한국의 작은 기업 성주가 외국 명품 브랜드를 인수해 세계 각국에 매장을 내고 있는 사례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이 주목할 만큼 아주 인상적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또 이런 일이 가능해진 소비자 시장 자체의 변화에 대해 학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하죠.
사회공헌 철학 지키려 펀딩 안 받아
김성주 그동안 여러 곳에서 투자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상어처럼 달려들어 물불 안 가리고 돈을 벌어가려는 펀드들이기 때문이었죠. 우리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펀딩이 필요하지만 저의 철학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유럽에는 우리와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 펀드도 있습니다.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들에 투자하는 펀드죠. 그런 자금이라면 받아들일 겁니다.
송자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인간이 만들어낸 체제 중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좋은 체제라고 봅니다. 그렇게 거의 결론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어느 체제보다 인간에게 자유와 부를 많이 가져다줬습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은 세 가지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첫째, 빈부의 격차를 낳았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있는 사람들이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다시 암흑시대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둘째, 노사의 대립이 생겼습니다. GM, 쌍용자동차처럼 노사가 대립하기보다 도요타같이 협력해야 상생할 수 있습니다. 셋째, 환경 오염 등 성장의 부작용을 초래했습니다.
그래서 녹색 성장을 말하게 된 거죠. 김 회장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이런 한계 나아가 모순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업을 하면서 체득한 것 같습니다. 록펠러나 카네기 말고도 부자들이 많았지만 이름을 남기지 못한 건 버는 돈을 쓰기에 바빴지 나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사외이사 제도가 이런 오너들의 전횡을 차단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사회를 거치다 보면 손쉬운 사회공헌, 무원칙한 사회공헌에도 제동이 걸리죠. 어쨌거나 주식의 분산 여부도 중요한 포인트지만 사회공헌이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려면 무엇보다 경영자들이 자기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김성주 우리나라는 있는 사람들이 존경을 못 받고 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않기 때문이죠. 단적으로 경제 개발기 우리나라가 정책적으로 재벌을 육성한 것은 전략적으로 타당했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과실이 내 것이라는 생각에서 재벌들의 타락이 시작됐다고 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회사를 키우는 훌륭한 일을 하고도 국민들의 존경을 못 받습니다. 자본주의가 가장 좋은 시스템이라고 하셨는데, 이 시스템의 수혜자인 있는 사람들이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사회공헌을 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도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같은 사람이 나와야죠.
송자 있는 사람들이 앞장서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지 않으면 다시 암흑시대로 돌아갑니다. 역사적으로 농민 봉기는 이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해 일어났습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였어요. 우리나라에서 회사 돈을 내놓으면서 오너들이 자기 이름을 싣는 식의 사회공헌 같은 것은 사실 의미가 없어요.
송자 전 총장이 말하는 사회공헌 경영 빵을 나눠 먹으려면 빵부터 만들라 정승같이 쓰려면 우선 벌어야 한다. 이윤을 창출해야 사회공헌도 할 수 있다. 사회공헌 활동에 치중해 기업 자체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기업 이미지 개선이 매출로 이어지게 하라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면 기업 이미지가 개선된다. 기업 이미지 개선 효과를 매출 증대로 이어지게 하라. 그래야 선순환이 이뤄진다. 자본주의 시스템 유지에도 필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역사상 가장 좋은 시스템이지만 한계를 안고 있다. 사회공헌으로 빈부 격차를 완화하지 않으면 암흑시대로 회귀할 수도 있다. |
모교 총장과 동문으로 만나 인연 이어가 송자 전 총장은 1990년대 연세대 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김성주 회장과 처음 만났다. 당시 송 전 총장은 연세대 총장을 지낸 용재 백낙준 박사 기념사업을 벌였는데 대성그룹이 기금을 출연했다. 그는 대성그룹 오너가의 막내딸이자 연세대 출신인 김 회장에게 이 일을 주선해주도록 부탁했다. 그는 김 회장에 대해 “일찍이 세계화 된 여성으로 아이디어 맨”이라고 말했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아는 사람도 많은 맹렬 여성입니다. 영어에 대한 경쟁력, 아이디어, 여성에게 잘 맞는 업종 선택을 기반으로 물려받은 유산 없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냈죠.” 김 회장은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해 영어에 능통하다. 송 전 총장은 제자인 성주그룹 송문호 사장의 요청으로 이 회사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그는 송 사장이 취임하던 날 축사를 부탁 받고 “아이디어맨으로 공격적인 김 회장과 공인회계사 출신이라 보수적인 송 사장이 좋은 뜻에서 서로 견제해 균형점을 찾으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송 전 총장에 대해 “나에게 비전을 갖게 하고 희망을 품게 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유학과 해외에서의 경험 쌓기를 마치고 89년 귀국한 김 회장은 유산 상속에서의 배제, 국내 비즈니스 관행과 인습의 장벽에 부닥쳐 크게 낙담했다. 그 시절 만난 송 전 총장은 연세대의 운영을 맡아 그때까지만 해도 대학 사회에서는 생소했던 비전을 선포하고 매킨지에 컨설팅을 의뢰하는 등 대학에 비즈니스 마인드를 도입했다. 외부의 기부금이 대학 재정의 80%를 차지하는 미국 앰허스트대를 졸업한 김 회장 눈에 송 전 총장이 하는 대학 운영은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김 회장은 송 전 총장이 성주의 사외이사를 맡고 나서 점심 식사를 같이했을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이사회 후 점심 식사를 하면서 그는 송 전 총장에게 식사 기도를 부탁했다. 그로서는 대학 재학 시절 모교 교수로 몸담았고 훗날 총장을 지낸 송 전 총장에게 사외이사를 맡기기엔 자신이 경영하는 성주라는 그릇이 작아 보였다. 그런데 송 전 총장은 “이런 기업에 와서 봉사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기도했다. 그 한마디 기도에 송 총장님의 정신과 철학이 담겼다고 생각합니다. 탁월하지만 욕심에서 자유로운 모습이 퍽 인상 깊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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