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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BIGBANG] 미디어 빅뱅 시작됐다

[MEDIA BIGBANG] 미디어 빅뱅 시작됐다

2010년 마지막 날 방송통신위원회는 종합편성채널사업자로 중앙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 4곳이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신문사의 방송사업 진출을 허용한 2009년 미디어법 통과 이후 1년6개월 만에 수많은 정치적 논란을 뒤로하고 미디어 빅뱅이 현실화됐다. 2011년 지상파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진 4개 종편사업자의 방송시장 진입으로 미디어산업 지형의 대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일반적 케이블TV 방송의 프로그램 공급자(PP)는 특정 장르에 집중해 전문 편성을 한다. 반면 방송법 제2조 18호에 따르면 종합편성이란 ‘보도, 교양, 오락 등 다양한 방송 분야 상호 간에 조화를 이루도록 방송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을 말한다. 즉 종편사업자는 기존 지상파와 유사한 방송 편성을 할 수 있다. 일반적 PP가 일정 요건만 갖추면 등록 절차를 거쳐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것에 비해 종편사업자는 허가를 필요로 한다. 종합편성이라는 개념이 2001년 방송법에 등장한 후 2010년 처음으로 선정이 이뤄진 것이다.

방통위가 내세운 종편 도입의 정책적 목표는 콘텐트 시장 활성화, 시청자 선택권 확대, 방송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 등이다. 국내 유료방송산업은 1995년 종합유선방송이 시작된 후 외형적 성장을 이뤘으나 기형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유료방송의 본질은 지상파 방송과 차별화되는 프로그램을 제공해 유료방송에 대한 지불가치를 높여 시청자로 하여금 시청료를 지불하게 하는 구조다. 현재 국내 케이블TV 시청가구가 한 달에 지불하는 평균 시청료(Average Revenue Per Unit)는 달러 기준으로 7달러다. 70달러인 호주, 45달러인 미국은 물론 12달러인 인도네시아, 필리핀보다 낮다.

케이블방송 초기 중계유선방송의 실체를 무시한 종합유선방송 정책에 따라 국내 유료방송시장은 저가 경쟁의 늪에 빠졌다. PP는 낮은 수신료 수입을 거의 포기한 채 광고 수입에 매달리게 됐다. 지상파와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만들기보다 이미 지상파에서 안정된 시청률을 올린 연예, 오락 프로그램을 순환 편성하는 것이 PP 입장에서는 훨씬 수지타산이 맞았다.

유료방송에서 저가 수신료가 고착된 상황에서 PP는 제값을 받기가 어려운 자체 콘텐트 제작을 기피한다. 대신 수급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프로그램 편성으로 광고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다. 결국 지상파와 차별화된 프로그램 제공으로 시청자의 지불 의사를 높이지 못한 채 볼거리를 제작하지 못하는 악순환 구조에 빠져 있다.

방통위가 내세운 종편 도입의 가장 큰 목적은 악순환 구조에 빠진 국내 유료방송산업을 종편사업자의 경쟁력 있는 콘텐트로 정상화하는 데 있다. 나아가 콘텐트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글로벌 미디어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대 신문사들이 종편 선정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 속사정은 따로 있다. 물론 우수한 보도 콘텐트 제작 인력을 갖춘 신문사들이 방송으로 영역을 넓혀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측면도 있다. 보다 절박한 사정은 신문사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급격하게 악화된 까닭이다. 인터넷 보급이 확산된 이후 전통적으로 신문이 해왔던 의제설정 기능은 포털의 몫이 돼 가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점점 종이신문을 멀리하고 PC나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뉴스를 소비하고 있다. 신문사 입장에서는 방송 영역으로의 사업 다각화가 피할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 확대 기대주요 언론사들이 종편사업에 뛰어들면서 심사 방식에 관해서도 논란이 많았다. 미리 사업자 수를 정해 놓고 우수한 사업자를 선정하는 상대평가와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사업자를 모두 선정하는 절대평가 방식이 검토됐다. 결국 특혜 시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절대평가 방식이 채택됐다. 방통위가 종편사업자 선정 일정을 지나치게 지연시키는 과정에서 언론사들은 인력을 스카우트하고 상당한 비용을 지출했다. 탈락 사업자에 대한 부담을 안게 된 방통위는 절대평가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전문가가 국내 방송광고 시장 규모를 고려할 때 적정한 종편사업자 수를 1~2개로 예상했지만 정작 4개가 선정되면서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종편 채널 출범이 가져올 변화를 보면 시청자 측면에선 긍정적 효과가 커 보인다. 무엇보다 종편사업자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시청자의 선택권이 확대될 전망이다. 2010년 시청자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슈퍼스타 K2’처럼 지상파 방송과 차별화된 프로그램이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한다. 2시간짜리 드라마, 심층보도 프로그램 등 기존 지상파 방송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프로그램 제공을 종편사업자들이 사업계획서에서 약속하고 있다. 이 제안대로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과 차별화된 프로그램들이 나온다면 기형적 국내 유료방송 시장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약속들이 방송시장에서 제대로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당초 예상보다 많은 4개 사업자가 선정되면서 국내 방송시장의 레드오션화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국내 방송광고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면 사업자가 많아지더라도 각자의 몫이 커질 수 있다. 문제는 방송광고 시장 규모가 획기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데 있다.

