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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원가절감 ‘생각이 힘’이다] 설탕회사와 화학업체의 궁합은?

[신(新)원가절감 ‘생각이 힘’이다] 설탕회사와 화학업체의 궁합은?

대기업 A사의 한 지방 공장은 혁신적 원가절감 모델을 도입해 제조원가를 기존 대비 4% 정도 줄였다. 원가가 100원이었다면 96원으로 낮췄다는 얘기다. 노후 설비의 효율을 높이고 에너지 원단위(일정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데 드는 에너지 양)를 20% 정도 개선하면서 얻은 성과다. 원가절감 효과는 한 해 900억원 정도다. 그만큼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셈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대놓고 자랑하지 못한다. 회사 관계자는 “원가 개선을 했다고 보도가 나가면 공급업체 등에서 우는소리를 하며 이익을 나눠 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국내 기업은 다양한 원가절감 노하우를 쌓았다. 공급업체에 납품단가를 무조건 낮추라고 압력을 넣거나, 일회성 비용절감 운동을 벌이는 ‘쉬운 길’을 택하는 곳도 많지만 전략적 관점에서 원가절감을 시도하는 기업 역시 늘었다.



삼양사 반품 설탕 SKC가 구매A사처럼 대외에 홍보하지 않지만 혁신 프로그램을 도입해 효과를 톡톡히 보는 기업은 많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례가 폭넓게 공유되지 않을 뿐이다. 컨설팅 전문기업인 맥큐스의 유찬 사장은 “국내 기업의 원가절감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고 말했다.

원가를 줄이는 방식도 점차 다양해진다. 구조조정하거나 연봉을 깎고 출장비와 통신비, 소모품비를 줄이는 단순한 비용절감에서 벗어나 참신한 아이디어로 원가 경쟁력을 높이는 기업이 늘고 있다. 최근에는 이종업계를 벤치마킹하거나 다른 업체와 제휴해 원가를 줄이는 사례가 늘었다. 기업이 전통적 비용절감 방식에서 벗어나 폭넓게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SKC와 삼양사의 제휴가 좋은 예다. 삼양사는 포장이 훼손되거나 이물질이 들어간 설탕이 반품으로 들어올 경우 재처리해 왔다. 문제는 기존 제품과 품질 차이가 없는 반품을 재처리하는 데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폐기하기도 아까웠다. 고민 끝에 지난해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다. 반품 설탕을 SKC에 파는 것이다. 화학업체인 SKC에 왜 설탕이 필요할까? 일부 필름을 생산할 때 개시제(화학반응을 일으킬 때 필요한 부재료)로 설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SKC는 그동안 완제품 분말 설탕을 구입해 녹인 후 사용했다. 답이 나왔다. 삼양사의 반품 설탕을 SKC가 구매하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반품 설탕을 판매할 수 없을까’를 고민한 삼양사와 ‘설탕을 저가에 구매할 수 없을까’를 생각한 SKC의 합작품이다. 말 그대로 ‘윈-윈’이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SKC는 공장을 가동할 때 고압 증기를 많이 쓴다. 이를 위해 고가의 벙커C유를 사용해 고압 증기를 만들어 썼다. 그런데 인근 공장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곳이 있었다. KP케미컬은 저압 증기가 발생하는데 이를 모두 버렸다. 반면 코리아PTG는 고압 증기를 생산한 후 터빈을 이용해 저압 스팀으로 전환해 썼다. 한솔EME는 산업 쓰레기를 소각하면서 중압 증기 10t이 발생했지만 쓸모가 없어 모두 날려 보냈다. 한쪽에서는 쓸 데가 없어 버리고 다른 쪽에서는 비용을 들여 생산했던 셈이다. 서로의 문제를 안 4개 업체 실무진이 모였다. 남거나 부족한 증기를 필요한 곳에 공급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4개 공장을 연결하는 2.7㎞ 길이의 스팀관이다. SKC는 이를 통해 기존 고압 증기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던 벙커C유를 연간 1600만L 줄이면서 약 70억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뒀다.

버리던 폐자원을 활용해 매출을 올리거나 원가를 줄이는 사례는 더 있다. 익명을 원한 B사와 C사도 그런 예다. B사의 경우 보일러나 소각로에 쓰는 연소용, 그리고 폐수처리 시설에 쓰는 미생물 공급용으로 산소를 대량 구매했다. 반면 에어가스를 만드는 인근 C사는 에어가스 제조 시 발생하는 부산물인 산소를 대기 중에 방출하고 있었다. 기업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낭비다. 이 문제 역시 양사의 협력을 통해 해결됐다. C사는 버리던 산소를 싸게 공급받기로 하면서 B사는 연간 5억원 정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울산 화학공단에 위치한 공장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있다.

