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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 메이커’ 輸保, 수출 조연에서 주연으로

‘딜 메이커’ 輸保, 수출 조연에서 주연으로

▎수출보험공사는 문화수출보험을 통해 영화 ‘국가대표’ 제작비 20억원을 보증했다.

▎수출보험공사는 문화수출보험을 통해 영화 ‘국가대표’ 제작비 20억원을 보증했다.

삼성물산 상사부문이 9월 초 작지만 결코 쉽지 않은 수출 실적 한 가지를 기록했다. 아프리카 서부 국가 가봉의 전자정부 구축 프로젝트를 수주한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인구 35만여 명의 수도 리브르빌에 유·무선 행정망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수주액은 3100만 달러 규모(한화 360억원 상당).

이를 한국의 몫으로 거머쥔 요인은 삼성물산 관계자 말대로 “종합상사의 강점인 글로벌 네트워크와 이를 바탕으로 한 정보력” 외에 두 가지가 더 있었다. 한국의 앞선 정보통신 기술력, 선진적인 수출 금융 조달 체계가 그것이다. 우선 KT네트웍스가 이번에 공동 수주자로 나서 입찰 경쟁력을 높였다.

KT네트웍스는 KT 자회사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NI(Network Intergration, 네트워크 통합) 전문 기업. 정보통신 시스템과 통신망 구축 분야에서 숱한 국내외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통하는 관련 실력을 갖춘 회사다. 2001년 몽골 전자정부 통신망 구축 사업도 이 회사가 한 것이다.



가봉 전자정부 프로젝트 따낸 한국 수출의 힘이번 프로젝트 수주에 더 결정적인 역할은 한국수출보험공사(이하 수보)가 했다. 삼성물산 입장에서는 수출 대금 회수 문제가 마지막 걸림돌이었다. 가봉 정부가 이번 프로젝트 수출 대금을 지불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봉 정부는 국제상업은행으로부터 자금 대출을 신청했다.

그런데 은행 측에서는 이에 선뜻 응하지 않았다. 돈을 떼일 걱정이 앞서서였다. 은행 대출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 프로젝트 수주 계약은 성사가 불가능했다. 관련 세 당사자의 고민을 일거에 풀어준 곳이 수보였다. 수보가 이미 개발해 놓은 중장기수출보험이라는 상품으로 은행의 대출금 미회수 위험을 보장해 줌으로써 모든 것이 깔끔하게 해결됐다.

이 사례에서 보듯 우리나라 수출에서 수보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는 수출시장에서 수보의 활약은 독보적이기까지 하다.‘총력 수출체제’로 요약되는 정부의 2009년 수출대책의 1차적 관심 대상도 무역금융의 위축이었다. 세계 금융시장에서 돈 가뭄이 심해 수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범국가적 수출지원체계인 수출대책위원회 제1차 회의(7월 16일 개최)에서 “올해 수출 보험·보증 목표 170조원의 초과 달성에 주력하고, 기업별 지원한도도 확대한다”는 과제를 최우선 순위로 꼽은 것도 그래서였다. 수보는 이에 따라 올해 초에 마련한 비상경영 계획의 목표를 ‘수출보험 총량 지원 확대’로 정했다.

이 방침에 따라 올해 8월 말까지 수출보험 인수 실적은 123조원이었다. 지난해 동기 실적 96조1000억원에 비해 28.0% 늘어난 액수다. 수보는 지원 대상에서 중소기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올해처럼 위축된 수출 현장에서 중소기업이 만나는 돈 가뭄 현상은 더 심한 형편이다.

인천에 있는 합금철 제조 중소기업인 W사도 그중 하나였다. W사는 1999년 1월 설립 이래 한 번도 납기일을 넘긴 적이 없는 건실한 수출 기업이었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에 원자재를 필요한 만큼 확보하지 못해 수출 이행이 어려운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다. 중국의 경쟁 업체에서 해당 원자재를 대량으로 선점한 탓이었다.

