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카지노 모니터 세계 1위 이젠 산업용 디스플레이

카지노 모니터 세계 1위 이젠 산업용 디스플레이

동네 오락실용 모니터 제조회사에서 카지노 모니터 생산 세계 1위로 올라 선 코텍. 그 중심에 이한구(61) 회장이 있다. 그의 끈질긴 도전과 뚝심으로 코텍은 세계 산업용 모니터 시장의 지배자가 되려 한다.
코텍의 3D 모니터를 장착한 IGT 슬롯머신 옆에 선 이한구 회장.

2001년 코스닥에 상장한 코텍은 카지노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벨라지오, MGM 미라지 등 세계 유수의 카지노들이 쓰고 있는 모니터 절반이 이 회사 제품이기 때문이다.

코텍의 주요 공급처가 세계 최대 슬롯머신 업체인 인터내셔널게임테크놀로지(IGT)다. IGT는 슬롯머신에 사용하는 모니터 중 70% 이상을 코텍에 의존하고 있다. 코텍은 IGT 외 슬롯머신을 생산하는 전 세계 70개 업체에 자사 모니터를 공급하고 있다.

코텍의 전신인 세주전자는 1987년 오락실 게임기용 모니터를 만드는 회사로 출발했다. 이런 회사가 세계 카지노 시장에 이름을 떨친 것은 이한구 회장의 뚝심 리더십 덕분이다.

지난 5월 4일 인천 송도 신도시의 코텍 본사에서 만난 이 회장의 첫인상은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다. 회사 경영에 대해 묻자 이내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회사 미래상을 얘기할 때는 의자에서 일어나 팔을 걷어붙이며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코텍과 IGT의 인연은 94년 IGT의 리치뉴턴 구매담당 이사가 찾아오면서 시작됐다. IGT에 카지노용 모니터를 납품할 새로운 회사를 찾아 대만과 일본을 거쳐 한국에 온 것이다. 그때까지는 세로닉스란 미국 기업이 독점 공급해 왔다. 한국을 찾은 리치뉴턴은 대기업을 먼저 찾아갔으나 부정적인 답을 얻었다.

카지노 모니터의 기술 요건이 워낙 까다로운 데다 납품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카지노용 모니터는 두 가지 특성을 갖춰야 한다. 우선 내구성이 뛰어나야 한다. 이 모니터는 365일 24시간 켜져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한 카지노에 있는 모든 모니터의 화질이 같아야 한다.

특정 모니터의 색상이나 화질이 달라지면 고객이 의심할 수 있어서다. 당시 화질과 색상을 균일하게 맞추는 오토바이어스(자동색상보정기술) 기술은 미국의 세로닉스만이 갖고 있었다.

“휴대전화, TV, 노트북 등 일반 모니터 분야에서는 한국 기업이 세계적으로 손꼽히죠. 하지만 이런 일반 모니터에는 색상 보정기술이 굳이 필요하지 않아요. 소비자가 조정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카지노 등 산업용은 달라요. 더구나 대기업이 카지노용 모니터 개발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물량이 적기 때문에 수지가 맞지 않아요. 산업용 모니터는 일반 모니터에 비해 다품종 소량생산하는 게 특징입니다.”

코텍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제기됐다. 이미 오락실 게임기 모니터 제작으로 국내 1위를 달리고 있는데, 미국 기업이 특허를 가진 기술 분야에 뛰어드는 게 무모하다는 이유였다. 이런 반대에도 이 회장은 IGT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는 높은 진입장벽이 오히려 기회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

코텍이 성공하면 독점적으로 카지노 모니터를 수출하는 회사로 도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년 반 동안 연구에 몰두한 코텍은 세로닉스와 다른 방식의 카지노 모니터 기술을 개발했다. 제품 개발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가격도 세로닉스 모니터의 60% 수준으로 확 낮췄다. IGT의 니즈에 딱 맞는 제품이었다.



