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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난마 한국교육의 해법

쾌도난마 한국교육의 해법



조 우 석최근 전철이나 버스 등을 타고 이동할 때 틈틈이 읽었던 책은 동국대 석좌교수 조벽(전 미시간 공대 교수)의 ‘인재 혁명’(해냄출판사 펴냄)이었다. ‘대한민국 인재 교육을 위한 희망선언’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을 밑줄 치며 읽었고, “맞아 맞아!”를 연발했다. ‘교육계의 마이클 조던’으로 불리는 그는 미시간주 최우수 교수상, 미국공학교육학회 교육자상 등을 수상했던 교수법의 권위자다. 그렇다고 책에서 미국식 교수법이나 교육철학 등을 나열하는 데 그쳤더라면 감탄할 일은 없었으리라.

책 전체가 세계 최고의 교육열 때문에 몸살 앓는 대한민국 교육현실의 진단과 처방인데, 그게 설득력이 컸다. 아마도 최근 나온 교육서 중에서 가장 포괄적이지 않을까 싶다. 물어보자.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까지 나서서 한국의 교육열을 칭송했는데, 왜 우리는 그 때문에 끌탕일까? 해법은 있을까? 전 국민이 교육전문가를 자처하는 이 사회에 주는 암시는 무엇일까? 있다. 책의 앞부분 저자가 밝힌 ‘영민이 이야기’는 시사하는 게 많았다. 그는 미 명문대 입학자의 무려 44%에 달하는 중퇴자 중 한 명이다.

우울한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국내 명문고를 졸업한 뒤 미 스탠퍼드대에 유학 간 영민이는 뜻밖에도 대학 2년 차에 중퇴해야 했고, 현재 국내에 숨어들 듯 돌아와 산다. 조벽 교수에 따르면 영민이는 한국형 우등생의 전형이다. 학원도 잘 다녔으며, 성적도 좋았다. 그 결과 미 명문대 입학허가서를 척 받았을 때 주변에서 한결같이 말했다. “너, 잘될 줄 알았다.” 현재는 극과 극이다. 그럼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영민이는 현지 대학에서 강의를 따라가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일상생활이었다.

우리나라 학생이 초·중·고 12년 동안 연습한 ‘문제’만 해도 100만 개에 달한다.
우선 미국인 친구 만들기가 만만치 않았다. 한국에서라면 동기·동창생 사이라는 게 저절로 친구 사귀는 네트워크였지만, 그곳은 달랐다. 같은 처지의 한국인 유학생이 너무 많은 사실도 문제였다. 그들과 줄곧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밤늦게 라면 끓여 먹으며 ‘노인네 같은 한국 추억담’만 나누기 일쑤였다. 추억거리도 떨어지자 무료하던 차, 술과 카드놀이를 시작했다. 나머지 코스는 뻔했다. 이내 돈내기로 발전했고, 주말이 아니라 주중에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였다.

밤새 놀다가 수업을 빼먹기 시작했고, 시험은 벼락치기로 때우려 했다. 그것도 한두 번, 결국 너무 많은 과목에서 F학점이 나왔다. 학사경고에 이어 마음에서 공부가 멀어졌다. 식어버리니 다시 정 붙이기 힘들었다.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달래는 술 실력만 늘어갔다. 현재 영민이는 국내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영민이 이야기는 한국교육 전체를 향한 질문으로 연결돼야 한다. 왜 한국 학생들은 국내에서는 최고, 글로벌 무대에서는 이류인가? 저자의 말은 한국사회가 치르는 너무 높은 기회비용의 차원에서라도 경청해야 한다.

