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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롯폰기힐스에서 해법 찾아라

용산, 롯폰기힐스에서 해법 찾아라

▎일본 도쿄의 롯폰기힐스는 17년에 걸쳐 완공됐다.

▎일본 도쿄의 롯폰기힐스는 17년에 걸쳐 완공됐다.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 ‘한국판 롯폰기힐스’ 등으로 불리는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출자사 간 이견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총 사업비가 30조원에 이르는 이 프로젝트는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와 서부이촌동 일대 53만여㎡를 2016년까지 최첨단 국제업무 복합단지로 개발하는 것이다.

한국판 롯폰기힐스라 불리는 것은 전 세계 도시 재생 사업의 성공 모델로 꼽히는 일본 도쿄의 롯폰기힐스와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낙후된 도심을 재생한다는 점, 최첨단 도시공간을 조성한다는 점 등이 그렇다. 그러나 다른 점도 많다. 용산 프로젝트는 롯폰기힐스보다 사업 면적은 5배, 사업비는 9배가량 많은 메가 프로젝트다. 단, 이 프로젝트의 사업기간은 토지 매입부터 완공까지 17년이 걸린 롯폰기힐스의 절반 수준이다.

일부에서는 ‘조급증’이 사업 차질을 빚게 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자금조달 방식도, 지자체의 지원도 다르다. 메리츠종금증권 김기형 부동산금융연구소장은 “용산 개발 사업은 투자와 소비를 통해 나타나는 경제유발 효과가 67조원에 이를 정도로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프로젝트”라며 “일본 롯폰기힐스의 성공 사례를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롯폰기힐스는 도심 한복판에 있는 복합단지다. 오피스 1만5000여 명, 방송센터 3000여 명, 주거동 2000여 명 등 2만여 명이 상주하는 ‘도시 속 도시’다.

1993년 완공돼 일본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지만 건립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도쿄도가 옛 롯폰기 6가를 재개발 유도지구로 지정한 것은 1986년. 중앙 관청가와 가깝던 롯폰기 아카사카 지역은 나무로 건축한 노후주택이 밀집돼 있고 도로 등 기반시설이 열악했다. 또 인근 아사히TV 본사도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에는 다국적 기업이 진출하면서 업무시설이 턱없이 부족했다.

사업 추진을 위해 일본 최대 부동산개발업체인 모리빌딩, 아사히TV 등이 500명이 넘는 개발 대상 지역 내 지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안내문을 건네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첫 반응은 싸늘했다. 모리빌딩은 평일에 만나기 힘든 주민들은 주말에, 낮에 만나기 힘들면 밤에 만나 설득했다. 관련 정보도 투명하게 공개했다. 2주에 한 차례씩 ‘재개발회보’를 발행해 직접 전달했다. 주민들은 대형 지주와 자격이 동등한 조합원으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소식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1998년 재개발조합 설립 신청서를 도쿄도에 접수했다. 재개발지구로 지정된 지 12년 만이었다. 가입률은 90%를 웃돌았다. 그러나 도쿄도는 “가입률을 더 높이라”며 조합 인가를 내주지 않았다. 미가입 30여 가구까지 신경을 쓴 것이다. 조합이 가입률을 93%까지 끌어올리자 도쿄도는 신청 8개월 만에 인가를 내줬다. 사업은 2003년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모리빌딩 관계자는“롯폰기힐스는 땅 주인만 500여 명이 넘고 개발을 위해 주민들과 1000번 넘게 회의를 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사업예정지 내 주민 사이에 사업주의 ‘일방통행식’사업 강행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최근 사업자 간 이견이 심해지면서 개발에 반대해 온 주민들은 이 기회에 사업 백지화 추진에 속도를 내자는 분위기다. 주민들은 서울시와 용산구청을 상대로 수차례 시위를 벌이고 민원을 제기했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이달부터 서울시를 상대로 본격적인 소송에 들어갈 방침이다.