고객에 신뢰 얻은 단호한 리콜 조치1999년 IGT에 모니터를 본격적으로 납품한 코텍은 성공 가도에 들어서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수출한 제품에서 불량품이 속출했다. 이 회장은 다시 승부수를 던졌다. 자발적인 리콜이었다. 문제가 생긴 모니터와 비슷한 시기에 생산한 모니터를 전량 회수하고, 새 제품을 다시 보냈다.

당시 1년 매출의 30%에 해당하는 1만5000대 분량이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 약속을 지켜낸 덕분에 IGT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이후 IGT와 장기 계약을 하게 됐습니다. IGT는 저희 회사에 더 많은 물량을 주었습니다. 새로운 파트너로 인정한 것이죠.”

이 일을 계기로 IGT에 독점 공급하던 세로닉스와 코텍의 상황은 역전됐다. 초기 10% 미만인 코텍의 공급량이 점점 늘어나 지금은 70%에 달한다. 이 얘기가 알려지면서 호주의 아리스토크랫(Aristocrat), 독일의 ADP 등 세계 70개 슬롯머신 생산업체와 잇따라 계약을 맺었다.

이 회장의 카지노 승부 전략으로 코텍 매출은 쑥쑥 늘어났다. 2000년 초 400억원대에 불과하던 매출은 2008년 1386억원으로 1000억원을 돌파했고, 지난해에는 1464억원을 기록했다. 창사 이후 24년 동안 흑자 행진을 하는 데는 기술력이 한몫했다. 최근 개발한 3D 게임용 모니터(MLD)가 대표적인 예다.

MLD는 두 장의 패널을 겹쳐 만든 3D 모니터다. 모니터 화면 자체에 깊이가 있다. 별도의 안경이 필요 없고, 장시간 사용해도 눈이 아프지 않은 게 장점이다. MLD는 미국, 유럽 등에서 여전히 선호하는 기계식 게임기인 릴(Reel)머신을 대체하고 있다. 3D 모니터로도 마치 릴머신을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있어서다.

이 회장은 타고난 사업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새로운 일에 뛰어드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다”고 들려줬다. 그가 처음 장사를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당시에는 워낙 가난한 시절이라 공부를 잘해도 대학 가기가 어려웠다.

그 역시 대학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돈벌이에 나섰다. 남들처럼 신문배달, 우유배달 등을 한 게 아니다. 충남 태안의 만리포 해수욕장까지 가서 잡화상을 차렸다. 여름이면 몰려드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철 장사를 한 것.

짭짤한 수익을 올리자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아예 여관을 통째로 빌렸다. 요리사까지 구해 여관 안에 식당도 운영했다. 숙박은 물론 식사까지 해결되니 여름 내내 관광객으로 붐볐다.

고교 졸업 후 월남전에 다녀온 후 그는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섰다. 바로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본 자동판매기 사업이다. “처음 봤을 때는 충격이었어요. 네모난 상자에 돈을 넣으면 과자나 초콜릿이 나오는 거예요. 생각해보니까 아! 이거 하면 되겠다 싶더군요.”

6개월 연구 끝에 직접 껌 자동판매기를 만들었다. 국내 최초로 선보인 자판기다. 1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껌 하나와 5원짜리 동전이 나오도록 설계했다. 당시 껌 5개 묶음에 10원이었으니 3원이 남는 장사였다. 25세에 세운 동우(銅牛)기업의 시작이다. ‘동전 먹는 소’라는 기업 의미처럼 껌 자판기는 나오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껌을 팔았다.



20대에 국내 첫 자동판매기 선보여특히 초등학교 주변에서 인기가 많았다. 학생들에게는 동전을 넣으면 껌을 뱉는 자판기가 신기한 장난감이었다.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1년 반이 지나서는 전국에 56개 대리점이 생겼고 한 달에 2억 개의 껌이 팔려나갔다. 자금이 풍부해지면서 이 회장은 새로운 자판기를 만들었다. 껌 이외에도 과자, 초콜릿, 휴지 등을 판매하는 자판기다.

