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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ssue] 미국의 해외 금융자산 신고제 논란

[Hot Issue] 미국의 해외 금융자산 신고제 논란


한국의 계좌 신고 안하면 벌금…美 소송에서 패한 스위스UBS 고객명단 美에 넘겨
미국 정부는 2009년부터 역외탈세 방지를 목적으로 해외 금융자산 신고제를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국에 금융자산이 있는 한국·중국 등 아시아 교민의 피해가 우려된다.

미국에는 ‘FBAR(Foreign Bank Account Report)’이라는 법이 있다. 미 납세자에게 해외계좌가 있는지를 묻고 신고를 유도하는 법이다. 대상은 미국 영주권자·시민권자(국내외 거주 불문), 비자를 받은 합법체류자 등 납세자다. 불법체류자도 포함한다.

FBAR의 취지는 ‘역외(域外)탈세’를 막는 것이다. 국내에도 유사한 제도가 있다. 한국 국세청은 올해 6월부터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를 실시하고 있다. 1년 동안 해외 금융계좌에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내국인에 신고의무를 부여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경영학) 교수는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는 역외탈세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FBAR 때문에 미국의 우리 교민이 떨고 있다.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날릴 판”이라며 아우성을 치는 교민도 많다. 국제 세법 전문변호사인 스테판 M. 모스코위츠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대 교수는 “이들이 FBAR로 입을 수 있는 피해 규모는 3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왜 그럴까.



FBAR 신고하지 않은 교민 ‘패닉’FBAR은 1970년 나왔다. 실효성은 거의 없었다. A4용지 크기의 문서에 ‘해외계좌가 있는지’를 간단하게 보고하면 끝이었다. 만약 해외에 계좌가 있어도 세금을 추가로 내는 게 아니었다. FBAR은 확인 수준의 절차였다. 물론 제대로 신고하지 않으면 최소 2만5000 달러(약 2800만원), 최대 10만 달러(약 1억원)의 벌금을 내야 했다. 그러나 탈세목적이 아니라면 벌금을 부과하지 않는 게 관례였다.

미 포티스법률그룹 션 김 대표는 “FBAR은 요식행위에 불과했을 뿐만 아니라 이 법을 잘 알고 있는 교민도 드물었다”고 말했다. 그는 “법률전문가인 나도 잘 몰랐다”고 했다.

미 국세청(IRS)은 2004년 역외탈세를 뿌리뽑을 목적으로 FBAR의 벌칙규정을 강화했다. IRS는 “신고하지 않은 해외계좌가 있다면 (계좌에 입금된) 최고액의 50%를 벌금으로 받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최고액이 10만 달러 이하라면 무조건 10만 달러를 벌금으로 내도록 했다. 형사처벌도 가능했다. 최고 형량은 10년이었다. 1년치 벌금만 납부하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벌금은 납세자가 된 해로부터 역으로 계산해 누적 산정했다. 가령 A씨가 2008년에 미국 영주권을 취득했다고 하자. 그의 한국 시중은행 계좌에 5억원이 들어 있다. 그는 FBAR법에 따라 해외계좌가 있다는 걸 신고하지 않았다가 최근 적발됐다. 그는 7억5000만원(5억원×50%×3년)의 벌금을 미 IRS에 납부해야 한다.

FBAR의 벌금규정은 이처럼 강력하다. 그러나 우리 교민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크리스 임 한미상공회의소 부이사장은 “IRS가 2004년 벌금규정을 강화한 건 역외탈세를 막기 위해서였다”며 “이런 이유로 우리 교민은 큰 피해를 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혹여 적발돼도 몰랐다고 해명하면 됐다”고 말했다.

느슨한 상황이 바뀐 건 2009년부터다. 미국은 그 해 FBAR의 집행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역외탈루액을 추징해 국고에 넣을 계획이었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재정을 너무 많이 투입해 국고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스테판 M. 모스코위츠 교수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재정정책으로 비어가는 국고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올려야 했다. 그러나 여의치 않았다. 서민경제가 바닥이었을 뿐만 아니라 증세를 하면 소비가 감소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역외탈세를 잡아 국고를 채우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그래서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미국의 공세는 강력했다. 2009년 2월 18일 미 사법부(DOJ)는 스위스UBS에 이런 제안을 했다. “스위스UBS에 계좌가 있는 미국 납세자 명단을 넘겨달라.” 스위스UBS는 당연히 거절했다. 스위스 국내법에 따르면 은행고객의 명단을 함부로 유출하거나 공개할 수 없다. 그러자 미국은 스위스UBS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했다. 소송 결과에 따라 스위스UBS는 미 납세자의 계좌 4450개를 공개했다. “탈세를 도왔다”는 혐의로 7억8000만 달러(약 9000억원)의 벌금을 미국에 냈다.



오바마 정부 강력 추진오바마 정부는 미국 내에서도 FBAR을 강력 추진했다. IRS는 2009년 3월 26일~10월 15일, 2011년 2월 8일~9월 9일 두 차례에 걸쳐 해외계좌 자진신고기간을 시행했다. 벌금은 각각 20%, 25%였다. 미국인은 환영했지만 미 교민은 반발했다. “신고를 하지 않은 건 잘못이지만 탈세를 하지 않았는데 왜 벌금을 내야 하느냐”는 이유였다. “탈세자와 비탈세자를 엄격하게 가려서 정책을 추진하라”는 목소리도 냈다.

