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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ITY] 활짝 핀 산티아고

[THE CITY] 활짝 핀 산티아고

노벨 문학상을 받은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 최근 이상한 일이 생겼다. 모두 도망치고 싶어하던 도시에서 모두 가보고 싶어하는 도시로 단기간에 탈바꿈했다. 몇몇 잡지에서는 세계 최고의 관광지 중 하나로 뽑히기도 했다. 이 도시를 사랑하는 현지 주민으로선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둥절할 뿐이다. 나도 그중 하나다.

몇 달 전 단골 식당에 갔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던 곳이다. 하지만 식당 안은 영어와 포르투갈어를 쓰는 외국인들로 붐볐다. 한편으론 뿌듯하기도 했지만 호젓하고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식당 한 곳이 없어졌다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난 그 식당에서만 내놓는 특별 메뉴를 주문했다. 남부 마가야네스 지방에서 나는 신선한 게와 양고기로 만든 요리였다. 산티아고는 더 이상 세상 끝에 있는 보잘것없는 도시가 아니었다. 호기심 많은 관광객과 투자자들이 모여드는 명소가 됐다.

2010년 세계의 거의 모든 증시가 하락했지만 산티아고 증건거래소의 주가는 30% 가까이 올랐다. 10년 전만 해도 산티아고는 칠레의 다른 관광명소로 가는 길에 잠시 들르는 기착지에 불과했다. 남부 지방의 웅장한 화산과 백색금(화이트 골드) 색깔이 도는 남극의 눈, 하늘의 거대한 거울 같은 호수들, 송어와 연어 낚시를 즐길 수 있는 강, 고요 속에 무한한 가르침을 얻게 되는 북부의 사막 등이다. 하지만 이제 산티아고는 관광객의 기착지가 아닌 목적지가 됐다. 라틴 아메리카의 신데렐라에서 공주로 거듭났다.

경제 발전으로 생겨난 부유한 신시가지 프로비덴시아에는 멋진 건물과 현대적인 분위기가 넘친다. 이 지역은 촌스럽던 산티아고에 대도시의 면모를 부여했다. 일부 낙관적인 산티아고 시민은 뉴욕의 맨해튼을 떠올리며 이 지역에 ‘산해튼(Sanhatta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고급 호텔이 즐비한 산티아고 교외의 바리오 알토에는 부유한 관광객들이 북적댄다. 호화로운 상점마다 유럽의 최신 패션 아이템이 가득하다. 또 근처의 공예 마을 푸에블리토 데 로스 도미니코스는 다른 세기의 시장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다운 보석과 재킷·블라우스 등 의류, 악기, 새, 그림 등이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산티아고는 또 좁고 긴 칠레 지형의 이점을 가장 잘 누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스키장이 있고, 100km만 가면 아름다운 해변이 나온다. 또 세계적으로 유명한 칠레 포도원들도 50km 거리에 있다. 사실 칠레 곳곳의 포도원을 돌아보려는 와인 애호가들이 새로운 관광객으로 등장했다. 포도원을 돌며 와인을 맘껏 마셔도 걱정 없다. 밴과 버스로 호텔까지 데려다줄 운전기사가 상시 대기 중이니까 말이다.

산티아고는 또한 위대한 시(詩)의 도시이기도 하다. 노벨상을 받은 칠레 출신의 두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과 파블로 네루다에 대한 찬양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네루다는 최근 몇 십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으로 꼽히며 그의 집들은 관광명소가 됐다. ‘차스코나(Chascona)’ 라고 이름 붙여진 산 크리스토발 언덕 기슭의 집은 시인이 아니라면 꿈도 못 꿀 기발한 건축물이다. 네루다의 또 다른 집은 산티아고에서 자동차로 1시간 15분 거리에 있는 이슬라 네그라라는 마을에 있다. 푸른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이 집에는 난파선의 거대한 선수상(船首像: 뱃머리에 붙이는 장식용 조각) 등 네루다가 평생 모은 수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시의 여신들과 함께 네루다의 신경세포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기분이 든다.

산티아고는 가난이나 지나친 현대화로 황폐해진 칠레의 여느 도시들과는 다르다. 벨라비스타 광장과 브라질 광장 등 구시가지엔 젊은층이 자리 잡았다. 그들은 건물 내부를 생활에 편리하도록 개조하면서도 외관은 과거의 모습을 보존했다. 산티아고가 현대의 편리함과 과거의 전통을 동시에 지니게 된 비결이다.

물론 북부의 산호세 광산에서 사고로 매몰됐다 극적으로 구조된 광부들도 잊어선 안 된다. 이 33명의 광부는 국제 뉴스의 헤드라인으로 떠오르면서 세계의 이목을 칠레에 집중시켰다. 이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언론의 인기 소재다. 이들 중 몇몇은 유럽 여행의 혜택을 누렸고 몇몇은 디즈니랜드에 초대됐다. 칠레에 그냥 남아있던 광부들도 TV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올리비아 뉴튼 존의 산티아고 콘서트에서 그녀와 함께 뮤지컬 ‘그리스’에 나온 ‘Summer Nights’를 부르는가 하면 ‘배철러(Bachelor)’ 스타일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해 젊은 여성의 마음을 사려고 다른 출연자들과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필자는 ‘무용수와 도둑(The Dancer and the Thief, 스페인어 원작을 앤드루 배스트가 영역했다)’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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