77년에는 일본에 건너가 커피 자판기를 수입해 왔다. 커피 자판기는 더 화제가 됐다. “그동안 다방에 가야 먹을 수 있던 커피가 네모난 상자에서 나오니까 신기했죠. 처음 서울대학병원에 설치됐을 때는 하루에 100여 명이 줄을 섰어요. 동전만 넣으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구경하려고 몰려든 거예요. 대단했죠.”

잘나가던 1980년 불행이 찾아왔다. 공장을 짓기 위해 빌린 돈을 사기 당했다. 한순간에 회사와 집이 넘어갔다. 사업을 하면서 가장 크게 고배를 마신 순간이다. 이후 절대 남의 돈은 쓰지 않는다는 신조를 세웠다. 이런 이 회장의 고집으로 코텍은 현재 400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다.

사업 실패 후 오락실용 모니터 제조회사로 사업 기반을 마련하고, 카지노 모니터 수출 기업으로 일어설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이 회장은 최(最)·지(知)·신(信)에 있다고 말한다. 최·지·신은 최고를 지향하며, 사업에 필요한 전문 지식을 갖고, 고객의 신뢰를 끌어낸다는 의미다. 2001년 코스닥 상장 이후 사훈으로 삼았다.

직원들이 보기 쉽도록 회사 곳곳에 사훈을 액자로 걸어놨다. 세 가지 중 이 회장이 가장 강조하는 게 최선이다. 그는 경쟁에서 이기는 비결은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최선에 최선을 다하면 그게 1위가 되는 겁니다. 단지 잘하는 게 아니라 1위를 쟁취하는 거죠.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그 분야에서 1위 할 자신이 없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습니다.”

지(知)는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전문가 못지않게 잘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전문가가 되는 방법 중 하나가 한 우물만 지속적으로 파는 것이다. 코텍은 25년 동안 산업용 모니터 시장을 개척했다. 오랜 경험과 기술력은 다른 기업이 쉽게 넘볼 수 없는 진입장벽이 됐다. 앞으로도 산업용 모니터 분야에 집중할 계획인 이 회장이 늘 직원에게 하는 말이 “자신의 분야에 프로가 돼라”다.

“아는 것만큼 큰 힘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의료기기 모니터를 개발한다고 하면 직원들에게 전 세계에서 의료기기에 필요한 지식을 가장 많이 익히라고 합니다.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게 아니라 의료기기 모니터 분야의 전문가가 되라는 거죠.”



사업 성공 비결은 최·지·신신뢰도 코텍이 성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코텍은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모니터 기기를 개발해 유통업체에 공급한다. 납품하는 거래처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코텍이 94년 IGT와 손잡은 후 독점적인 거래를 할 수 있었던 이유가 회사 간 믿음이었다. 그는 “공급업체에 최고의 품질을 약속하고 지키는 게 신뢰”라고 얘기했다. 여기에 인덕(人德)을 붙이면 이 회장의 경영철학이 된다.

최·지·신 정신을 갖춘 사람들이 코텍을 일류회사로 성장시켜 그 성과를 직원과 함께 나누며 사회에 베푸는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끊임없는 도전도 성공 비결에서 빼놓을 수 없다. 코텍이 창업 후 본격적으로 카지노 모니터를 수출한 99년까지 이 회장은 수없이 많은 도전을 했다. 오락기용 모니터는 기본이고, 노래방기계 모니터, 스티커사진 모니터, 볼링장 모니터 등을 만들어 팔았다.

대부분 산업 유행에 맞춰 시장이 커졌다가 정체되거나 사라졌다. 이 회장은 남들보다 먼저 시장에 진입하고, 경쟁이 심해지면 다른 사업을 찾아 옮겼다. 그 흐름 속에서 찾은 게 카지노용 모니터다. 카지노용 모니터 시장은 워낙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에 옮기지 않고 국내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경영에 있어서 그는 개척자다. 누군가 잘 닦아 놓은 길은 따라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40%의 성공 가능성만 있다면 도전했습니다. 다들 60%의 리스크만 따지고 주저할 때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누구나 쉽게 넘보지 못한 사업이나 시장일수록 매력적입니다. 제가 해내면 단번에 1위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2005년부터 서서히 다음 시장을 준비해 왔다. 카지노 모니터뿐 아니라 인포메이션 모니터(DID), 의료용 모니터, 전자칠판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이 중 DID는 앞으로 성장 기대감이 높다. DID는 기업 광고나 홍보를 위해 병원, 쇼핑몰, 호텔 등에 설치하는 모니터다. 최근 광고 시장이 아크릴 보드판에서 대형 LCD 패널로 교체되면서 수요가 늘고 있다.

