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국은 과연 시한폭탄인가
현대중국은 과연 시한폭탄인가
20세기가 목격했던 최악의 정치지도자 중의 하나가 중국 마오쩌둥이다. ‘붉은 황제’가 저질렀던 스케일 큰 죄악은 논란의 여지가 별로 없을 정도다. 이를테면 최악의 정책 실패인 대약진운동(1958~61년)으로 굶어 죽은 인민 수가 3800만 명에 달한다.
어떻게 통치자가 자기 인민을 그렇게 굶겨 죽인단 말인가? 가뭄·홍수 같은 천재지변도 아니라 행정력을 총동원해 고된 노동에 사람을 내모는 미친 닦달, 미친 정치 탓으로 말이다. 그리고 3800만 명은 결코 과장된 통계 수치가 아닌데, 웬만한 나라의 전체 인구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숫자는 마오쩌둥의 제2인자인 류사오치(劉少奇)가 확인한 것이다. 기근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소련 대사 스테판 체르보넨코에게 3000만 명이 이미 아사했다고 말했다. 이것은 20세기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상 최악의 기근이었다. 마오쩌둥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수천만 명을 굶주리게 하고 혹사시킴으로써 죽게 만들었다.”(장융·존 핼리데이 지음 ‘마오’ 하편, 576쪽)
명성 높은 평전 ‘마오’는 인간이, 권력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가를 확인시켜주는 으스스한 증거물인데, 최근 그 못지않은 책을 만났다. 이번에는 중국의 옛 지도자가 아니라, 그 나라의 앞날을 다룬 신간이다. ‘마오의 제국’(말·글빛냄 펴냄)이 그것이다. 저자는 중국계 미 워싱턴포스트 베이징 특파원 출신인데, 중국을 바라보는 서구 언론의 부정적인 시선을 전형적으로 갖고 있다.
내용도 ‘시한폭탄’ 현대중국에서 조만간 대변혁이 일어날 것이고, 또 일어나야 옳다는 것을 전제로 했다. 중국 당국은 기겁하겠지만, 진짜 놀랄 건 독자들이 아닐까? 우선 그 나라의 지도자 마오가 진실로 악마적 위인이고, 그를 넘어설 사람은 그밖에 없다는 걸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마오는 대약진운동의 실패를 문혁이라고 하는 또 다른 실패로 덮어씌우는 데 성공했다. 1966~76년 중국대륙을 정치적 광기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은 문혁은 저자의 표현대로 ‘인간 지옥’ ‘피의 향연’이었다. 그것도 순전히 권력욕 때문이다. 당시 농촌 지역에서만 75만~150만 명이 죽었고, 3600만 명이 고통당했다.
숫자로는 대약진운동에 못 미치지만 죄질은 더 나쁘다. 죄목은 어느 나라 법이나, 국제법에도 없는 ‘인성 파괴죄’ ‘광기(狂氣)를 부채질한 죄’ 쯤이 안 될까? 뻔뻔한 교사범(敎唆犯) 마오의 부추김으로 멀쩡한 10대 홍위병이 공개 장소에서 자기 부모의 따귀를 때리며 정치적 과오가 있는지를 따져물었다. 그
리고 나라 전체가 내전 상태에 돌입했다. 당시 충칭시의 경우 시 외곽에는 군수공장이 여러 개 있었다. 여기에서 탈취한 무기를 휘감은 온건파 홍위병과, 마오를 지지하는 왕당파 홍위병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처음에는 돌과 칼이 등장하더니 이내 수류탄·화염방사기·탱크까지 모두 동원됐다.
양상은 최악의 시가전이고, 분열의 강도만으로 보자면 내전 그 이상이었다. 당시 마오는 싸움을 독려한다면서, 자기 생일날을 골라 전 인민에게 빵을 하나씩 하사했다. 당시 마오의 악명 높은 레토릭이 “혁명은 결코 즐거운 만찬이 아니다”는 말이다. 거대한 정치 히스테리가 중국을 뒤덮었다.
