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유럽 지렛대로 미국 넘본다
[CEO] 유럽 지렛대로 미국 넘본다
국내 산업용 PDA(개인 휴대용 정보단말기) 시장 1위인 블루버드소프트의 이장원(44) 사장은 올해 내실을 다지면서 성장을 이어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목표다. 매출 기준으로 해마다 급성장을 거듭하면서 커진 덩치에 걸맞은 조직과 시스템을 갖춰 성장 기반을 더욱 다진다는 포석에서다. CRM(고객관계관리)·ERP(전사적자원관리) 시스템을 갖춰 성장 과정에서 허술해질 수 있는 내부 조직을 정비했다.
세계 80개국에 수출글로벌 경쟁기업과 비교해 약점으로 지적되는 서비스·컨설팅·SI(시스템통합)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교육 투자를 늘리고 관련 인력도 키우고 있다.
이런 기반 위에 올해 매출 목표를 1200억원으로 잡았다. 지난해 770억원보다 500억원 늘어난 수치다. 꿈틀댄다지만 여전히 부진한 글로벌 경기 상황에다 IT(정보기술) 벤처기업이 전반적으로 침체한 상태여서 무리한 목표처럼 보인다. 이 사장은 “목표를 이루지 못한 해는 거의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믿는 구석이 있다. 수출이다. 이 사장은 2008년 전체 매출에서 60%였던 수출 비중을 지난해 80%대로 끌어올렸다. 국내 PDA 시장 규모는 400억원. 세계시장 규모는 적게 잡아도 10조원에 이른다.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 블루버드소프트는 현재 세계 6, 7위권이다. 매출 2000억원이면 5위 수준이 된다. 모토로라솔루션, 인터멕, 사이언 등 세계 산업용 PDA 업계의 1~3위 기업의 점유율이 절대적이다.
블루버드소프트는 현재 세계 80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전체 수출에서 지역별 비중은 유럽 30%, 중국 20%, 남미 15% 등이다. 산업용 PDA의 본고장인 미국 수출액은 많지 않다. 블루버트소프트를 제외한 세계 1~10위가 모두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산업용 PDA는 단골 장사라 오랜 거래에 따른 신뢰가 필수적이다. 미국시장에서 이방인 격인 블루버드소프트가 고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장원 사장은 “남의 단골을 얼마나 많이 빼앗느냐가 관건”이라며 “시간이 좀 필요한 승부”라고 설명했다.
이 사장은 미국시장보다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유럽·중국·중동·남미 등을 적극 공략해 브랜드 인지도를 쌓고 있다. 경쟁자가 즐비한 미국시장을 넘기 위한 지렛대 격이다. 특히 올해는 경제성장이 빠른 동유럽과 중동 지역에 공을 들이고 있다. 유통 채널을 늘리고 애프터서비스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사무소를 새로 내거나 확대하고 법인으로 바꿔 현지화에 신경 쓰고 있다.
이 회사 제품은 통신 강국에 걸맞게 통신 결합형 모델 라인업이 다양하다. 경쟁사 제품과 비교해 크기는 40%가량 작고 가격도 20~30% 가까이 싸다. 경쟁자의 단골만 어느 정도 빼앗으면 미국시장의 빗장을 열기에 손색없는 조건이다. 제품 자체의 경쟁력 못지않게 중요한 서비스·컨설팅 부문을 강화하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남미에서는 미국 경쟁자보다 선전하고 있다.
이 회사가 만드는 산업용 PDA는 크게 세 가지 종류로 40여 모델이 있다. 택배회사 직원이 흔히 들고 다니는 제품으로 바코드나 RFID(무선인식 전자태그)를 인식하는 AIDC 단말기, 백화점 등에서 쓰이는 결제 관련 단말기, 기업용 스마트폰 등이다. 이 가운데 AIDC 단말기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 국내 거의 모든 백화점의 결제 관련 PDA는 이 회사 제품이다.
국내에서 외국 제품 몰아내서울대 경영학과와 산업공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4년 삼성SDS에 들어간 이 사장은 3년여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중학교 2학년 때 사업가를 꿈꿨다는 그는 대학에 다니는 동안 200개가 넘는 사업계획서를 만들기도 했다.
“허허벌판에서 생각하고 계획하고 실천해 결과를 얻는 일이 바로 사업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1995년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 사업을 시작하면서 벤처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러던 1998년 산업용 PDA 시장에 뛰어들었다. 국내 시장 규모는 작지만 세계로 눈을 돌리면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사업 초기 기술개발에 무게중심을 뒀다(지금도 전체 직원 250명 가운데 절반이 연구개발 인력일 정도로 기술개발 투자에 열중하고 있다). 그런 덕에 1999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통신 결합형 PDA를 개발했다. 국내 기업 가운데 AIDC 단말기, 결제 관련 단말기, 기업용 스마트폰을 모두 만드는 회사는 블루버드소프트뿐이다. 국내 경쟁업체인 M3모바일과 ATID 등은 AIDC 단말기 전문 회사다. 이 사장은 “여러 종류의 제품을 내놓으려면 개발비와 유지·보수비가 많이 들지만 시장 상황의 변화에 영향을 덜 받는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 혼자만의 힘은 아니지만 국내 시장에서 외국 제품은 거의 발을 못 붙이고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외국 제품의 독무대였지만 그 후 국내 회사가 기술과 가격 경쟁에서 앞섰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한국시장이 워낙 작아 글로벌 회사가 소홀하게 여긴 탓도 있지만 국산 제품 가격이 20~30% 싼 데다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방식이나 GSM(유럽형 이동통신) 방식을 지원하는 등 기술력에서 한발 앞섰다”고 설명했다.
이 사장은 목표대로 성장하면 2012년 세계 5위권에 진입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동유럽·중동·브라질·일본시장의 판매가 호조여서 꿈같은 목표만은 아니다. 예전에는 유명 가전 전시회에 자주 나갔지만 요즘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리는 유통·우정·보안·이동통신 등의 전문 전시회에 빠지지 않고 나간다. B2B 제품이라 기업을 단골로 잡아야 해서다.
그는 “매출 2000억원 목표를 이루기 전에는 상장할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실탄이 더 넉넉하면 해외시장을 공략하기 유리하겠지만 돈이 절박하진 않은 상황이다. 조직을 더욱 탄탄하게 만드는 일도 급하다고 여긴다. 몇 년 전만 해도 직접 CFO(최고재무책임자) 역할도 맡았지만 지금은 전문가를 두고 있다. 내실을 다져야 해외 사업도 더욱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뜻에서다.
남승률 기자 namo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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