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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 받는 줄기세포 치료제 - 치매·당뇨병 5년 안에 정복 가능

탄력 받는 줄기세포 치료제 - 치매·당뇨병 5년 안에 정복 가능

“저는 최근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수백만 미국인 중 하나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994년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고 있다고 발표했다. 알츠하이머는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독성 단백질 물질 탓에 뇌 신경세포가 죽는 병이다. 나이가 들수록 발생 확률이 높은 퇴행성 질환이다. 상태가 점점 악화하기 때문에 더욱 무섭다. 레이건은 누구나 알츠하이머를 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힘을 쏟다가 2004년 6월 세상을 떠났다. 만약 레이건의 알츠하이머가 10년만 늦게 발병했다면 그는 지금쯤 새로운 희망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계 각국에서 알츠하이머 진행을 막는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 속도도 빨라 시판이 머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식품의약안전청은 1월 19일 메디포스트가 개발한 연골재생 치료제 ‘카티스템’과 안토로젠의 치루 치료제 ‘규피스템’에 대해 품목 허가를 내줬다. 지난해 7월 파미셀이 개발한 급성 심근경색 치료제 ‘하티셀그램-AMI’가 세계 최초의 줄기세포 치료제로 허가를 받은 데 이어 두 번째다. 줄기세포 치료제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세계 최초를 싹쓸이 한 셈이다. 품목 허가를 받은 제품은 한두 달 내에 출시할 수 있다.

줄기세포는 특정 세포로 분화하지 않은 세포다. 줄기세포는 스스로 증식할 수 있는 자가 재생능력과 모든 조직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체내 조직이 다치더라도 자연히 재생하는 것은 이 줄기세포 때문이다. 최근 주목 받는 재생의학은 손상된 장기나 조직을 새로운 세포로 대체하는 개념이다. 그 열쇠가 바로 줄기세포다. 치매·파킨슨병과 같은 신경계 질환은 물론 관절 질환이나 암 등 거의 모든 질병 치료에 적용할 수 있다. 특히 현대 의학이 정복하지 못한 각종 난치병 치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성체줄기세포 중심으로 상용화 눈앞줄기세포는 자신의 몸에서 획득했느냐 타인으로부터 얻었느냐에 따라 자가와 타가 줄기세포로 구분한다.

유래에 따라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성체줄기세포는 골수나 제대혈, 지방 등 특정 조직 내에 존재하는 줄기세포다. 제한적으로 증식하기 때문에 충분한 양을 얻기 힘들고 특정한 세포로만 분화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자신의 몸에서 뽑아내기 때문에 면역거부반응이 적다.

수정한 지 14일 이내의 배아에서 추출하는 배아줄기세포는 인체의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배아가 파괴된다는 점에서 윤리적 논란을 피할 수 없고 면역거부반응이나 종양 발생 가능성이 있다.

최근 주목 받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는 본인의 다 자란 세포에서 추출한다는 점에서 성체줄기세포와 유사하지만 배아줄기세포처럼 만능으로 분화할 수 있다. 2006년 일본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인위적으로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개념이다. 난자를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윤리적 논란에서 자유롭지만 유전자 변형에 따른 안전성 문제를 극복해야 상용화할 수 있다.

아직은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제 개발이 주를 이룬다. 최근 시판 허가를 받은 3종의 치료제 모두 성체줄기세포에서 추출했다. ‘하티셀그램-AMI’은 골수에서, ‘카티스템’은 제대혈에서 ‘규피스템’은 지방에서 뽑아낸 줄기세포를 이용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진행중인 줄기세포 치료제 임상시험은 3000여 건. 이중 배아줄기세포 관련 임상시험은 미국 ACT사와 우리나라의 차바이오앤디오스텍이 진행하는 것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모두 성체줄기세포 관련 임상시험이다.

윤리적 문제를 가진 배아줄기세포는 연구개발 자체가 늦게 시작된데다 기술적으로도 복잡해 발전 속도가 더디다. 성체줄기세포는 줄기세포를 채취, 증식한 뒤 이식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배아줄기세포는 반드시 특정한 치료용 세포로 분화시켜야 치료 목적으로 쓸 수 있다. 정형민 차바이오앤디오스텍 사장은 “망막손상이면 망막세포, 신경치료를 위해서는 신경세포로 분화를 시킨 뒤 이식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당연히 고급 분화기술이 필요하고, 종양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미분화 세포를 제거하는 기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는 면역거부반응이 없거나 매우 적은 중추신경계(뇌·척수 등)와 눈을 중심으로 치료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iPS는 아직 임상 단계에 미치지 못했다.

