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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올 한 해 고마운 사람에 보낸 편지

CEO가 올 한 해 고마운 사람에 보낸 편지

2010년 경인년이 저물고 있다. 한 해를 보내면서 CEO들은 누구에게 가장 고마움을 느낄까? 포브스코리아는 CEO 100명에게 2010년을 보내면서 가장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가장 많은 지목을 받은 사람은 40%가 응답한 아내(배우자)였다. 다음으로는 임직원(28%)이었다. 이어서 부모(6%), 가족(5%), 선배-상사-딸(각각 3%) 순이었다. 아내와 자녀, 부모까지 포함하면 과반인 57%가 가족에게 가장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다. 6명의 CEO에게 ‘고마운 사람’에 대한 사연을 들어봤다.
▎지난 6월 열린 구 회장 둘째 외손자의 돌잔치. 왼쪽부터 작은아들 부부,구학서 회장 부부와 큰 외손자, 큰딸 부부와 둘째 외손자, 큰아들 부부.

▎지난 6월 열린 구 회장 둘째 외손자의 돌잔치. 왼쪽부터 작은아들 부부,구학서 회장 부부와 큰 외손자, 큰딸 부부와 둘째 외손자, 큰아들 부부.



구학서 신세계 회장이

두 며느리에게

벌써 연말이 됐습니다. 시간이 참 빠른 것 같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고개를 돌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천사와 같은 두 명의 손녀입니다. 큰며느리와 작은며느리 덕분에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아이를 낳느라 고생한 큰며느리와 작은며느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부모 마음은 다 같습니다. 자식이 잘되기 바라고 행복하기 원합니다. 결혼한 다음에도 정말 잘 지내는지 괜히 불안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며느리들을 보면 걱정이 사라집니다. 부족한 제 자식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사랑해주는 모습이 보입니다.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아비로서 아들 두 놈을 보면 왜 그렇게 부족한 점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들들을 엄하게 꾸중하며 키웠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부모 마음에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금 봐도 부족한 면이 참 많이 보여 쓴소리를 하려다 참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 며느리들은 고맙게도 제 아들들의 좋은 면을 더 크게 보는 것 같습니다. 항상 자기 남편이 최고로 잘생겼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는군요. 언제까지 며느리들의 눈에 남편이 최고로 보일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기 남편 사기를 올려주는 지혜로운 모습에 흡족함을 느낍니다. 직장까지 그만두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남편과 사이 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인생과 삶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평소 무심한 시아버지였지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고맙다. 정말 감사하다. 너희 가정이 항상 행복하기 바란다.”

▎발리에서 래프팅을 하는 원철우 사장 가족. 뒤편 왼쪽이 원철우 사장.

▎발리에서 래프팅을 하는 원철우 사장 가족. 뒤편 왼쪽이 원철우 사장.



원철우 듀폰코리아 사장이 가족에게

한 해 가장 고마운 사람이 아니라 평생 가장 고마운 사람을 물어도 가족이라 말하겠습니다. “모든 것은 가족이 중심이다. 가족이 먼저고, 다음이 회사다.” 늘상 직원들에게 해온 말입니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2008년 여름에 가족들과 발리에서 래프팅할 때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 속에는 래프팅하면서 갑자기 급류를 만나 배가 앞으로 꼬꾸라지려는 순간, 가족들이 서로 넘어지지 않도록 꼭 잡아주는 모습이 있습니다.

배 앞 오른쪽에 탄 아들은 여동생의 팔을 잡고, 여동생은 오빠의 다리를 잡고 있습니다. 뒤편에 탄 저희 부부 역시 서로를 잡고 의지하고 있습니다. 당시 머릿속에는 아내가 물에 빠질까 하는 걱정 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이 아닌, 옆에 탄 가족을 보호하고자 했던 가족애가 담긴 사진이라 항상 책상에 두고 보고 있습니다.

기업 CEO는 쉽지 않은 자리입니다. 험난한 격류를 헤쳐나가는 배의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며 조직원을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파김치가 되어 집에 옵니다. 가족이 있습니다. 하루의 시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삶에 대한 감사가 충만해집니다. 지금은 아들과 딸 모두 대학생이 됐습니다. 미국 유학 중이라 이젠 만나기도 힘들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그 존재만으로 행복을 준다는 것을 부모는 알 것입니다. 지금 제가 이만큼 살고 있는 것은 모두 우리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가족에게서 오는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에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난 5월 창립 16주년 기념 청계산 산행.뒷줄 오른쪽에서 둘째가 남기령 대표.