천성렬 코텍 기술연구소장은 “코텍은 카지노용 모니터를 만든 기술로 6.2인치부터 82인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 라인을 갖추고 있고, 카지노용 모니터에 활용된 터치 기능을 첨부하면서 고객의 반응이 좋다”고 들려줬다. 2008년에는 일본의 최대 전자·통신업체 NEC와 공급 계약을 맺었고, 2009년에는 벨기에 바코(Barco)와 독일 로에베(Loewe) 등 글로벌 기업에 수출하고 있다. 2009년 DID 수출로 벌어들인 돈은 280억원.



세계 최고 산업용 모니터 회사로 도약의료용 모니터 기기는 초음파 진단기에 쓰이는 모니터다. 거래처에서 원하는 모니터 크기로 생산할 수 있는 맞춤형 제조방식과 뛰어난 화질이 강점이다. 현재 세계적인 의료기기 업체인 지멘스와 GE에 납품하고 있다. 군사·항공, 로봇 등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용 모니터도 연구 중이다. 천 소장은 “앞으로 외부 충격이나 온도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튼튼한 모니터를 개발하면 군사용이나 항공 쪽으로 시장을 넓히게 될 것”이라고 들려줬다.

이 회장은 본격적으로 산업용 모니터를 생산하기 위해 지난해 9월 송도 신도시에 사옥을 새로 지었다. 연면적 1만9456m²(5885평)에 공장, 연구소, 사무실, 복지시설 등을 갖춘 지상 3층짜리 건물이다. 과거 인천 주안동 공장에 비해 규모가 3배로 커졌다. 준공식 날 이 회장은 제2의 도약을 선언했다.

“휴대전화, TV, 노트북 모니터는 한국 기업이 세계적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용 모니터에서는 아닙니다. 24년간 카지노용 모니터에서 쌓은 기술력으로 산업용 모니터 시장에서도 1등이 되겠습니다.”

카지노용 모니터뿐 아니라 DID, 의료기기 모니터 등으로 사업 영역을 점차 넓히면서 매출도 늘고 있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지난해 매출액 1464억원보다 16% 높은 1700억원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제주도 활보한 ‘베이징 비키니’…“한국에서 왜 이러는지”

2하늘길 넓히던 티웨이항공...특정 항공기 운항정지·과징금 20억

3고려아연 “MBK·영풍 공개매수 ‘위법’ 소지…즉각 중단돼야”

4‘불꽃축제’ 위해 띄운 위험한 뗏목·보트…탑승자 4명 구조

5도검 전수조사한 경찰청…1만3661정 소지 허가 취소

6KB금융, 광주광역시와 소상공인 돌봄 지원 업무협약

7한적한 스페인 시골 마을 '와인 핫플'이 되다

8‘혁신 허브’ 싱가포르서 현대차·기아 두각…신차 판매 전년比 106% 증가

9경기도 아파트 단지 11%, ‘전기차 충전시설 불량 사항’ 적발

실시간 뉴스

1제주도 활보한 ‘베이징 비키니’…“한국에서 왜 이러는지”

2하늘길 넓히던 티웨이항공...특정 항공기 운항정지·과징금 20억

3고려아연 “MBK·영풍 공개매수 ‘위법’ 소지…즉각 중단돼야”

4‘불꽃축제’ 위해 띄운 위험한 뗏목·보트…탑승자 4명 구조

5도검 전수조사한 경찰청…1만3661정 소지 허가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