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소설 주인공 같은 기업가 친샤오

소설 주인공 같은 기업가 친샤오

▎친샤오 자오상은행 전 회장은 2001년 12월 자오상그룹 회장과 자오상은행 회장을 동시에 지낸 뒤 2010년 9월 자오상그룹 회장을 사임했다.

▎친샤오 자오상은행 전 회장은 2001년 12월 자오상그룹 회장과 자오상은행 회장을 동시에 지낸 뒤 2010년 9월 자오상그룹 회장을 사임했다.

가장 이상적인 기업가는 어떤 모습일가? 이제껏 누구도 이 주제를 다룬 적이 없다. 일단 이 주제와 관련되면 복잡한 논쟁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도 자신의 소설 『최후의 완벽한 세계(The Last of All Possible Worlds)』에서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 기업가에 대한 기대를 은유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드러커가 ‘귀족’이라고 부르는 이런 종류의 인물은 19세기와 함께 이미 종적을 감춘 것 같다.

피터 드러커는 한 오스트리아 거상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목표를 바꾸지 않았다. 자유롭고 공정한 사회, 즉 젊은 시절 우리가 1848년 혁명기에 꿈꿨던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혁명가다. 내가 지난 40년 동안 세워 올린 건물들 모두 하나의 혁명 선언이다. 목표는 인간적 생존환경을 만들고, 바로 이런 환경 속에서 사람들이 머리를 쳐들고 가슴을 쭉 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는 기업을 통해 ‘세계를 개혁하려는’ 자신의 꿈을 연장했다. 그는 ‘최후의 완벽한 세계’가 사라진 후 나타난 돈만 추구하는 그런 기업가들과 달랐다. 그들은 사업상의 천부적 재능과 화려한 업적만 물려받았다. 설사 오스트리아, 더 나아가 전 유럽에서 가장 좋은 머리를 가졌어도 돈과 극히 편협한 일에만 관심이 있거나 자신의 좋은 머리를 돈 버는 데만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세계 개혁의 꿈’을 꾸는 그런 사람들은 이상은 높지만 현실과 맞지 않아 큰일을 이루기 어려운 법이다.

 



오상그룹 부동산·금융·해운 아울러오늘날 중국에서 많은 기업가도 자신이 지식인이기를 꿈꾼다. 사업적 재능과 사회 개혁의 꿈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들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각종 사회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열정적으로 피력한다. 마치 돈을 가장 많이 번 사람이 세상에 대한 견해도 가장 정확한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대중도 이런 억만장자들로부터 우리가 직면한 복잡한 문제들, 예를 들면 집값과 환율변동부터 교육개혁과 가정행복에 이르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법을 듣기를 기대한다.

자오상(招商)은행의 친샤오(秦曉·63) 전 회장은 드물게 경영인과 지식인 이 두 가지 역할 모두가 가능했던 사람이다. 그처럼 열정적으로 중국의 운명과 현대화, 개혁을 논하는 기업인은 드물다. 그는 또 진심으로 이런 주제들을 좋아한다. 이건 그의 강연이나 글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강연과 글은 현실적인 사업적 재능 외에도, 용기와 열정 그리고 지식과 재능을 필요로 한다.

피터 드러커가 묘사한 이상적인 기업가처럼 친샤오도 젊었을 때부터 유토피아의 존재를 믿었다. 드러커의 이상적 기업가와 친샤오를 비교해 보면 그들은 모두 혁명 속에서 태어났다. 전자는 격렬했던 프랑스 혁명이고, 후자는 똑같이 격렬했던 중국의 혁명이다. 두 혁명 모두 이상적 국가와 사회 건립을 목표로 삼았다. 그들은 모두 명문가 출신으로 친샤오 측은 상대적으로 전통이 짧을 뿐이다. 드러커의 기업가는 일찍이 오스트리아 정부 내각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친샤오도 일찍이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일하며, 정치권력의 핵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드러커의 기업가는 도시 건설로 사업을 시작하고, 이어서 부동산업과 금융, 여행, 투자 사업에 뛰어들어 결국 유럽에서 가장 방대한 상업 제국을 일으켜 세운다. 친샤오는 중국의 국유기업을 일으켜 세웠는데, 처음에는 중신(中信)에서 일했고, 이어서 자오상그룹으로 옮겼다. 자오상은행은 중국 내 자산규모 2위(국영은행 제외)다.