▎지난 5월 창립 16주년 기념 청계산 산행.뒷줄 오른쪽에서 둘째가 남기령 대표.



남기령로얄코펜하겐 대표가 고생한 직원들에게

올해가 아직 꽤 남아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올해 목표들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앞만 보고 있었습니다. “올해 고마운 사람은 누구인가요”란 질문을 받고 지난 10개월을 돌아보며 숨을 고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소비 경기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리테일 비즈니스의 위기가 커졌지요. 업무와 일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랬던 2010년을 돌아보며 고마운 사람을 생각하니, 함께한 직원들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지난해 송년 모임 때 2010년을 맞이하는 각오를 주제로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한국 지사가 1994년 설립됐으니, 이제 16년이며 사람으로 치면 청소년기에 해당한다. 그에 맞게 이제 우리 회사도 브랜드 인지도 향상과 매출 성장에 노력을 다하자.” 이런 열정과 희망으로 경인년을 맞았지요. 재미있는 송년회 의상 중 2010년이 호랑이띠라며 호랑이 옷을 입었던 직원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떠오릅니다.

“시작이 반이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출발이 중요한데, 시작부터 뜻하지 않은 시련이 발목을 잡아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상반기에는 소비시장이 얼어붙고, 기업들의 선물 제안도 줄었습니다. 특히 핸드 페인팅으로 생산되는 제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매출이 줄고, 제품 공급이 지연돼 상당한 영업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저와 직원들 간에, 그리고 직원들 간에, 덴마크 본사와 한국 지사 간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기운이 퍼졌습니다.

5월 창립 행사로 청계산 등산을 결정했습니다. 등산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사실 저도 등산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모임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든 빠지려고 하지요. 5월이었는데도 무척이나 아침 공기가 쌀쌀하던 날 약속 시간, 장소에 모두 왔던 직원들이 무척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정상에 함께 오르고 회식 자리에서 직원들의 마음에서 진정 우러나왔던 애사심과 우리 제품에 대한 애정에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선택과 집중을 위해 매장을 닫은 일도 있습니다. 10년 넘게 함께했던 직원이 회사를 떠날 때는 미안함과 고마움, 아쉬움으로 가슴이 아렸습니다. 하반기가 되면서 위기 상황에 대응해 직원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더 많이 뛰고 노력한 데 감사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직 샴페인을 터트리기에는 이릅니다. 한마음으로 한 목표를 향해 나갈 때 올해가 서로 협력해 위기를 잘 극복한 해로 기억되리라 믿습니다. 청소년은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합니다. 그런 시기를 함께한 모든 직원에게 감사와 격려를 보냅니다.

▎박종규 대표(왼쪽)와 김현욱 본부장

▎박종규 대표(왼쪽)와 김현욱 본부장



박종규 유리자산운용 대표가

김현욱 주식운용본부장에게


7월 1일자로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을 떠나 유리자산운용의 경영을 맡게 됐습니다. 유리자산운용은 과거 인덱스펀드의 명가로 불릴 만큼 인덱스와 중소형주 운용에서 탁월한 성과를 나타냈습니다. 최근 한두 해는 운용 성과가 다소 부진했지요. 어려운 시기에 경영을 맡은 만큼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과거의 명성을 되찾는 게 급선무였습니다.

3개월 동안은 조직 재정비에 몰두했습니다. CEO라면 누구나 기업의 최고 자산으로 인재를 꼽을 겁니다. 특히 운용사에서는 운용 성과가 경영의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그만큼 훌륭한 펀드매니저를 보유하는 게 중요하죠. 자리를 옮기면서 가장 고심했던 부분이 운용의 핵심인 주식운용본부장을 선택하는 문제였습니다.

