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단독질주
오세훈의 단독질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당내 경선은 본선(서울시장 선거)보다 더 극적이고 흥미진진할 겁니다.” 한나라당 정병국 사무총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내 경선이 한바탕 축제가 되면서 서울시민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리라는 기대와 자신감을 드러내는 척했다.
그러나 현재로선 정 사무총장의 바람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2월 중순 현재 한나라당에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원희룡, 김충환 의원이 이미 출사표를 던졌고 정두언, 나경원, 전재희 의원까지도 후보로 거론된다(이명박 대통령이 신임하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장관의 출마설이 한때 나돌았지만 지금은 총선 출마 가능성을 탐색한다고 알려졌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자칭 타칭 예비 후보자들의 경쟁을 권장하다 못해 은근히 시장 도전을 부추기는 분위기다. 예를 들면 정 총장은 출마를 저울질하는 나경원 의원을 일러 “여러 분야에서 아주 독보적인 인기가 있는 후보”라고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쟁쟁한 선수들이 많이 나오는 스포츠 경기에 관중이 몰리듯 경선에도 스타성 강한 인물들이 합류해줘야 흥행이 된다.
한나라당에서 서울시장 후보가 되려는 사람은 경선이라는 관문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당헌에 따르면 서울시장 후보는 대통령선거 후보 선출과 마찬가지로 후보자 선출대회에서 선거인단 투표결과와 여론조사 결과를 합산해서 선출한다. 현재의 당헌에 따르면 선거인단은 대의원 20%, 대의원이 아닌 당원 30%, 선거에 참여하는 일반국민 30%에다 여론조사결과를 20% 반영한다.
이 ‘2 : 3 : 3 : 2’ 의 구성비는 지난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각 후보 진영이 어렵게 합의한 비율이다(현재 미뤄지는 당헌・당규 개정작업에서 이 구성비를 바꾸려 들면 한바탕 계파 간 홍역을 치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결국 당심(黨心・대의원+당원)과 민심(民心・일반국민+여론조사)가 절반씩 작용하는 경선에서 누가 유리한가를 보면 한나라당 후보의 윤곽이 그려진다.
먼저 서울시장 경선에서는 ‘친이계’ 대 ‘친박계’의 대결 구도가 성립되기 힘들다. 친박으로 유력하게 떠오르는 서울시장 후보가 없는 데다 48명의 서울시 당원협의회장 중에는 친이계가 다수다. 물론 이성헌, 구상찬, 이혜훈, 김선동 의원 등 ‘친박계’도 있지만 세 대결까지 갈 수준은 아니라고 서울시당 내부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가 전했다.
지금 수면 위로 드러난 한나라당 후보군들도 친이계이거나 중립성향으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당심’을 좌우할 당원협의회장들의 성향이 변수가 될까? 우선 2008년 18대 총선에서 뉴타운 공약 문제로 선거 후까지 홍역을 겪은 상당수 당원협의회장은 기본적으로 오 시장이 한나라당에 협조적이지 않았다며 불만을 드러내왔다.
그래서 일각에서 ‘당심’을 통해 오 시장을 갈아치우자는 의견도 없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민심’이다. 오 시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거론되는 다른 인물들보다 월등히 앞선다. 지난 1월 중순 더피플의 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이 32.6%의 지지를 받을 때 원 의원은 12%, 나 의원은 8.6% 등이었다.
현직의 프리미엄이든, 업적 평가 때문이든, 이미지 효과든 엄연한 현실이다. 당심도 여론조사에서 많이 뒤지는 후보를 밀기 어렵다고 선거를 많이 치러 본 여의도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투표에 참여하는 당원, 대의원 중에서도 당원협의회장의 지시와 다르게 압도적으로 앞서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2006년 한나라당 서울시장 선거 당시 대의원, 당원, 일반국민 선거인단이 모두 9452명에 달했다).
무엇보다 당원협의회장들 본인도 강자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친이계 실세 그룹에 속하는 한 국회의원은 “당선 가능성 위주로 후보가 결정될 것”이라고 경선 결과를 점쳤다. 이 의원은 “당원협의회장에 따라 (오 시장에게) 호불호의 감정이 있겠지만 서울시장 후보가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는 게 다음 총선에서 자신들의 당선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설명했다.
