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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Talk] 스타일은 유행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

[Style Talk] 스타일은 유행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


이탈리안 스타일의 거장 리노 이엘루치가 한국을 찾았다. 그는 ‘스타일’ 하나로 지난해 이탈리아 대통령이 주는 ‘코멘다토레’ 문화훈장을 받았다. 이탈리아가 인정한 패션 리더의 스타일링 비법을 들어봤다.
로로피아나의 최고급 원단으로 직접 만든, 세상에 단 하나뿐인 크림 재킷을 입은 리노(왼쪽)와 정두영 실장.

청남방 앞섶 단추가 4개나 풀려 있었다. 목걸이 두 개를 레이어드하고 팔에는 5개의 팔찌로 힘을 줬다. 청바지 허리춤엔 굵은 체인을 달았다. 일명 ‘전영록 패션’이라고 해서 국내 기피 스타일 1호인 ‘청+청’ 패션이었다. 하지만 촌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요즘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는 패션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환갑을 넘긴 나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손목에 찬 파텍필립 시계만이 전체 스타일에 무게감을 줄 뿐이다.

그는 사려 깊지만 생각하지 않은 듯 보이고, 중심에서 살짝 벗어나지만 클래식한 예술미를 보여준다. 이래서 패션 아이콘으로 추앙받는구나 싶었다. 이탈리아 패션계의 대부이자 유명 패션 블로그 샤토리얼리스트의 단골 모델인 리노 이엘루치가 한국의 멋쟁이 정두영 반하트옴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스타일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정두영 일본에선 사업도 하고 모델도 하는데 한국엔 처음이죠? 한국 사람들의 스타일을 어떻게 보셨나요?



리노 이엘루치 한국 스타일은 단조로운 듯 보였어요. 서양 의복 스타일에 관한 역사가 짧기 때문이겠죠. 컬러도 블랙, 네이비 등 어두운 계열 일색이더군요. 며칠 전에 크림 재킷과 하얀 바지를 매치하고 거리에 나갔더니 모든 사람이 쳐다보고 사진을 찍더군요. 한국 사람들은 틀에 박혀 그걸 넘지 않으려 하고 두려워하는 듯했습니다. 튀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겠죠. 갑자기 바뀔 순 없겠지만 차차 변화할 걸로 봅니다.



정두영 맞아요. 한국에 서양 복식이 일반화된 게 50년 정도밖에 안 됐고, 유교 문화에 익숙해 튀지 않는 게 미덕으로 여겨졌죠. 한국 남성들이 네이비 슈트에 브라운 슈즈를 신기 시작한 지가 얼마 안 됐어요. 이런 변화도 이탈리아 클래식의 영향이라고 봅니다.



리노 동양인들은 남을 의식해 자기만의 개성을 내보이는 데 자신감이 없고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어요.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입고 싶은 대로 마음껏 자기 스타일을 뽐내세요.



한국 재계 2세들이 팬 자청




정두영 이탈리아와 일본에서 운영 중인 패션 숍 ‘알바자’는 어떤 곳인가요?



리노 바자는 이탈리아어로 시장이란 의미고, 알바자는 ‘시장에 가자’는 뜻이죠. 시작한 지 벌써 41년이 됐군요. 오랜 역사를 5분 만에 설명하기는 힘들죠. 나만의 스타일이 있었기 때문에 알바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두영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리노의 스타일 철학’은 무엇이죠?



리노 리노 스타일은 인생에서 오는 라이프 스타일이에요. 어느 한순간에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함없이 지켜져 오면서 자연스레 나만의 스타일이 된 것이죠.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데는 세 가지 조건이 있어요. 첫째로 열정을 갖고 그것을 좋아해야 하고, 다음은 변치 않고 꾸준히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이죠. 가장 중요한 건 그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해야 한다는 겁니다.



정두영 리노 선생은 옷 잘 입는 이탈리안 중에서도 베스트로 꼽히는데요. 유난히 더블 브레스티드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특별히 이유가 있나요?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꾸며진 리노의 밀라노 집. 한쪽 벽에 ‘코멘다토레’ 증서가 보인다.



리노 보통 사람들은 유행을 좇기 때문에 더블 재킷을 입고 싶어서라기보다 유행이라서 입잖아요. 근데 나는 그런 것엔 관심이 없어요. 원래 더블 재킷을 좋아하고, 입었을 때 내가 가장 돋보이고 멋져 보인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죠. 오히려 사람들은 내가 입은 모습을 보고 잘 어울리니까 따라 하는 것 같아요.



정두영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을 언제부터 입은 건가요?



리노 10년 훨씬 넘게 고집하고 있죠. 내 더블 재킷은 좀 달라요. 근엄한 척하지 않죠. 오렌지색도 있고 크림색, 파란색도 있어요. ‘신사들이 어떻게 저런 색을 입을 수 있을까’ 할 만큼 쇼킹한 색깔들이죠. 나는 더블 재킷과 쇼킹한 색깔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둘을 접목한 것뿐이에요. 옷을 입었을 때 자기 자신이 편하고 기분이 좋아야만 베스트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약간의 포인트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나만의 스타일입니다. 스타일은 유행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내면에 가지고 있는 무엇이죠.



