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올라탄 2차전지 “야호”
전기차 올라탄 2차전지 “야호”
제너럴 모터스(GM)의 ‘시보레 볼트’, 크라이슬러와 피아트의 ‘피아트 500’, BMW의 ‘액티브 E’, 볼보의 ‘C30 BEV’, 르노-닛산의 ‘리프’. 지난해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선보인 세계적인 자동차업체의 신모델이다. 공통점은 휴대전화처럼 콘센트로 충전하면 도로를 질주하는 전기차라는 것.
이러한 전기차는 올해부터 우리 일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지난해 미쓰비시가 출시한 아이미브(i-MEV)는 유지 비용이 적게 든다. 저렴한 심야 시간대에 전력을 충전하면 약 740원으로 160㎞를 달린다. 1회 충전하면 그만큼 주행할 수 있다. 현재로선 충전소가 많지 않아 전국 운행은 어렵지만 수도권이나 지방 근교에서 출퇴근용으로 사용하기엔 무리가 없다.
기존 가솔린 엔진처럼 소음도 없고 매연도 없다. 이런 전기차 시대를 몰고온 주역이 바로 2차전지다. 2차전지란 우리 일상 속에서 휴대전화나 노트북PC 등에서 사용되는 전지다. 1차전지와 달리 콘센트에 충전만 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5년 내 220억 달러 규모로 성장 예상휴대전화나 노트북·전기차 등에 사용되는 세계 리튬 2차전지 시장은 2007년 88억 달러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반도체 시장 규모 1992억 달러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또 지난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매출 26조8000억원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시장은 2015년 22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솔린과 2차전지를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 차가 늘고,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기기가 많아지면서 2차전지 수요는 급증하리라고 예상된다. 특히 전기차 시대의 본격적인 도래를 예상한다면 발전 속도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2차전지를 생산하는 국가는 일본, 한국, 중국 정도다.
이 가운데 가장 앞선 곳이 일본 2차전지 업체다. 일본에서는 전기차의 초기 모델인 도요타의 ‘프리우스’ 하이브리드가 시장 경쟁을 촉발했다. 이를 통해 산요, 소니, 파나소닉 등 여러 업체가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여 년간 소형 2차전지 분야에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전기차 운행 노하우까지 갖추게 됐다.
도요타는 프리우스가 10여 년간 운행되는 동안 여러 가지 노하우를 갖춘 데다 2차전지 분야에서 다양한 특허와 기초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업체의 경쟁력도 녹록지 않다. 삼성SDI와 LG화학이 대표적이다. 특히 LG화학의 경우 GM의 전기차 시보레 볼트는 물론 트레일러와 같은 상용차에도 올해부터 2차전지를 납품할 예정이다.
삼성SDI도 글로벌 자동차 부품업체인 보슈와 SB리모티브란 합작사를 만들어 BMW에 2차전지 납품이 예정돼 있다. 국내 업체들은 최근 10년간 노트북과 휴대전화 등에 사용되는 2차전지를 제조하면서 기술력과 시장점유율을 키웠다. 특히 지난해엔 휴대전화와 노트북PC 등에 사용되는 소형 분야에선 국내 업체의 세계 시장점유율이 30%를 넘어섰다.
중국은 얕잡아볼 수 없는 다크호스다. 중국은 그간 휴대전화 등의 납품을 통해 소형 전지 분야에서 경쟁력을 쌓아온 데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해지면서 전기차의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이에 따라 BYD 등 중국 전지업체들도 전기차용 2차전지 개발을 본격화한 상황이다.
국가 간에 자국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작업도 치열하다. 전기차가 향후 고갈이 예상되는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것뿐 아니라 오염 없는 녹색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미국이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산업 지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2차전지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과 생산성을 고려해 2차전지를 기피산업으로 규정하고 그간 투자를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8년 친환경 자동차용 2차전지 개발에 460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또 한국 기업을 비롯한 해외 기업의 인수에도 적극적이다. 일례로 국내의 코캄, 에너랜드, 에너테크 등의 기업이 2008년 이후 미국 기업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가솔린 엔진은 유물로 남게 될까유럽 역시 독일이 폴크스바겐 컨소시엄에 6000만 유로를 지원하는 등 2차전지 원천기술 확보와 친환경 자동차, 에너지 저장용 전지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일본은 1991년부터 10년간 1660억 엔을 투입해 세계 2차전지 시장의 90%를 점유하며 주도한 데 이어 2002년부터 자동차용 2차전지 개발을 추진 중이다.
중국은 올 들어 리튬 2차전지를 정부 차원의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역시 상반기 내에 전기차 시험 모델을 출시하고 관련 2차전지 산업 육성을 위한 전략도 발표할 방침이다. 2차전지가 반도체·디스플레이에 이어 수출 효자 품목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각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기차가 고속도로와 모든 도로를 주행하며 가솔린을 대체하는 데엔 다소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2차전지의 가격과 수명이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미쓰비시의 전기차 아이미브에 채택된 2차전지의 가격이 최소 800만원을 넘을 것으로 진단한다.
소형차 한 대 가격과 맞먹는다. 각국 정부가 보조금 지원을 약속하고 있지만 당장 이처럼 비싼 가격을 주고 힘 좋은 가솔린 차를 대신해 사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 가솔린만큼 2차전지가 15년가량의 수명을 버틸지도 관건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가격 차이는 앞으로 상당히 좁혀질 것이라고 관측한다.
2차전지의 수명 역시 가솔린 엔진을 대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내다본다. 전자부품연구원에서 2차전지를 연구하는 김영준 센터장은 “전기차용 2차전지가 대량생산체제로 전환되면 다양한 기술이 쏟아질 것”이라며 “2차전지 가격은 향후 10년 내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럴 경우 보조금 없이도 전기차의 가격은 가솔린 차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낮아지게 된다. 도심을 주행하는 법령도 곧 개정이 예정돼 전기차가 도로를 주행하는 데 무리가 없을 전망이다. 우리나라에선 이미 자동차 법을 개정할 예정이고 세계 각국도 이러한 정책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100년 넘게 자동차의 동력원 자리를 지키던 가솔린 엔진 시대의 종언은 시간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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