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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돌아보면…‘참 열심히 살았다’생각해요

37년 돌아보면…‘참 열심히 살았다’생각해요

구자준·이영희 LIG손해보험 회장 부부는 1973년 결혼한 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부부 싸움을 하지 않았다. 남양주 구자준 회장의 별장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내 두 사람은 서로를 칭찬했다.

구자준 LIG손해보험 회장의 부인 이영희씨는 도자기 공예가 취미다. 지난해에는 단국대 평생교육원 과정을 마치며 졸업 작품전을 열었다. 전시회는 성황을 이뤘다. 그가 만든 작은 찻잔 세트에는 무려 200개의 주문이 밀려들었다. 교직원들은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놀랐다.

부인이 당시 이야기를 꺼내며 자랑스러워하자 구자준 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평생 내조를 너무 잘해줬기에 내가 힘 좀 썼어요.” 부인이 억울해하자 구 회장은 계속 농담을 던졌다. “그때가 우리 회사 인사철이었지 아마? 당신 작품 구입한 임원들 모두 승진시켜 줬다오.”(웃음)

구자준·이영희 회장 부부는 1973년 결혼한 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부부 싸움을 하지 않았다. 남편의 성격이 워낙 좋다 보니 목소리 높일 일이 없었다고 한다. 대기업 오너 집안에서 시집살이하는 일은 드라마 속의 이야기와는 많이 달랐다.

대기업을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에 스트레스를 받는 구 회장의 마음을 다독여야 했다. 부하 직원 사기 진작을 위해 요리를 만들고 심지어 노래를 부른 일도 여러 번이었다.

“지난 37년을 돌아보면 참 열심히 살았다는 기억이 먼저 떠오릅니다. 사실 집에 요리나 청소 도와주는 분이 들어오신 지 얼마 안 돼요. 다 제가 했지요. 그러고 보니 사모님 대접받기 시작한 지 이제 2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이영희씨는 도자기 공예가 취미다.

▎이영희씨는 도자기 공예가 취미다.



이경순 대한민국 굴지의 재벌가 집안에 시집을 오셨는데 평생 주부 생활을 하셨다니,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영희 결혼한 다음이야 젊은 시절이니 당연히 직접 뛰었고, 아이들이 자랄 무렵에는 미국에서 12년 정도 생활했어요. 다시 한국에 들어온 후에는 아이들이 다 커서 집안일 도울 분이 필요 없었지요. 2년 전 이곳 남양주로 이사 오며 집에 식사 도와주시는 분 처음 모셨습니다. 이전까지는 혼자 식사, 빨래, 집안 정리하고 살았지요. 일이 힘들지만 남편이 밖에서 고생하는데 이 정도는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경순 구 회장님은 소탈하시고 친화력 있으신 분으로 유명한데, 집에서는 어떠신지요?



이영희 정말 그대로세요. 소탈하고, 재미있고, 마음이 넓으시죠. 굉장히 외향적이신데, 제 성격이 내성적이다 보니 남편을 그대로 따르며 지낸 것 같아요. 한 2~3년에 한 번, 반나절 정도 심기가 불편하실 때가 있어요. 그때는 조용히 혼자 계시도록 해 드려요. 다음날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유쾌해지신답니다.

구자준 회장은 고(故) 구인회 LG 창업자의 동생 고 구철회 회장의 아들이다. 8남매 중 막내다 보니 집안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성격이 밝고 긍정적인 데다 친화력이 강해 주위에 항상 사람이 많다. 이전에 신당동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회의한 일이 화제가 됐을 정도로 소탈하고 대중문화를 즐긴다.



이경순 부부 생활을 돌아볼 때 가장 즐거운 시기는 언제였나요?



이영희 미국에 있을 때 아이들을 서머스쿨에 보내고 유럽 배낭여행을 떠난 일이 있어요. 빠듯한 살림에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에어컨도 없는 차를 렌털해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를 돈 일이 가장 즐거웠어요. 유명한 레스토랑도 몇 곳 들렀습니다. 인기 있는 집이라 점심, 저녁 식사는 가격이 비쌌지만 아침은 저렴한 편이라 꼭 아침에 가 보곤 했지요.

