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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공포-샤르마의 경고 vs 버핏의 자신감] 샤르마(S & P 회장) 쇼크 재앙의 신호탄?

[불황의 공포-샤르마의 경고 vs 버핏의 자신감] 샤르마(S & P 회장) 쇼크 재앙의 신호탄?



죽어가는 시장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돈을 쏟아부었다.

채권을 찍어 빌린 돈이었다. 시장만 살아나면 빚은 줄어들 줄 알았다. 오판이었다. 시장은 더디게 살아났고 빚은 빠르게 쌓였다. GDP보다 많은 빚을 짊어지는 국가가 늘어났다. 미국·프랑스가 그랬다. 이 문제를 끄집어낸 주인공은 신용평가사 S & P(스탠더드앤푸어스) 데번 샤르마 회장이다. 그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떨어뜨려 글로벌 금융패닉의 단초를 제공했다. ‘샤르마 쇼크’는 프랑스도 공포로 몰아넣었다. 샤르마 쇼크는 재정위기의 신호탄일까.
글로벌 경제에 ‘퍼펙트 스톰(끔찍한 재앙)’이 몰려올 것이라고 예언한 이가 있다. ‘미스터 둠’ 누비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경제학)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정확하게 예측한 인물이다. 루비니 교수는 6월 11일 싱가포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재정위기, 중국의 성장둔화, 유럽의 채무조정, 일본의 경기침체가 늦어도 2013년 결합해 세계경제가 30%가량 위축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퍼펙트 스톰은 가계와 기업, 그리고 정부부채가 동시에 문제를 일으키는 끔찍한 재앙을 뜻한다.

그로부터 2개월이 흐른 8월 5일(금요일) 밤 8시(현지시간) 미국이 ‘패닉’에 빠졌다. 국제신용평가사 S & P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S & P 데번 샤르마 회장은 “미국의 정부부채에 대한 우려 때문에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내렸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건 70년 만의 일이다.

월가 사람들은 이를 ‘샤르마 쇼크’라고 불렀다.

샤르마 쇼크는 2008년 리먼 사태가 그랬듯 증시에 충격과 공포를 줬다. 세계 증시는 8월 8일 블랙먼데이에 시달렸고, 지난 한 주 주가는 대폭락했다. 미국의 다우산업지수는 샤르마 쇼크 직전인 8월 5일 1만1444.61에서 8월 10일 1만719.94로 6.8%포인트 하락했다. 영국 FTSE100지수와 독일 DAX30지수는 같은 기간 239.83포인트, 622.74포인트 빠졌다. 아시아 증시도 공포에 휩싸였다. 8월 5일 1943.45로 장을 마감한 코스피는 11일 1817.44에 그쳤다. 4일 동안 126.01포인트나 빠졌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317.94포인트)도 같은 기간 급락을 피하지 못했다.

리먼 사태의 데자뷰였다. 일부 경제전문가는 ‘퍼펙트 스톰’의 전조로 해석했다. 물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번 금융패닉은 다른 점이 있다. 2008년 위기는 시장에서 왔다. 부동산가격 폭락으로 가계부채의 뇌관이 터진 게 세계 경제위기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정부 부채가 골치를 썩인다. 2008년 위기 때 세계 각국 정부는 채권을 찍어내 빌린 돈으로 경기부양을 시도했다. 경기를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빚은 그대로 남았고, 이게 문제를 일으킨다. 2009년 3월부터 올 5월까지 미국·영국·일본 등 선진국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쏟아부은 자금만 1조8000억 달러에 이른다.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한 미국의 정부 부채는 2008년 GDP(국내총생산) 대비 71%에서 올해 101%로 급증했다. 유로존도 같은 기간 76.5%에서 95.6%로 정부 부채가 늘어났다. 샤르마 쇼크에서 출발한 금융패닉을 재정위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경제학·전 한국국제금융학회장)는 “이번 금융패닉은 정부 부채가 문제가 됐다는 점에서 100년 만의 불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루비니 교수의 예언은 이번에도 맞을까. 샤르마 쇼크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될까. 미국 경제의 현주소부터 보자. 올 들어 미국 경기는 다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미국 실업률은 현재 9% 안팎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4.6%)의 두 배가량이다. 올해 전반기 경제성장률은 0.85%에 그쳤다. IMF 전망(2.5%)을 크게 밑돌았다. 미 정부 부채는 14조3000억 달러에 달한다.
국제신용평가사 S & P가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떨어뜨리자 월가가 패닉에 빠졌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경제학·한국국제금융학회장)는 “미국이 성장 모멘텀을 잃었다”고 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는 “미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약하다”며 “경기회복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CDS와 신용등급 모순 ‘왜?’청신호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극복한 미국 기업들은 올 1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S & P500(S & P가 작성하는 주가지수) 기업의 순이익은 2007년 2분기의 2057억 달러를 넘어선 2101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들 기업의 현금보유량은 4조 달러에 달했다.