이미 비상대책위원회별로 7월에 서울시를 상대로 3건의 소송을 낸 상태다. 8월 6일 용산국제업무지구에 포함된 대림아파트와 성원아파트 주민들이 도시개발구역 지정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동원베네스트 아파트 주민과 이촌동 생존권사수연합도 각각 8월 12일과 21일 소장을 접수했다.





“상암DMC 정도 지원책 고려하길”롯폰기힐스 사업시행자인 모리빌딩은 SPC(특수목적회사)를 설립해 사업을 추진했다. 모리빌딩은 2000년 당시 일본의 버블 붕괴 후유증으로 보유 중인 건물을 어떻게든 처분하려 했다. 이때 도쿄 롯폰기 지역의 20층짜리 최신식 맨션 등의 임대료 수입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해 240억 엔을 조달했다. 모리빌딩은 저리 대출 등으로 1000억 엔을 확보했고 1700억 엔은 개발형 증권을 발행해 비용을 충당했다. 사업 용지와 시설물을 근거로 발행한 증권은 지주와 투자자들이 매입했다. 모리빌딩은 자금 조달 시 SPC를 이용해 일본 처음으로 대규모 개발형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진행한 셈이다. 주민들에게 입주권과 함께 상가매각 때 혜택을 줬다. 또 개발이익은 주민들로 구성된 재개발조합과 모리부동산이 나눠 가지기로 했다.

반면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은 코레일 적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시작됐다. 정부는 7조원에 이르는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철도정비창 부지 개발을 허용했다. 그러다 보니 코레일은 사업이익보다 땅값을 많이 받는 데 더 관심이 많았다는 지적이다. 투자자 간 이견도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는 이유다. 30개 공공·민간 투자자들은 2007년 사업 추진 이후 지금까지 토지매매 계약금·중도금으로만 1조5000억원 정도를 썼다. 자본금(1조원)과 대출 등으로 마련한 돈이다.

투자자들은 애초 지난해에 땅값 중도금·보상비 등에 필요한 2조원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이 돈만 있으면 일단 착공 직전까지 사업을 꾸려갈 수 있다. 이후에는 초고층 빌딩 등을 팔아 사업비를 조달하면 된다. 하지만 자금 조달 방식을 두고 투자자 간 의견이 엇갈리면서 자금 조달이 늦어졌고, 올 초 냈어야 할 중도금 등 7000억원을 미납했다. 문제의 핵심은 2조원 조달 방식. 땅 주인인 코레일과 사업지분이 많은 전략·재무적 투자자들은 시공사(건설투자자)가 지급보증을 서는 조건으로 사업비를 대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 등 17개 건설투자자들은 “건설투자자만 위험 부담을 지게 된다”며 반대했다.

롯폰기힐스의 성공적인 개발에는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도로 폭과 녹지공간을 넓히는 조건으로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물 연면적의 비율)을 획기적으로 완화했다. 롯폰기힐스의 용적률은 1083%, 기부채납비율은 36%다. 이에 반해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용적률 608%에 기부채납비율 40%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이 난항을 겪고 있지만 서울시나 정부는 ‘뒷짐’을 지고 있다.

서울시 도시관리팀 관계자는 “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코레일의 방침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시가 공식적으로 나설 입장이나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국토해양부 도시재생과 관계자도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같은 도시개발 사업은 사업 지정권자가 100% 이끌어 나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사업을 지정한 서울시의 협조요청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 국토부가 따로 나설 일은 없다”고 말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일본의 경우 롯폰기힐스 등 도심 재개발 사업에 대해서는 무이자 대출, 대출 채무보증, 소득·법인세 감면, 용적률 상향 등 금융·세제에 두루 걸친 정부 지원이 이뤄졌다”며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DMC)와 인천국제자유구역 개발에 적용한 것처럼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에도 조례와 특별법을 통한 지원책을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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