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1조 공사 따낸 실력자
사우디 1조 공사 따낸 실력자
지난 7월 21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리야드 KBC(코리아 비즈니스 센터)는 “국내 중소기업 컨소시엄이 사우디에서 10억 달러짜리 광케이블 매설 공사를 따냈다”고 알려왔다. 발주처는 사우디 통신업체 ITC, 국내 중소기업은 대경엔지니어링·태경산전·한국정수공업 3개사로 구성된 컨소시엄이었다. 대경엔지니어링은 인천에 있는 기계설비 회사다. 지난해 매출 560억원을 올렸다. 태경산전은 전기 변전·발전 관련 회사고 한국정수공업은 원자로의 물처리 공사와 담수화 설비를 전문적으로 시공한다.
국내 중소기업의 10억 달러 프로젝트 수주는 이례적인 사건이다. KOTRA 측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해가 간다. 해외건설협회 집계 기준으로 사우디에 진출한 국내 업체는 11개 대기업을 포함해 96개. 이들 업체가 2008~2009년 사우디에서 수주한 공사 규모는 110억 달러였다.
이 프로젝트를 진두 지휘한 이는 노영철(55) 코미코(Korea Middle East Engineering Cooperation) 회장이다. 코미코는 3개 중소기업이 사우디에 설립한 현지법인이다. 대경엔지니어링이 코미코의 대주주며 노 회장은 이 회사의 부회장을 겸하고 있다.
노 회장의 이력은 특이하다. 미국 대학에서 회계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경영학 석·박사를 딴 그는 미국 몬터레이크파크 경찰국 무도사범,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회 사무총장, LA지구 연청회 회장 등을 지냈다. 이후 한국에서 중소기업 대표, 국민체육진흥공단 사업본부장·경정운영본부 사장 등을 지냈다. 국제공인경영지도사인 그는 모터보트 1급 조정사이자 국민생활체육 전국합기도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중국 대기업 누르고 수주코미코는 MOU(양해각서)를 맺은 지 약 4개월 만인 지난 11월 10일 본계약을 체결했다. 본계약이 늦은 것에 대해 노 회장은 “매설 공사가 3년에 걸쳐 사우디와 주변국까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현장마다 공정과 공사비 책정이 다르기 때문에 현장 조사를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우디 광케이블 구축 프로젝트는 2013년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노 회장이 보여준 본계약서에 따르면 올해 1단계 공사는 5000만 달러 규모다. 내년과 이듬해에 각각 3억5000만 달러, 2013년에 3억 달러 규모 공사가 완료된다. 노 회장은 “본계약 전에 이미 15개 도시에서 1단계 공사인 메트로망 설치 작업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노 회장은 “이번 수주로 대경엔지니어링 등 컨소시엄 3사는 몇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얼마나 마진을 남기는지 밝힐 수 없지만 이익 상당부분이 각 회사에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한 의문이 든다. 어떻게 국내에서도 생소한 중소기업이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었나? 이런 큰 공사 경험은 있나? 자금 조달에는 문제가 없나? 노영철 회장은 “사우디의 마와리드 그룹이 세운 통신업체 ITC가 2년 전 인터넷 사업권을 따는 것을 보고 광케이블을 구축할 것으로 예측했다”며 “2년 전부터 ITC 측과 접촉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입찰은 지명 입찰 방식이었다. 발주 회사가 제안서를 낼 곳을 지명하는 것이다. 경쟁사는 만만치 않았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H사와 네덜란드 통신업체였다(노영철 회장은 입찰 경쟁사 실명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든 조건이 불리해 보였다. 하지만 노영철 회장은 한국 통신산업의 기술력을 강조했다.
그는 “광케이블을 깔 때 COD라는 국내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ITC에 제안한 것이 한몫했다”고 말했다. COD(일체형 광케이블 보호관)는 광케이블을 보호하는 관으로 기존 매설 방식보다 안전할 뿐 아니라 공사비가 20% 정도 줄고 속도는 훨씬 빠른 기술이다. 그는 “국내 기술로 ITC가 원하는 가격과 속도에서 경쟁사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사도 문제가 없다는 게 노 회장의 주장이다. 3년 반에 걸친 이번 공사는 사우디 전역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노 회장은 “주로 광케이블 공사 경험이 많은 국내 중소기업이 현지에서 공사를 한다”고 말했다. 현재 5개 회사가 현지에 파견돼 공사를 진행 중이다. 노 회장은 “내년에는 공사 규모가 더 커지기 때문에 더 많은 업체에 공사를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자금 조달은 해외금융을 통해 해결할 계획이다. 조건은 좋다. 노 회장은 “발주처인 ITC와 모기업인 마와리드홀딩스가 지급보증을 서 주기로 계약했다”고 밝혔다. 그는 “프로젝트가 좋고 보증이 확실하기 때문에 자금 조달에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1단계 공사는 자체 자금으로 해결하고 2단계 공사에 필요한 자금은 12월 말 정도에 조달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 왕자와 합기도 친분이 부분에서 노 회장은 국내 금융사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국내 금융이 너무 뒤처져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금 조달을 위해 국내 은행을 접촉해봤지만 해외 프로젝트에 너무 조심스럽고 소극적이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 프로젝트에 대출해 본 적이 거의 없는 국내 금융사들이 말로만 글로벌을 외친다”며 “이렇게 확실한 사업을 놓고 왜 외국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중국의 경우 해외 프로젝트가 확실하면 중국 무역공사가 100% 보증을 해줍니다. 게다가 이번 입찰에 경쟁했던 중국 회사는 발주처가 이익을 내면 그때 공사비를 받겠다는 조건까지 내걸었어요. 이런 환경에서 국내 기업이 중동에서 수주를 따내기는 정말 힘듭니다.”