이번 품목 허가에 대해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이상원 제약정책지원팀장은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개발과 임상시험에 매달려 온 결과물”이라며 “상당수의 임상시험이 2기와 3기에 도달한 만큼 세계적으로 치료제 출시가 줄을 이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기관인 카로라마에 따르면 2009년 27억 달러였던 세계 줄기세포 치료제 시장은 2019년 약 125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초기 단계기 때문에 기술을 선점하려는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다.

현재로서는 미국이 가장 앞서가고 있다. 치료제 상용화는 우리가 앞섰지만 진행 중인 임상시험의 숫자와 투자 규모 면에서 미국이 월등하다. 미국 연방정부는 연간 12억 달러를 줄기세포 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 들어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각종 규제도 폐지했다. 주정부의 지원도 강력하다. 제론(Geron) 등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이 밀집한 캘리포니아주는 주정부 차원에서 10년 간 30억 달러를 줄기세포 연구에 투자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기업들의 참여나 기부활동도 활발하다.

유럽에서는 스페인과 독일이 각각 세계 임상시험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펀드지원이 활발한 스웨덴과 덴마크 등도 세계적인 연구수준을 자랑한다. 반면 배아줄기세포나 성체줄기세포 분야에서 다른 나라에 뒤쳐진 일본은 iPS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원천기술을 보유한 교토대 iPS세포연구소에만 연간 750억원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줄기세포 관련 예산은 지난해 600억원에서 올해 1000억원 규모로 크게 늘었지만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대기업의 투자 역시 부족하다.

하지만 기술 경쟁력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지난 10년 간 발표된 줄기세포 관련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급 논문 수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세계 7~8위 권이다. 하지만 이는 연구인력과 투자규모에 비례한 수치다. 연구자 1인당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게 국내외의 평가다. 정형민 사장은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치료제를 개발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누가 먼저 개발 기술을 선점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면서 “상용화에 성공한 사례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점을 볼 때 기술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앞서가는 미국 뒤쫓는 한국·유럽실제로 세계 3000여건의 줄기세포 임상시험 중 국내 대학이나 기업이 진행하는 것은 300여 건으로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스페인 등과 2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 배기달 애널리스트는 “개발 측면에서 본다면 경쟁력은 충분하지만 치료제의 경우 시판하더라도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다”며 “실제 치료효과가 입증된 제품만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부족한 인프라에도 빠르게 경쟁력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메디포스트·알앤엘바이오·차바이오앤디오스텍 등 일찌감치 세계 무대에 뛰어든 국내 바이오 기업의 힘이 컸다. 2000년대 초반부터 줄기세포 사업에 뛰어든 이들은 최근 들어 가시적인 성과를 속속 발표하고 있다. 메디포스트는 제대혈에 있는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해 세포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다. 제대혈은 신생아의 탯줄 속에 든 혈액으로 백혈병과 혈액암 등의 치료제로 활용되는데 뼈나 신경을 만드는 중간엽 줄기세포가 많아 가치가 크다.

메디포스트는 품목 허가를 받은 ‘카티스템’ 외에도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제 ‘뉴로스템’의 개발을 진행 중이다. ‘뉴로스템’은 알츠하이머의 원인 물질 중 하나인 베타 아밀로이드의 축적을 차단하고 뇌 신경세포의 재생을 돕는 치료제다. 현재 삼성서울병원에서 제1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데 환자 투여를 마치고 최종 결과를 분석하고 있다. 2월 3일 이 치료제에 관한 특허도 취득했다. 발달성 폐질환 치료제인 ‘뉴모스템’ 역시 제1 임상시험을 끝내고 분석에 들어갔다.