축구에 비유하면 주요 공격수인 박지성이 필요했지요. 성실하게 그라운드를 누비며 팀(운용)에 활력을 불어넣을 뿐 아니라 결정적 순간에 골(수익률)을 넣는 해결사 말입니다. 그렇게 찾은 사람이 지금의 김현욱(39) 주식운용본부장입니다. 미래에셋자산운용과 KB자산운용 팀장을 거쳐 7월 말 저희 회사에 스카우트됐습니다. 운용업계에서는 가장 젊은 주식운용본부장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니 김 본부장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네요. 사실 김 본부장은 운용업계에서는 누구나 탐내는 역량과 열정이 뛰어난 펀드매니저입니다. 4년 전 후배 펀드매니저 소개로 알게 됐습니다. 사석에서 교분을 쌓으며 펀드 운용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알면 알수록 운용철학이나 일에 대한 자세 등 모든 면에서 저와 통하는 점이 많았습니다. ‘함께 일해 보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었지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겠더군요. 대형 운용사에서 잘나가는 인재를 운용자산 규모가 훨씬 작은 회사로 오라고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가 부담이 되지 않도록 다른 사람을 통해 조심스럽게 의향을 타진해 봤습니다. 의외 그날 바로 “존경하는 선배와 일해 보고 싶다”는 답이 왔습니다. 저를 믿고 유리자산운용 재도약에 흔쾌히 동참해준 김 본부장이 고맙고 마음 든든합니다. 경험이 풍부한 데다 젊고 참신하기 때문에 굉장히 잘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미 제 예상이 맞은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그가 운용 총괄을 맡으면서 펀드 실적이 빠르게 좋아지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의 대표 펀드인 유리스몰뷰티펀드(11월 10일 기준)의 최근 1개월 수익률이 9.64%로 국내 1060개 액티브펀드 중 1위를 기록했습니다. 서서히 과거 명성을 되찾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남상인 관장과 아카몬 사장(왼쪽).

▎남상인 관장과 아카몬 사장(왼쪽).



마이크 아카몬 GM DAEWOO 사장이



남상인 관장에게


2009년 10월 부임 이후 경영 현황을 파악하고 임직원을 득려하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한 달 후 인천에서 일상적인 기업 경영과는 조금 다른 성격의 행사가 있었습니다. 지역사회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기관에 저희 차량을 기증하는 자리였지요. 그 자리에서 남상인 인천여성인력개발센터 관장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사회공헌은 GM DAEWOO가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입니다. 성장을 위해서는 나눔이 필요합니다. 지역사회에 기반을 두고 있는 기업이라면 당연히 지역을 위한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엠대우한마음재단을 운영하는 이유지요. 남 관장님은 지역 여성들의 취업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오신 분입니다. 이 중에는 가정에 어려운 일이 생겨 여성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분도 계십니다. 이분이라면 저희 자동차를 이웃을 위해 의미 있게 사용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증 행사에서 남 관장님을 만난 다음 저의 마음에는 더 큰 확신이 들었습니다. 겸손하고 성실한 분이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행사를 더욱 확대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실제로 GM DAEWOO는 올해도 차량 기증식을 열고 서른다섯 대의 경차를 전국 사회복지기관에 전달했습니다. 좋은 만남이 가져올 수 있는 좋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참, 지난번에 전해주신 한국 전통 공예품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선물을 볼 때마다 관장님의 온화한 미소와 한국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어 늘 곁에 두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눔의 행복을 알려주신 관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임재홍 팀장과 이상직대표 (오른쪽)

▎임재홍 팀장과 이상직대표 (오른쪽)



이상직 건영식품 대표가

임재홍 연구 팀장에게


법정관리 기간의 어려움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거래처는 멀어지고 자금도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를 살려 보자는 의지만이 유일한 희망인 시기입니다. 누구도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그 기간을 같이 이겨내준 직원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올해는 다시 창업하는 첫해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 특히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동료가 있습니다. 연구소의 임재홍 팀장입니다. 법정관리를 마치고 가야농장이라는 브랜드가 살아났음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에게 딸기주스라는, 음료수로 만들기 어려운 제품을 만들어 달라는 임무를 주었습니다. 하얀 타일과 실험기구로 둘러싸인 적막한 공간에서 시제품을 만들고 마셔 보고 다시 만드는 지겨운 과정을 그는 묵묵히 이겨냈습니다.

본사와 연구소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의 옆에서 고충을 들어줄 수도 없었기에 멀리서 안타까운 응원만 열심히 했습니다. 드디어 완성된 제품을 만났습니다. 그 한 병에 임재홍 팀장의 수천 번의 시도가 있었음을 알기에, 또 그 한 병이 법정관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임을 알기에 감정 표현이 서툰 나이지만 이 지면을 빌려 감사하고 수고 많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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