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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로 미국 시장 한번에 뚫어

기술로 미국 시장 한번에 뚫어



국내 독자기술로 개발한 피부 외용제(연고류)가 미국 시장의 높은 벽을 넘었다. 화장품 및 의약품 개발업체 네오팜은 올 6월 미국 드러그 스토어 유통대행사 케어웨이와 의약품 생산·공급 계약을 맺었다. 근육 이완제 크림 등 일반 의약품 9개 품목 24만3000개를 우선 공급한다. 현지 판매가 기준으로 10억원에 이르는 규모다. 이게 끝이 아니다. 수출 품목은 향후 14개로 확대될 예정. 그러면 연 100억원어치를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네오팜의 미국 진출 의미는 제법 크다. 무엇보다 국내 기술로 만든 피부 외용제가 미국 시장을 뚫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위기 때 실탄(돈)을 쏘라’는 투자 공식을 몸소 보여주는 사례기도 하다. 네오팜 박병덕(44) 대표는 “10여 년 전 피부재생 관련 원천기술을 획득한 게 미국 시장 진출에 큰 도움이 됐다”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화장품 회사서 제약업체로 변신네오팜의 원천기술은 MLE(피부 지질구조 재현기술)다. MLE는 피부 각질세포 사이에서 보습·보호 기능을 하는 ‘세라마이드’를 재현하는 것이다. 1999년 개발한 이 기술로 네오팜은 국내외 특허 4건을 받았다. JID 세계피부연구학회지, 미국 C&T 학회지 등 국내외 유명 학술지에 10여 차례 소개될 만큼 시선을 끌었다.

‘MLE 제품’의 성과는 실제로 알찼다. 2000년 창업 직후 출시한 아토피 보습제 ‘아토팜’은 돌풍을 일으켰다. 출시 2년 만에 아토피 보습 시장의 대표 브랜드로 떠올랐을 정도. 그 결과 네오팜은 창업 5년 만인 2005년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 아토팜의 아성은 여전히 공고하다. 국내 시장 점유율은 45%에 이른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의 한국산업 브랜드파워 조사에선 2007년 이후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올해까지 4년 연속 1위다. 대표 브랜드를 육성하는 덴 성공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네오팜은 그 여세(餘勢)를 모는 덴 실패했다. 주부를 타깃으로 한 피부화장품 ‘애다강’, 새집증후군의 원인물질을 제거하는 ‘세이프하우스’를 잇따라 시장에 내놨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7년 이후엔 아토피 보습 시장이 한껏 과열됐다. 로레알 등 글로벌 화장품 기업이 한국 아토피 시장에 속속 명함을 내밀었다. 간판 브랜드 아토팜마저 수성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몰렸던 것이다. 실적은 당연히 나빠졌다. 100억원을 넘었던 매출은 2007년 58억원으로 줄었다. 영업이익은 2005년 28억원에서 2007년 16억원으로 반 토막 났다.

절체절명의 위기. 이런 때 CEO는 냉정하고 빠르게 결단해야 한다. 머뭇거리다 시기를 놓치면 더 큰 폭풍에 휘말리게 마련이다. 박 대표 역시 결단의 순간에 섰다. 그는 2008년 ‘선택과 집중’을 선언하면서 기존 전략을 뒤집었다. 부진의 늪에 빠졌던 애다강, 세이프하우스 등 일부 제품을 과감하게 접었다. 남은 역량을 아토팜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될성부른 아이 밀어주기’ 전략이었다. 자신들의 원천기술을 알리기 위해 제품명에 ‘MLE’를 사용한 것도 그 무렵이다. 2009년 출시한 민감성 피부 화장품 ‘닥터 MLE’가 그것이다.

▎박병덕 네오팜 대표

▎박병덕 네오팜 대표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네오팜으로선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 아토피 시장을 대체할 또 다른 시장이 필요했다. 박 대표는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해외 진출이 답이었어요. 하지만 쉽지 않았죠. 회사 사정이 좋지 않은 데다 초기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았어요. ‘아토팜이나 잘하자’는 의견도 많았고요.” 주변의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그는 승부수를 던졌다. 미국 진출을 추진한 것이다.

그것도 화장품이 아닌 의약품으로 출사표를 던지겠다고 했다. 반대하는 직원은 손수 찾아가 설득했다. 몸집이 작은 기업의 장점은 영(令)이 빠르게 선다는 것이다. 네오팜이 그랬다. 박 대표의 포부가 전달된 직후 사내에 미국 진출 TF(태스크포스)팀이 조직됐다. 원천기술 MLE를 이용한 피부 외용제 개발작업도 곧장 시작됐다. 발 빠르게 국내에서 피부 외용제 제조허가를 받았고, 해외 진출 요건인 시설투자도 과감하게 진행했다. 100억원에 가까운 돈을 투입해 의약품 제조공장을 건립한 것이다. 위기 때 투자하라는 공식 그대로였다.

이를 발판으로 네오팜은 2009년 미국 FDA(식품의약국)가 인정하는 cGMP(최우수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 인증을 받았다. 문제는 유통이었다. 2009년 11월 박 대표는 케어웨이 CEO를 만나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는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몇 번이라도 찾아갈 요량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답은 금세 나왔다. 케어웨이 CEO는 박 대표의 프레젠테이션을 들은 직후 이렇게 말했다. “MLE라는 원천기술이 있으니 뚜렷한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원천기술을 믿고 계약을 맺겠다.” 박 대표의 고집스러운 승부수가 통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원천기술이 해외 시장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그때 새삼 느꼈다”며 “만약 MLE를 개발하지 못했다면 미국 시장 진출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과감한 M&A로 성장엔진 돌려네오팜의 성장엔진은 두 개다. 하나는 아토팜을 중심으로 한 화장품이다. 둘째는 제약이다. 전공과목인 화장품에 제약 부문을 더한 셈이다. 새로 진출한 제약 업계에 연찬륙하기 위해 박 대표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2009년 항체신약개발 벤처기업 아리사이언스를 56억원을 들여 M&A(인수합병)했다. 아리사이언스는 항암제 신약 후보물질 2개와 항체신약 후보물질 3개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엔 췌장암 전문 바이오 벤처 렉스바이오와 손을 잡았다. 명실상부한 제약회사로 발돋움하겠다는 박 대표의 의지가 읽힌다. 적극적 M&A와 해외 진출의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2007년 58억원에 그쳤던 매출은 2009년 147억원으로 2.5배가 됐다. 올해 목표는 186억원이다.

네오팜에서 ‘네오(Neo)’는 새로움을 말한다. 어미 격인 ‘팜’은 의약품을 뜻하는 영문 단어(Pharmacy)를 줄인 것이다. 박 대표는 “창업할 때부터 제약회사로 발돋움하겠다는 꿈이 있었다”고 했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네오팜의 ‘변신’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다. 목표가 뚜렷하면 위기의 순간 흔들리지 않는다. 목표가 확고하면 가시밭길을 탄탄대로로 만들 수 있다. 네오팜이 교본이다.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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