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CEO 77인 서베이 - 잡스 떠올리며 위기의식 속에 살았다
2011 CEO 77인 서베이 - 잡스 떠올리며 위기의식 속에 살았다
‘스티브 잡스.’ 2011년은 그의 해였다. 살아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그를 궁금해 하고 화제로 삼았다. ‘2011년을 되돌아보면 떠오르는 단어·책·경제 이슈·인물’을 묻는 설문에 박경미 에이온휴잇 대표는 세 번을 연이어 “스티브 잡스”라고 답했다. 그래도 어색하지 않은 건 잡스라는 인물의 무게감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2011년을 말해주는 키워드는 ‘위기’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18%(14명)가 올해를 대표하는 단어로 유럽 재정위기 혹은 세계 금융위기를 꼽았다. 이를 한 단어로 나타내기 위해 ‘위기(경제위기)’로 통일했다.
마찬가지로 ‘올해 기업 경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경제 이슈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45%(35명)가 유럽 재정위기, 세계 경제위기라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특정 조건 없이 주관식으로 실시해 답변이 분산되는 경향을 보였지만, 서로 다른 대답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2011년 부정적 단어 36%, 긍정적 단어 9%“안팎으로 위기의 연속이었다.” 한 외국계 회사 CEO의 대답이다. 이 CEO는 올해의 키워드로 ‘혼란’을 꼽았다. 응답자의 8%(6명)가 역시 혼란이라고 답했다. 불확실성, 예측 불허도 혼란으로 통일했다. 응답자들은 시장이 어디로 움직일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응답자의 36%(28명)가 혼란을 비롯해 ‘유럽 재정위기’ ‘세계 금융위기’ ‘경제 불황’ ‘위기’ ‘갈등’ ‘양극화’ ‘다사다난’ ‘정체’ 같은 부정적 단어를 택했다. 한 CEO는 “위기와 갈등은 전 세계적 문제”라며 “그렇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더 강하고,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CEO는 “미국과 유럽의 경기 침체로 수출에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경제적 문제 외에 리더십과 소통의 부재, 남북 문제 등이 혼란·위기의 이유로 떠올랐다.
김해련 에이다임 대표는 오히려 올해의 키워드로 ‘기회’를 꼽았다. 위기 속에서 기회가 빛을 발한다는 것이 이유다. 김 대표를 비롯한 7명의 응답자가 ‘진화’ ‘창조’ ‘혁신’ ‘융합’ 같은 긍정적 단어를 택했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고 답한 CEO는 8명이다. SNS와 관련된 키워드인 ‘스마트’ ‘변화’ ‘소통’이라고 답한 응답자를 더하면 전체의 25%(19명)다. 과거 인터넷 발달로 산업의 전 분야가 변화를 겪었듯 스마트폰 보급과 SNS의 활성화가 산업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김태규 한국품질경영학회장은 “2010년부터 강조해 온 소통의 위력이 SNS의 활성화로 더 세졌다”고 말했다.
CEO들은 정치·사회 문제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4명의 응답자가 ‘FTA(자유무역협정)’를 올해의 키워드로 꼽았다. 한 CEO는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두고 정치권이 시끄럽다“며 “FTA는 경영 계획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이슈”라고 말했다. ‘무상급식’ ‘서울시장 선거’ ‘복지’ ‘포퓰리즘’ 처럼 직접적으로 정치적 이슈를 키워드로 제시한 응답자도 있었다.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사자성어로 한 해를 정리했다. 몇 년 전만 해도 경제계 화두였던 ‘글로벌’은 한 명만 언급했고, 이 외에 오디션 프로그램 인기로 ‘나가수(나는 가수다)’ ‘기회’ ‘멘토’ 같은 키워드가 꼽혔다.