정두영 그래도 패셔너블해지려면 유행을 무시할 순 없지 않을까요?



리노 유행은 이벤트라고 생각해요. 새로움과 깜짝 놀랄 만한 무언가가 항상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이게 사라지면 사람들은 주저 없이 다른 이벤트를 찾아 나섭니다. 대부분 브랜드들이 1년에 두 번 앞다퉈 트렌드를 찾아 최대한 빨리 발표하지만 결국 1년 후 모두 사라지고 아웃렛이나 할인매장에 쌓이는 게 그 때문이죠. 하지만 스타일은 그렇지 않아요. 영원하죠. 유행은 메이커를 드러내고 자신을 감추는 것이지만, 스타일은 메이커를 감추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게 내 철학이죠. 내 스타일은 소재와 디테일로 작은 변화를 주는 겁니다.



정두영 구체적으로 어떤 소재가 있죠?



리노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이 크림 재킷의 소재가 독특하죠? 바로 연잎 줄기로 만든 로로피아나의 최고급 원단입니다. 로로피아나에서 선물 받은 원단으로 직접 더블 재킷을 만들어 입었죠. 제 팬을 자청한 한국 재계 2세들 모임에 갈 때 입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모두 구입을 원했지만 상품화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이 원단은 연잎 줄기를 하나하나 꼬아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너무 제작하기 힘들고 고급이라 로로피아나에서도 아직까지 대중화를 연구 중이에요.



정두영 평소 스티브 매퀸과 지아니 아넬리의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리노 스티브 매퀸의 스타일에는 진 종류나 스포티한 아이템이 많이 등장하죠. 어릴 적 동경했던 추억의 스타일 아이콘이었어요. 성장한 후에는 지아니 아넬리의 남성적인 스타일을 보면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정두영 지아니 아넬리는 프로축구팀 유벤투스 구단주이자 피아트 제국의 CEO로서 이탈리안 스타일의 아이콘이죠. 셔츠 위에 시계를 찬다거나 슈트에 워커를 신는 등 클래식한 스타일에 트위스트를 가미했는데요. 그런 도발이 클래식에 있어 괜찮다고 생각하나요?



리노 스타일엔 한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과 신분 등이 모두 연결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카피할 때도 똑같이 하지 말고 나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하죠.





정두영 밀라노 자택을 방문했을 때 정갈하고 섬세한 인테리어에 놀랐습니다. 어떤 컨셉트를 가지고 꾸민 건가요?



리노 집 분위기를 통해 집주인을 알 수 있죠. 좋아하는 걸 배치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여행하면서 얻은 소품들을 집에 진열합니다. 또 돌을 좋아해 석상을 곳곳에 두죠. 그 두 컨셉트가 만나 제 집의 무드를 조성하는 겁니다.



정두영 댁에서 ‘코멘다토레’ 증서를 봤는데 어떤 건가요?



리노 우리나라에서 한 분야 최고에게 주는 대통령상이죠. 문화훈장과 비슷합니다.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그 사람의 비즈니스 라이프를 보고 선정하는 거죠. 이걸 받게 되면 파티나 축제를 벌일 만큼 이탈리아 최고의 명예로 여깁니다. 저 또한 무척 영광스러웠습니다.



정두영 나라에서 인정을 받았으니 이탈리아뿐 아니라 외국 업체에서도 많은 사업 제안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리노 그럼요. 사업의 볼륨을 키우기 위한 기회이고 전환점이었지만 내가 꿈꾸는 매장, 브랜드에 대한 확고한 생각과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항상 주저 없이 대답은 ‘노’였죠. 그때 만약 ‘예스’했다면 외형은 분명 지금보다 훨씬 커졌을 겁니다. 볼륨으로 성공을 논하는 이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어요. 나는 원하는 색상과 무늬의 소재를 디자인하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만들어 고객과 공감하는 것에 큰 희열을 느낍니다.



정두영 그렇게 보면 신원이 론칭하는 남성복 ‘반하트옴므’와 선생님이 스타일 디렉터로 협업을 맺은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실제로 전 세계 패션업계에선 이번 협업에 많은 기대를 하는 눈치예요.



리노 사람을 만났을 때의 느낌을 중시하는 편이에요. 실장님과 신원 부회장님이 매장에 불쑥 찾아오셨을 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진정성과 신뢰가 느껴져 좋았습니다. 들고 오신 컬렉션을 봤는데 동양인의 것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마음에 들고 쇼킹했죠. 당장 해외에 내놓아도 괜찮을 컬렉션이었어요. 이런 브랜드 스타일 디렉터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기뻤습니다. 내 모든 노하우를 100% 물려줄 준비가 됐어요. 새로운 열정과 기대감으로 설렙니다.

그의 스타일링 터치가 가미된 ‘반하트옴므 디 알바자’ 라인은 100% 이탈리아에서 생산된다. 이탈리안 스타일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게 신원 측 설명이다. 이미 한국뿐 아니라 이탈리아, 프랑스, 중국에도 상표를 등록했다. 내년 중국을 시작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한다. 향후 파리패션위크 참가를 통해 유럽 패션 본고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내년 봄·여름 컬렉션부터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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