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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결혼의 경제학>> 달라진 결혼풍속도 확 바뀌는 웨딩산업

2011 결혼의 경제학>> 달라진 결혼풍속도 확 바뀌는 웨딩산업



결혼에도 트렌드가 있다. 부모 손에 이끌려 백화점을 누비며 혼수가전 세트를 구매하던 시대는 지났다. 요즘 예비 부부는 꼭 필요한 것, 가장 사고 싶은 것에 집중 투자한다. 웨딩산업도 이에 발맞춰 바뀌고 있다. 가격 거품을 걷어내고 틈새 전략으로 승부한다. 2011년의 결혼 풍경을 엿보고 달라진 웨딩산업을 취재했다.

결혼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이벤트다. 예비 신혼부부는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하고 화려한 예물반지를 구입하며 단 한 번, 앞으로 다시 없을 호사를 누린다. 번듯한 주택을 자신의 명의로 처음 계약하며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매년 우리나라에서 결혼하는 부부는 30만~35만 쌍에 이른다. 여성가족부와 결혼정보업체의 통계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이들이 결혼에 지출하는 비용은 연간 1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규모가 급격하게 줄어든 적은 거의 없다. 심각한 불황기가 아닌 이상 예식을 포기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행복에 젖어야 할 예비 신혼부부도 전셋값 근심을 피할 수는 없었다. 국민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월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작년 동월보다 10.9%나 올랐다. 2002년 이후 9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가장 절실한 부분인 신혼집 마련이 어려워지자 결혼을 미루는 이도 적지 않다. 당장 웨딩업계 관계자들로부터 우는 소리가 나온다. 허니문 전문 여행사 관계자는 “위약금을 지불하면서까지 신혼여행을 취소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고 호소한다. 웨딩홀 사업자 사이에서도 “예식이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가

돈다.

결혼정보업체 선우가 380쌍의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00년에는 신혼집 마련에 4629만원을 지출했으나 2009년에는 1억2714만원을 썼다. 전체 결혼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9년 새 55.9%에서 72.7%로 껑충 뛰었다.

주택을 대개 신랑 쪽에서 마련함을 고려할 때 신랑의 부담이 커진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서울 및 수도권에 사는 예비 신랑과 신부가 함께 주택자금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이 늘었다. 다가오는 5월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김이향(31)씨는 평생 꿈꾸던 동화 같은 결혼식을 포기했다. 동갑내기 예비 신랑이 모은 돈에 부모가 보탠 돈을 합해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아파트 전셋값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 결국 이씨는 신혼여행과 혼수품 예산을 줄여 그 돈을 신혼집 전세금으로 돌리기로 했다.



결혼 비용에서 신혼집 비중 커져아파트만 고집하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빌라 등 다세대주택이나 오피스텔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하는 부부가 늘었다. 4월 말 결혼을 앞둔 최진현(32)씨는 서울 공덕동의 78㎡ 빌라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2억이 채 안 되는 돈으로 아파트 입주는 무리라는 판단에서다. 조민이 스피드뱅크 팀장은 “전셋값이 내려가길 기다리는 수요가 일시적으로 다세대주택과 오피스텔 등에 몰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요즘은 주택을 구매할 만한 자금력이 있는 신혼부부조차 부동산 시장을 관망하느라 전세를 얻는 분위기다.

강남권을 원하는 신혼부부는 비교적 집값이 싼 관악구와 강동구 지역부터 물색한다. 재건축을 앞둔 노후한 주택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중개업소에서는 여의도에 근무하는 신혼부부에게 구로구를, 도심권으로 출퇴근하는 신혼부부에게 노원구를 추천한다. 조 팀장은 “서울에 근무하더라도 전셋값 때문에 평촌, 산본 등 경기도 지역으로 가는 신혼부부가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집에 대한 부담감 때문일까? 최근 신혼부부 사이에서는 거품을 빼고 실속을 챙기는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게 나타난다. 예물과 폐백 등 형식적 행사를 챙긴 신혼부부는 2003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혼수에 필수적이라고 알려진 품목인 한복만 봐도 구입하기보다 대여하는 편을 선호한다. 한 웨딩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요즘 전체 신혼부부 중 40%가량이 한복을 사지 않는다.

