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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기업 M&A로 글로벌 경쟁 주도

게임기업 M&A로 글로벌 경쟁 주도


게임 개발 관련 회의 중인 CJ인터넷 직원들.

지난 3월 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대회 한·일 간 결승전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빙의 승부였다. 하지만 당시 게임 매니어들의 눈에는 야구 경기뿐 아니라 한국 대표팀 헬멧 좌우측에 새겨진 ‘마구마구’라는 글귀가 들어왔다. ‘마구마구’는 게임업체인 CJ인터넷(대표: 정영종)이 자랑하는 온라인 야구 게임이다.

WBC에 참가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스폰서로 나선 CJ인터넷이 자사의 ‘마구마구’ 게임 로고를 선수들의 헬멧에 새겨 넣었다. WBC대회의 폭발적 인기에 덩달아 ‘마구마구’도 엄청난 광고효과를 누렸다. 한때 동시접속자 수가 50% 이상 증가했다. 내친 김에 2009년 한국 프로야구 정규시즌 스폰서(35억원)까지 떠맡았다.

“한국 프로야구가 잘돼야 ‘마구마구’ 게임도 확산되리라는 취지에서 스폰서를 맡았다”고 이 회사 퍼블리싱사업본부장 권영식 상무는 말했다. 게임업체가 한국 프로야구에 돈을 대는 시대가 왔다. 그런데 CJ인터넷? 회사 이름만으론 뭐 하는 기업인가 싶다. 그러나 이 회사는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게임업체이자 게임 포털 사이트 ‘넷마블’을 운영한다.

넷마블은 올 7월 말 현재 회원 수 2800만 명(CJ인터넷 주장)을 헤아리는 국내 최대 게임 포털의 하나다.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앞서의 ‘마구마구’를 비롯해 대표적 1인칭 슈팅(FPS·First Person Shooting)게임인 ‘서든어택’, 다중 접속 온라인 롤플레잉게임(MMORPG)인 프리우스 등이 있으며 총 60여 종의 게임을 제공한다. 지난해 매출 1936억원에 555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둬들였다.

매출 규모로는 넥슨, NHN, 엔씨소프트에 이어 4위다. 해외 시장에서 활약이 그리 대단하지도 않다. (지난해 계약금과 로열티를 포함해 3400만 달러 정도 수출 계약을 체결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몇몇 두드러진 행보로 업계의 주목을 받는다. 이를테면 서든어택의 롱런 기록이다.

이 게임은 지난해 11월까지 국내 PC방 온라인 게임에서 104주 연속 1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 넷마블에서 제공하는 60여 개 게임 중 13개가 월 1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등 안정된 포트폴리오를 갖췄다. 2006년 서든어택을 출시하기 전에는 소위 대박 게임도 없었다. 작은 게 뭉쳐 큰 걸 일궈낸 기업이라고 이 회사의 정영종(45) 대표가 소개했다.

한두 가지 주력 상품에 매출을 의존하는 구조가 아닌 덕에 외부의 충격과 변화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능력이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김진석 게임문화e스포츠팀장은 “CJ라는 대기업의 계열사로서 게임의 장르를 다양하게 갖췄다는 장점이 있다”고 CJ인터넷을 평가했다. 게임 관련 업체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게임을 만드는 개발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개발된 게임을 사용자들에게 공급하는 이른바 퍼블리싱(Publishing)기능이다. CJ인터넷은 자기가 만든 게임보다는 남이 만든 게임을 넷마블을 통해 사용자에게 서비스하는 비중이 더 크다. 전체 매출에서 자체 개발 게임이 차지하는 비율은 30% 정도고 나머지는 외부업체들이 만든 게임이라고 김동희 이사가 밝혔다.

이는 넷마블이라는 게임 포털 사이트가 있어 가능했다. 독자 판로를 찾기보다 넷마블을 통한 유통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게임 제작사들이 몰린다는 말이다. 생명력이 약한 게임은 한때 반짝하고는 식상해지게 마련이다. 이때 게임에 변화를 줘서 사용자들의 흥미를 계속 이끌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CJ인터넷은 이에 능하다. 실제로 최근(7월 넷째 주)에는 온라인 게임 전문사이트 게임노트가 집계한 순위에서 서든어택이 올 들어 내내 정상을 차지해온 아이온을 주저앉히고 다시 1위로 복귀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인기 아이돌 그룹 빅뱅을 캐릭터로 등장시켜 판세를 뒤집는 전략이 적중한 셈이다.

게다가 사용자가 대기시간 없이 자동으로 빈방에 들어가는 ‘퀵 스타트’ 기능을 주는 등 이 게임은 쉽게 하는 게임으로 거듭 진화했다. 이 회사는 넷마블의 쌍두마차라 할 서든어택과 마구마구를 선보인 2006년 이래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올랐다. 2006년 처음으로 1000억원(1052억원)대에 진입한 매출액이 1598억원(2007년), 1936억원(2008년) 등 해마다 500억원씩 증가했다.

하지만 화려한 외양 뒤에는 성장통이 없지 않다. CJ인터넷은 2005년 1월 게임 전문 스튜디오 CJIG를 세워 독자적인 게임 개발에 착수했다. 하지만 CJIG가 출시한 게임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지난해만 114억원의 손실을 봤다. 해외에서도 찬바람이 불었다. 지난해 중국법인과 일본법인에서 각각 40억원과 12억원의 적자를 냈다.

많은 돈을 주고 사들인 외국의 게임을 현지 법인에서 출시했지만 회수율이 극히 저조했다. 어떤 경우는 20%도 안 됐다. 인력과 게임, 경영 모두 철저하게 현지화하지 않은 데서 온 후유증이다. 수업료치고는 비쌌지만 그에 상응하는 교훈도 얻었다. 먼저 여러 개 게임을 동시다발로 개발하던 방식에서 하나씩 순차적으로 개발하는 쪽으로 완급을 조절했다.

