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UNITED NATIONS] ‘설득의 리더십’ 으로 세계를 다스리다
[THE UNITED NATIONS] ‘설득의 리더십’ 으로 세계를 다스리다
정 경 민지난 6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 반기문 사무총장이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입장했다. 넬슨 메소네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의 제안을 받아 조셉 데이스 총회 의장이 반 총장 연임 결의안을 상정하자 192개 회원국이 박수로 이를 통과시켰다. 경쟁자도 반대표도 없는 만장일치였다. 신선호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대사도 박수를 쳤다.
반 총장의 연임은 4년 반에 걸친 ‘반전(反轉) 드라마’였다. 1기 임기 절반을 보낸 2009년 말까지만 해도 그의 연임은 순탄치 않아 보였다. 그를 가장 적극적으로 유엔 사무총장에 밀어준 미국에서조차 불만의 목소리가 새나왔다. 밖으론 큰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안으로 끈질긴 설득과 중재를 해온 그의 ‘동양적 리더십’이 서구 보수파의 눈엔 유약한 이미지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개혁에 저항하는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2009년 여름에는 유엔 주재 노르웨이 차석대사가 본국 정부에 보낸 보고서에서 ‘카리스마가 부족한 방관자’라고 반 총장을 비난한 사실이 서방 언론에 보도됐다. 지난해 여름에는 유엔사무국 감사실(OIOS) 책임자가 “반 총장이 이끄는 유엔이 투명성을 잃었고 책임감도 없다”는 내용의 메모를 미국 언론에 흘려 그를 흔들기도 했다. 인권단체의 견제도 거셌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를 구속한 중국 정부에 말을 아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 총장은 유엔 안팎의 도전을 초인적인 성실성으로 극복했다. 뉴욕에서 아침 먹고 유럽으로 날아가 회의를 한 뒤 밤 비행기로 동남아를 거쳐 이튿날 다시 뉴욕으로 복귀해 정상회담을 소화하는 ‘살인적인 일정’을 그는 4년 반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한 달에 지구 한 바퀴씩 돈 셈이다. 2007년과 2009년 와해 직전까지 갔던 기후변화 정상회의의 불씨를 살려낸 것도 그의 끈질긴 ‘설득의 리더십’ 덕분이었다. 지난해 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전쟁 때도 그는 열흘 동안 8개국을 돌며 휴전을 이끌어냈다.
반 총장을 평가하는 시선에 본격적인 반전이 일어난 때는 지난해 말부터다. 그는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서 선거에 진 로랑 그바그보 대통령이 무력으로 정권을 유지하려 하자 유엔평화유지군 투입이란 강수를 뒀다. 그가 파견한 최영진 특별대표는 4개월 동안 그바그보 전 대통령의 무력 저항으로부터 민주정부를 지켜냈다. 내전이 끊이지 않았던 수단에서도 그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슬람교 아랍인이 장악한 북수단과 기독교와 전통신앙을 믿는 흑인이 다수인 남수단은 50년에 걸쳐 내전을 벌여왔다. 반 총장은 이를 종식시키려고 에카트리아 독립전쟁의 영웅으로 아프리카 지도자 사이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는 하일리 멘케리오스를 특별대표로 보냈다. 유엔의 중재와 감시 하에 수단은 지난 1월 국민투표라는 평화적 방법으로 남수단 독립을 이끌어냈다.
튀니지에서 시작돼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번진 ‘아랍의 봄’ 시위 사태를 맞아 그는 세계 어느 지도자보다 먼저 독재정부를 규탄하고 나섰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에 맞서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군사 개입 결의안을 이끌어내는 데도 그가 막후에서 중재역을 맡았다. 반 총장을 비판해온 ‘휴먼라이츠워치’와 같은 인권단체도 이 같은 그의 행보에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2기 임기 시작을 6개월 앞둔 그에겐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가 정열적으로 추진해온 새천년개발목표(MDGs) 달성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2015년까지 세계 빈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야심 찬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2기 임기에는 국제 외교무대에서 그의 존재감이 더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만장일치로 연임된 데다 미국·중국·러시아·프랑스·독일 등 안보리 주요국이 모두 정권교체기를 맞기 때문이다. 국제 외교의 판도가 새로 짜이는 만큼 그의 행동 반경도 넓어질 수 있다.
[필자는 중앙일보 뉴욕 특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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