고미랑 듀오웨드 실장은 “예물 마련도 예전에는 다이아몬드, 금, 진주, 유색 보석 등 각각 세트를 구색 맞춰 하려는 분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형식에 구애 받기보다 정말 갖고 싶은 한 가지를 고르는 신부가 더 많다”고 말했다.



신랑 취향 고급화로 혼수 품목 달라져가전제품, 생활용품도 마찬가지다. 예비 신부가 부모 손을 잡고 백화점이나 양판점을 찾아가 TV, 세탁기, 냉장고 등 주요 가전제품을 세트로 한꺼번에 구매하는 풍경은 사라진 지 오래다. 신혼집 전체를 새 물건으로 채우기보다 꼭 필요한 물품 위주로 따지고 고르는 것이 요즘 예비 신부의 모습이다. 신세계 생활팀 서정훈 과장은 “요즘 신축 아파트는 대부분 주요 가전제품과 가구가 빌트인(built-in) 형태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혼수를 한꺼번에 장만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2010 추계 결혼박람회’에 참가한 예비 신혼부부가 웨딩숍의 샘플 앨범을 보고 있다.
실속의 다른 표현은 ‘선택과 집중’이다. 개수와 규모에 연연하지 않고 예비 부부가 의논해 필요한 것만 구매하되 욕심나는 부분에는 집중 투자한다. 특히 요즘에는 다른 가전을 제쳐두고라도 프리미엄 모델의 TV를 혼수로 장만하는 이가 많다. 서 과장은 이 현상에 대해 “옛날에는 예비 신랑이 혼수 품목을 신부 측에 전적으로 일임했지만, 요즘에는 신부와 함께 혼수를 고르며 자신이 갖고 싶은 TV 등 전자제품 모델을 일러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신랑 취향의 고급화가 결혼시장에서 뚜렷하다. 외모를 가꾸는 ‘그루밍(grooming)족’, 새로운 제품을 구매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인 젊은 남성이 결혼 세대에 진입하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장은경 이사는 “준비에 다소 소극적이었던 예전 신랑과 달리 요즘은 정장 한 벌을 맞추더라도 기성복 대신 맞춤복을 선택하며 일생 단 한 번뿐인 호사를 즐기는 신랑이 많다”고 말했다.

결혼에서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행사가 바로 신혼여행이다. 날이 갈수록 예비 부부가 신혼여행에 투자하는 금액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해외 신혼여행이 대중화된 지 오래됐고 신혼부부들은 더 먼 지역, 더 고급스러운 패키지를 원하는 추세다. 여행사 입장에서도 신혼여행 고객은 귀한 손님이다. 하나투어를 이용하는 신혼부부 고객은 전체 고객의 약 10%에 불과하지만 매출액은 전체의 약 30%나 된다.

신혼여행 특수를 누리는 동남아 지역 외에도 최근에는 하와이가 각광 받고 있다. 하나투어 이영주 팀장은 “미국 방문 시 비자가 필요 없어진 데다 대한항공 외에 하와이항공이 운항하면서 여행 단가가 많이 낮아져 인기가 높다”며 “미주와 유럽 지역에 대한 선호도가 커 전체 신혼여행 매출에서 약 10%씩 차지한다”고 덧붙였다.