더 중요하게는 게임 개발을 보다 전향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됐다. 예컨대 게임과 같은 콘텐트 산업은 성공률이 워낙 떨어진다. 따라서 게임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주는 게임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가 기업 경쟁력의 척도이기도 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독자 개발보다는 사다 쓰는 쪽이 더 빠르고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점을 고민하게 됐다”고 정 대표가 말했다.

해외 법인 또한 사업의 성공요인을 익힌 게 성과라면 성과다. 일본인 법인장을 영입한 뒤로 일본 법인이 안정을 되찾아 흑자기조로 접어든다고 CJ인터넷은 전했다. 그렇더라도 게임업체는 게임 개발과 공급(퍼블리싱)이라는 양 날개로 날아야 한다는 믿음엔 변함이 없다. 상대적으로 뒤처진 게임 개발 능력은 국내외 유망 게임제작사를 인수합병(M&A)해 보완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한국 업체들보다 수십 배 덩치가 큰 중국과 미국의 기업들이 조만간 온라인 게임 시장에 진출하려고 국내 게임 기업의 인수합병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CJ인터넷은 전망한다. “막강 자본력을 갖춘 해외 글로벌 기업이 국내 업체를 인수한다면 토종 기업들도 그에 맞서 규모의 경제를 갖춰야 경쟁이 된다”고 김동희 이사는 말했다.

CJ인터넷은 해외 시장 개척도 꾸준히 추진한다. 일본, 중국, 미국은 물론 러시아, 유럽 등 해외 현지 법인에 지금의 넷마블을 하나씩 두겠다는 목표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끝내는 한국 본사는 해외 사업을 지원하는 역할만 하고, 실제 사업조직들은 해외에 두는 형태로 가겠다”고 정 대표가 회사의 미래를 그렸다.■

Q/A “10년 후 넷마블 30개 더 만든다”
정영종 대표

넷마블을 운영하던 플래너스를 CJ엔터테인먼트가 2004년 인수해 만든 회사가 CJ인터넷이다. 정영종 대표는 플래너스 시절 이 회사에 몸담아 지금의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정통 CJ맨이 아닌데도 대표가 됐다.

게임은 전문 영역이다. 일반 사업 분야가 아닌 특화된 영역에는 그쪽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 경영인을 발탁하겠다고 그룹 최고 결정권자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임산업과 대기업 이미지는 쉽게 연결되지 않는데.

CJ그룹은 최초(The First), 최고(The Best), 차별화(Differentiation)가 기업 슬로건이다. 우리가 만든 서든어택 게임과 마구마구가 그룹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기존 게임과의 차별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CJ인터넷이 연원을 따지면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감회가 새롭겠다.

제조업체와 달리 게임업체의 10년은 아주 장구한 세월이다. 10년 가는 게임 기업이 드물다. CJ인터넷은 고비 때마다 기업이 변신했고 그때마다 의사결정이 매끄러웠기에 오늘이 있다.


언제가 가장 큰 고비였나?

2000년대 초 검색사업에 뛰어든 적이 있다. 수백 명을 그 사업에 투입하고서 3개월 만에 접었다. 검색 시장이 유망은 한데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기업과 경쟁하자면 회사의 뿌리가 뽑힐지도 몰랐다. 철수 결정이 과감했고 또 적절했다.


세계 게임 시장의 동향을 짚는다면?

미국, 유럽 같은 선진국들에서는 인터넷 게임이 아니라 비디오 게임기와 같은 콘솔게임이 널리 퍼져 있다. 반면 한국은 인터넷 게임이 대세다. 앞으로 선진시장에서도 인터넷 게임이 확산된다고 본다. 따라서 미국, 중국 등 거대 자본을 업은 외국의 게임 기업들도 인터넷 게임 진출을 서두른다. 인터넷 게임에 강한 국내 게임 제작사들을 인수하려 들 것이다.


그들이 한국에 상륙하는 날도 멀지 않았다는 말이겠다.

물론 게임은 장르별로 먼저 진출한 기업이 운영 노하우에서 앞서기에 기득권을 갖는다. 따라서 외국 기업들도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이다. 앞으로 2, 3년은 국내 기업들이 준비 기간을 갖게 된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CJ인터넷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경쟁력을 키우는 투자를 하겠다.

외국기업이 가져갈 국내 게임 제작사들을 우리가 먼저 가져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CJ인터넷은 퍼블리싱에는 강하지만 게임 개발이 약하다. 콘텐트 빈곤이 우려되지 않나?

선진 게임 기업들의 성장사를 보면 혼자서 게임을 개발하기보다는 남의 것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기업 입장에서는 좋은 게임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돈을 벌어주는 게임을 많이 가지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는 누가 더 정확하게 판단하고 과감하게 행동에 옮기느냐에 업계의 판도가 좌우될 것이다.


일본과 중국 등 해외 현지 시장 개척에 공을 들인다. 앞으로 10년 뒤는 어떻게 그려지나?

게임업계는 미래를 쉽게 예측하지 못한다.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그런 전제로 CJ인터넷의 2020년 미래를 내다본다면 서울의 넷마블을 전 세계에 30개 정도 만들고 싶다.


벤처기업 경영자로서 어떤 점을 가장 경계하나?

10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사내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일하는 공간에서는 자율성이 보장되고, 경영적 판단은 냉철해야 한다. 망하는 기업은 성장하자마자 사내 분위기가 경직되고, 권위주의로 흘러 똑똑한 젊은이들을 떠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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