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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철 민영화 약발 받고 씽씽씽~

국철 민영화 약발 받고 씽씽씽~

▎일본의 상징인 후지산을 지나고 있는 신칸센.

▎일본의 상징인 후지산을 지나고 있는 신칸센.

지난 21일 오전 7시 도쿄 시내를 순환하는 JR 야마노테(山手)선. 신주쿠(新宿)에서 시나가와(品川)행을 타기 위해 플랫폼에 들어서자 열차는 3~7분 간격으로 들어왔다. 걸리는 시간은 19분이라고 안내돼 있었다.

얼마나 정확한지 한번 시간을 재봤다. 열차는 플랫폼 전자안내판을 통해 예고된 정시에 들어왔다. 모든 역을 정시에 달린 열차는 시나가와에는 딱 19분 만에 도착했다.

시나가와에서는 나리타(成田)공항은 물론 요코하마(橫浜) 등 수도권의 각지로 달리는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이 역을 빠져나와 역사에 들어서면 대형 쇼핑몰이 갖춰져 있다. 맛깔난 우동이나 도시락은 물론이고 약·커피숍·꽃집·의류점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상점이 입점해 있다. 국철의 민영화로 지금은 JR로 불리는 일본 철도는 일본인 생활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다.



1. 국철 민영화 위한 정치적 결단


1987년 나카소네 총리 주도로 비효율 도려내
일본의 철도 서비스가 처음부터 세계적 수준이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은 일찍이 태평양 전쟁 패전 직후부터 사철(私鐵)을 활성화하면서 국철과 사철의 경쟁 체제를 운영했다.

국철이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장거리 운행을 맡고 사철은 도심과 교외를 연결하는 등 역할을 분담했다. 처음부터 경쟁 체제였기 때문에 일본을 철도 왕국으로 만든 원동력이 된 것이다.

그러나 국철은 점차 경쟁력을 잃었다. 자동차와 사철의 발달에 비해 국철은 관료주의가 만연하면서 노동비용이 갈수록 높아졌기 때문이다.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면서 파업과 준법투쟁도 되풀이됐다.

운행 규정을 과도하게 준수하는 방식으로 열차 운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준법투쟁’이 극심했던 1973년에는 승객들이 서비스에 불만을 품고 승무원을 폭행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그만큼 국철은 비효율과 개혁의 대명사였다. 이 사건은 국철 개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총대를 멘 것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였다. 리더십이 강력했던 그는 1987년 4월 비효율과 부실 경영을 해소하기 위해 국철을 7개 회사로 나누는 민영화를 단행했다.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하던 국철의 강성 노조가 해체되자 개혁은 급물살을 탔다. 정부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던 채무를 국철 자산 매각, 신규 채용 축소 등을 통해 빠른 속도로 해소했다.

2006년 완전 민영화를 이뤄낸 동일본·서일본·동해 등 JR 대형 3개사는 1990년대 이후 해마다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동일본JR은 소니·도요타·대형은행 등을 제치고 가장 입사하고 싶은 회사로 꼽힐 정도다.



2. 기차, 비행기와 편의성 경쟁하다

시계 제로 비행에 들어간 JAL과 뚜렷하게 대비
남북으로 길게 뻗은 일본에서는 전국을 오가며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 많다. 무역업을 하는 사토 아키라(62)도 마찬가지다. 그는 오사카(大阪)·효고(兵庫)·교토(京都) 등 간사이(關西) 지방을 갈 때는 언제나 신칸센(新幹線)을 이용한다. 최근에도 신칸센으로 교토까지 간 뒤 바로 지역 사철로 환승해 거래 회사를 방문했다.

도쿄 시내에 있는 집에서 도쿄역으로 갈 때도 지하철을 이용한 것은 물론이다. 항공기를 이용할 경우 국내선도 반드시 출발 1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고 물건을 찾으러 가서 기다려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그러나 열차에는 그런 것이 없다. 사토는 “집을 나서 출장을 끝내고 집이나 회사로 돌아올 때까지 거침없이 다닐 수 있다”고 말했다.

철도와의 경쟁에 밀린 일본항공(JAL)은 부실경영에 허덕인 끝에 2조3000억 엔의 부채를 떠안고 파산하면서 지난 19일 법정관리를 받게 됐다. 기업재생기구 등 정부 산하기관이 9000억 엔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사실상 국유화된다. 3년간에 걸쳐 회생을 추진한다는 계획이지만 ‘시계 제로의 비행’은 불가피하다.

물론 일본 정부는 JAL의 부실을 해소한 뒤 민영화한다는 방침이다.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국토교통상은 “JAL을 정상화하는 수단은 완전한 민영화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비행기를 압도하는 일본 철도의 비결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편의성이다. 도쿄·오사카 등 대도시권에서는 ‘콩나물 출근 열차’가 유명해진 것도 편의성 때문이다.

승용차를 몰면 교통 정체는 물론 직접 운전하는 수고가 따른다. 그러나 일본 도시권에서는 JR과 사철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승용차보다 열차·지하철이 편리하다. 버스조차 설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것도 철도의 편의성이 크기 때문이다.