원자재가 있어야 수출을 하고 그 대금으로 다시 공장을 가동해야 하는데 W사의 돈줄이 막혀버린 것이다.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처한 W사의 SOS를 듣고 수보가 백기사처럼 나섰다. 수출신용보증(선적 전) 12억원을 수보가 신속히 지원한 것이다. 이를 통해 W사는 은행 대출을 받아 수출이행 자금으로 활용한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위 협약에 따라 보증 수수료 할인, 대출 이자율 인하 등의 혜택도 덤으로 받았다.



미래 성장동력 문화 수출도 적극 지원W사 같은 중소기업이 급한 불을 끄는 데 유용한 제도가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 제도’다. 수보는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을 위한 보증 목표액을 지난해 1조5000억원에서 올해 6조원으로 크게 늘렸다. 유동성 지원을 호소하는 중소기업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위해 수보는 올 들어 상생펀드까지 조성했다.

대·중소기업 간 또는 지역의 기업끼리 말 그대로 “서로 돕고 살자”는 취지였다. 이 상생펀드에 STX그룹은 1000억원을, 현대중공업은 700억원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지방상생펀드에도 올 상반기에만 398억원이 쌓였다. 수보의 지원 대상은 공산품, 농수산물을 넘어 이제 문화산업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2008년 초에 수보가 개발한 문화수출보험을 통해서다. 올해 7월 29일 개봉한 영화 ‘국가대표’가 대표적이다. 김용화 감독, 하정우 주연의 스포츠 영화다. 우리나라의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급조된 스키 점프 국가대표 이야기를 다뤘다. 이 영화 제작을 신한은행과 협약을 맺은 수보가 지원했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총 90억원이었다. 그러나 제작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제작사가 수보에 문화수출보험 지원을 요청했다. 이 요청에 수보는 영화 내용과 출연진, 수출 계획 등을 면밀히 검토한 후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20억원의 보증을 제공했다. 수보의 보증서를 담보로 제작사는 같은 액수를 은행으로부터 대출 받아 영화 제작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사실 문화수출보험은 리스크가 큰 편이다. 제작 지원금은 해당 문화 콘텐트의 수익금으로 상환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수익금이 대출금에 미치지 못하면 그대로 손실로 연결된다는 얘기다. 영화진흥공사에 따르면 2008년 국내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의 평균 수익률은 마이너스 30% 수준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다행히 영화 ‘국가대표’는 개봉 두 달도 채 안 되는 9월 하순에 이미 누적 관객수 750여만 명을 돌파했다. 흥행 수입도 500억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이만한 흥행 실적이라면 주변에서 좋은 소리도 듣고 충분히 남는 장사이기도 하다. 거기다 해외 수출 가능성도 높아 수보는 이래저래 흐뭇한 표정이다.

영화 ‘쌍화점’, 드라마 ‘아이리스’ 등은 문화수출보험 지원 작품이며 수출 계약 실적은 800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수보는 문화수출보험 확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 산업으로 문화콘텐트가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수보는 문화수출보험 지원 대상을 올해 초 드라마 등 방송영상물, 게임물, 공연물까지 오히려 확대했다.

애초에는 극장상영용 장편영화로 한정했었다. 올해 8월 말까지 수보의 지원을 받은 작품은 13개였고, 총 지원액은 230억원이었다. 영화는 11개, 드라마는 2개 작품이었다. 수보의 업무 영역은 수출보험 지원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 수출의 조연에서 주연으로 발돋움할 야심까지 숨기지 않는다.

수보가 자임하고 있는 ‘딜 메이커(Deal Maker)’ 역할이 그것이다. 쉽게 말해 수출의 ‘중매쟁이’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수보는 앞으로의 가능성에도 ‘선제적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시리즈는 지식경제부·코트라·한국무역협회·한국수출보험공사와 이코노미스트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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