“초·중·고 12년간 ‘국비 장학생’인 셈이었던 영민이가 생산적인 시민으로 성장하지 못했으니 국가 차원에서도 큰 손해입니다. 가장 애타는 점은 영민이와 같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입니다. 미국 명문대에 입한 한국 학생 10명 중 4.4명이 중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중퇴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일류급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밑으로 추락하는 학생이 10명 중 3~4명은 될 것입니다.”(19쪽)

다행이다. 유학생 중에는 영민이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에서는 지방대학에 갈 학생이 미국의 ‘열린 교육 시스템’에서 놀랍도록 성공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다른 과목은 평균 이하였지만 책 읽기를 좋아하고 국어 과목에는 상위권이던 한 학생이 그런 경우다. 그는 입학하기 쉬운 미국 이류급 대학을 고르고 많은 학생을 받는 비즈니스 학과를 지원해 일단 안착에 성공했다. 물론 전략이 따로 있었다. 미국 생활에 적응한 뒤 명문대 대학원 언론학과 진학을 노리는 것이었다. 그게 통했다.

첫 유학을 간 곳은 이류대학이라서 한국 유학생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 적응에 노력했고 성적도 따라줘 우등으로 졸업했다. 이후 소원대로 명문대 대학원에 진학해 언론학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지금 그는 미 대기업 기획부서에서 근무한다. 그 점이다. 저자의 지적에 따르면 국내 교육은 고3때 성적이 꼬리표가 되어 죽을 때까지 따라 다닌다. 즉 패자부활전과 리셋(reset)기능이 없다. 더 큰 문제는 교육을 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즉 문제가 된 입시제도와 사교육비 문제는 국내 교육의 표피적 증상이다.

몸에 열이 난다고 구조적 속병의 원인을 제쳐두고 해열제만 투여한다면 올바른 처방이 못 된다. 미국은 물론 영국·프랑스·독일에서 교육 개혁을 추진하지만, 그들은 엄연히 목표가 있다. 미국의 경우 백악관 홈페이지에서도 교육 혁신의 목표를 이렇게 선언했다. “모든 학생이 새로운 글로벌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21세기형 교육을 제공하는 것.” 반면 국내에서는 명문대 입학이라는 단기 목표가 최우선이고, 부모는 닦달하며 자녀는 고통 받는 구조다.

“1970~90년대 재미동포가 많이 사는 미국 주요 대도시의 한인 신문은 졸업시즌마다 자랑스러운 소식으로 앞면을 도배했습니다. ‘고 수석 졸업생 김 아무개 하버드대 입학’‘ 고 수석졸업생 이 아무개 양 예일대 입학’ 등 고등학교 수석 졸업생을 한국 학생들이 싹쓸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라면 20년 후에는 미국 주류사회 리더십에 한국인이 대거 진출하리라 기대했습니다. 현재 그 인재는 다 어디에 있는 걸까요? 지극히 소수만 미국 주류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170쪽 발췌)

국내의 경우 학생이 초·중·고 12년 동안 연습한 이른바 ‘문제’가 100만 개란다. 문제 풀이에서는 도사다. 수능시험에 복수의 답이 나올 경우 나라가 발칵 뒤집어진다. 하지만 지식기반 사회에는 창의력이 핵심이며, 다양한 가능성을 추구하는 발산적 사고력이 필수다. 어떻게 하면 학생에게 정답 없는 열린 문제를 풀 기회를 많이 만들어줄까? 조벽 교수의 ‘인재 혁명’은 그걸 묻는다. 어떻게 교육에 그런 구조를 만들어 줄까?

그래서 책은 쉽게 읽히지만, 문제의식만은 천근만근이다. 그리고 절실하게 다가온다. 한국 현실에서 교육에는 백약이 무효라고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이 우선 읽어야 할 듯하다. 한번은 저자가 청와대 초청을 받아 교육문제를 피력할 일이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과의 독대였다. 하지만 대화는 별 소득이 없었다는 게 저자의 고백이다. 대통령의 관심이 온통 입시제도와 사교육비 문제에 쏠려있어 다른 말을 주고받을 분위기가 못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청와대 식구와 교육정책 담당자부터 이 책을 읽어야 한다.

[필자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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