메디포스트는 지난해 11월 미국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미국 FDA(식품의약국) 임상시험과 현지 계약, 국제 특허 등을 더 적극적으로 진행하겠다는 의지다. 메디포스트 관계자는 “현재 미국에서 임상시험을 앞두고 있는 ‘카티스템’과 ‘뉴모스템’ 을 현지에서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게 됐다”면서 “미국·유럽시장에 뛰어들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알앤엘바이오는 자신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몸에 주입하는 치료 방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 줄기세포를 채취해뒀다가 향후 지속적으로 줄기세포를 주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알엔엘바이오는 2006년 복부의 지방 중간엽 줄기세포의 분리와 배양법을 상용화하는데 성공했다. 줄기세포 치료가 법으로 금지된 우리나라 대신 해외 병원에서 줄기세포 이식을 진행해왔는데 뇌졸중으로 쓰러진 가수 조덕배 씨 등이 줄기세포 치료 후 호전된 사례가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덕분에 국내보다 해외에 더 잘 알려져 있다. 알앤엘바이오 관계자는 “현재 한국인 1만6000명이 자신의 줄기세포를 보관하고 있으며 이중 절반 이상이 이미 줄기세포의 효과를 체험했다”면서 “퇴행성 관절염이나 치매 예방 등은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차바이오앤디오스텍(이하 차바이오)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올해 3월 난치성 안과질환인 스타가르트병과 노인성 황반변성증 치료제의 임상시험을 앞두고 있다. 기술을 공동 개발한 미국 ACT사의 임상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란 발표가 나오면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차바이오는 현재 43종의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보유하고 있다. 향후 100여 개 정도까지 숫자를 늘리면 한국인 95% 이상에 적합한 줄기세포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제대혈 성체줄기세포와 지방 줄기세포 등을 이용한 치료제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파킨슨씨병이나 소아뇌성마비 치료제 등은 올 상반기 중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차바이오 관계자는 “배아줄기세포부터 성체줄기세포까지 거의 모든 줄기세포 영역에서 치료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전임상 단계에서 긍정적인 치료효과를 확인한 만큼 임상시험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줄기세포 치료제가 각광을 받으면서 줄기세포를 보관하는 일도 보편화되고 있다. 건강할 때 자신의 줄기세포를 채취해 보관함으로써 후에 발생할 수 있는 난치성 질환에 대비한다는 취지다. 줄기세포 역시 노화나 질병의 발병이 시작되면 그 수나 활성도(치료능력)가 떨어지기 때문에 건강한 시기에 미리 줄기세포를 채취, 보관해 두는 것이 좋다. 줄기세포 치료제가 수년 내 상용화할 것으로 본다면 확실한 건강보험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둘째를 출산한 장희선 씨는 “첫 아이를 낳을 때는 정보가 없어 제대혈을 버렸는데 나중에 아이가 아플 때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관하게 됐다”며 “15년 보관 상품을 선택했지만 필요하다면 연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전성 확보, 비싼 가격이 숙제현재 15만여 개의 제대혈을 보관하고 있는 메디포스트가 가장 앞서있다. 시장점유율은 40%를 넘어선다. 수요가 급증하면서 메디포스트는 판교에 새 사옥을 지어 보관시설을 늘릴 계획이다. 차바이오는 제대혈뿐만 아니라 혈액줄기세포, 면역세포, 태반줄기세포 등 다양한 줄기세포를 선택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통합 줄기세포은행인 차움 바이오 인슈어런스(Bio Insurance)를 운영하고 있다. 알앤엘바이오, 녹십자 등도 자체 보관센터를 가지고 있다.

너도 나도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지만 한계 역시 분명하다. 아직까지 줄기세포 치료제는 성체줄기세포에 집중돼 있다. 많은 기업들이 연구력을 집중하는 중간엽 줄기세포는 쉽게 많은 양을 얻을 수 있고 키우기도 좋은 장점이 있다. 하지만 성체줄기세포가 손상된 조직의 재생과 성장을 간접적으로 돕는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아직 장기를 구성하는 세포로 직접 분화할 확률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완전한 치료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세계적으로 뇌질환·심장질환 등 130여 종 치료제의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지만 아직 뚜렷하게 치료 성과를 확인한 단계는 아니다. 기대는 하되 너무 과장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도 숙제다. 줄기세포가 암 치료에도 효과를 발휘한다는 논문들이 발표되지만 반대로 암세포가 더 잘 자라도록 한다는 부정적인 보고도 많다. 중앙대 임상의학연구소 이홍준 교수는 “환자들에게 무조건적 믿음을 주려는 것보다 기술 개발자 스스로가 철저한 검증 절차를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람을 상대하는 일인 만큼 조금의 빈틈도 허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비싼 약값도 문제다. 급성 심근경색 치료제인 ‘하티셀그램-AMI’의 가격은 약 1800만원이다. ‘카티스템’은 600만원, ‘규피스템’은 300만~400만원 선으로 예상한다. 보험이 적용된다면 어느 정도 내려가겠지만 환자나 가족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런 액수다.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되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를 성형이나 피부미용에 적용하는 병원도 많다. 현행법은 단순히 줄기세포를 채취해 다시 주입하는 시술은 허용하고 있는데 가슴성형이나 주름 개선 등에 효과가 있다고 홍보하면서 수백만원의 비용을 청구하는 병원들이 늘고 있다. 제대혈 보관비용 역시 100만~300만원 선에 달해 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지어 줄기세포 보관비용은 종류에 따라 1000만원 이상을 호가한다. ‘부자들의 전유물’이란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여러 한계가 있음에도 의학계의 흐름은 이미 재생의학으로 넘어갔다. 이에 따라 줄기세포 치료제 역시 대세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국내 바이오산업을 이끌고 있는 메티포스트의 양윤선 대표, 차바이오의 정형민 대표, 파미셀의 김현수 대표 등은 공교롭게도 모두 1964년 생이다. 알앤엘바이오의 라정찬 회장은 1963년 생이다. 미래의 수익원을 향한 치열한 경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미래 산업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이들은 경쟁자인 동시에 동반자다. 50살 동갑내기 CEO의 움직임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ubiquitous8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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