중국인민들은 그 모진 세월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하만 진짜로 놀라운 것은 그 한 세대 뒤의 현대중국이 아닐까? 그들은 겉보기에 멀쩡하다. 그리고 미국과 함께 G2시대를 운운한다. 남미나 한국처럼 과거사 문제로 몸살을 앓는다는 말도 아직은 들어본 바 없다. 어떻게 그들이 악몽을 벗어나 정상 국가, 정상 국민으로 복귀했단 말인가?
“1978년 덩샤오핑이 권력을 잡은 후 문화혁명은 부인되었고, 정부는 박해 받은 사람들을 복권하는 작업에 착수하고 악질적인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처벌했다. 그러나 덩샤오핑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공산당의 생존이었다. 그런 까닭에 지난 10년에 걸쳐 일어난 사건의 진상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지난 과거의 공과를 따지는 공개적인 토론도 없었으며, 국민 화해의 장도 마련할 수 없었다.…그래서 국가는 모든 것을 덮어두고 앞으로 나가자고 강조했다.”(160쪽)
‘마오 이후’를 설명하는 저자의 말인데, 쉽게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마오의 후임자 덩샤오핑이 그렇게 하자고 제안하면 중국인이 우르르 따랐단 말인가? 아니면 현대화 성공 30년에 취한 중국인민이 자기만족과 집단망각증을 보이는 걸까? 과거는 과거고, 현재는 현재라면서 균형을 잡는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마오의 제국’ 지적대로 민주화를 이루고 싶으나 권력이 무서워서 속으로만 끓고 있단 말인가?
그점에서 ‘마오의 제국’은 딱 떨어지는 답보다는 궁금증을 많이 일으키는 책이다. ‘마오의 제국’의 원래 제목은 ‘Out of Mao’s Shadow’이다. 중국이 극복해야 할 장벽이 지도자 숭배와 일당독재라는 문제의식을 깔고 있다. 그런 지적이 노골적인 국권 침해라고 반발할 중국인이 상당수이겠지만, 보편적 기준에서 보자면 중국은 여전히 문제 있는 사회임이 분명하다. 모든 사안의 주범은 마오쩌둥이다.
민주화만이 아니라 파룬궁 탄압, 티베트를 비롯한 소수민족 억압은 모두 마오의 유산이다. 때문에 ‘마오의 제국’의 결론은 간단하다. 자유 시장경제에 걸맞는 정치체제 창출 여부에 따라 중국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의 말이 맞을까? 사실 그런 진단 속의 중국 미래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일테면 1989년 봄 천안문 광장을 메웠던 젊은이들은 무력진압에 무너졌다. 민주주의의 좌절이다. 특히 가택연금 상태에서 2005년 사망한 자오쯔양의 장례식 풍경, 중국인들의 추모 열기를 막으려는 중국 정부의 탄압을 묘사한 부분을 읽다 보면 중국은 어쩔 수 없는 시한폭탄이다. 또 천안문 사태 당시 권력서열 3위 자오쯔양이야말로 ‘중국의 양심’이다.
중국민주화 운동의 성녀(聖女) 린자오의 투쟁정신이란 것도 어디에서 많이 들어봤던 소리다. 다 읽은 ‘마오의 제국’을 잠시 덮고 생각해 본다. 묘한 책이다. 무지막지한 지도자 마오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했다가 건국 이후 한국현대사를 다시 보는 듯한 데자뷔(기시감) 때문에 역사의 어지럼증을 피할 수 없다.
사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사회의 양면성을 우리는 잘 안다. 민주화의 지표는 좋아졌지만, 사회동력은 떨어진 게 사실이다. 또 현재의 속절없는 이념갈등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면, 과연 이웃 중국의 선택은 어떠해야 할까?
[필자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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