노 회장은 “국내 금융사가 중동 지역에 보다 공격적인 영업을 할 필요가 있다”며 “중동은 금융이 따라줘야 프로젝트 수주를 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이는 정부 차원에서도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의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아무리 기술이 좋고 규모가 큰 회사도 중동 지역에서 큰 프로젝트를 따내기 어렵다는 게 정설이다. 국내 모 대기업의 경우 사우디 정부나 기업이 발주한 입찰에 20여 차례 도전했다가 모두 실패한 경우도 있다.
노 회장의 무기는 무엇이었을까? 답은 솔직했다. ‘현지 네트워크’라는 것이다. 그는 “합기도로 연을 맺은 사우디 왕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ITC의 모기업인 마와리드 그룹 역시 사우디 현 국왕의 친인척이 소유한 회사다. 노 회장은 이번 수주 전부터 국내 대기업의 중동 일을 중계하는 에이전트 역할을 해왔다. 그는 “이번 ITC 건은 현지 유력한 왕자가 우리 컨소시엄의 에이전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간 중동 인맥에 공을 들인 결과다. 그는 1년 중 절반 이상 사우디에 머문다고 했다.
노 회장은 “중동은 무엇보다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며 “중동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그들의 문화와 상술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화 ‘벤허’ 얘기를 꺼냈다. 이 영화에 아랍인의 상술이 나온다는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인 벤허(찰턴 헤스턴 역)는 로마 병정과 전차 경주에 나선다. 당시 로마 병정의 전차는 훨씬 좋았다. 거의 모든 로마의 장군은 로마 병정에게 돈을 걸었다. 경주 전 벤허는 말들에게 속삭인다. 작은 말에게는 안쪽에서 살살 돌라고 하고, 큰 말에게는 바깥쪽으로 빨리 돌라고 말한다. 물론 말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 아랍인들이 그 벤허를 유심히 지켜봤다. 안쪽이 천천히 돌면서 구심점 역할을 하고 바깥 말이 빨리 돌아야 어긋나지 않다는 것을 간파한 벤허를 알아본 것이다. 아랍 상인들은 돈을 벤허에게 올인한다.’
노 회장은 “로마시대 로마 장군의 돈을 따먹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 확실하면 모든 것을 다 거는 것이 아랍인의 상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동 비즈니스에 대한 여러 조언을 내놨다. 그는 “알고 보면 별것 아닌데, 기본을 모르는 국내 기업이 너무 많다”고 했다.
“국내 금융 해외에서 너무 소극적”먼저 인적 네트워크. 노 회장은 중동에서는 절대 적을 만들면 안 된다고 했다. 수많은 왕자가 있지만 그들은 서로 협조하고 심지어 커미션도 나누기 때문에 힘 없는 왕자라고 적으로 만들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일이 없을 때도 신뢰를 꾸준히 쌓아야 한다. 평소에 좋은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노력하고 일이 생기면 이익을 과감히 나누자고 제안하며 신뢰를 줘야 한다.
반드시 현지법인을 만들라는 충고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노 회장은 “한국의 많은 회사가 중동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현지법인을 만들지 않고 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급하면 현지 지사라도 내야 한다”며 “이를 몰라 공사를 해놓고 공사금을 받지 못해 빚더미에 앉는 기업을 많이 봤다”고 조언했다. 반드시 현지의 합법적인 주체를 만들고 계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간 브로커나 ‘먹튀’ 하청업체도 조심해야 한다. 노 회장은 “많은 기업이 중간 브로커가 공사 따주는 것만 신경 쓰다 보니 불량한 브로커가 많이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브로커에게 입찰 전에 3~4%를 떼주면 나중에 하청 주고 뭐해도 돈을 얼마 남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또한 “선수금만 받아놓고 한국으로 돌아가 고의로 업체를 부도 내는 곳도 많아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사는 무조건 시방서(공사의 일정한 순서나 제품 규격 등을 적은 문서)대로 해야 한다”는 것도 기본이지만 국내 업체들이 간과하는 부분이다. 사우디에서는 반드시 발주처가 지시한 자재를 써야 한다. 공사는 시방서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광케이블 공사를 예로 들면 발주처가 70cm를 파서 매설해야 한다면 전 구간을 동일하게 지켜야 한다. 그들은 나중에 10% 정도 무작위 테스트를 통해 확인한다. 만약 한 곳이 잘못되면 재시공 명령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완벽하게 공사하는 데 얼마가 드는지 정확히 계산해 공사하고 자재를 잘 확보해 놓는 것이 성공 요인이다.
이번 본계약을 맺고 이슬람의 성지순례 기간인 하지를 맞아 휴가차 한국에 들어온 노 회장은 “앞으로 코미코가 중동 비즈니스를 안내하고 중계하는 한국의 첨병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 에이전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진행 중인 건도 많다. 노 회장은 “도로가 깔리면 차가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사우디에 광케이블 구축 공사가 진행되면 많은 통신 장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통신장비만 대략 10억 달러 가까이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ITC가 코미코를 통해 통신장비 견적을 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가급적 국내 장비업체가 들어가길 원한다”며 “대기업 계열사는 물론 중소기업과 계속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광케이블 구축 사업 외에 플랜트나 SOC(사회간접자본) 분야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노 회장은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은 새로운 시장이 활짝 열리고 있다”며 “사우디 모 업체와 담수화 시설, 태양 및 풍력 발전 관련 사업 얘기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또한 “요르단의 태양열 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고, 이라크에 광케이블을 구축하는 공사도 협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7일 그를 인터뷰했을 때 책상 대여섯 개가 전부인 코미코 한국 사무소에는 노 회장을 만나려는 사람이 쉼 없이 찾아왔고 오래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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