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에 치이고, 수표에 밀리고
신용카드에 치이고, 수표에 밀리고
5만원권이 유통된 지 50여 일 흘렀다. 하지만 초반 열풍도 잠시. 신용카드·수표에 밀려 거래량이 미미하다. 5만원권을 기념품으로 여기고 쟁여놓는 사람도 많다. 한국은행은 최소 6개월이 지나야 발행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유통 50일을 맞은 5만원권의 현주소를 점검했다.
1973년 1만원권 발행 후 36년 만의 새 고액권 탄생. 5만원권 발행은 세간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이 신권이 유통되기 시작한 6월 23일 한국은행 본점과 시중은행 점포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5만원권을 찾으려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일부 점포 관계자는 5만원권 수요가 폭주해 물량을 확보하느라 애간장을 태웠다. 백화점·대형마트 등 유통업체들도 신권 마케팅에 열을 바짝 올렸다.
5만원권으로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을 선보였을 뿐 아니라 5만원권 인물인 신사임당 이벤트도 열었다. 그러나 이는 반짝 열풍, 반짝 이벤트에 그쳤다.
# 백화점 현금매출의 9%선
현금 매출이 일일 3억원에 이르는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 그러나 5만원권의 사용 비율은 저조하다. 7월 6~28일까지 20여일간 이곳에서 사용된 5만원권은 하루 평균 2700만원. 전체 현금 매출의 9%가량이다.
같은 기간 자기앞수표의 일일 거래량은 5만원권의 2배 가까운 4500만원. 5만원권이 수표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 셈이다. 중산층이 주로 이용하는 몰(mall)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용산 현대아이파크몰에서 7월 6일~8월 12일까지 40여 일간 유입된 5만원권은 일평균 350만원으로, 10만원권 수표 하루 거래량 1230만원의 28%에 그쳤다.
아이파크몰 김영민 부장은 “5만원권이 유통된 지 50여 일이 흘렀지만 사용 증가율이 뚜렷하지 않다”고 말했다. 5만원권은 소비자의 결제 문화를 바꿔놓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이서가 필요 없다’는 장점 때문에 자기앞수표 사용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5만원권으로 결제하는 소비자는 아직 드물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신용카드 결제비중이 높아서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대형마트의 결제수단에서 신용카드 비중은 80% 이상이다. 현금 결제 비중은 10% 안팎에 불과하다. 이유는 더 있다. 자기앞수표를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5만원권 거래가 부진한 원인으로 꼽힌다.
LG경제연구소 신민영 금융연구실장은 “5만원권의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음에도 거래가 부진한 것은 자기앞수표 사용이 몸에 익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양대 하준경(경제학) 교수도 “소비자가 소액결제를 할 땐 1만원권을 주로 사용한다”며 “결제금액이 5만원 이상 되면 신용카드로, 그보다 더 큰 금액일 경우엔 수표로 하는 경향이 짙다”고 지적했다. 소액결제를 할 땐 5만원권이 크고, 거액결제를 하기엔 작다는 얘기다. 5만원권의 모호한 위상이 거래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5만원권의 부진한 거래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보고만 있을 거냐다. 한국은행이 5만원권을 발행한 이유 중 하나는 소액권 및 자기앞수표 사용에 따른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한은에 따르면 연간 10억원가량 발행되는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를 고액권으로 대체하면 연 36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 자기앞수표의 제조·관리 및 취급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1만원권 수요 가운데 40%가 고액권으로 대체되면 소액권 운송·보관 등 관리비용 400억원도 절감 가능하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일부 전문가가 고액권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살리기 위해 ‘5만원권 거래 활성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성신여대 강석훈(경제학) 교수는 “5만원권이 신용카드, 자기앞수표에 눌려 거래가 부진하다는 식의 논쟁은 무의미하다”며 “5만원권의 경제적 가치를 충분히 높일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인지 검토하는 게 상책”이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5만원권을 직접 취급하는 금융권의 노력이 필요한 때”라며 “신권 사용이 가능한 현금취급기기(CD·ATM) 설치는 기본이고, 5만원권을 사용할 때 얻을 수 있는 장점을 꾸준히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중은행들은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기업은행이 일련번호에 숫자 5가 들어 있는 5만원권을 가져오면 금리우대를 해준 것 외엔 눈에 띄는 마케팅이 없다.
현금취급기기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7월 말 현재 5만원권을 이용할 수 있는 현금취급기기는 점포당 1대에 미치지 못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금취급기기로 5만원권을 입출금하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며 “추석 전까진 1점포 1대 수준으로 맞출 계획” 이라고 밝혔다.
고액권의 효과를 꾀하려면 5만원권을 징검다리 삼아 10만원권을 발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표에 드는 비용을 효과적으로 절감하기 위해선 5만원권과 함께 10만원권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당초 5만원권과 함께 10만원권 발행도 검토했지만 ‘물가상승이 우려된다’는 정부의 반대로 무기한 보류했다.
신민영 금융연구실장은 “36년간 커진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10만원권이 유통되는 게 맞다”며 “5만원권 사용 후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이 없으면 10만원권 발행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중론도 많다. 5만원권 효과를 운운하기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한국은행 이승윤 발권정책팀장은 “5만원권 사용 비율은 적당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며 “(5만원권이)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유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느껴질 뿐”이라고 말했다. 한은에 따르면 5000원권의 유통량은 2억 장이 훌쩍 넘는다. 반면 시중에서 거래되는 5만원권은 9000만 장이 채 안 된다.