오바마 정부는 단호하게 대처했다. IRS 더글러스 H. 슐만 국장은 “1달러라도 들어 있는 해외계좌가 있다면 무조건 잡아내겠다”고 선언했다. 탈세를 했든 그렇지 않든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벌금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미국 정부로선 당연한 선택이었다. FBAR의 추진으로 재정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뉴욕타임즈는 “2009년 해외계좌 1차 자진신고 기간에 미국정부가 벌금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27억 달러(약 3조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우리 교민수는 약 250만명이다. 포티스법률그룹 션 김 대표는 “교민 250만명 중 적어도 30%는 한국에 계좌가 있다”며 “큰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미 교민의 한국 계좌만이 문제가 아니다. IRS는 2010년부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부동산(전세·월세)을 벌금대상으로 삼고 있다. 현재 시가의 25%를 벌금으로 추가 납부해야 한다. 미 영주권·시민권자의 이름이 들어 있는 공동명의 계좌도 해당된다. 이를 감안하면 피해규모는 상당할 전망이다. 스테판 M. 모스코위츠 교수는 “2009년, 2011년 두차례 실시된 자진신고기간에 해외자산을 신고하지 않은 한국 교민은 이제 (적발되면) 벌금을 낼 수밖에 없다”며 “한국 교민은 미국 IRS가 1차 구제기간에 벌금으로 모았다는 27억 달러보다 훨씬 큰 규모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미상공회의소에는 수많은 피해 예상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두 사례를 보자. 1990년 미국에 정착한 김정근(가명·59)씨는 이듬해 영주권을 취득했다. 특수인쇄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 세금은 빠짐없이 납부했다. 그는 서울 강북에 108.9㎡(33평) 규모의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다. 시가는 약 4억원이다. 전세금으로 2억5000만원을 받아 국내 시중은행의 계좌에 넣었다. 그 통장에는 현금을 포함해 총 5억원이 들어 있다.

김씨는 FBAR법에 따른 해외 금융자산 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런 법이 있는지도 몰랐다. 김씨가 만약 IRS에 적발되면 총 52억원의 벌금(표 참조)을 내야 한다. 김씨는 “내가 50억원이 넘는 돈을 왜 미국 정부에 벌금으로 내야 하는가”라며 한탄했다.



미 사면제도 활용하면 벌금 안낼 수도남편이 치과의사인 이혜정(가명·47)씨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2005년 ‘E2 비자’를 받고 미국에 정착했다. E2 비자는 미국과 우호통상항해조약을 체결한 나라의 국민이 미국에 투자 사업체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발행된다. 이씨는 남편과 함께 개설한 현금 6억원이 든 국내 시중은행 계좌가 있다. 부부 공동명의 계좌다. 당연히 FBAR의 신고절차를 밟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 적발대상이다. 미 IRS에 적발되면 이씨는 18억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물론 미 정부가 한국 교민의 계좌를 확인하기 위해선 한국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가 계좌공개를 거부하면 미 교민은 피해를 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이 문제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행정안전부·금융위원회·기재부 세제실은 IRS가 미 교민의 국내 계좌정보를 요구할 경우 국내법에 충돌할 소지가 없는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은행연합회 마상천 이사는 “국내법 중에는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내용의 법률이 상당히 많다”며 “미국법과 국내법이 충돌했을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정부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다”고 평했다. 마 이사는 “국내 시중은행은 정부의 지침에 따라 대처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법과 미국법의 충돌 부분을 찾아도 한국정부가 미 정부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금융위원회 글로벌 금융과 관계자는 “미국 IRS가 교민의 계좌정보를 요구해도 국내법상 공개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미국 정부가 스위스UBS에 했던 것처럼 소송을 걸거나 힘으로 밀어붙이면 한국은 국내법을 개정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국내법을 이유로 미 교민의 계좌공개를 거부하면 ‘제2의 스위스UBS’ 사태가 터질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한국 국세청은 지난해 미국과 동시범칙조사약정(SCIP)을 체결했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에 있는 납세자에 대해 동시범칙조사를 할 수 있는 제도다. 2013년 SCIP가 본격 실시되면 미국은 국내 금융회사를 상대로 영주권·시민권자의 계좌정보를 요청할 수 있다.

국내 시중은행도 문제다. 미국은 2013년부터 ‘FATCA’ 제도를 운영한다. FATCA의 기본 개념은 단순하다. 외국 기업들이 IRS의 세금징수를 지원하기 위해 일정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미국 원천소득의 3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션 김 대표는 “FATCA에서 규정한 ‘일정한 조치’에는 개인계좌정보 공개가 들어있을 수밖에 없다”며 “국내 시중은행이 미 교민의 계좌정보를 방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FBAR법에 따른 해외 금융자산을 신고하지 않은 미 교민이 벌금을 물지 않을 방법은 현재로선 한가지 밖에 없다.

미국 IRS의 ‘VDP(Voluntary Disclosure Program)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이다. 1954년 만들어진 VDP는 일종의 사면제도다. 탈세 목적으로 해외에 재산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벌금을 낼 필요가 없다. 개인이 직접 IRS에 신청할 수 있지만 리스크가 있다. VDP는 무조건 사면된다는 보장이 없다. 도리어 미 IRS가 형사처벌을 하는 근거로 활용할 위험이 있다. 스테판 M. 모스코위츠 교수는 “VDP프로그램을 이용할 때는 경험 많은 전문 변호사의 상담과 조언을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윤찬 이코노미스트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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