인터뷰 중 구 회장이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이경순 아니, 회장님! 뭐가 부족해 그러셨어요. 자동차도 좀 좋은 것으로 빌리고, 좋은 집에서 멋있게 식사도 하셨어야죠.

구자준 그때 제가 30대 후반이었지요. 사람들은 재벌가 출신이면 금전적인 부담 없이 지낼 것이라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아요. 주식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현찰과는 다르답니다.

함부로 파는 물건이 아니지요. 부동산도 마찬가지고요. 또 미국은 회계 처리가 워낙 투명해 회사 돈으로 놀러 다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월급으로만 생활해야 했습니다.

또 다른 딜레마도 있습니다. 보는 눈이 있다 보니 어디 가서 식사를 해도 대부분 제가 계산해야 했어요. 중요한 손님이 방문하시면 제가 직접 모셔야 했는데, 부장 월급으로 이런 일 다하자니 모아둔 돈이 조금밖에 없었답니다. 그래서 고생하며 다녔지요.



이경순 회장님이 가장 힘들어하시던 때는 언제였나요? 혹시 눈물을 보이신 적은 없으세요?



이영희 매일 항상 밝은 얼굴이세요.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 안 하시는 편이고, 눈물은 한번도 본 적 없답니다. 남편은 전형적인 외유내강 스타일이시거든요. 미국 새너제이에서 LG전자 일하실 때는 굉장히 힘들어하셨어요.
▎구자준 회장은 강아지를 좋아한다. 남양주 별장에서 모두 6마리의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

▎구자준 회장은 강아지를 좋아한다. 남양주 별장에서 모두 6마리의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



구자준 90년대 초, 286컴퓨터가 나오기 직전이었습니다. 8088이라는 컴퓨터 프로세스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시간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개발 시대다 보니 서로 한발이라도 앞서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시간에 쫓기며 달리다 보니 담배를 많이 피웠지요. 하루 3갑 정도 태웠습니다. 보통 세 보루를 한번에 사서 집과 자동차, 회사 사무실에 놓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이영희 너무 많이 피우신다고 말리기는 했지만 크게 어쩌지는 못했어요. 잘 모르지만 얼마나 일이 어려우면 저리 담배를 피울까 생각했지요. 한번은 밤중에 남편이 심장에 문제가 생긴 적이 있어요. 병원에서 응급 처치해 무사히 넘어갔는데, 의사가 담배가 원인이라고 하자 그날로 담배를 끊었습니다. 그일 외에는 어떤 일이 생겨도 나는 무조건 남편 편이었습니다. 제게는 아들보다 남편이 먼저랍니다.

이영희씨는 미국 생활을 통해 구 회장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한인 사회가 좁다 보니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한 다리 건너 듣게 됐다. 구 회장은 중요한 고객이나 가까운 직원을 집으로 자주 초대했다. 이들을 접대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해의 폭도 더 깊어졌다고 한다.



이영희 아들 둘 돌보며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은 기본이었지요. 마당 잔디 깎고, 고장 난 물건 고치는 일도 제가 직접 하곤 했어요. 남편이 고생하는데 이런 일까지 신경 쓰면 안 되지요.



이경순 회장님이 일하시며 가장 행복해하시던 때는 언제인 것 같으세요?



이영희 이전에 LG그룹이 계열 분리를 해 LG화재(지금의 LIG손보) 경영을 맡으신 다음이었을 거예요. 부도 위기의 회사를 맡아 수년 만에 흑자로 돌리셨어요. 매출도 세 배로 키우셨고요. 그때 너무나 자랑스러워하시는 모습이 기억나요. 스스로 무엇인가 일궈냈다는 점에서 성취감을 크게 느끼신 것 같아요.

구 회장은 공대 출신이다. 항공우주공학과 전기겴活?분야에서 평생 몸담아 왔다. 99년 그룹이 계열 분리를 하며 보험업계에 처음 발을 디뎠다. 생소한 분야였지만 구 회장은 마라톤 경영을 외치며 탁월한 경영 능력을 발휘했다.