이 팀장은 “5만원권 유통량이 최소 5000원 정도로 늘어난다면 ‘거래량 부진 논란’에 종지부가 찍힐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렇다고 무한정 발행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최소 6개월은 지나야 5만원권 발행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올 추석을 기점으로 사용량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 50일째를 맞은 5만원권은 지금 성패의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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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만원권의 반짝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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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권을 찾으려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일부 점포 관계자는 5만원권 수요가 폭주해 물량을 확보하느라 애간장을 태웠다. 백화점·대형마트 등 유통업체들도 신권 마케팅에 열을 바짝 올렸다.
5만원권으로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을 선보였을 뿐 아니라 5만원권 인물인 신사임당 이벤트도 열었다. 그러나 이는 반짝 열풍, 반짝 이벤트에 그쳤다.
# 백화점 현금매출의 9%선
현금 매출이 일일 3억원에 이르는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 그러나 5만원권의 사용 비율은 저조하다. 7월 6~28일까지 20여일간 이곳에서 사용된 5만원권은 하루 평균 2700만원. 전체 현금 매출의 9%가량이다.
같은 기간 자기앞수표의 일일 거래량은 5만원권의 2배 가까운 4500만원. 5만원권이 수표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 셈이다. 중산층이 주로 이용하는 몰(mall)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용산 현대아이파크몰에서 7월 6일~8월 12일까지 40여 일간 유입된 5만원권은 일평균 350만원으로, 10만원권 수표 하루 거래량 1230만원의 28%에 그쳤다.
아이파크몰 김영민 부장은 “5만원권이 유통된 지 50여 일이 흘렀지만 사용 증가율이 뚜렷하지 않다”고 말했다. 5만원권은 소비자의 결제 문화를 바꿔놓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이서가 필요 없다’는 장점 때문에 자기앞수표 사용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5만원권으로 결제하는 소비자는 아직 드물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신용카드 결제비중이 높아서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대형마트의 결제수단에서 신용카드 비중은 80% 이상이다. 현금 결제 비중은 10% 안팎에 불과하다. 이유는 더 있다. 자기앞수표를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5만원권 거래가 부진한 원인으로 꼽힌다.
LG경제연구소 신민영 금융연구실장은 “5만원권의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음에도 거래가 부진한 것은 자기앞수표 사용이 몸에 익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양대 하준경(경제학) 교수도 “소비자가 소액결제를 할 땐 1만원권을 주로 사용한다”며 “결제금액이 5만원 이상 되면 신용카드로, 그보다 더 큰 금액일 경우엔 수표로 하는 경향이 짙다”고 지적했다. 소액결제를 할 땐 5만원권이 크고, 거액결제를 하기엔 작다는 얘기다. 5만원권의 모호한 위상이 거래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5만원권 모호한 위상 극복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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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에 따르면 연간 10억원가량 발행되는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를 고액권으로 대체하면 연 36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 자기앞수표의 제조·관리 및 취급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1만원권 수요 가운데 40%가 고액권으로 대체되면 소액권 운송·보관 등 관리비용 400억원도 절감 가능하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일부 전문가가 고액권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살리기 위해 ‘5만원권 거래 활성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성신여대 강석훈(경제학) 교수는 “5만원권이 신용카드, 자기앞수표에 눌려 거래가 부진하다는 식의 논쟁은 무의미하다”며 “5만원권의 경제적 가치를 충분히 높일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인지 검토하는 게 상책”이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5만원권을 직접 취급하는 금융권의 노력이 필요한 때”라며 “신권 사용이 가능한 현금취급기기(CD·ATM) 설치는 기본이고, 5만원권을 사용할 때 얻을 수 있는 장점을 꾸준히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중은행들은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기업은행이 일련번호에 숫자 5가 들어 있는 5만원권을 가져오면 금리우대를 해준 것 외엔 눈에 띄는 마케팅이 없다.
현금취급기기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7월 말 현재 5만원권을 이용할 수 있는 현금취급기기는 점포당 1대에 미치지 못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금취급기기로 5만원권을 입출금하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며 “추석 전까진 1점포 1대 수준으로 맞출 계획” 이라고 밝혔다.
고액권의 효과를 꾀하려면 5만원권을 징검다리 삼아 10만원권을 발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표에 드는 비용을 효과적으로 절감하기 위해선 5만원권과 함께 10만원권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당초 5만원권과 함께 10만원권 발행도 검토했지만 ‘물가상승이 우려된다’는 정부의 반대로 무기한 보류했다.
신민영 금융연구실장은 “36년간 커진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10만원권이 유통되는 게 맞다”며 “5만원권 사용 후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이 없으면 10만원권 발행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중론도 많다. 5만원권 효과를 운운하기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한국은행 이승윤 발권정책팀장은 “5만원권 사용 비율은 적당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며 “(5만원권이)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유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느껴질 뿐”이라고 말했다. 한은에 따르면 5000원권의 유통량은 2억 장이 훌쩍 넘는다. 반면 시중에서 거래되는 5만원권은 9000만 장이 채 안 된다.
이 팀장은 “5만원권 유통량이 최소 5000원 정도로 늘어난다면 ‘거래량 부진 논란’에 종지부가 찍힐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렇다고 무한정 발행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최소 6개월은 지나야 5만원권 발행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올 추석을 기점으로 사용량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 50일째를 맞은 5만원권은 지금 성패의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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