국내 광고시장 규모는 2010년 GDP의 0.7%인 8조원대다. 방통위는 중간광고, 가상광고, 간접광고, 광고총량제 허용 등 규제 완화를 통해 2015년까지 GDP의 1%인 13조원까지 광고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동안 광고비를 가장 많이 쓴 국내 대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비중이 커졌다. 점차 국내뿐 아니라 해외 광고 비중을 늘리고 있어서 국내 광고시장 규모가 커질지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결국 한정된 시장에서 늘어난 방송사업자 간 이전투구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면 양질의 콘텐트를 제공하기보다 시청률 경쟁에 매몰돼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선보일 수 있다.

사업 시작과 더불어 맨 먼저 부닥치게 될 문제가 채널 번호 지정이다. 초기 종편 채널의 방송시장 안착을 위해 종편사업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낮은 채널 번호를 요구하고 있다. 결국 현재 지상파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홈쇼핑 채널을 모아 다른 번호대로 옮기고 그 자리에 종편을 집어넣는 시나리오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왜곡된 국내 유료방송시장에서 홈쇼핑 5개사가 1년에 유선방송사업자에게 지불하는 송출수수료는 3000억원이 넘는다. 홈쇼핑사의 송출수수료가 국내 유료방송 시청자가 지불해야 할 수신료를 보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송출수수료라는 것이 결국 자리 값인데 홈쇼핑 채널들이 지상파 사이에서 빠져 다른 번호대역으로 옮기면 매출이 줄어들 것이다. 결국 송출수수료가 줄어들면 국내 유료방송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시청률 경쟁 벗어나 콘텐트로 승부수사업자 선정 결과에 대한 기쁨도 잠시다. 이제부터 고민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장기적으로 사업자 간 M&A가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에서 종편사업자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첫째, 종편사업자의 가장 큰 핵심 경쟁력은 양질의 콘텐트 생산에 달려 있다. 지상파 방송과 차별화되는 뛰어난 콘텐트를 지속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역량이 종편사업자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둘째, 진정한 글로벌 미디어 사업자로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유지할 능력을 갖출 수 있을지도 중요하다. 한정된 국내시장 경쟁을 뛰어넘어 글로벌 미디어 시장을 겨냥해 콘텐트를 제작하고 이를 마케팅하는 데는 글로벌 미디어 기업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이 중요하다. 세계 유수의 글로벌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셋째, 단기간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장기적으로 사업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역량과 전략이 필요하다. 흥행의 불확실성이 있는 방송시장에서 초기에 무리한 투자가 실패로 이어지면 장기적으로 좋은 실적을 내기 어려워진다. 마지막으로 고객과의 지속적 관계 형성이다. 스마트폰, 스마트TV 등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미디어 기업의 가치는 고객과의 관계 형성에 달려 있다. 기존의 신문사 경영 마인드로는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다. 과감하게 기존 경영방식을 탈피해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합한 마케팅 노력을 지속적으로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종편 선정 결과가 축복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모 일간지 사주의 이야기처럼 종편사업자의 앞날은 2011년 현재 불투명하다. 그렇다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시청자가 목말라했던 유료방송의 뛰어난 콘텐트가 제공돼 종편사업자와 시청자가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미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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