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치즈’ 군침 도네!
‘신세계 치즈’ 군침 도네!
나는 초콜릿 없이는 살아도 치즈 없이는 못 산다. 매일 치즈를 먹는다. 체다 치즈를 갈아 오믈렛에 뿌리고, 고르곤졸라(이탈리아산 고급 치즈)를 으깨 샐러드에 얹는다. 오후 간식으로는 브리(희고 부드러운 치즈)를 듬뿍 바른 스낵을 먹는다. 치즈를 끊으면 훨씬 더 날씬해질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렇다고 치즈를 포기할 마음은 없다.
치즈에 해박한 척하는 여느 속물과 마찬가지로 나는 늘 고급 치즈는 유럽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영국의 스틸턴, 스위스의 그루예레, 스페인의 만체고, 네덜란드의 구다, 이탈리아의 탈레기오, 프랑스의…. 어느 날 뉴잉글랜드 지방으로 이사한 뒤 버몬트주에서 일어나는 작은 치즈 혁명을 발견했다.
캐나다와 접한 북부 국경으로부터 서부의 챔플레인 호수, 그리고 그 중앙을 내달리는 산맥 능선에 이르기까지 버몬트주는 다수의 독립적인 농가를 지원한다. 이들은 체다 치즈뿐 아니라 각종 수제 치즈를 만들어낸다. 그중 일부가 유럽의 최고급품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시작했다.
버몬트주는 자신들을 식품 관광의 낙원으로 홍보한다. 이 마케팅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평범한 음식점도 유기농과 현지산 음식을 뽐낸다. 퀴치에 있는 매혹적인 파머스 다이너의 슬로건은 ‘이곳에서 자란 음식’이다. 메뉴에 실린 현지 생산 품목을 모두 빨간색으로 강조한다.
‘챔플레인 양봉원 꿀’ ‘저온에서 오래 구운 버몬트산 돼지고기’ 같은 식이다. 미들베리에 있는 아메리칸 플랫브레드 식당은 최근 특별 요리 중 ‘현지에서 채취한 봄양파’를 선보였다. 그러나 그중 어느 무엇도 버몬트주 현지 식품의 전당에서 치즈보다 더 높이 오르지는 못했다.
버몬트 치즈 협회는 현지 치즈 생산자들이 결성한 비영리 조합이다. 이들은 주의 각지에 있는 40여 개 고급 치즈농장을 묶어 ‘버몬트 치즈 트레일’을 구축했다. 단체견학과 시식회를 운영하는 대규모 생산자로는 케이벗 크리머리, 그래프턴 빌리지 치즈, 그리고 벌링턴 근교의 웅장한 셸번 팜스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간판을 내걸지 않은 소규모의 영세 농장들도 있다. 이들은 다양한 치즈를 생산하는데 그중 농장치즈는 농장의 재료만 사용해 손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장인 치즈는 손으로 만들지만 다른 곳에서 생산된 재료를 섞기도 한다. 그 밖에도 소젖 치즈, 양젖 치즈, 염소젖 치즈가 있다.
대부분 예약을 하면 관광객의 방문을 환영한다. 몇몇 농장을 방문한 뒤 나는 치즈 제조는 나와 인연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나는 남에게 고급취향의 삶을 준비해주기보다 그런 삶을 누리는 쪽을 선호한다. 그리고 치즈 제조는 너무 힘들다. 몸이 아무리 피곤해도, 밖에 진눈깨비가 내려도 젖을 짜야 한다.
그리고 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일이지만 염소나 양을 이용해 치즈를 만들려면 갓 태어난 어린 새끼를 떼어내고 젖이 나올 동안 최대한 짜내는 방법밖에 없다. 진한 우유를 만들어내긴 하지만 겁 많고 좀 아둔한 양의 경우는 5~6개월가량 젖이 나온다. 장난기 넘치고 붙임성 있는 염소는 젖의 분비기간이 8~9개월에 이른다.
버몬트주의 치즈 생산자는 대략 두 부류로 나뉜다. 가축·채소 또는 낙농업 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든 전문 영농인과 목가적인 전원생활을 추구하는 전문직 출신 귀농자들이다. “이런 일을 하려면 멍청하거나 상당한 열정을 가져야 한다”고 마크 피셔가 말했다. 그는 뉴욕에서 운영하던 소규모 동영상 제작 회사를 접고 12년 전 아내, 어린 딸과 함께 버몬트주로 이사했다.
이들은 웨스턴 외곽의 채석장을 헐값에 사들여 그곳에 우드콕 농장을 세웠다. 버몬트주에 다섯 곳밖에 없는 양 목장 중의 하나다. “낙농장은 아주 크거나 치즈 또는 아이스크림을 생산하지 않으면 모두 5년 이내에 사라진다”고 피셔가 말했다. “부가가치가 있는 제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내가 방문했을 때 우드콕 농장은 올 시즌의 젖짜기 작업 준비가 한창이었다.
‘매~ 매~’ 울어대는 귀여운 양들 천지였다. 이 농장은 여러 종류의 농장 치즈를 만들고 숙성시킨다. 웨스턴 휠로 불리는, 중간 정도의 경도(硬度)에 버터 같은 치즈와 더 부드럽고 껍데기가 딱딱한 카망베르 스타일 치즈가 대표적이다. 치즈 농장 성공의 열쇠는 조언을 해주는 ‘사수’가 있느냐다.
마이클 리는 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보스턴의 고급요리 관련 상점에서 일할 동안 치즈 제조 강습을 받았다. 그는 아내 에밀리 선더먼과 함께 버몬트로 이주한 뒤 타운셴드의 양 목장 피크트 마운틴에서 도제 생활을 했다. 2005년 미들베리 인근에서 8ha의 땅과 염소 다섯 마리를 장만했을 무렵 주에서 그에게 전문가를 연결해줬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잘나갔다”고 리가 말했다. 오늘날 그의 트위그 농장은 35마리의 염소를 기르며 매년 어림잡아 2700kg의 치즈를 생산한다. 중간 정도의 경도에 살균 처리하지 않은 염소젖 치즈와 천으로 싸서 숙성시킨 ‘사각형’ 치즈가 대표적이다. 티슬 힐 농장의 창업자 존과 재닌 푸트남 부부는 더 멀리 유럽까지 건너가 치즈 제조법을 배워왔다.
이들은 15년 동안 유기농 쇠고기와 채소 농장을 운영했지만 “재미도 없고 돈도 벌지 못했다”고 존이 말했다. 그래서 낙농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오랫동안 치즈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 이들은 프랑스쪽 알프스로 여행을 떠났다. 버몬트주 노스 팜프렛에 있는 자신들의 농장과 기후와 지형이 비슷한 지역에서 마음에 드는 치즈를 찾아냈다.
그리고 사부아 지방의 보포르에 정착했다. 알스프 지방의 치즈 생산자들이 사용하는 대형 구리통을 스위스에서 구입했다. 그리고 직접 타랑테즈 농장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순한 그루예레를 연상케 하는 단단한 황금색 숙성 치즈다. 퍼트남은 모든 치즈가 기후조건, 소 사료, 숙성기간에 따라 맛에 미묘한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그를 찾는 고객들은 ‘이른 봄’ 또는 ‘늦여름’에 생산된 치즈를 요구하기도 하며 실제로 그 차이를 식별하기도 한다. “미국인들의 입맛이 갈수록 세련돼 간다는 사실에 정말 흥분된다”고 그가 말했다. 그는 앞으로 유럽의 샤르퀴트리(가공한 돼지고기)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모으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벌써부터 그때를 준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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