피터 황 BOA메릴린치 선임부사장은 “민간투자가 여전히 부진하지만 올 7월을 기점으로 미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 들어 세계경제가 둔화된 것은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부품 공급망 차질, 미국 기상이변 등 단기적 요인 때문”이라며 “부품 공급망이 복구되면서 미국의 성장엔진이 다시 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이유로 미 월가와 투자자들은 S & P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미국 신용등급 강등은 실수”라며 S & P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최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는 향후 3년 안에 또다시 침체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며 “만약 AAAA등급이 있다면 미국에 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S & P의 강등 결정은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황당한’ 것”이라고 했다.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 뉴욕지사 한상훈 수석부사장은 “S & P의 신용등급 강등에는 논리적 모순이 있다”며 말을 계속했다. “우리(월가) 기준으로 봤을 때 CDS(대출, 채권투자 등 신용자산의 가치감소에 따른 손실을 다른 투자자가 대신 보상해주는 파생상품) 프리미엄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반영하는 지표다. 이론적으로 국가신용등급과 CDS 프리미엄은 같이 움직여야 한다. 미국의 CDS 프리미엄은 56bp(8월 8일 기준)다. 일본 다음으로 국채가 많은 영국은 100bp고, 프랑스는 150bp를 넘었다. 영국·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은 AAA다. 이런 모순을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피터 황 부사장도 “S & P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의 기준에 의문이 많다”고 했다. 두 사람은 “S & P가 신평사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충격요법을 쓴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많은 경제 전문가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됐다고 더블딥(이중침체)이나 디폴트 사태가 초래되는 건 아니다”고 주장한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8월 11일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성장률이 예상보다 낮은 건 사실이지만 올 1, 2분기 성장률은 전년 동기에 비해 2.2%, 1.6% 올랐다”며 더블딥은 물론 리세션(경기후퇴) 가능성도 희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허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금융팀장도 “미국 성장률은 국가신용등급 강등에도 마이너스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더블딥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변수가 있다. 미국이 금융패닉에서 벗어나려면 경기가 살아나야 한다. 그런데 미국 소비는 아직 살아나지 않고 있다. 민간이 스스로 회생하지 못하면 정부가 돈을 풀어야 하는데 이마저 여의치 않다. 정부 부채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8월 초 정부 채무한도 증액을 요구하면서 “앞으로 10년 동안 2조4000억 달러의 부채를 갚겠다”고 약속했다. 정부 곳간이 비어 있는 상태에서 빚을 다시 내 돈을 푸는 건 무리다. 더구나 지금은 돈을 풀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일부 국가가 디폴트 위기에 빠져 있어서다.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에 이어 이번엔 프랑스가 말썽이다. 프랑스는 “S & P가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다”는 소문에 휩싸이면서 패닉에 빠졌다. CDS 프리미엄은 8월 11일 175bp까지 치솟았고, 파리 증시는 5% 넘게 급락했다. S & P가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할 거라는 소문이 돈 이유는 언급한 대로 CDS 프리미엄이 미국보다 훨씬 높아서다.



버냉키가 QE3 쓰지 않은 진짜 이유이런 때 미국이 돈을 풀면 유로존 위기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미국이 양적완화에 들어가면 달러가치가 급락하고 유로화는 절상된다. 미국의 신용 리스크가 유로존으로 옮겨붙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다 유로존에서 문제가 생기면 다시 미국이 충격을 받는다. ‘삼각 부메랑’ 효과다. 한상훈 부사장은 이를 “월가에서 가장 걱정하는 시나리오”라고 했다. 미국과 유로존이 신용 리스크를 주고받으면서 경기가 동반 악화되는 것이다. 정규일 한국은행 국제경제연구실장은 “미국 사정만 놓고 보면 양적완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유로존 위기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벤 버냉키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QE3(3차 양적완화)’를 발표하지 않은 속내와 연결된다. 버냉키 의장은 FOMC가 끝난 뒤 “최소한 2013년 중반까지 초저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시장이 기대했던 QE3 카드는 쓰지 않았다. 국내 반응은 대략 이랬다. “2013년까지 미국경기가 침체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스스로 시인했다.” “더 이상 쓸 만한 실탄이 없다.”

월가 사람들의 평가는 달랐다. 피터 황 부사장은 “버냉키 의장은 유로존 상황을 지켜보면서 QE3 카드를 꺼내겠다는 전략이었을 것”이라며 “QE3는 FRB가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경기부양책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유로존 위기가 진정될 때까지 사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상훈 부사장도 “FRB는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을 맘놓고 활용할 수 없다”며 “버냉키 의장은 QE3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리스크 점검을 철저히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쇼크, 패닉, 다음은 붕괴’라는 말이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쇼크에서 패닉을 거쳐 붕괴 직전까지 갔다. 지금의 금융패닉이 이런 전철을 밟을지, 일시적 충격에 그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속단은 금물이지만 미국과 유로존의 붕괴 가능성에 더 주목해야 한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선 당연하다. 더구나 글로벌 불황에서도 꾸준히 성장하던 중국이 예년 같지 않다. 세계 경기회복을 위해선 중국의 역할이 필요하지만 인플레이션이 발목을 잡고 있다. 중국도 긴축을 해야 할 때다. 중국 수출 비중이 가장 큰 우리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럼에도 한국은 너무 낙관적이다. 정부는 리먼 사태 후 기초체력이 탄탄해졌다고 자랑하기에 바쁘다. 일부분은 사실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7월 현재 외환보유액은 3100억 달러로, 리먼 사태 직전인 2008년 8월 2432억 달러보다 668억 달러 늘었다. 단기외채 비중은 2008년 9월 79%에서 올해 3월 49%로 크게 떨어졌다. 그렇다고 약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외불안이 가중되면 외국인은 한국을 서둘러 떠난다.

미국의 금융패닉이 시작된 후 외국인은 3조원이 넘는 주식을 내다 팔았다. 한국의 CDS 프리미엄도 상당히 높아졌다. 8월 4일에는 117bp까지 뛰었다. 김정식 교수는 “한국의 외부충격 민감도는 여전히 높다”고 했다. 오정근 교수는 “한국이 수출의존도를 줄이지 않는 한 대외불안에서 안심할 수 없을 것”이라며 “각종 규제를 하루빨리 풀어 내수를 키우고, 세금을 잘 내는 중산층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금 괜찮다고 낙관론에 취했다간 프랑스처럼 ‘쇼크’에 빠질 수 있다. 세계 각국에서 터지는 금융패닉에서 볼 수 있듯 ‘죽느냐 사느냐’는 찰나에 결정된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우리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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