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ity] Sana 신의 저주인가 가호인가
[The City] Sana 신의 저주인가 가호인가
카잔, 카라카스, 사드르 시티, 마라케시, 뭄바이, 베를린, 쿠알라룸푸르, 시드니, 프랑크푸르트.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최근 들어 ‘대조적 성격의 도시(city of contrast)’라는 별명(epithet)을 얻었다. 사실 인터넷에서 이 어구로 검색을 하니 2억8500만 건의 결과가 떴지만 나머지는 더 쳐다보지도 않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이 지구상에서 ‘지루할 정도로 동질성을 지닌 도시(city of boring homogeneity)’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하지만 예멘의 수도 사나(난 지난 30년의 대부분을 이 도시에서 살았다)는 이제 진부한 상투어구가 된 ‘대조적 성격의 도시’라는 말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우선 이 도시는 아라비아 반도의 나머지 도시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얼마 전 점심 때 살타[saltah: 진한 쇠고기 국물에 호로파(콩과 식물)를 넣고 끓인 아랍식 스튜로 아랍 재래시장(souk)의 구멍가게(a hole in the wall)에서도 판다]를 먹으러 갔는데 식탁 깔개로 쓰인 신문에 실린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아부다비(아랍에미리트연합의 수도)의 한 요트 정박소에 수백만 달러짜리 호화 요트들이 늘어서 있다. 사나에서 비행기로 얼마 안 걸리는 거리에 있지만 대다수 예멘인에겐 목성의 위성만큼 멀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한편 내가 사는 타워 하우스(tower house)나 사나 구시가지의 수많은 역사적 건물들이 아랍에미리트연합에 있었다면 국가의 기념비적 건축물(a national monument)로 선정됐을 법하다.
하지만 사나의 내적 요소들 간의 대조는 외부와의 대조보다 더 두드러진다. 사나의 대조적인 성격은 10세기 지리학자 알-함다니가 이 도시의 모순성을 논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알-함다니에 따르면 사나는 금성과 화성이 근접했던 시기에 세워졌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대조적인 성격을 타고났다. 이 두 행성의 대조적인 성격은 예멘 사람들의 성격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의 바르고 인생을 즐길 줄 알지만 노골적인 농담과 말다툼, 칼싸움을 좋아한다. 그로부터 1000여 년이 흐른 뒤 예멘의 위대한 현대 시인 압달라 알-바라두니는 사나를 “폐결핵과 옴에 걸린 예쁜 여자(a pretty woman wooed by consumption and mange)”에 비유했다.
이 시가 발표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 사나는 첫눈에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는다. 구시가지 주변은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 도로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흉측한 몰골로 변해간다. 하지만 대조적인 성격은 여전하다.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재래시장에서 살타로 점심을 때우고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을 누벼 보라. 그리고 가게에서 ‘캇(khat: 씹어 먹거나 차로 만들어 마시는 아랍산 식물)’을 좀 사들고 그것을 씹으면서 이 모순에 가득찬 도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라. 극심한 실업난과 피폐한 경제, 빈곤층으로 전락한 중산층, 하루의 4분의 3은 들어오지 않는 전기, 몇 주일만에 한번씩 나오는 수돗물. 이 도시는 어떻게 이 모든 문제 속에서도 살아남았을까? 또 이 나라는 어떻게 한 세기의 3분의 1이나 되는 세월 동안 한 남자(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통치를 받았을까? 그리고 11개월째로 접어든 ‘아랍의 봄’은 어떻게 그렇게 이상하고 복잡한 잡종(strange, complex hybrids)을 낳았을까? 예멘 정권은 상상도 못할 동맹과 믿어지지 않는 양보로 국민을 놀라게 했지만 정말 믿어도 좋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이 11개월 동안 화성의 기운이 대체로 우세했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대포나 축포 소리가 도시를 뒤흔드는 밤과 별이 빛나는 깊고 고요한 밤이 교차했다.
이제 정부와 시위대 간의 전투가 잠잠해지면서 전력 사정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또 수년만에 예멘 통화(리얄화)의 가치가 오르면서 경제가 후진 기어에서 벗어날지 모른다는 기대를 낳았다. 언젠가 관광객들이 이 매혹적이고 복잡한 도시를 다시 찾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랍의 봄’이 풍요로운 ‘아랍의 여름’으로 이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예멘은 매혹적인 풍경과 역사 깊은 도시 문화 외에 다른 아랍 국가들이 지니지 못한 뭔가를 갖고 있다. 근면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법을 지키는 정부가 들어서고 투자가 제대로 이뤄질 경우 동남아와 같은 경제 혁명을 이룰 잠재력을 지녔다.
사나의 대조적인 성격을 가장 잘 요약한 인물은 11세기 사나의 역사학자 알-라지였던 듯하다. 그는 사나의 운명을 논한 다양한 설을 언급하면서 ‘사나는 신의 저주를 받았다(Sana was divinely cursed)’는 설과 ‘신의 가호를 받았다(it was divinely protected)’는 설이 거의 동등한 빈도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나는 결국 신의 가호를 받은 도시가 될 것”이라고 그는 결론 내렸다. 나도 동감이다.
[필자는 아랍학자 겸 작가로 근저로는 2010년 펴낸 ‘발견(Landfalls: On the Edge of Islam from Zanzibar to the Alhmbra)’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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