울산에 위치한 한 화학업체의 경우 소각로에서 발생하는 망초(황산나트륨)를 폐기물로 처리했다. 특히 월 50t의 망초를 바다에 투기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적지 않게 들었다. 그런데 이 버려지는 망초를 간절히 바라는 유리 제조기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회사는 유리를 녹이는 용해로에 기포를 제거하기 위해 망초를 사용하는데, 전량 중국에서 수입했고 위안화 환율이 오르면서 수입 가격도 상승해 고민 중이었다. 협의 문제로 양사 간 거래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이 화학업체는 아이디어를 활용해 다른 구매처를 찾았다. 어찌 보면 간단한 생각의 전환이 손실을 이익으로 바꾼 것이다. 유찬 사장은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생각을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도 원가절감에 큰 도움이 된다. E사가 그런 경우다. 제조업체에 시간은 곧 돈이다. 원가절감은 생산 과정에서 지출되는 비용을 낮추는 것뿐만 아니라 같은 시간 안에 일정 고정비용을 지출하며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는 것도 해당된다.

인쇄회로기판 소재를 생산하는 E사는 시간 관리로 생산성을 향상시킨 사례다. 이 회사는 연속 장치산업이라는 특징 때문에 단계별로 공정이 나뉘어 있다. 문제는 공정 간 작업 속도의 편차가 심했던 것. 생산설비를 교체하고 준비하거나 라인을 정지하는 등 시간이 드는 작업이 일부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공정이 아무리 빨리 끝나도 앞의 공정이 느리게 진행되면 생산라인을 비운 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하는 방식을 확 바꿔라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E사는 최적화된 ‘공정 표준시간’이라는 것을 확립했다. 느린 공정에 인력을 추가 투입하고 시간을 잡아먹는 설비는 문제점을 찾아 개선했다. 전체 공정이 동일한 시간을 소비하도록 공정시간 표준화 작업을 진행한 끝에 전체 작업시간을 22% 단축했다. 당연히 생산성도 향상되면서 연간 4000만원의 수익 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E사가 거둔 성과는 현장 직원들의 크고 작은 노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장에서 자발적 개선활동을 했기 때문에 공정시간 단축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직원들은 공정시간 표준화에 앞서 그룹 단위로 모여 자신의 공정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총 1년이 걸린 작업이었다.

전문가들은 “관리자들이 개선활동을 주장해도 실제 효과를 못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현장에서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공정시간 표준화는 개선활동을 통해 구체적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현장 직원들에게 주지시켰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조직원이 스스로 도달해야 하는 목표와 그 이유까지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다. 관리자와 직원의 지속적 의사소통 덕분이었다.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R&D(연구개발) 협력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기업이 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열린 현대자동차의 ‘협력사 테크 데이’.



해외 현지인 직원에 ‘진심’ 보여야원가를 줄이려고 해외에 나갔다가 생산성 문제로 곤란을 겪는 기업들이 참고할 만한 사례도 있다. 2009년 베트남에 공장을 지은 중공업 기업 F사의 사례를 보자. F사 관계자는 “업무 경험이 전혀 없는 1700여 명의 직원과 함께 시작하고 보니 이들의 노동 생산성은 우리나라의 30%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지인 직원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시급했다.

F사는 먼저 직원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교육을 시작했다. 자발적 변화를 위해 현장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20여 명의 체인지 에이전트(change agent)를 선발해 집중적으로 리더 역할을 가르쳤다. 현장을 운영할 수 있는 관리조직도 구축하는 한편 공장 개선활동도 꾸준히 벌였다. 노무비 비율이 70~80%에 달하기 때문에 사람이 최대한 적게 일하고 많이 생산하는 방향으로 가야 했다.

시간이 흐르자 현지 직원의 태도가 점점 적극적으로 변했다. 개선할 곳을 스스로 찾고 부족한 설비는 직접 만들기까지 했다. 용접을 담당하는 직원은 절단기에서 힌트를 얻어 자동용접기를 만들었다. 못 쓰는 기계를 수리해 용접 공정을 자동화하니 비용 하나 들이지 않고 인건비를 아꼈다. 현장 직원은 까다로운 용접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청소용 시너를 재활용하는 ‘전용 정화기’를 개발해 비용을 절약한 경우도 있었다.

네오플럭스 백정현 컨설턴트는 “한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혁신적 개선의 사례를 베트남 현장에서 몇 차례 볼 수 있었다”고 당시 경험을 밝혔다.

처음에는 문화적 장벽이나 보이지 않는 반감이 컸다고 한다. 베트남에서도 한국인과의 국제결혼 문제가 여러 차례 보도됐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공장이 설립된 해와 지난해에는 유난히 태풍과 큰비가 잦아 많은 직원의 집이 침수 피해를 보았다. 이때 경영진이 위로금을 전달하고 한국인 직원이 성금을 모아 지방정부에 전달하는 것을 보며 현지 직원도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작업반별로 함께 현지 지역 봉사에 나서기도 했다. F사 베트남 현장은 2009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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