이영희 전국 지점에 있는 직원들을 모두 차례로 논현동 집으로 초대했답니다. 당시 남편이 마라톤 경영을 주창하실 때였지요. 하루 종일 장 보고 요리 준비하며 지냈어요.

저녁을 먹은 다음에는 거실에 노래방 기기를 틀어 놓고 함께 노래하며 흥을 돋웠지요. 소심한 성격이라 노래를 잘 못했지만 지금은 모든 장르에 18번이 있을 정도랍니다. 노래 일등한 직원에게 줄 상금도 따로 준비하곤 했어요. 매달 서너 번씩 일년 넘게 있던 행사였어요. 다행히 찾아온 직원들 반응이 너무 좋았고, 남편도 회사 분위기가 나아지고 있다며 좋아하셨답니다.



구자준 부도 위기 기업의 CEO가 골프나 치러 다닐 수 있겠습니까? 직원과 함께 뛰었지요. 그리고 지방 다니며 직원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밥 사줬습니다. 당시 제 판공비가 50만원이었습니다. 설렁탕은 3500원 했고요. 직원 100명 밥을 한번에 사도 35만원이면 됐지요. 비싼 곳 가서 술 마시는 것보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게 함께 어울리다 약속했지요. 나중에 우리 집에 초대할 테니 같이 한번 더 좋은 시간 보내자고요.



이경순 그 많은 직원을 일일이 챙기시느라 여간 고생하지 않으셨을 텐데요.



이영희 사실 늘 있던 일이어서 괜찮았어요. 94년 남편이 구미 LG정밀에서 일할 때였어요. 발령받자 곧장 직원들과 격의 없이 지내며 친해지시더군요. 집으로 자주 데려오셨지요. 가장 많이 온 팀은 야구팀이었어요. 매주 같이 운동하고 집으로 선수를 데려오면 제가 맛있는 음식 해놓고 기다렸답니다.

당시 LG그룹은 계열사별로 직원 야구팀을 운영했다. 최강자는 반도패션(현 LG패션). 구 회장은 직원 사기 진작을 위해 자비를 털어 야구팀을 조직했다. 그리고 주말마다 연습한 다음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가 직접 이끈 야구팀은 결국 반도패션을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구자준 두 번 우승했습니다. 지금도 그때 맴버들은 서로 연락하고 지낸답니다. 반도패션 팀과도 잘 지냈지요. 직원 일부는 LG 트윈스 야구단으로 발령 나기도 했습니다.



이경순 사모님은 내성적인 성격에 몸도 약하신 편인데, 회장님이 사람 몰고 오시면 힘들지 않으신지요.



이영희 제가 변했어요. 회장님은 사람을 키우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몸도 많이 튼튼해졌고, 성격도 외향적으로 변했어요. 요즘에도 친구분들 자주 데려오시는데, 저도 성격이 변해 어울리는 일을 즐기고 있어요. 항상 고마운 점은 어디를 가든지 저와 함께하길 원하세요. 그래서 함께 운동도 많이 했고, 사람도 많이 만났답니다.

재작년에는 남편이 하도 졸라 함께 에베레스트에 간 일도 있을 정도예요. 4000m까지 올랐는데, 저보고 적응 잘한다며 하루 더 쉰 다음 계속 오르자고 조르더군요.

구 회장은 등산과 마라톤이 취미다. 다음 달에는 일본 도쿄마라톤에 출전한다. 환갑 기념으로 달리는 일이라 온 가족이 응원을 준비하고 있다. 산악인 박영석 대장과 오은선씨의 히말라야 등반에도 여러 차례 동참했다. 구 회장은 “부부라는 게 서로 양보하고 사는 것 아니냐”며 “같이 운동하면 나중에 아내가 원하는 음악회나 미술전에 꼭 함께 가곤 했다”고 말했다.



구자준 내조는 자기 희생이 아니라 서로 양보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만 주장하고 양보가 없어요. 서로 한 걸음 물러서서 배려하고, 그러면서 함께 인생을 걷는 일을 내조라고 생각합니다. 제 아내가 너무나 잘해준 부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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