가미죠 기요후미 일본 민영철도협회장은 “사철의 편리성과 쾌적성을 향상하기 위해 아직도 할 일이 많다”며 “역 시설, 차량의 개량과 개선은 물론 역 주변 정비까지 추진해 더욱 매력 있는 철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여름 휴가를 신칸센과 함께하는 일본인이 늘고 있다.

▎한여름 휴가를 신칸센과 함께하는 일본인이 늘고 있다.



3. 열차 타고 전국 다니며 여행

‘철도+온천’ 패키지 상품, 가족애까지 불러일으켜
일본에서는 도시가 개발되거나 촌락이 형성되면 철도부터 생긴다.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철도를 타면 전국 방방곡곡으로 갈 수 있다. 그래서 일본인의 열차 사랑은 남다르다. 열차 여행도 크게 발달돼 있다. 일주일씩 먹고 자면서 달리는 유럽식 고급 열차는 없다. 하지만 일본에는 전국 온천으로 직행할 수 있는 패키지 프로그램이 잘 마련돼 있다.

1박2일 또는 2박3일이 대부분인데, 오갈 때 열차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도쿄에서는 도쿄역·신주쿠역·시나가와역·우에노(上野)역·이케부쿠로(池袋)역 등이 주요 거점이다. 여행사에서 철도 이용이 포함된 패키지 상품을 구입하면 승차권이 제공된다. 요즘은 불경기 탓으로 모습이 크게 줄어들었지만, 일본인에게 가족과 함께하는 철도 여행은 가장 화기애애하고 가족임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청결하고 정돈된 열차 안에서 가족과 함께 2~3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여행지에 대한 기대는 한층 부풀어오른다. 온천의 나라로 알려졌지만 도쿄에는 의외로 온천이 별로 없다는 것도 ‘철도+온천’ 패키지 상품이 크게 발달한 배경이다. 도심의 찌든 생활에서 벗어나 심신을 재충전한 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수기에는 할인 티켓도 판매한다. 철도 영업의 효율을 높이는 수단이다. 이때를 이용해 지방 여행을 다니는 사람도 많다. 고객은 평소보다 크게 할인된 요금으로 신칸센을 이용할 수 있고, 철도회사는 영업 능력을 최대한 가동할 수 있는 것이다.

철도를 통해 전국 어디든 갈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면서 철도원이 주재하지 않는 무인(無人) 역사도 산골마다 남아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구가 줄어들어 철도원을 철수시킨 탓이 크지만, 승객들이 스스로 알아서 타고 내리는 풍경은 평화스럽고 애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4. 축적된 철도 기술을 들고 해외로

‘신칸센 비즈니스 외교’ 전 세계가 주목
일본은 100년 전 한국 강제합병 때도 경부선 철도 부설을 앞세워 식민지배 체제의 인프라를 구축했다. 철도가 식민 수탈의 첨단 수단이자 제국의 힘을 상징하기도 한 것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 때도 일본은 철도 기술을 앞세워 일본의 경제력과 기술력을 세계에 과시했다. 일본은 올림픽 개막에 맞춰 신칸센을 개통했다.

일본은 이렇게 오랫동안 축적된 기술을 내세워 철도 운영 노하우와 신칸센의 해외 판매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2월 당시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면서 ‘신칸센 비즈니스 외교’를 펼쳤다. 아소 총리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미국 내 고속철도 건설 및 관련 기술 이전 등을 제안한 것이다.

자동차 왕국인 미국은 환경 대책과 경기 부양 대책의 일환으로 고속철도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787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법안을 통과시키면서 고속철도 건설비로 80억 달러를 책정했다. 미국은 고속철도 인프라가 매우 빈약하다. 현재 고속철도가 개설된 곳은 보스턴~워싱턴 700㎞ 구간이 유일하다.

일본이 신칸센 외교에 성공하면 신칸센이 해외 진출의 물꼬를 트게 된다는 데도 큰 의미가 있다. 일본은 브라질이 계획 중인 연장 500㎞ 고속철도 정비에 일본 방식의 신칸센이 채택될 수 있도록 전방위 공략을 펼치고 있다. 2008년에는 일본인의 브라질 이민 100주년 교류의 해를 앞세워 브라질 정·관·재계에 파상적인 로비 공세를 벌였다.

고속철도를 운행 중인 한국·독일·프랑스를 따돌리고 총 공사비 2조 엔이 들어가는 리우데자네이루~상파울루 구간을 따내면 수천억 엔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미국에서 공사를 수주하게 되면 거대 프로젝트를 잇따라 따내면서 북미와 남미에서 신칸센이 동시에 달리는 것도 바라볼 수 있다. 중국과 베트남도 일본이 군침을 흘리는 시장이다.

중국은 광활한 대륙을 고속철도로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남북이 길게 이어진 베트남은 일본의 철도 운영 노하우와 신칸센 기술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일본은 도쿄와 오사카를 1시간에 주파하는 ‘리니어 신칸센’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기존 신칸센보다 두 배 빠른 시속 550㎞에 달리는 꿈의 열차가 탄생하는 것이다.

막대한 공사비와 토지 수용비가 시중에 풀림으로써 내수 진작에도 큰 위력을 나타낼 전망이다. 이 계획이 2020년께 완성되면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가 하늘을 나는 경쟁자 비행기를 압도적으로 따돌리는 시대가 성큼 다가오게 된다. 일본이 또 한번 도약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을 내놓는다는 의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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