동남아의 경우 1인당 150만~200만원, 하와이는 2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 1인당 300만원을 넘게 쓰며 유럽을 가는 부부도 있지만 150만~200만원 수준이 대부분이다. 가야투어 정혜원 대리는 “신혼여행 패키지는 여행 지역은 물론 숙소나 현지에서 먹는 음식도 고급화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웨딩산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관계자는 “언제부턴가 부모님과 함께 상담하러 오는 예비 부부가 확 줄었다”고 말한다. 그만큼 부모로부터 독립적이라는 뜻이다. 결혼식장 선택에서 신혼여행지까지 부모의 영향을 받았던 예전과 달리 요즘 신혼부부는 대부분의 사항들을 두 사람이 의논해 결정한다. 결혼하는 시기가 늦어지면서 본인들이 어느 정도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갖춘 상태에서 결혼을 준비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2009년 혼인통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미혼 남자의 평균 결혼연령은 31.6세, 여자는 28.7세로 나타났다. 20년 전에 비해 남자는 3.8세, 여자는 3.9세씩 결혼연령이 높아졌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가 서울 논현동 디오스 갤러리를 찾아 혼수용 가전에 대해 상담하고 있다.



신혼여행은 갈수록 고급화독립적이고 강한 발언권을 가진 젊은 세대가 결혼을 주도하면서 허례허식이라 여겨지던 부분이 대폭 간소화되고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형태로 준비하는 예비 부부가 전보다 많아졌다. 부모 세대도 결혼 준비에 대한 사고방식이 전보다 유연해졌다. 반상기, 은수저, 이불 등 전통적 예단 대신 필요한 것을 살 수 있는 현금 예단을 선호하는 가족이 늘고 있다.

요즘 결혼식장에서는 마흔이 넘은 신랑과 신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적령기에 연연하지 않고 본인의 뜻에 따라 결혼 시기를 정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교육수준이 높고 좋은 직장에 오래 근무한 만혼 예비부부는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호화로운 결혼식을 마다하지 않는다.

고미란 실장은 “만혼 부부의 등장으로 결혼시장에도 양극화 현상이 심해졌다”며 “젊고 가난한 부부는 무료 예식장을 찾아 허리띠를 졸라 매는 반면 여유가 있는 신부 중에는 대여비만 1000만원이 넘는 고가 수입 드레스를 원하는 이도 많다”고 말했다.

양극화는 예식홀에서 크게 느낄 수 있다. 올가을 결혼하기 위해 대전에서 예식장을 알아보던 박정은(30)씨는 “홀 대관료 100만원이 넘는 고급 컨벤션도 있지만 대부분은 공간이 협소하고 대관료가 무료인 저가형 예식장”이라는 웨딩플래너의 말에 좌절감을 맛보고 있다. 고급 예식장은 하루 한두 번만 예식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가격이 더 올라가고, 저렴한 예식장은 박리다매형으로 여러 번 예식을 치르기 때문에 가격이 더 낮아진다.

웨딩사업 종사자의 이야기는 또 다르다. 서울 청담동의 한 웨딩홀 관계자는 “요즘 예비 부부는 결혼 준비에서 선택지가 많아 행복할 것”이라고 푸념하듯 말한다. 고급 예식장이 서울에도 몇 군데밖에 없던 시절, 대관료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외국에서 유행이 지나 국내에 들여온 낡은 드레스도 수입이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내걸던 때가 있었다.

그사이 웨딩플래닝 사업이 보편화되며 전체 시장 가격의 거품을 가라앉힌 영향도 컸다. 예식장, 사진 촬영 스튜디오, 메이크업 담당 미용실 등을 포괄한 웨딩산업은 현재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과포화 상태다. 웨딩홀은 지은 지 1년이 지나기 무섭게 새로운 인테리어로 리모델링한다. 미용실과 스튜디오도 유행을 바쁘게 탄다. 웨딩플래너들은 “웨딩시장이 밖에서 보듯 수익성이 좋은 산업은 아니다”고 귀띔한다. 결혼 준비는 부부가 처음으로 서로의 경제관념을 맞춰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느 때보다 합리적 소비를 하기 위해 애쓰는 예비 부부 덕분에 2011년 한국의 결혼은 계속 진화 중이다.

박미소 기자 smile8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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