그는 자오상그룹에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회사 총자산이 4배 이상 증가했고 모회사 이윤 증가폭이 약 20배에 이르렀다. 연평균 성장률은 40%였다. 총자산 496억 위안, 부채 233억 위안으로 거의 도산할 뻔한 국유기업이 그가 경영하는 동안 자산 규모 2700억 위안인 거대한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부동산, 금융, 항만, 선박운송 등의 사업에까지 진출하게 된다. 비록 그가 근무한 곳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국유기업이지만 그가 만들어낸 성과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친샤오는 자신이 꿈꾸는 아름다운 사회를 그의 사업과 결합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신앙을 결코 사업에 투영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분리해 생각했다. 그는 국유기업 경영자였지만 지식인으로서 그는 국유기업이라는 특수한 기업 형태에는 근본적으로 반대했다.

그리고 민영기업이 발전하도록 지지를 호소했다. 공산주의 명문가 출신인 그는 중국을 열렬히 사랑했고, 자신의 사회적 신분에 걸맞은 인생을 63년간 살았다. 하지만 지식인으로서 그는 권력자본주의, 즉 중국식 정부 주도의 경제발전에 반대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공산주의 속에서 태어났지만 오히려 자유주의적인 가치의 신봉자가 됐다.



지천명 지나 영국에서 박사 과정사람들은 그가 선택한 것이 일종의 일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성향은 ‘체제 내 개혁파’다. “나는 체제 밖에서 체제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나는 현재 체제 내 일부 사람이 밖으로 나와 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최소한 우리는 자신이 속한 체제의 개혁에 관해 주목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그는 나이를 이유로 자오상그룹을 떠나면서 신분상 보다 자유롭게(국유기업 경영자가 아닌) 대중과 만나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보자면 상당히 격렬한 논조의 연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개혁이 정체에 빠졌으며 다시 개혁에 돌입해야 한다는 의제였다. 그의 어조는 드러커의 이상적 기업가와 닮아 있었다.

친샤오는 훌륭한 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50세가 넘은 나이에도 케임브리지대로 가 박사 과정을 밟았고 영어로 직접 논문을 썼다. 그는 당 간부 출신이지만 수많은 사회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조금도 굽히지 않는다. 중국의 국유기업 개혁과 금융개혁, 시장화 등에 대한 그의 관점이 좋은 예다. 특히 친샤오가 국유기업 개혁과 금융개혁을 진행한 점은 그가 학자로서 중국과 세계사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친샤오와 같은 기업가는 다시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번역=도옥란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렐루게임즈, AI 추리 게임 ‘언커버 더 스모킹 건’ 데모 출시

2DGB금융그룹, 계열사 사명 ‘iM’으로 변경

3‘숏폼’ 콘텐츠가 대세로…SOOP “VOD 절반은 유저들이 만든 숏폼”

4‘오딘’ 개발사 라이온하트 스튜디오, ‘발할라 서바이벌’ 정식 로고 공개

5 한덕수 총리 "北 군정찰위성 발사 규탄…엄정 대응"

6LG유플러스 아이들나라, 모바일 넘어 ‘스마트 TV’에서도 즐긴다

7삼성자산, KODEX 미국 투자 타깃프리미엄 월배당 ETF 2종 상장

8빔웍스, 신용보증기금 ‘퍼스트펭귄’ 선정

9출석만으로 상금 기회 얻는다…토스뱅크 도전통장 출시

실시간 뉴스

1렐루게임즈, AI 추리 게임 ‘언커버 더 스모킹 건’ 데모 출시

2DGB금융그룹, 계열사 사명 ‘iM’으로 변경

3‘숏폼’ 콘텐츠가 대세로…SOOP “VOD 절반은 유저들이 만든 숏폼”

4‘오딘’ 개발사 라이온하트 스튜디오, ‘발할라 서바이벌’ 정식 로고 공개

5 한덕수 총리 "北 군정찰위성 발사 규탄…엄정 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