경제 이슈는 ‘유럽 재정위기’ 1위올해의 경제 이슈에 대한 대답은 키워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만큼 경제 이슈가 도드라진 한 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조사에서는 복수 응답을 허용했다. 응답자의 27%(21명)는 최대 경제 이슈가 유럽 재정위기라고 답했다. 2위는 18%(14명)가 택한 세계 경제위기다. 두 대답은 각각 다른 뜻으로 해석할 수 있어 분리했다. 한 유통업체 대표는 “미국에서 시작된 경기 불안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돼 투자를 결정하거나 영업 전략을 수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 신용등급 하락이 기업 경영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고 답한 응답자는 4명이었다. 이 가운데 한 CEO는 “삼성의 휴대전화와 현대자동차는 해외시장에서 선전했지만 그 외 모든 산업이 침체됐다”고 말했다. 또 CEO들은 올해의 경제 이슈로 주가·환율·물가 불안정성을 지목했다. 그 중에서 환율 변동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8명으로 나타났다. 주가 하락, 주가 급락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5명이었다. 소비자 심리 위축에 따른 내수 부진, 부동산 시장 침체, 가계 부채 증가 등이 또 다른 부정적 이슈로 꼽혔다.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8명의 응답자는 최대 경제 이슈가 ‘모바일 비즈니스의 성장’이라고 답했다. ‘SNS 활성화’라고 답한 응답자는 4명이었다. 기상정보업체 케이웨더 김동식 대표는 “모바일 기기는 날씨 정보와 날씨 방송을 유통하는데 가장 효과적”이라며 “앞으로 사업 영역이 더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6명의 응답자는 동반성장·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사회 분위기에 주목했다. 구자관 삼구 책임대표사원(CEO)은 “앞으로 동반성장에 따른 일자리 창출이 더 활발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대로 한 중소기업 CEO는 ‘불공정한 사회’를 경제 이슈로 꼽으며 쉽게 변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 불만을 드러냈다.
해외로 눈을 돌린 응답자도 있다. 올해 3월 발생한 일본 대지진이 경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자가 4명이었다. 중국 경제와 중동·아프리카의 불안한 정세에 영향을 받았다는 CEO도 있었다. MB 정부의 4대 강 사업과 분유, 과자 등의 식품 위생 사고를 최대 경제 이슈로 꼽은 CEO는 각각 2명이었다. 이 외에 청년 실업, 창의성 중시, 품질 중심 경영 등이 기업 환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인 중 김범수·김성주 꼽혀마지막으로 CEO들에게 2011년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 누구인지 물었다. 1위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응답자의 48%(37명)가 스티브 잡스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김성채 금호석유화학 사장은 “기술로 인간의 삶의 방식을 바꾼 혁명적 인물이 역사가 돼 사라졌다”며 잡스를 추모했다. 양상규 DKSH코리아 사장은 “100년이 아닌 영원히 인류사의 업적에 남을 인물”이라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에 이은 기억에 남는 인물 2위는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이다. 응답자의 23%(18표)가 그를 택했다. 대부분 안 의장의 영향력을 선정 이유로 들었지만, 한 CEO는 정치에 개입했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4명의 선택을 받아 올해의 인물 3위에 올랐다. 이 외에 강용석 무소속 의원,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로 꼽혔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모두 부정적 이유로 선정됐다는 점이다. 세 인사를 꼽은 응답자들은 “좋지 않은 행동을 많이 한 게 오히려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를 제외한 외국인으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지난 10월 사망한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꼽혔다.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 응답자는 단 한 명이었다.
경제인으로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두 표를 얻었고,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도 이름을 올렸다. 김 회장은 올해의 인물 18명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다. 스포츠인 중에서 지난 10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박영석 대장과 올해 미국 PGA(프로 골프 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골프 선수 최경주가 꼽혔다. ‘아덴만 여명 작전’ 성공의 주역인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도 CEO가 뽑은 기억에 남는 인물에 들었다.
CEO 77인이 선택한 키워드에 따르면 이들은 2011년을 ‘위기의 해’로 바라봤다. 경제적 악재도 많았다. 하지만 동시에 소통으로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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