야당이 오 시장을 공격할 빌미는 많다. 용산참사, 꼴불견과 예산낭비 시비 부른 광화문 광장, 지난 폭설에 속수무책이었던 점 등등. 그러나 오 시장이 아닌 다른 후보를 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당내 추동력은 생각보다 미미하다. 현재 대안으로 거론되는 후보들의 파괴력이 약하다는 사실 자체가 당 안의 그런 흐름을 반영한다.
게다가 오 시장은 당내 기반 없이도 6개월 이상 당내 표밭을 갈아온 맹형규 전 의원과 홍준표 의원에게 맞서 2006년 4월 25일 경선에서 승리한 과거가 있다. 4월 9일 경선참여 선언 뒤 불과 15일간밖에 선거운동을 하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순전히 대중적 인기와 당내의 기대감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작품이다.
현장 투표에서는 맹형규 후보에게 100표 졌으나, 여론조사에서 맹 후보와의 차이를 50% 가까이 벌렸다. 그렇다면 현재 거론되는 오 시장의 대항마들이 홍 의원과 맹 전 의원을 능가하는 카드일까? 그렇지는 않다. 따라서 현재로선 서울시장 후보 경선 과정이 오세훈의 단독 질주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 사무총장이 기대하는 한바탕 축제나 극적인 드라마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어쩌면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 경선은 내부보다는 외부의 변수에 더 좌우될지 모른다. 민주당 등 야권이 오 시장이나 여타 후보를 뛰어넘거나 적어도 위협하는 새 카드를 내미는 경우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강금실 전 법무장관을 히든카드로 내세우자 한나라당의 당내 유력 후보들을 제치고 오세훈을 내세워 ‘강금실 바람’을 잠재웠던 일이 반복될 수도 있다. 민주당에서 화끈하고 파괴력을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면 한나라당도 맞춤형 후보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민주당 후보가 결정될 때까지 후보 결정을 미루기는 쉽지 않다. 민주당은 당내 사정이 복잡한 데다 마땅한 인물을 쉽게 찾기 어려운 형편이라 후보 결정을 최대한 미뤄야 할 형편이다. 여러 명을 두고 저울질하다가 한나라당이 후보를 확정하는 순간 상대 전적이 가장 좋을 만한 후보를 내세우는게 득이다. 물론 민주당이 대권주자를 앞세워 일찌감치 정면승부를 결심한다면 사정은 확 달라진다.
사실 오 시장의 재지지율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GH코리아가 지난해 12월 3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 시장 재출마를 ‘지지하지 않는다(52.5%)’는 응답이 ‘지지한다(47.5%)’보다 높게 나타났다. 오 시장의 대중적 인기가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는 얘기다.
지난 선거에서 오 시장의 득표율은 투표자의 61.1%였으나 올 초 중앙일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직 39.5%만이 오 시장을 다시 선출해야 한다고 답했다. 남경필 한나라당 인재영입위원장도 “오랫동안 한나라당이 지방선거를 승리해 한나라당이 지방정부 집권을 많이 했다는 여론도 있어 쉽지 않다”며 “새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희룡 의원도 “여론조사에서 오 시장 지지도가 높게 나와 본선 경쟁력이 무난하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 의원은 “본선에서 오 시장의 지난 4년간 업적을 본격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하면 오 시장은 방어에 급급하다가 무너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경선에서 치열한 정책과 인물 검증을 통해 본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나라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내심 16곳의 광역단체장 중 10곳의 승리를 기대한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영남권 5개 광역단체장과 강원도지사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낙승을 예상했다. 나아가 세종시 문제로 민심이 흉흉한 충청권에서도 대전시장 정도는 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관계자는 수도권에서도 3개 모두 한나라당이 차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희망이 현실화하자면 서울시장이라는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민컨설팅의 정찬수 정책연구본부장은 “서울시장 선거는 전체 지방선거를 이끄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서울시장 선거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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